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개인처신 문제

< 박근혜(육영재단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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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통령 당선 이전

1.1 최태민과의 부적절한 관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주요 관련 인물박근혜 김기춘 · 우병우 · 정호성 · 안종범 · 이재만 · 안봉근 · 조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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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민부터 정유라까지 40년 총정리

최태민은 1975년, 박근혜에게 '죽은 육영수 여사가 꿈에 나와 박근혜를 구하라고 했다'고 편지를 보내고 “어머니 목소리가 듣고 싶을 때 나(최태민)를 통하면 항상 들을 수 있다."고 하는 등 박근혜의 환심을 사, 그 뒤부터 박근혜의 최측근으로 활동하였다.[1][2] 실제로 최태민은 박근혜에게 어머니는 돌아가신 게 아니라 박근혜의 시대를 열어주기 위해 길을 비켜준 것일 뿐이라는 말을 하거나, "아시아의 지도자", "여성 대통령"이라는 단어를 끊임없이 주입시키며 외부 활동을 권했다고 한다.#

하지만 최태민 주위에는 각종 이권 개입과 횡령, 사기 및 융자 알선을 비롯한 권력형 비리, 그리고 온갖 여성과 엮이는 스캔들 의혹이 들끓었다. <월간중앙> 1993년 11월호는 당시 분위기와 관련해, 박근혜가 지역에서 열리는 구국봉사단이나 새마음봉사단 행사에 참석하면 관내 각급기관장과 그 지역에 연고가 있는 중앙부처 고위공무원, 국회의원들이 총출동했다고 전하고 있다. “측근에서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최태민 총재의 위상 또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갔다. 나중에 최태민씨는 도지사와 경찰국장을 전화로 호출해 호통을 칠 정도까지 되었다.”

1977년 중앙정보부 ‘수사자료’엔 “형식상 모든 업무는 박근혜가 관장하였으나 실질적으로 최태민이 전권을 위임받아 행정부, 정계, 경제계, 언론계 등 각 분야에 영향력을 행사”라고 기록돼있고 “한마디로 미니 청와대였다”고 한다.# 박정희는 최초엔 최태민을 탐탁치 않게 여겼기 때문에 최태민을 몰아내고자 했으나# 박근혜가 눈물을 흘리며 끝까지 최태민을 두둔하자 의견이 변하였고 최태민은 사망할 때까지 박근혜의 옆에 자리하였다.# 10.26 사건김재규1980년 1월 항소이유보충서에서 최태민을 언급한다.

김재규 항소 이유 보충서

본인이 결행한 10·26 혁명의 동기 가운데 간접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중요한 것 한 가지는 박대통령이나 유신체제 자체에 관한 것이 아니라 박대통령의 가족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공개된 법정에서는 밝힐 수 없는 것이지만 꼭 밝혀둘 필요가 있으므로 이 자리에서 밝히고자 합니다. 구국여성봉사단이라는 단체는 총재에 최태민, 명예총재에 박근혜양이었는바, 이 단체가 얼마나 많은 부정을 저질러왔고 따라서 국민, 특히 여성단체들의 원성이 되어왔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아니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영애가 관여하고 있다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아무도 문제삼은 사람이 없었고 심지어 박승규 민정수석비서관조차도 말도 못 꺼내고 중정부장인 본인에게 호소할 정도였읍니다. 본인은 백광현 당시 안전국장을 시켜 상세한 조사를 시킨 뒤 그 결과를 대통령에게 보고하였던 것이나 박대통령은 근혜양의 말과 다른 이 보고를 믿지 않고 직접 친국까지 시행하였고, 그 결과 최태민의 부정행위를 정확하게 파악하였으면서도 근혜양을 그 단체에서 손떼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근혜양을 총재로 하여, 최태민을 명예총재로 올려 놓은 일이 있었읍니다. 중정본부에서 한 조사보고서는 현재까지 안전국(6국)에 보관되어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박승규 민정수석이 김재규에게 직접 하소연했다는 부분도 중요하다. 민정수석비서관이란 자리는 대통령비서실, 아니 청와대 조직 전체에서도 손꼽히는 실세 자리다. 당시 유신독재 시절에는 더욱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그런 위치인 박승규조차도 어찌 할 수 없어서 직속 상관인 대통령비서실장도 아닌 권력 2인자인 김재규에게 하소연해서 중앙정보부의 힘을 빌렸다는 뜻이다. 게다가 그 김재규가 직접 움직였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나아지기는 커녕 더욱 나빠졌다. 이게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알 수 있다.

당시 김재규의 변호를 맡은 안동일 변호사는 10.26 관련 책을 썼는데 신동아와 인터뷰를 했고 그게 2005년 12월호에 실렸다. 당시 김재규가 최태민을 주목했다는 점을 역시 증언하고 있다.

그는 김재규가 우발범이거나 패륜아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체제 회복에 나선 확신범 내지 양심범일지 모른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고 한다.

“김재규를 몇 번 접견하면서 우발범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면 그 사람의 진정성이 느껴지잖아요. 꾸며서 말하는 것은 느낌으로 알 수 있는데, 전혀 그런 게 없었어요. 김재규는 공개된 법정에서는 밝히지 않았지만, ‘10·26 혁명을 일으킨 간접적인 동기가 박정희의 문란한 사생활과 가족, 즉 자식들 문제 때문이었다’고 주장했어요.”

-구체적인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김재규는 큰 영애인 박근혜가 관련된 구국여성봉사단의 부정과 행패[3]를 보고 분개했다고 해요. 이런 일들이 ‘대통령이나 박근혜 자신에게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하고 조사를 시켰다는 겁니다. 조사 결과 로비나 이권 개입 등 여러 가지 비행이 드러나자 박 대통령에게 그대로 보고했는데 대통령은 ‘정보부에서 이런 일까지 하느냐’면서 몹시 불쾌해 했다고 해요. 박정희는 영부인 육 여사가 돌아가신 다음부터 자식들을 애지중지하고 철저히 감싸고 돌았다고 해요. 구국여성봉사단 문제만 해도 그래요. 당시 항간에서 말이 많던 최태민이 총재, 박근혜가 명예총재를 맡고 있었는데 김재규가 구국여성봉사단의 문제점을 보고한 후 박근혜가 총재, 최태민이 명예총재가 됐습니다. 박정희가 최태민의 실권을 뺏는답시고 두 사람의 자리를 맞바꾼 거지요. 김재규는 자기가 괜히 조사를 해서 오히려 ‘개악(改惡)’이 됐다면서 뒷조사한 걸 후회했대요.
신동아 2005년 12월 #

정보부 수사 파트 K국장의 진술에서도 이런점이 드러난다.

그는 박근혜양을 붙잡은 목사 최태민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김재규는 각하에게 최의 비위를 보고했으나 박근혜양이 비호, 각하 앞에서 대질 친국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천하의 정보부장이 사이비 목사[4]와 나란히 앉아 우김질을 했다는 것은 참으로 굴욕이었다.

79년 11월의 합동수사본부 기록에도 김재규의 증오가 드러난다. 다음은 기록에 나타난 정보부 수사 파트 K국장의 진술이다.

<김부장은 '최 같은 자는 백해무익하므로 교통사고라도 나서 죽어 없어져야 한다'고 증오를 표시했다. 새마음봉사단의 부총재(총재 박근혜)인 사이비 목사 최가 사기 횡령 등 비위 사실로 퇴임한 후에도 계속 막후에서 실력자로 영향력을 행사하여 각 기업체 사장들을 운영위원으로 선임하고 성금을 뜯어내는 등 새마음운동 취지를 흐리게 해서 계속 동향을 감시하라는 김 부장의 지시를 받았다. 79년 내사 결과 최의 이권 개입, 여자 봉사단원과의 추문 등 비리 사실을 탐지하여 김재규 부장에게 보고한 바 그렇게 말했다.>"
(1991년 동아일보에 연재된 기획물 '남산의 부장들' 발췌, 김충식 기자 집필)
아시아경제, 2016-09-23 08:16 #

16년 10월 29일 최태민의 구국선교단은 박정희의 지시로 창설 되었으며, 그 목적은 민주화 세력에 대항하기 위함이라는 새로운 증언이 나왔다.

전 목사에 따르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최태민 씨를 불러 민주화 운동을 하는 진보 기독교 세력이 강하다며, 이를 견제할 세력을 만들라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이 최태민 씨에게 보수 기독교 세력의 결집을 주문한 셈이다.

노컷뉴스, 2016-10-29 20:15

최태민은 1980년대 박근혜가 이사장으로 있는 육영재단에서도 권력 남용으로 안팎에서 거센 비판을 받았다. 1986년부터 육영재단의 어린이회관에선 최태민과 그의 5녀 최순실박근혜와의 친분을 과시하고 전횡을 일삼아 문제가 되었다. 또, 최태민에게 우선 보고해야 이사장(박근혜) 결재를 받을 수 있었다. 그 무렵 재단 잡지사 기자들의 파업과 직원들의 농성도, 모두 ‘외부 세력’이라고 표현된 최태민·최순실 부녀의 인사개입 등 간섭이 원인이 됐다. 분란은 1990년 11월15일 박근혜가 여동생 박근령에게 이사장직을 넘길 때까지 계속됐다. <중앙일보>는 1994년 최태민의 부음을 전하며, “최씨는 최근까지 근혜씨의 생활비를 대주며 재산관리인 행세를 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여성중앙>이 육영재단의 어린이 회관 직원들을 취재했는데, 박근혜 이사장은 1주일에 두 차례 결재를 하러 왔지만, 이에 앞서 제대로 된 직함도 없이 ‘최 회장’으로 불리던 최태민이 먼저 본 뒤 ‘오케이’를 해야 결재가 올라갈 수 있었다고 한다. 그 딸인 최순실은 자신이 주도하는 연구소를 통해 육영재단이 간행하는 잡지들의 편집에 간여한다는 비판을 샀고, 잡지 <어깨동무>와 <꿈나라>는 끝내 휴간 처분됐다. 어린이회관 직원 140명과 기자들 16명이 권고사직을 당한 반면, 최순실의 초이종합학원 교사들은 어린이회관에 되레 입사했다. 1987년 9월 보다 못한 직원들이 최태민·최순실 부녀의 개입을 규탄하며 7일간 농성시위를 하기도 했다.

