공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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孔正植

대한민국 해병대해병대사령관
5대 김두찬6대 공정식7대 강기천

1 개요

대한민국군인. 대한민국 해군 장교로 군생활을 하다가 6.25 전쟁 도중에 대한민국 해병대로 소속을 바꿨다.
김두찬에 이어 6대 해병대사령관을 지냈으며 최종계급은 해병중장이었다. 후임자는 강기천 대장이었다.[1]

2 생애

1925년 9월 3일 경상남도 밀양군에서 태어났다. 1946년해군사관학교 1기로 입학했고 그해 12월에 임관했다. 동기로는 해군참모총장을 지낸 이맹기, 함명수, 김영관, 장지수 제독이 있다. 해군 소위 임관 후 해군 항해장교로 근무했고 301정장, 302정장, 경주함장을 지내기도 했다. 1949년 8월 16일에 해군 몽금포 작전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인천상륙작전에 해군 704함 부장으로 참가한 것을 계기로 해병대와 인연을 맺게 됐고, 공정식의 자질을 눈여겨 본 해병대 장교들의 설득으로 해병대로 전과했다. 제3전투단장, 1여단장, 제1해병사단, 부사령관을 거쳐 1964년에 해병대사령관에 올랐다.

초기에 해병대가 여러 부대에서 인원을 끌어오다보니 출신이 다양해서[2] 그가 전역한 1966년부터 1977년까지 해군사관학교 출신 사령관이 없다가 12대 정태석(해사3기) 중장이 취임했다. 그 후에는 해병간부후보생 출신인 정광호 중장, 이병문 중장, 이동용 중장, 김정호 중장, 전도봉 중장을 제외하면 전원이 해사 출신이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경상남도 밀양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처음에는 3선 개헌에 반대하다가 찬성으로 돌아섰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다가 신민당 박일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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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기준으로 90세 생존 중이며 해병대전략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작은 아들도 해병대 장교 출신이다.

3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선거종류소속정당득표수(득표율)당선여부비고
1967제7대 국회의원 선거 (경상남도 밀양군)민주공화당-당선
1971제8대 국회의원 선거 (경상남도 밀양군)민주공화당-낙선
  1. 5.16 군사정변제1해병사단이 참가한 공로에다가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해병대는 1966년부터 1973년까지 사령관이 대장이었다. 대한민국 해군1966년 김영관 제독부터 대장이었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해군대장이 해병대장을 지휘해야하는 해괴한 구조 때문에 해병대사령부1973년에 해체되고 직책도 사령관에서 해군제2참모차장으로 격하되었다. 계급도 중장으로 강등.
  2. 해군에서 만주군이나 일본군 출신을 해병으로 몰아넣은 것도 있고 해군특교, 해병학교, 해병간부 등 임관루트가 변주가 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