1994년 8월12일 박근혜는 MBC 아침 뉴스 프로그램 '뉴스와이드'에 출연해 “최태민은 악선전으로 부정 축재자로 몰렸다"고 말했다. 당시 함께 박정희 전 대통령 부부 묘소를 참배하고 인터뷰를 한 사람은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박근혜 제부인 신동욱(박근령 남편)은, "육영재단에서 전횡을 휘두르는 최씨 일가를 단속하려고 하니 박근혜가 최태민을 감싸고 돌면서, "최태민을 언급하면 천벌 받는다" 라고 하였다." 고, 천벌씩이나 운운하면서 싸고 돌았다고 증언하였다.# 또한 "할 말이 있으면 최순실을 통해 하라"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최태민 일가의 육영재단 전횡 논란에 대해 2007년 박근혜 후보는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청문회에서 “최씨는 재단 일에 관여하지 않았다. 순전히 오해다”라며 적극 보호했다. 2006년과 2007년 청문회에서 최태민과 그 가족들의 비리행위에 대해 박근혜는 최태민이 모함을 받는 것이고 억울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하고 “최 목사(최태민)는 내가 어려운 시절 나를 도운 사람”이며 “고맙고 훌륭한 분”이라며 그를 끝까지 두둔했다. 최태민과의 부적절한 관계에 대한 질문에서 톤이 높아지고, 최태민과의 자녀 존재 여부를 묻는 질문에 불쾌감을 나타내자 왜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냐고 물으니 "아기가 있다는,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얘기까지 나온다. DNA 검사라도 해 줄 테니 애를 데려오라"며 언성을 높였다. 이전에도 최태민과의 사이에서 숨겨둔 사생아가 있다는 의혹이 여러 번 제기된 적이 있다.# ##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 따르면 최태민이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했다고 한다. 이는 현몽설부터 시작해 박근혜의 인생이나 발언들[5]과 너무도 잘 맞아떨어져 뒷이야기가 무성하다.

주식 갤러리에서는 혜토미라는 무시무시한 드립이 나왔다. (성희롱 주의). 틀심파괴는 덤

이상호 기자가 최순실 사촌동생을 단독 인터뷰했다. 그는 “쉽게 얘기해서 권력과 억압으로 인해 호적이 파였다”며 “최순실씨에 파워를 몰아주기 위해 큰 어머니(임순이)께서 남자는 전부 다 호적을 팠다”고 말했다.#

1.1.1 안기부 최태민 보고서

시중에는 흔히 ‘최태민 보고서’라는 이름이 붙은 그의 비리전력 등을 담은 문서가 돈다. 이 문건은 어떻게 세상에 나오게 되었을까. 문건을 최초 보도한 <신동아> 관계자는 “보도 후 참여정부 말기 여당 고위인사의 개인 홈페이지에 ‘안기부’라는 닉네임으로 이 문건이 잠깐 올라왔다 삭제된 적이 있는데, 그것이 퍼진 것 같다”고 말했다. 흔히 중앙정보부 문서 등으로 알려져 있지만 문서 자체는 안기부 시절인 1988년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문서에서 1912년 생인 최태민이 76세로 표기되어 있기 때문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을 불러 최태민 조사를 시켰다. 김재규는 경찰정보, 대인정보, 검찰정보, 보안사 등 일종의 ‘오피셜 인텔리전스 루트’로 최태민 관련 정보를 취합했다. 중정이 박정희 대통령의 책상에 올려놓는 보고서는 이런 공식 루트에 기반한 정보였다. 중정이 정리한 보고서는 다시 1980년 전두환 집권 이후 최태민을 재조사할 때 만들어진 합동수사본부 문서, 그리고 이후의 ‘안기부 문서’의 골격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1977년 9월 12일 최태민에 대한 이른바 ‘친국’이 열렸다. 김 전 국장이 전하는 실상은 이렇다. "청와대 집무실에서 김재규를 불러 이야기를 들은 뒤 다시 차지철을 불렀다. 회의를 하고 난 다음 차지철에게 큰 영애(박근혜)가 ‘최태민은 좋은 사람이다. 좋은 사람인데 이상한 사람으로 모략한다’고 매달렸다. 차지철은 왜 박근혜가 최태민에게 그렇게 집착하는지 처음에는 몰랐다."

2003년 한국일보가 단독으로 보도 한 김재규의 옥중 수양록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79년 음력 12월 11일

대통령 일가의 횡포
1. 구국여성봉사단과 큰 영애(여러 차례 건의했으나 관여치 말라는 노여움만 삼).
2. 육사의 명예제도와 지만생도
백광현 고검검사가 조사를 담당함(당시 6국장)
김근수 중정제6국장이 사실 전모를 파악하고 있음.
참고. 최의민의 전화도청으로 최가 일일이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는 사실(기록을 국장 소지 보관중)

  • 상기 내용은 혁명과 직접, 간접으로 관계가 있으나 일절 언급치 않았다. 그 이유는 아이들의 일이라서. 돕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간단히 여기에 기록하고 자세한 것은 후일 백 검사와 김근수 국장이 조사결과.”

당시 김재규가 “아이들 일”이라고 치부했던, 하지만 대통령 저격의 직ㆍ간접적 계기가 됐던 그 인연은 37년이 지나 대한민국을 무기력의 격랑에 휘말리게 하는 씨앗이 되고 말았다.

김경래 전 <경향신문> 편집국장(88·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 상임이사)은 김재규가 박정희를 쏜 것에는 최태민 문제가 ‘먼 원인(遠因)’으로 작용했다고 봤다.

"최태민 친국을 기점으로 차지철은 김재규를 박정희로부터 차단했다. 김재규뿐만 아니라 장관 등 국무회의 임원들도 박정희를 만나려면 차지철을 경유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김경래 전 <경향신문> 편집국장

그는 “박근혜가 최순실 건을 빨리 털고 가지 않으면 큰일난다”고 우려했다.

1.1.2 노태우 정부최태민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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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를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 한글을 병용하면 다음과 같다.

최근(最近) 박근혜(朴槿惠)는 최태민(崔太敏)으로부터 "신(神)의 계시(啓示)로 몇 년만 참고 기다리면 여왕(女王)이 될 것이므로 친인척(親姻戚)등 외부인(外部人)을 만나면 부정(不淨)을 타게 되니 접촉(接觸)을 피하라"는 말을 듣고. 친동생(親同生)인 박지만(朴志晩)에 대해서까지 접촉(接觸)을 제한(制限)하고 있어 박지만(朴志晩)이 "큰 누나는 최태민(崔太敏)의 꾀임에 빠져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으며 두 사람이 같이 있는 장면(場面)을 볼까 봐 사전(事前) 약속(約束) 없이는 집에서도 만날 수 없다"고 불만(不滿)을 토로하고 있는 실정(實情)으로 항간(港間)의 악성(惡性) 유언비어(流言蜚語) 확산(擴散) 우려(憂慮).

- "박근혜(朴槿惠)에게 최면(催眠)을 걸어 육 여사(陸女史)의 환상(幻想)이 나타나게 해 주어 환심(歡心)을 사고 있다."

- "최태민(崔太敏)과 내연(內緣)의 관계(關係)로 동거(同居)하고 있다."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80년대 말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최순실의 부친 최태민과 관련된 의혹을 집중 조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선일보>가 입수한 노태우 정부의 최태민 관련 조사 보고서에 나타난 최태민의 행태는 최근 제기된 최순실 국정 농단의 그것과 상당히 비슷하다.

보고서는 최태민이 박정희 대통령이 숨진 1979년 이후에도 박근혜 대통령 곁에 머물며 각종 육영·추모 사업에서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과 당시 시중 유언비어 등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1989년 10월 당시 노태우 대통령에게 보고됐다고 한다.

보고서는 최씨가 박 대통령이 이사장으로 있던 육영재단과 한국문화재단에 따로 사무실을 두고 박 대통령과 수시로 접촉하며 재단 운영에 개입했다고 했다. 최씨가 측근을 재단 간부와 비서·경호원 등으로 근무하도록 해 박 대통령의 활동을 일일이 수집하는 식으로 재단 운영을 배후 조종했다는 것이다. 민정수석실은 당시 최씨가 박 대통령 이동 시에 경호차까지 붙였다며 박 대통령이 탄 차를 뒤에서 따라가며 경호하는 차량 사진까지 첨부했다. 보고서는 또 "최씨는 재단 내부에서 '최 회장'으로 불리고 있으며 외부에는 '박근혜 씨의 후견인'이라 소개하고, (최씨의) 처(妻)로 하여금 박근혜 씨의 생필품을 제공하게 하는 식으로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고 했다. 최순실 씨가 박 대통령의 의상과 액세서리 등을 챙기며 국정에까지 개입한 것과 흡사하다.

보고서에는 남동생 박지만 씨가 "누나가 최태민의 꾐에 빠져 다른 사람 말을 듣지 않아 사전 약속 없이는 집에서도 만날 수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는 내용도 나온다. 최씨가 박 대통령과 지만 씨의 접촉을 막고 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2013년 취임 후 근령·지만 씨 두 동생을 청와대에 부르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동생들과 거의 접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고서에는 "최씨가 박근혜 씨에게 '신의 계시로 몇 년만 참고 기다리면 여왕이 될 것이므로 친·인척 등 외부인을 만나면 부정을 타게 되니 접촉을 피하라'라고 했다거나 '세계 정세가 여성 총리가 동쪽으로 이동하게 되어 영국마가렛 대처 총리, 파키스탄의 베나지르 부토 총리가 탄생했는데 1990년대 초에는 우리나라에도 여성 총리가 나오게 되는데 그 인물이 박근혜'라고 예언했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민정수석실은 또 "박근혜 씨는 최태민 씨가 신의 계시로 자신을 위해 헌신해 (최씨를)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다고 확신하고 모든 일을 그의 조언에만 의존하는 실정"이라며 "최씨가 '박근혜 씨에게 최면을 걸어 육영수 여사의 환상이 나타나게 해 환심을 사고 있다'는 유언비어와 '박근혜 씨가 근화봉사단 조직이 완료되면 차기 대통령에 출마할 꿈을 꾸고 있다'는 등의 설(說)이 시중에 유포되고 있다"고 전했다.

민정수석실은 보고서에서 "최씨가 각종 재단 운영에 관여하면서 물의를 일으킬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박 대통령의 동생인 근령·지만 씨는 1990년 8월 노태우 대통령에게 보낸 호소문에서 "최씨가 육영 사업(육영재단), 문화재단(한국문화재단) 등의 회계장부를 조작하는 식으로 재산을 축적했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1990년 여동생 박근령 씨와 벌인 육영재단 분쟁 당시 "내가 누구한테 조종받는다는 것은 내 인격에 대한 모독"이라고 했고, 최태민 씨의 비리 의혹에 대해선 "반대 세력의 악선전"이라고 반박했다.

전두환·노태우 정부에 참여한 한 인사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경호실 작전차장보를 연이어 맡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박 대통령이 영애(令愛) 시절이었을 때부터 최태민 씨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고, 두 사람 모두 집권 직후 전직 대통령 유족 보호 차원에서 최씨를 박 대통령에게서 떼어놓으려 했지만 잘 안 된 것으로 안다"고 했다. #

1.1.3 주한미국대사

2007년 대선 당시 버시바우 주한미국대사가 쓴 박근혜 후보 관련 외교전문은 2011년 위키리크스에 해킹됐다. 버시바우 대사는 한국의 '그리고리 라스푸틴’인 최태민이 박근혜를 몸과 마음을 지배해왔다는 소문이 무성하고 그 결과 최태민의 자녀들이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고 썼다.# #

1.1.4 박근령박지만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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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저희 언니에게 교묘히 접근해 언니를 격리시키고 고립시킨다
최씨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언니인 박근혜의 청원[6]을 단호히 거절해 주시는 방법 외에는 뾰족한 묘안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 주셔야만 최씨도 다스릴 수 있다고 사료되며, 우리 언니도 최씨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환상에서 깨어날 수 있을 것이옵니다.

박근혜의 여동생 박근령과 남동생 박지만은, 1990년 8월 14일 노태우 당시 대통령에게 A4용지 12장 분량인 편지를 썼다. 박근령이 직접 쓴 이 편지에는 최태민의 전횡·비위를 주장하는 내용과 "(최태민은) 순수한 저희 언니에게 교묘히 접근해 언니를 격리시키고 고립시킨다"며 "이번 기회에 언니가 구출되지 못하면, 언니와 저희들은 영원히 최씨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의 장난에 희생되고 말 것"이라고 호소하고 있다. "각하 내외분께서 언니인 박근혜를 만나 주신다면, 이 점을 최씨가 교묘히 이용해 우리 언니를 자기의 손아귀에 넣고 그 막강한 힘을 오히려 저희 유족 탄압에 역이용할 것"이라고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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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이제는 도저히 참을 수 없고 참아서도 안될 일이 눈앞에 닥쳤다"며 최태민과의 비위와 전횡을 장황하게 서술했는데, 그 분량이 A4용지 5장이다. 특히 최태민의 금전 편취는 언니 박근혜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적었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자신의 축재 행위가 폭로될까봐 계속해 저희 언니를 자신의 방패막이로 삼아 왔다"라며 "(최태민은) 유족이 핵심이 된 각종 육영사업, 장학재단, 문화재단 등 추모사업체에 깊숙이 관여해 회계장부를 교묘한 수단으로 조작하여 많은 재산을 착취했다"며 "지금은 서울 강남 및 전국에 걸쳐 많은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고 적었다.

또 유가족에 대한 인격 모욕을 서술한 부분이 있는데,"(최태민은) 경비원을 언니에게 붙여 우리 형제들과 완전히 차단시키고 있다"며 "이로 인해 우리 형제들은 서로가 지척에 있으면서도 만나지도 못하고, 소식도 들을 수 없으며, 전화 대화마저도 못하는 실정"이라고 적었다.

부모님 명예 훼손과 관련, "최씨는 부모님의 유덕을 기리는 기념사업회를 형식적으로 만들어 놓고 이름만 '박정희 대통령 육영수 여사 기념사업회'이고 실제 내용은 최태민 기념사업회로 전락되어 가고 있다"며 "언니 박근혜가 대표 이사권이 있다는 것을 최대한 이용해 그 배후에서 모든 것을 관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편지가 작성된 시기는 최태민이 육영재단 고문을 맡고 있을 때며, 박근령과 숭모회라는 단체는 "최태민이 박근혜 이사장을 배후에서 조정한다"며 최태민의 퇴진을 주장했다. ###

1.1.4.1 박지만 증언

박지만 회장의 한 측근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박 회장이 예전부터 많이 (최태민·최순실 일가를 우려하는) 말했고 지금도 어떤 마음인지 (지인의 말을 인용한 일부 보도를 통해) 계속 나오잖아요"라며 "그 양반이 이제 할 말이 뭐가 더 있겠나"라고 말했다고 한다.

<동아일보> 28일 기사. 박지만 EG 회장과 친분이 있는 인사에 의하면, '이미 박 회장은 할 말 있으면 최순실을 통해 하라는 말을 들어왔다고 한다. 나설 상황이 아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고 전했다. 친동생인 박 회장조차 최순실 씨의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는 것이다.

채널A에 따르면 '정윤회 국정 개입 문건 유출' 사건으로 구속 기소됐던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 박관천 전 경정은 "박 회장이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최순실 정윤회"라며 이같이 말했다. 박 전 경정은 "박지만 회장이 '누나가 최순실 정윤회 이야기만 나오면 최면이 걸린다'고 토로했다"면서 "박 회장이 많이 외로워했다"고 밝혔다.

1.1.4.2 박근령 증언

박근령씨는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 이상한 예감 같은 것은 전혀 없었느냐’는 질문에 “당시 언니에게 어떤 분이 ‘한 번 뵐 거면 두 번 뵙고, 두 번 뵐 거면 세 번 봐라,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며 ‘어떤 분’이 바로 최태민이었다고 밝혔다.

Q: 박 이사장이 최태민 목사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언제인가.
A: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최태민 목사라는 사람이 언니에게 좋은 이야기들을 들려주겠다고 하면서 만나기를 원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그 분을 만나지 못하도록 하셨다.

Q: ‘만나지 못하도록 했다’면 이미 그 전에 박 전 대표와 최 목사가 만났다는 말인가.
A: 한두 번 행사장에서 마주친 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Q: 그때가 정확히 언제인가.
A: 언니의 대학 재학 시절로 알고 있다. 프랑스 유학을 가기 전이다.

Q: 박 이사장은 대학 졸업 후 언니의 개인비서 역할을 했다고 했는데 그때 최태민 목사의 실체를 전혀 몰랐나.
A: 당시만 해도 저는 언니를 도와주시는 훌륭한 분으로 알고 고맙게 생각했다. 제가 청와대 있을 때는 그 분을 만난 적이 없고 사진만 봤다. 그 후에는 여러 번 뵌 적이 있다. 최 목사가 그 당시 아현동에 위치한 새마음병원을 언니와 같이 운영하면서 오랫동안 관여했다.

Q: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자식 문제와 관련해 친국(親鞫)을 했다. 그 사실을 박 이사장은 언제 알았나.
A: 그 무렵 알게 됐다. 언니도 그 일로 굉장히 괴로워했다. 새마음봉사단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많은 잡음과 투서가 정보기관이나 청와대로 들어왔다고 한다. 곳곳에서 잡음이 많이 일어나니까 아버지까지 확인하려고 나서신 거다.”

Q: 박정희 대통령 서거 후 근혜, 근령 두 자매는 신당동 사저에 잠시 거주하다 기업인들이 마련해준 성북동으로 거처를 옮겼다. 성북동 생활은 신당동보다는 편했나.
A: 성북동으로 이사를 가면서 할 일이 태산 같았다. 신당동 사저는 워낙 좁아서 짐도 못 풀었지만 성북동에서는 짐을 정리할 공간이 생기다 보니 본격적으로 서류를 분류하는 작업을 했다. 총무처와 대학교 도서관학과에서 사람들이 나와서 같이 작업을 했다.

Q: 성북동 시절에도 최태민 목사가 박근혜 전 대표의 일에 관여했나.
A: 새마음봉사단 일과 관련해 거의 매일 의논을 한 걸로 안다. 그런데 육영재단 사건 때문에 후에 들은 구호를 보면 최태민 목사가 오해 받을 일들을 했다는 것이다. 전횡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Q: 1990년 8월14일 박지만씨와 함께 최태민 목사 비리를 폭로하는 탄원서를 노태우 대통령 앞으로 쓴 걸로 알려졌다. 그 탄원서가 박근령 이사장 자필인지 여부가 논란이 있었다.
A: 당시 탄원서는 제가 자필로 직접 썼다. 동생도 최 목사 일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속상해 했다. 동생이 제 아파트에 와서 ‘최 목사 때문에 큰 일’이라면서 걱정을 많이 했다.

Q: 탄원서 내용을 보면 최태민 목사 일가가 금전편취, 유가족에 대한 인격모독, 부모님에 대한 명예훼손 등 18가지 항목을 지적한 걸로 돼 있다.
A: 오래 전에 써서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정보기관이나 수사기관에서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당시 육영재단의 비리를 잘 알고 있던 직원들은 ‘희대의 사기꾼 최태민은 물러가라’고 피켓을 들고 성토를 했다. 육영재단과 기념사업회에서 근무하던 사람들이 ‘이건 아니다. 큰일 났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하루 속히 언니가 그 사람들(최태민 일가)과 헤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우리는 탄원서로 바로잡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

1.1.5 조순제 최태민 아들 증언

  • 조순제는 최태민의 의붓아들로 최태민의 마지막 부인이 데려온 아들이다. 최태민은 공식적으로 아들이 하나도 없었다. 다 딸이었다. 데리고 있는 아들이라고는 의붓아들 조순제 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구국봉사단부터 시작해서 영남대, 육영재단까지 사실상 도맡아 한 사람이 조순제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조씨는 박 대통령이 이사장을 지낸 영남대 재단 운영에 깊이 관여했고, 역시 박 대통령이 이사장을 맡았던 한국문화재단에서 이사를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이하 '스포트라이트')에서는 최태민의 의붓아들 조순제와의 대화 녹취록을 공개했다. 이 비밀 녹취록을 확보한 '스포트라이트' 제작진은 검증을 통해 녹취록이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당시 이명박 후보 캠프에서 작성된 것을 확인했다.
녹취록에는 1970년대 초중반 최태민의 생계가 "아주 어려웠다. 생활 자체가 어려웠다"고 기록돼 있다. 그런데 1975년 구국선교단을 조직하고 박근혜 대통령을 명예총재에 앉힌 뒤엔 "돈 천지였다. 우리나라 재벌들이 돈 다 냈다. 돈은 최태민이 관리했다"고 조 씨는 증언했다.
또 "10.26 이후 뭉텅이 돈이 왔는데 관리하는 사람이 있고, 심부름하는 사람이 있었다. 최순실이 심부름을 꽤나 했다"고 기록돼 있다.#
  • <TV조선>이 조순제 녹취록을 공개했다. 최태민씨는 1970년대 박근혜 대통령과 구국선교단 활동을 같이 했다. 그 과정에서 박 대통령이 '여성 대통령'이자 '아시아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정치적 야망을 자극했다고 한다.# 조순제는 명예훼손으로 고발당할 것을 우려해 결정적인 증언을 계속 자제했다고 한다. 당시 녹음 자리에 참석했던 인물에 따르면, 녹음기를 끈 상태에서는 더욱 놀라운 증언도 많이 했다고 하지만 워낙 충격적인 내용이고, 정작 증언자가 이미 사망한 상태이기 때문에 보도하지 않았다고 <TV조선>은 밝혔다.#
"앞으로 계속 성장하면, 이걸 기초로 해서 성장하면 여성 대통령이 가능하고. 그 때 바람을 다 넣은 겁니다."
박 대통령이 1998년 정치를 시작한 것도 최태민의 영향이 컸다는 것이다. 구국선교단이 이름을 바꾼 새마음봉사단 시절에는 박 대통령이 '새마음교주'로 불렸다고 조씨는 전했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새마음, 새마음 교주라고 그랬지."
조씨는 초기부터 최태민과 박 대통령은 '완전히 하나'였다고 말한다.
"아이고. 그 전에부터도 둘은 아주 불가분의 관계라고 봐야지."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박 대통령은 최태민 씨의 역삼동 집에 사흘에 한번꼴로 찾아갔다고 한다.
"하여튼 자주 왔어요. 사람들 다 피하게 하고 눈에 안 띄게. 온다고 연락이 오면 다 피하고."

"둘이 들어갔다 하면 밥은 문간에 갖다놓으면 영감(최태민)이 갖고 들어가고."

최태민은 박 대통령 동생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자기 가족들도 박 대통령과 가까이 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차단했다. 구국선교단을 실질적으로 운영한 조순제씨도 예외가 아니었다.
"내가 혹시 근혜 잡을까 싶어서 (최태민이 경계한 거예요?) 그럼."
박 대통령이 친동생인 근령, 지만 씨와 멀어진 것도 최태민의 이간질 때문이라고 조씨는 말했다.
"거의 맞을 거예요. 그 동생들이 컴플레인하니까 그래서 자기들끼리 거리가 멀어진 거예요."
  • 조순제는 녹취록 작성 후, 1년 뒤에 사망했다. 2007년 12월 20일, 17대 대선 바로 다음날이었다.

1.1.6 전기영 목사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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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조선 인터뷰

고 최태민(1994년 사망)씨와 20여 년간 교류한 충남 서산 충성교회 전기영(76·사진) 목사가 <국민일보>에 증언했다.#

예장 종합총회 총회장 전기영 목사는 영세교 교주 최태민씨에 대해 “주술가이고 무당”이라고 평했다. 최순실씨의 부친이자 사교인 영세교 교주였던 최태민(1994년 사망)씨가 “박근혜와 나는 영적 세계의 부부”라고 말하고 다녔던 것으로 드러났다. 최씨는 또 “내가 육영수 여사로 빙의(憑依)한 몸이 되어 박근혜 앞에서 말하자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가 깨어나는 입신을 했다”고 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빙의 입신’ 대면은 박근혜 대통령과 최태민씨의 첫 대면 내용이 담겨 있는 중앙정보부 보고 자료를 기준으로 볼 때 1975년 3월로 추정된다.

Q: 태민이 박근혜를 알게 된 동기는.
A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난 뒤다. 그 무렵 박근혜에게 최씨가 위로의 편지를 보냈다. 편지 내용은 죽은 육영수가 나타나 ‘내 딸 근혜가 우매하니 당신이 그녀를 도우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에 박근혜가 최씨를 청와대로 초청했다. 까만 승용차들이 최씨가 도를 닦는 곳에 왔다. 어머니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엄청난 심리적 고통에 시달리는 박근혜 앞에서 최씨가 육영수의 영혼에 빙의(憑依, 영혼이 옮겨 붙음)됐다면서 그녀의 표정과 음성을 그대로 재연했다. 이것을 보고 놀란 박근혜가 기절하고 입신(入神·신들림)을 했다."

Q: 입신이라면….
A: "입신이란 말은 최씨에게 직접 들은 얘기다. 입신은 교계용어다. 예컨대 환상을 본다거나, 천국이나 지옥을 본다던가, 뜨거운 성령 체험, 신들렸다는 등. 놀란 박근혜가 그때부터 최씨를 신령스런 존재로 보게 됐다고 한다.
최씨는 박근혜가 대통령에 나올 것인데, (자신이 관리하는 자금이)서울 안국동 조흥은행에 13억원, 그리고 이자 9000만원이 있으니 그것으로 도와주라고 부탁했다. 최씨가 하나님은 언급하지 않고 ‘우리 신이’라는 표현을 써 이상함을 느꼈다. 목회자인 내가 보기에 그건 성령의 은사가 아니고, 귀신의 역사였다."

Q: 한때 최태민·박근혜 연인설이 돌았는데.
A: "물은 적이 있다. 최씨가 ‘내가 나이가 있는데…’라고 반문하더라. 나이도 많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말인 것 같았다.
‘박근혜와 나는 영의 세계 부부이지, 육신의 부부는 아니다’라는 말을 했다. 추문이 끊이지 않자, 박정희 대통령은 당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게 조사를 지시해 직접 이른바 ‘친국’(예전에 임금이 직접 중죄를 지은 자에게 일일이 따져 묻는 일을 이르던 말)을 했다. 그럼에도 박근혜는 끝까지 최태민을 변호했다. 이후 재판에서 김재규는 대통령 시해이유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최태민을 처벌하지 않는 실망감을 들었다."

Q: 최씨는 목사가 아니라는 얘기도 있다.
A: "최씨는 1975년 우리 교단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하지만 신학교육은 받지 않았다. 당시 돈 몇 푼주고 목사안수를 받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최씨도 그런 인물 중 하나다. 지금도 적지 않은 신학교는 몇 개월이나 1년만에 목사자격을 주는 경우가 많다. 안타까운 일이다."

Q: 최씨가 신학을 하지 않았다고 했나.
A: "그렇다. 한번은 예배 때 축도를 못해 옆에 있는 목사가 축도 문구를 적어주었다. 최씨가 ‘축도’라고 크게 외치는 모습을 보고 웃은 적이 있다. 하지만 최씨의 말을 듣다보면 종교에 대해 아는 것도 많았다. 천주교 얘기도 많이 했고…. 특히 글을 잘 쓰고 붓글씨를 잘 썼던 기억이 난다."

Q: 그럼 최씨는 왜 목사안수를 받았을까.
A: "기독교를 이용하려 했던 것 같다. 박정희 대통령은 당시 반(反) 정부 투쟁을 했던 기독교 세력을 견제했다. 그래서 최씨가 박 대통령의 명을 받든 것이다. 최씨는 어용단체인 대한구국선교단을 만들었고 총재에 취임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명예총재를 맡았다. 자금을 계속 지원받은 것으로 안다."

Q: 최씨는 교단에서 스스로 나갔는가.
A: "쫓겨났다. 최씨는 당시 아파트 한 채 값을 주면서 지금 최순실이나 정윤회가 하는(박근혜 대통령을 돕는)일을 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거절했다. 최씨는 병을 고치고 점을 치는 등 주술적인 내용이 많았다. 특히 기독교 신학에 벗어나는 짓을 계속해 교단에서 쫓겨난 것이다."

Q: 최씨의 교계 활동을 증언해 달라.
A: "최씨는 영(靈)이 다른 사람이다. 산에서 도를 닦는 사람이었다. 목사가 되고 서울 강남에 ‘만남의교회’라는 200평(660㎡)쯤 되는 교회를 세웠다. 신학교도 설립했다. 그의 딸 최순실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몬테소리 유치원 큰 것을 차렸다. 나를 끌어들이려 했지만 귀신들린 이야기를 하도 많이 해 거절했다. 하나님이 아닌 신을 찾고 주술적인 말을 하도 많이 하길래 ‘이놈아, 네 정체가 무엇이냐. 누구 앞에서 재주를 부려’라고 소리쳤더니 얼굴이 찌그러지면서 저리 도망가더라."

1.1.7 육영재단 관계자 증언

국민일보 보도에 의하면 1980년대 육영재단에 근무했던 한 직원은 최태민이 직원들 50-60명 앞에서 여성 속옷이 든 봉지를 들어 올리면서, "박근혜 이사장은 내가 속옷까지 직접 사다 줄 정도로 나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라고 말한 적 있다." 고 증언했다고 한다. 기사

1.1.8 정두언 새누리당 전 의원 증언

2007년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때 MB측에서 박 대통령 검증을 책임 맡았던 정두언은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검증을 책임지다 보니까 많이 알게 됐잖나"라며 박근혜 대통령과 최태민의 관계에 대해 "그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고 또 아이들이 듣기에는 불편한 부분들이 많기 때문에 그걸 공개한다는 것 자체가…그런데 그것을 결국 방관했다는 것은 (나도)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2007년 8월에 언론 인터뷰에서 '박근혜와 최태민의 관계를 낱낱이 밝히면 박근혜 좋아하는 사람들은 밥도 못 먹게 될 것'이라고 말한 것과 관련해 추가로 밝힐 내용이 있는지에 대해선 "얼마나 더 밝혀질지는 모르지만 이제 더 밝혀질 필요도 없죠. 이 정도면 뭐…" 라면서 "뭐한 말로 ‘야동’까지 나와야 됩니까? 정말…정말 충분하죠"라고 답했다.#

1.1.9 김종필 전 국무총리 증언

  • 2016년 11월 14일, 시사저널이 김종필 전 국무총리(박근혜 대통령의 사촌형부)의 증언을 보도했다.# 입 열 때 되니까 드디어 입을 열었다며 역시 노련한 JP라는 평.
Q: 옛날부터 총재님 이야기를 전혀 안 들었나요.

A: 전혀 안 듣는 친구야.

Q: 이러니저러니 해도 박 대통령에게 바른말 할 수 있는 사람은 김 총재밖에 없지 않습니까.
A: 없어. 내 말 듣지도 않아. 옛날부터 그랬어요. 저희 아버지 어머니 말도 안 들었어. 최태민이란 반 미친놈, 그놈하고 친해 가지고 자기 방에 들어가면 밖에 나오지도 않았어.

Q: 그러니까 최태민과 관련해 별의별 소문이 다 돈 것 같습니다.
A: 하루 이틀도 아니고 아침부터 깜깜할 때까지 뭔 얘기를 하고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지만 들어앉았으니 그렇지. 오죽하면 박정희 대통령이 정보부장 김재규에게 ‘그 최태민이란 놈 조사 좀 해 봐. 뭐하는 놈인지’ 그랬을까. 김재규가 ‘아버지가 조사를 지시한 것’이라고 했더니 ‘근혜’는 ‘맘대로 해 보라’며 고함을 지르고 야단을 쳤어요. 아버지한테 찾아가서 울고불고 난리를 부렸지. 그랬던 사람이 지금 대통령이다. 우습지 뭔가.

1.1.10 김해호 증언

박근혜 전 대표는 최태민이라고 하는 사람과 그의 딸 최순실이라는 사람의 허수아비에 불과하다. 자신이 가진 재단조차 소신껏 꾸리지 못하고 농락당하는 사람이 어떻게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되겠는가 -2007년 6월 17일 기자회견-
박근혜 전 대표는 최태민과 최순실의 꼭두각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2014년 12월 ‘정윤회 국정농단 의혹사건’ 당시 구속되었던 박관천 전 청와대 행정관의 “우리나라의 권력서열 1위는 최순실, 2위는 정윤회, 3위는 박근혜다”라는 말에 앞서 7년 전인 2007년에는 김해호씨가 남긴 “박근혜 전 대표는 최태민과 최순실의 꼭두각시”라는 말이 화제를 모았다. 2007년 최태민 파일은 김씨가 취합한 자료를 기초로 만들어진 파일이다. "그제 광화문 앞을 지나는데 한 20여명 대학생들이 꼭두각시 박근혜를 최순실이 조종하는 그림을 그려놨더라." 속으로 쓴 웃음이 나왔다. 나더러 대예언가라고 하는 인터넷 게시글도 봤다. 자신이 9년 전 주장한 내용이 사실로 드러나는 것과 관련 그는 “국가적 비극이 된게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국민들로서는 어이없는 고통이겠지만 나에게는 머리가 쭈뼛서는 고통이었다. 6개월 트라우마가 6년이 갔다. 지금도 좁은 공간에 가서 밥을 먹으면 한 여름이라도 문을 열어놔야 한다."

1.1.11 최씨 일가 운전기사

최순실 17년 운전기사가 <세계일보>에 증언했다.

Q: 1994년에 최태민씨가 죽었다는데.
A: 모 기사(박 대통령 옛 운전기사로 1998년 사망)가 그러더라고요. 한번은 대통령이 ‘최 회장(최태민씨)이 전화가 안 된다’고 하더라. (모 기사가) 아무 소리 안 하고 있으니까 (박 대통령이) ‘두 달째인지 석 달째인지 연락이 안 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얼마 후 다시 모 기사한테 또 물었다고 하더라. ‘석 달째 최 회장 연락이 안 돼요, 집에 가서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그래서 (모 기사가) 알아보니 (최 회장이) 세상을 떠난 것이다.

Q: 박 대통령이 최태민씨 죽음을 한동안 몰랐다는 것인가.
A: (최씨 일가가) 안 알려줘서 몰랐던 것이다.”

Q: 왜 최태민씨 죽음을 박 대통령에게 알리지 않았던 걸까.
A: 최태민씨의 아들들에게도 알리지 않았다고 하더라. 아들들도 신문에서 부고 기사를 보고 찾아왔다.

Q: 모친인 임선이씨도 있었는데 어떻게 최씨가 대장이었는가.
A: 순실이는 (박 대통령에게 어려운) 이야기를 못하니까 (임씨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세요’라고 전화를 한다. 왜냐하면 할매가 이야기하면 (박 대통령도) 들으니까. 순실이가 보스야(웃음). 순실이가 다 해서 하는 것이다. 할매가 어떻게 하겠느냐. 할매 머리에서 그게 나오느냐? 당연히 순실이가 다하는 거야.

Q: 박 대통령은 최씨 일가의 ‘허수아비’ 비슷한 존재라는 것인가.
A: 공주라고 보면 된다. 공주는 뭘 모르잖아요? 저 양반(박 대통령)이 참 뭘 모른다. 내가 봤을 때 (박 대통령은) 영혼까지 (최순실씨나 최씨 일가에) 뺏긴 사람이야. 거기서 헤어나올 수가 없다. 상징적인 인물이다.

Q: 도대체 최씨가 박 대통령의 일상을 어떻게 장악했다는 말인가. 이해가 안 된다.
A: (박 대통령 사저의) 경비원부터 전부 이쪽(최씨)에서 보냈다. 옷을 찾아오거나 돈을 (찾아)주는 것도 모두 마찬가지다. 순실이가 시켜서 (박 대통령이 사용하는) 화장품을 사오기도 했다. 저 사람(박 대통령)은 영원한 공주야. 아무것도 (스스로) 못한다.

Q: 최씨가 박 대통령에 이렇게 영향을 미치도록 박지만 박근령 남매는 뭘 했는가. 일각에서는 최씨가 박씨 남매의 접근을 막았다는데 사실인가.
A: 이 사람들은 철저히 그 남매를 배제했다. 자기가 아니고 다른 사람들은 (박 대통령에 대한) 전화이건 접근 자체를 교묘하게 못하게 한다. 오죽하면 근령이도 마찬가지로 집(박 대통령의 삼성동 사저)에 들어오지 못한다. 선거할 때도 못 들어온다. 기사(박 대통령 운전기사)에게 들은 바로는 (최씨가 박 대통령에게) ‘○○○ 과장(박지만씨 측과 교류가 있는 인사)이 나쁘다’고 줄기차게 전화를 했다고 하더라. 박 대통령도 (박지만씨 쪽 사람 중에) 유일하게 그 사람과 통화했는데, 결국 안 하게 되더라. 최씨가 계속 ‘좋은 사람이 아니어서 믿으면 안 된다, 이용한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하더라. 나쁜 이미지를 심어 자기네 이외에는 (박 대통령과) 통화고 뭐고 못하게 했다.

Q: 최씨가 박 대통령 친동생들을 철저하게 박 대통령과 분리시켰다는 얘기인데.
A: 접촉 자체를 못하게 했다.

Q: 박지만 남매는 이런 상황을 다 알고 있는가.
A: 알고 있을 것이다. 박지만씨가 왜 몰랐겠느냐. (최씨가 박 대통령과 그 친동생들의) 접촉을 철저히 못하게 했다.

Q: ‘문고리 3인방’이 박 대통령이 아닌 ‘최씨의 종’이란 말이냐.
A: 그 사람들은 (박) 대통령 사람이 아니다. 순실이의 사람이다. 순실이가 뽑았는데 모두 순실이 사람이다. 그 사람들 모두 순실이하고 정 실장이 뽑았던 사람이야. 그 사람들의 종으로 보면 된다. 이 사람들이 (최씨가) 뭐 시키는데 토를 달면 그날로 그만둬야 된다. 순실이 말을 무조건 들어야 해.

Q: 이해를 할 수 없다. 그 사람들은 모두 박 대통령의 보좌관 아닌가. 월급도 받고.
A: 월급은 거기(박 대통령 측)서 나오더라도 말은 이 사람(최씨) 말을 들어야 돼. 박 대통령은 무슨 이야기를 안 하니까. 자기들이 다 시키고, 연설문도 그렇다. 좋은 건 다 해 자기들이 보고하지. 야들(박 대통령 측근 인사들)은 거기에 일체 간섭을 못해. 그저 순실이가 시켜서 하고. ‘순실이 종’이라고 보면 돼.

Q: 최씨가 박 대통령의 연설문을 고친 게 밝혀졌는데, 박 대통령의 의원 시절에도 연설문을 고쳤나.
A: 순실이가 백 번 그러고도 남는다. 정호성, 이재만 등이 이것(연설문)을 쓸 때 보면 밤새도록 하는지 다음날 못 나온다. 나중에 나를 보내 데리고 나오라고 한다. 그러면 (연설문을) 정 실장이 보고 그다음에 순실이가 보고 고칠 것 다 고쳤다.

Q: 그때도 최씨가 연설문을 다시 고쳤다는 얘기인가.
A: 그렇죠. 가(박 대통령 측근 인사들)들 말마따나 ‘(박) 의원님 위에 정 실장이고, 정 실장 위에 순실이’야. 순실이가 대장이고 의원님이 꼴등이야. (최씨가) 하라면 하라는 대로.

Q: 박관천 전 경정이 말한 ‘권력서열 1위 최순실, 2위 정윤회, 3위 박 대통령’이라는 이야기와 같다.
A: 맞지. 그때부터 계속 그랬어. 순실이가 대장, 그다음은 정 실장, 박 의원은 꼴등.

Q: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간다.
A: 이해가 안 가죠? 정 실장이 고치면 순실이가 ‘그건 안돼’ 하고 고쳐서 갖다주면 (박 대통령이) 그거 그대로 갖다가 앵무새로(처럼) 이야기하는 거지.

1.1.12 강신옥 변호사 증언

김재규 부장 변론을 맡은 강신옥 변호사가 <시사 in>에 증언했다.

Q: 김재규 부장이 조사했던 내용은?
A: 김재규 부장은 당시 검사로 중정에 파견 나와 특명수사를 담당하는 6국장(안전국) 백광현에게 구국여성봉사단 조사를 지시했다. 백 검사는 최태민을 불러다 철저히 조사했다. 조사 결과 최태민은 자칭 ‘태자마마’ ‘도사’라고 하면서 꿈에 육영수 여사가 나타나 큰딸 박근혜를 잘 지켜달라고 당부해 박근혜에게 편지를 썼다고 했다. 최태민의 편지를 받은 박근혜도 어머니가 꿈에 나타나 도움을 주려는 사람이 찾아올 테니 도움 받으라고 했다고 화답하면서 비슷한 꿈을 꾸었다는 인연으로 두 사람이 가까워졌다. 그 뒤 박근혜는 최태민이 여성단체인 구국여성봉사단 총재가 되는 데도 개입하고, 최태민이 기업들로부터 양로병원을 짓는다는 명목으로 수억원대 돈을 뜯어내는 데도 관여했다. 박승규 청와대 민정수석도 별도로 최태민을 조사하니 영애를 등에 업고 기업체로부터 수십억원을 갈취한 사실이 적발돼 김재규 부장에게 어쩌면 좋겠느냐고 하소연했다고 하더라. 김재규 부장은 최태민이 여성 정치 지망생 6명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내용까지 조사되어 있다고 했다. 그는 이 정보를 취합해 박정희 대통령에게 최태민과 구국여성봉사단을 정리하고 영애를 떼어놓아야 한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은 박근혜 말만 듣고 보고를 묵살했다.

1.1.13 김경래 전 경향신문 편집국장 증언

김경래 전 경향신문 편집국장이 <국민일보>에 증언했다.

그는 “당시 박근혜는 만나지 말라는 아버지 하명에도 최태민을 몰래 만났다. 박 전 대통령이 주색에 빠진 틈을 타고 기어들어와 박근혜를 앞세워 각종 이권에 개입한 게 바로 최태민·최순실 부녀”라고 말했다.

김 전 국장이 최태민을 알게 된 것은 1977년 초.

“구국봉사단 여성국장 김모씨와 송모 전 건국대 교수가 수십장의 문서를 들고 저를 찾아왔어요. 피해사실을 조목조목 밝히는데, 김씨는 ‘최태민이 영등포 여관에서 자신을 성폭행했다’고 했습니다. 새벽 2시에 도망쳤고, 자신과 같은 여성이 한둘이 아니라며 10여명의 이름을 거론했지요

후배기자 2명과 함께 확인해보니 대부분 사실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 박 전 대통령 앞으로 친필 편지를 작성했다. 최 목사와 관련한 정보와 비리를 정리해 의전비서관을 통해 박 전 대통령에 전달했다.

“편지에 최태민이 진실한 크리스천이 아니고 성직자도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10여개 주요 교단과 신학교에 졸업여부를 문의했으나 최태민 이름은 없었다고 말이죠. 영애 박근혜가 비윤리적인 사기꾼 목사에게 놀아나고 있으니 관계를 끊어야한다고 충고했죠.”

그는 박 대통령이 ‘사이비 종교에 빠지지 않았다’고 밝힌 것에 대해 “맹신자, 광신자가 아니라면 어떻게 40년간 최씨 일가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겠느냐”고 반문했다. 또 “박 대통령이 혼을 빼앗기지 않고서는 중앙정보부 보고서를 무시하지 않았을 것”이라고도 했다.

김 전 국장은 “박 대통령은 최태민·최순실 부녀의 정신과 사상을 인정하기 때문에 그동안 그들의 행사에 참석하고 도움을 준 것”이라며 “최순실은 최근까지도 수시로 점집을 드나들고 점괴를 받아 박 대통령에게 전해줬다”고 했다.

1.1.14 정윤회 문건

세계일보가 공개한 정윤회 문건에도 관련 내용이 나와있다.# 다만 사실확인은 안 되어있는 상황이니 사실여부는 알아서 판단하자.

십상시들과 정윤회의 모임에서는 공공연하게 ‘이 나라 권력서열 1위는 최순실, 2위는 정윤회, 3위는 박근혜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대통령이더라도 자신의 옛애인이 나은(‘낳은’의 오타로 추정) 어떻게 배척할 수 있겠느냐?’라는 극치의 말이 서로간에 오가고 있다 함

1.1.15 신동욱의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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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령의 남편인 신동욱은 "육영수 여사 서거 이후에 최태민이 등장한 것이 아니라 육 여사가 살아계실 때 최태민이 등장했다."며 "1973년 박근혜 영애가 공식·비공식 행사들에 참석했는데 최태민도 그런 행사에 등장했다."고 밝혔다.# 쉽게 말해서 자기 장모가 살았을 때부터, 처형이 최태민을 만났다는 얘기. 실제로도 육영수가 살았을 때부터, 최태민이 박근혜를 만났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최태민이 청와대에 접촉한 기록은, 육영수가 살았을 때에도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최면술에 호기심을 품었던 육영수가 직접 시범을 보려고, 비공식 행사에 최태민을 불렀다.#

일설에는 박근혜가 사춘기에 접어들어 공부를 멀리하자, 장충식 전 단국대 총장 부인의 소개로 최태민이 청와대에 들어와 박 대통령을 최면술로 치료했다고 한다. 최태민이 청와대 요로로 청탁을 넣어 큰 영애를 만났는데 박근혜는 방에서 최태민을 만난 지 20분만에 활짝 웃는 얼굴로 나왔다고 한다.

최순실과 이복 남매인 최태민의 아들은 “육영수 여사님 살아계실 때 아버님이 청와대를 들락거렸다. 알던 사이였다. 그러니까 자기 딸을 맡기지 그냥 딸을 맡기겠느냐?”라며 육영수가 살았을 때부터, 최태민과 박정희는 아는 사이라고 주장했다.#

1.1.16 조웅 목사 주장

박근혜의 집권을 필히 막아야 한다. 목숨 걸고 하는 말이다. 아직까지도 신변의 위협을 받는다. 박근혜는 도덕성, 이념에도 문제가 있고 절대 대통령이 되서는 안되는 인물이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기에 답답하고 원통해서 말한다. 박근혜가 안보 안보 하는것은 다 쑈다. 북한첩보라인(장자크구로아)과 이미 깊숙히 연관되어있다. 또 이 사실을 아는 분은 이항 목사님 및 고발장 쓴 것을 본 사람들이다.

- 조웅 목사

2013년 2월 조웅목사는 아프리카tv와의 인터뷰에서 차마 믿기 어려울 정도의 내용을 주장했다. 영상 조웅목사는 인터뷰하는 중간에 검찰 수사관에 의해 체포되었는데 당시 체포되는 장면이 방송으로 중계되었다. 체포영상
다만 그는 이전에도 모 기업 관련하여 의혹을 제기했다가 처벌받은 전력이 있다. 그의 주장은 워낙 파격적이여서 사람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으나 2016년 발생한 박근혜 게이트 이후 상당 부분이 사실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조웅 목사는 박정희와 함께 5.16 군사정변을 주도, 중앙정보부 창설멤버로 황태성 사건을 CIA에 제보했다는 이유로 박정희로 부터 암살 위협을 당한 적이 있다고 주장하였으나 근거는 없다.

  • 현재 상공회의소 소장인 '장자크구로아(EU 코리아 이사장)'는 북한에 7년 거주했으며 김정일의 첩보라인이고 박근혜는 EU코리아 이사이며 현재 박근혜와 밀접한 관계라 주장
  • 박근혜, 정윤회(최태민 딸의 남편), 장자크구로아, 수행비서 총 4명이 김정일 전용기 편으로 평양 도착
  • 박근혜는 김정일과 4시간 30분간 독대했고, 만찬에서 박근혜는 마약이 섞인 '백두산삼독주'를 마심, 3박4일 동안 김정일을 만났고. '김정일과 동침(잠자리)'했다 주장 (출처가 美 CIA 정보라 주장)
  • 박근혜가 평양 방문시 정부의 허가를 받지 않은 '한화 500억을 북측에 건냈다'는 주장 (美 CIA 정보로 조웅 목사가 외환관리법위반으로 고발)
  • 박근혜가 '김일성의 묘소에 참배'했고 고려연방제를 창설 하겠다고 선서했다 주장 (조웅 목사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고발)
  • 박근혜가 '최태민과 15년을 동거'를 했고, '최태민의 아이를 두번 낙태' (조웅 목사는 검찰에 박근혜 생식기 조사<임신 경력 유무>를 하자고 했지만 당연히 거절, 그는 이 사실을 최태민의 아들이자 최순실의 이복 오빠인 최재석에게 들었다고 주장하였다.)
  • 박근혜는 '최태민 사망 후 정윤회(최태민 딸의 남편)와 불륜관계'를 가지며 16년간 동거했다 주장 (현재 정윤회는 최태민이 박근혜에게 준 재산관리를 하며 인수위원 안에서 모든 키를 쥐고있다.)
  • '박근혜 뒤에는 정윤회'가 있다. 돈, 인사권 등 정윤회가 킹메이커고 박근혜는 허수아비라 주장. 정윤회와의 불륜관계는 '최태민 본처의 첫째 아들 최재석이 폭로'한 것이라 주장
  • 박지만 뿐만 아니라 '장자크구로아'의 마약 제공으로 '박정희 집안 전체가 마약'을 하며 현재도 박근혜는 정윤회와 마약을 할 것이라 추정.
  • 박근혜 배후에는 '북한첩보라인 장자크구로아'가 있음.
  • 정윤회는 현재 박근혜의 통치자금을 관리하고 모든 인사권을 가지고 밀실정치를 하며, 현재 인수위 및 공직 임명자들도 모두 정윤회의 작품이라 주장.
  • 증거는 책과 수백장의 고발장이다. 책 '황태성 박정희 김종필 커넥션' 은 조웅 목사가 직접 집필했으며 단지 1만부 발행만 허가를 받았고 현재는 품절상태다.
  • 조웅 목사는 불륜 및 국가보안법위반, 외환관리법위반 사건으로 대검찰청에 고발 했으나 모두 혐의 없음 판결

조웅 목사는 이 발언으로 2014년 5월 16일 명예훼손 등으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았다. 민간인이 CIA나 국정원이 알 법한 사실을 어떻게 들었는지는 출처를 알 수 없다. 그는 이전에도 5.16직후 4.19학생 대표로 박정희를 대면했다고 주장했지만 근거가 없다. 사람들은 그를 허언증 환자라 추정한다.

1.2 부일장학회 강탈 관련

박정희김지태의 부일장학회를 강탈하여 정수장학회(당시 5.16 장학회)를 세운 것과 관련하여 박근혜는 문제가 없었다고 부정했다. 김지태는 박정희의 지시에 의해 1962년 3월 재산해외도피 혐의 등으로 당시 중앙정보부에 체포돼 두 달 정도 구금생활을 하다 강압에 의해 부일장학회와 부산일보, 한국문화방송, 부산문화방송 등의 운영권 포기각서를 쓴 며칠 뒤 공소취하로 풀려났다.

김지태의 큰아들 김영구는 "그해 5월 25일 부산 군수기지사령부 법무관실에서 아버지가 수갑을 찬 상태로 운영권 포기각서에 서명하고 도장을 찍었다"며 "내가 장남이라 인감 도장을 가지고 가, 현장을 똑똑히 목격했다"고 했다.[7][8]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정치쟁점화 되자 박근혜 후보 측은 김지태가 친일 행적을 했다고 주장하였지만[9] 사실무근으로 확인되었다.

1.2.1 정수장학회, 육영재단으로 재산 은닉

강탈 이후의 행적 역시 문제의 대상으로, 부일장학회의 재산을 국고에 귀속시켜야 했음에도 이를 이용하여 정수장학회, 육영재단을 설립하여 재산을 은닉하고 사유화 했다. 정수장학회는 주로 박정희의 친인척과 측근이 운영해왔다. 박근혜는 1995년부터 2005년까지 정수장학회 이사장직을 맡았다. 김영삼은 정수장학회와 육영재단을 '부정축재의 수단'이라고 했다.[10] 2005년 언론노조 정수장학회 공동대책위는, 정수장학회의 문화방송 주식, 부산일보 주식, 영남대학교, 부동산 등 그 재산을 최소 1조원이라고 추산했으며, 많게는 10조원에 이를 수도 있다고 보았다.[11] 1982년에 육영재단의 경영권을 두고 박근혜와 여동생 박근령이 분쟁을 겪은 후 1990년부터 박근령이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1.3 전두환으로부터 6억 수수

10.26 사건으로 박정희 사후 청와대에서 나온 박근혜는 1979년 당시 보안사령관 신분이었던 전두환에게서 청와대 금고에 들어있던 10억원 중 6억원을 예우 차원에서 받은 사실이 있었다.[12]

이 10억은 청와대의 사금고에 보관되어 있던 정치자금으로, 유신 이후 박정희는 청와대 비서실장 김정렴을 통해 기업들에게 정기적으로 정치헌금을 받아 야당을 포섭하고 지지세력을 강화하는데 사용했다. 6억원은 2016년 현재에도 거액이지만, 1979년에는 상상을 초월했다. 당대 최고 부동산이던 대치동 은마아파트를 30채 가량(1978년 31평형의 분양가가 2,090만원)이나 살 만큼 큰 돈이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화폐가치계산' 계산 결과 2015년 기준 34억에 달한다.

당시 아버지(박정희 전 대통령)도 그렇게 흉탄에 돌아가시고 나서, 어린 동생들과 살 길이 막막한 상황이었다. 아무 걱정 문제없으니 배려 차원에서 해주겠다고 하는데, 경황없는 상황에서 받았다. 나는 자식도 없고, 가족도 없다. 나중에 사회에 다 환원할 것이다.

박근령의 남편 신동욱의 라디오 인터뷰에 의하면 그 3억원은 당시 아파트 300채를 살돈인데, 최태민이 박근령에게 2천만원짜리 아파트 한채를 얻어 주었다고 한다. 박지만도 비슷한 가격의 집을 받은 것으로 안다고. 박근령-신동욱이 궁금한건 나머지 298채 가격의 돈은 어디 갔냐는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증언으로 이러한 집 구입을 최태민측이 알선해주었다는 의미는, 이때부터 이미 박근혜-최태민은 통장을 같이 썼다고 한다. 이후 2016년에 이를때 까지 박근혜-최씨일가가 통장을 같이 쓴다는 것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다.

처음 알려졌을 당시에는 9억 원이니 뻥튀기해서 6억 달러(!)라니 수많은 의혹이 제기되었으나,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 당시 청문회를 통해서 수령한 9억 중 3억은 김재규 사건 수사 격려금으로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고 6억은 본인 및 형제의 생계비로 썼다고 해명했으며 이로서 의혹은 사실로 확인되었다.[13]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 사망 이후 박근혜가 이사한 신당동 집은 대지 99평에 건평 39평의 단층기와집으로 방이 5개나 있는, 당시 도시의 단독주택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큰 집에 속했다. 또한 당시 박근혜의 나이는 27살이었고 새마을봉사단 총재였으며, 여동생 박근령은 25살로 서울대학교 작곡과를 졸업한 상황이었고, 남동생 박지만육군사관학교 생도로 지원금을 받아 재학하고 있던 점을 감안하면 생계비 차원에서 받았다는 말은 설득력이 매우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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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란 때문에 박근혜는 17대 대선후보 경선 당시 이명박에게, 18대 대선 토론회에서는 이정희에게 공격당하게 된다. 대선 토론회 당시의 박근혜는 이정희 후보 측에게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탄핵이 인용되고 파면이 된 지금까지도 아무런 소식이 없다.

1.4 영남대학교 운영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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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영(통일민주당 의원): 고 박정희 대통령이 재단에 출연한 자금은 얼마입니까?

조일문(영남학원 이사장): 문서상 나타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김동영(통일민주당): 현재 재단이사로 박근혜 씨가 되어 있는데, 박근혜 씨가 재단에 출연한 액수는 얼마입니까?

조일문(영남학원 이사장): 그것도 나타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박석무 위원: 그러면 박근혜 씨가 이 학교에 등장해서 관여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조일문: 그것은 박 대통령을 교주로 모셨고 따님이라는 인연 때문에…

서남대학교이홍하가 있고 상지대학교김문기가 있다면 영남대학교에는 박근혜가 있다.

박근혜는 1980년대 영남대학교 재단 이사장 시절의 전횡과 정관 1조에 '교주 박정희'라는 조항을 삽입한 것 때문에 엄청난 논란에 시달린 적이 있었다. 박근혜는 영남대 재단이사가 된 지 1년 후에 학교법인 영남학원 정관 1조에 교주(校主) 박정희라는 표현에 대하여 "67년 영남대 설립 시 이사 전원이 서명한 결의문에 '교주 박정희'라는 글귀가 들어 있었다. 당시 이사 한 사람이 그것을 정관에도 넣자고 제의하여 이사회에서 받아들인 것이다. 나도 이사회에 참여하였고 찬성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아무 문제가 없다고 답하였다.

한편 영남대학교 재단 재산 착복에 대한 의혹도 제기되었으며, 86년 당시 영남대학교 대학병원장 모씨의 해외출장비 명목으로 280여만원이 박지만의 항공료 등으로 지급됐고 병원장은 주치의 자격으로 박지만 씨와 미국에 함께 갔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그때는 몰랐지만 검증위 소명자료를 준비하면서 발견해 남동생에게 알아 봤더니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며 반박하였다.

그외에도 '영남대 재단이 전액 출자한 영남투자금융회사는 육영재단이 발간하는 어린이 잡지 <보물섬> 등에 장기간 광고하고 광고비로 2,700여만 원, 기부금도 1억 3,000여만 원 지급했는데 알고 있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육영재단이 공익재단이기 때문에 영남투자금융뿐 아니라 다른 데서도 기부금을 받을 수 있다. 영남투자금융에 강요한 적은 없다. 경영진에서 판단해서 한 것으로 안다."고 답변하는 등 각종 논란에 시달렸으며 박근혜가 영남대 재단 이사장 시절 운영에 개입하였다는 확인서를 제출한 김기택 전 영남대 총장은 박근혜로부터 이명박 당시 대통령 후보자 측 참모라는 역공을 받는 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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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박정희, 박근혜 부녀가 영남대 출연 기금에 한 푼도 내지 않았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영남대 사유화와 부정입학 논란까지 겹쳐 1988~89년에 걸쳐 국회의 국정감사를 받게 된다. 당시 경향신문매일신문 등 메이저 언론에서는 영남대 국정감사 이슈를 상세히 다루었으며 결국 박근혜는 이사장 직에서 사퇴하였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재단에 다시 복귀하는 데 성공하였다.#

1.5 정치자금 관련

최순실의 전 운전기사 김 모 씨는 자신이 1998년 국회의원 보궐선거 때부터 최 씨 일가의 돈을 받아 박근혜의 자택으로 전달했다는 증언을 했다.

김 씨의 증언에 따르면 김 씨는 1998년 4ㆍ2 보궐선거 개시 직전 “‘할매’(최씨의 모친 임씨)가 ‘우리 딸 너이(넷)하고 내(나)까지 해서 5000만원씩 내 2억5000만원인데, 니(네)가 잘 가지고 내려가라’고 말했다”, “돈가방은 1m가 넘는 길이의 밤색 여행용 가방이었다”면서 “이후 우연히 가방 속의 돈뭉치를 보게 됐다”면서 자신이 자동차로 임ㆍ최씨와 함께 돈 가방을 싣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살던 대구 달성군 아파트로 내려갔다고 주장했다.

또한 2000년 실시된 16대 총선에서도 “1998년과 똑같았다”며 최씨 일가가 박 대통령의 선거 자금 지원에 관여했다고 말했다.

이는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지난 13일 방송에서 탐사보도했던 최태민씨의 친아들 A씨를 인터뷰 중 최태민의 다섯째 부인 임선이씨가 남편에게서 받은 의문의 재산을 최순실씨 등 딸들에게 상속했으며, 임씨가 박 대통령의 정치 자금을 지원했다는 의혹과 유사해 신빙성이 높다는 판단이다.

1.6 불법 줄기세포 주사 시술 의혹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000바이오에서 근무했던 제보자에게서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기전 최순실씨 이름으로 예약해서 강남 00성형외과에서 불법 줄기세포 주사를 맞았다는것.

문제는 배양된 줄기세포는 의약품으로 규정되서 임상실험이 끝내지 않은 줄기세포를 임상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인체에 주입하는 것은 불법인데다 설령 임상이라고 해도 의료기관이 아닌 바이오업체가 배양세포를 사용하면 불법이라는 점.
실제로 전문가와 인터뷰에서도 해당 전문가는 배양세포의 수여도, 판매도 금지되어있으며 배양된 줄기세포 주사 자체가 불법이라고 잘라 말한다. 제보자에 의하면 보안속에 예약을 받은뒤 이를 vip들에게 비밀리에 시술해 왔다는 것. 그리고 바이오 업체가 지목한 피부과에서만 시술을 했으며 그 중 최순실이 있었다고 언급한다. 제보자는 최순실을 4번 정도 봤으며 경호원으로 보이는 남성 2명과 항상 따라다니는 여성 2명 총 5명이 항상 같이 왔다고 한다. 최순실에 대해 과거와 달라졌으며 잘 기억이 나진 않는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이를 기억하며 그 이유로 줄기세포 주사를 시술받을때 보통 본인인데 최순실은 본인이 시술받지 않고 다른 사람이 와서 시술받았던 것이 무척이나 이상했다고 한다. 그리고 시술받은 사람이 박근혜 국회의원이라고 밝혔다.[14] 다른 vip 고객들은 혼자 왔지만 박근혜는 항상 최씨와 경호원으로 보이는 일행과 동행해서 더 신경을 써야만 했다고 한다. 박근혜 의원이 오는 날은 보안을 위해 병원이 비었다고 한다. 여담으로 당시 박근혜 국회의원이 시술받은 부위는 케어 쪽으로, 얼굴에 시술한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시술자체가 로비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라 비용지불도 이뤄진 것은 없었다고 한다. 전문가는 추가로 대가성이 없다고 해도 허가받지 않은 배양줄기세포를 제공한 것 자체가 불법이라고 언급한다. 이에 대해 청와대 대변인실에 공식적인 해명을 요구했지만 담당자분이 나오면 전달해주겠다는 언급 이후 감감무소식…..

이후 당시 박근혜 국회의원은 2010년 9월 15일 '산업계 줄기세포 연구개발을 더 활성화 할 수 있게 되어서 많은 분들이 큰 해택을 볼 수 있게 되었다'고 언급한다. 14년간 의정활동을 박근혜가 대표 발의한 법안은 15대 0건, 16대 1건, 17대 4건, 18대 10건으로 총 15건인데 그중 하나가 줄기세포 관련 법안이였으며 이후 2016년 1월 19일 정보업무보고에서 바이오헬스 7대강국 계획발표, 2016년 7월달 임시회 의료 영리화정책, 같은 달 배아줄기세포연구 일부 승인되었다. 실제로 2016년 5월 규제개혁 장관회의에서도 '여러 가지 윤리, 생명 및 연구 윤리 때문에 (바이오 분야가) 엄격하면서도 중첩적인 규제 대상이 되고 있으며, 선진국들이 푼 규제는 우리도 풀겠다는 일관된 원칙을 가지고 관련 제도의 틀을 재정비 할 것'을 발표한다.

박근혜 대통령을 시술했던 바이오 업체는 이후 중국, 일본의 협력병원에서 해외 원정 시술을 하다가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당시 보건복지부에서도 문제를 제기했던 곳이였다. 실제로 보건복지부에서 000바이오 업체가 무허가 줄기세포 치료제를 제조, 배양해서 판매한 것을 확인, 검찰에 수사의뢰를 했을 정도. 이후 해당업체는 문을 닫으면서 불법시술을 중단했다. 제보자는 문을 닫았던 업체에서 관리하던 vip 상당수가 차 바이오로 넘어갔다고 증언했는데, 이후 병원 관계자들도 병원이 문을 연지 얼마 안되서 자주 올 땐 일주일에 1~2번정도 박근혜 국회의원이 와서 관리를 했다고 증언한다. 이때는 최순실도 같이 자주 왔다.[15] 이때 억대의 회원권을 가진 유명인 고객들이 많아 실명보다 예명을 사용했는데 이때 대통령이 되기전 박근혜 국회의원이 사용한 예명이 바로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길라임". 이때 박근혜 대통령은 고객 동선을 피해서 다녔으며, 움직이는 동선에 최대한 직원이 없게 했다고 증언한다.

최근 해당 병원에 대한 줄기세포 특혜 의혹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이후 병원측에선 박근혜 개인이 2011년 1월부터 2012년 6월달까지 방문했으며 누구나 올 수 있는 곳이라고 의혹 해명을 한다. 하지만 최순실과 박근혜 당시 대선후보는 1억원 이상 연회비를 낸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을 이용했다는 의혹을 추가로 받고 있다. 연회비를 내지도 않고.
병원장은 최순실이 차움에서 정맥주사를 대리수령한 의혹에 대해 차움병원에 있던 박근혜 대통령의 주치의가 청와대에 자문의로 들어갔는데 청와대에서 처방을 내야지 왜 여기 차움에서 처방을 받았겠냐고 한다. 하지만 최씨가 주사제를 대리 수령한 것은 인정했다.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지만 최순실이 혈관이 안좋은데 차움병원측 간호사가 혈관을 터뜨렸다며 개인 주치의가 있다고 주사제를 싸달라고 해서 싸줬다고 하면서 주사제가 나갈수는 있는데 가족이 아닌 사람, 비서가 수령한 것은 문제가 있음을 시인했다. 결국 병원측의 해명은 박대통령이 맞은 주사는 비타민 주사고 취임전에만 맞았다는 것. 최순실이 주사를 대리 수령했지만 이것이 청와대로 흘러가진 않았다는 것.

병원측은 이후 자신들이 피해자이며 자신들이 이런 걸로 타격 받으면 우리만 손실이 아닌 국가적 손실이라는 개소리를 시전했다. 의료인들은 정치나 이런식으로 일부러 거짓말하고 이러지 않는다고. 물론 두번째 개소리.

이후 제보에서 차움병원측에선 문서 기록을 삭제하기 시작한다. 특히 박근혜 관련 문서파일들. 물론 병원측에선 부인. 항상 보는 레퍼토리 내부 고발자가 제보하고 병원측은 부인하고

1.7 김정일에게 보낸 편지 논란

2016년 12월 18일 경향신문이 단독으로 2004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유럽코리아재단을 통해 김정일에게 보낸 편지를 입수하여 공개했는데, 당시 통일부 장관이었던 정동영도 편지가 북한으로 갔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이게 사실이라면, 북한 주민과 접촉할 때는 반드시 정부에 신고해야 한다국가보안법 조항을 위반한 것이 될 수 있다. 또한 편지 내용 중에서도 북한의 연호인 '주체 OO년'을 사용하거나, 김정일과 그 당시 협의했던 어떠어떠한 정책을 잘 수행하고 있다는 내용, 그리고 '남북'이 아닌 '북남'표현 사용 등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심지어, 방북 때에는 김대중, 노무현 前 대통령도 가지 않은 주체사상탑도 갔다.

이에 대해서 한 누리꾼은 박사모 카페에 "이 편지는 문재인김정일에게 보낸 것이다."는 글을 쓰며 편지 전문을 공개하는 게시물을 썼는데[16], 댓글들은 당연히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를 득달같이 물어뜯었다. 나중에 박근혜 당시 대표가 썼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박사모에서 해당 게시물이 삭제된 상태라고 하는데, 그들 중 일부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거나, 다른 일부는 내로남불 시전 중이다. 박근혜의 이전 행보와 비교했을 때 박근혜가 이렇게 쓴 것은 정상이며, 문재인이 썼다면 문제가 된다는 주장이다. 개중 일부는 아예 이 편지 자체도 조작된 것이라는 뇌내망상에 빠져 있다.

자세한 내용과 편지 원문은 박근혜 편지 사태 문서 참조.

2 사이비 종교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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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문서 참조.

3 박근혜 5촌 살인사건 관련 의혹

박근혜 5촌 살인사건 문서 참조.

4 소통문제

새누리당 인사들은 발신번호 표시제한 전화로 연락이 온다[17], 솔직하게 터놓고 소통하지 않는다, 만나거나 접근하기 어렵다는 경험 등을 예로 들며 박근혜가 소통 능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2002년 박근혜는 자비정사를 찾아와 '빙의'라는 책을 저술한 묘심화 스님과 처음 대화를 나누었다. 자비정사의 주지인 묘심화는 여성승려로서 퇴마치료로 유명하다고 한다.[18] 묘심화는 박근혜에게 앞으로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예언을 하고 덕담을 하였다고 한다. 박근혜는 묘심화에게 무학대사 같은 분이 되어서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청와대로 와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묘심화가 청와대 근처에도 가지 않겠다고 하자 "무학처럼 더 자주 오셔야죠"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이후로 인연이 되서 묘심화는 박근혜를 위해 '대한민국과 결혼한 박근혜'라는 책을 저술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서 (이명박한테 밀려) 낙선당한 뒤에는 묘심화에게 화난 표정으로 따지듯 물었고 그 이후로는 연락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일화는 합리적 사고보다 신비한 체험이나 듣기 좋은 아부만 좋아하고 필요없으면 가차없이 버리는 박근혜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19] "박 대통령, '여성 대통령' 예언 틀리자 연락 끊어"

2004년 당시 한나라당 대표를 맡고 있던 박근혜와 함께 원내대표로 활동하였던 김덕룡은 박근혜가 소통이 안 되는 것을 넘어 "먹통"이라고 평가하면서, 당시 박근혜에게 정수장학회 문제를 털고 넘어가야 한다고 조언을 했지만 자신의 조언을 거부한 것은 물론 이후 관계가 소원해졌다는 것을 예로 들었다. 또한 박근혜에게 친구가 있다는 얘기를 들어 본 적이 없으며, 참모들조차 주요 현안에 대한 판단을 내릴 때 누구와 상의하는지 모른다고 했다. 출처 최근 들어 급부상하고 있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보면 이미 야인 시절과 정치 초중반에도 그 사람과 교류하면서 주요 문제를 논의했을 가능성이 꽤 높아 보인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이는 비슷해서, 극단적으로 사람을 잘 만나지 않으며, 공무처리도 정말 알려지지 않는 측근들 아닌 이상 대통령과 직접 대화하거나 건의하는 것이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2015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참모들과의 독대와 대면보고가 적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전화나 이메일로 보고하는게 더 빠른데 왜 대면보고가 필요하냐"는 식으로 반문했다. 이는 심각한 문제가 있는 발언인데, 일반적인 기업에서도 상사들은 대면보고를 지속적으로 받고, 거래처 사람들과도 필요하면 반드시 직접 만나서 논의를 한다. 서로 대면해서 일할 필요가 없다면 지옥같은 출퇴근을 피해서 전부 재택근무를 하고, 전화와 이메일로만 업무를 처리해서 비용을 절약하지 왜 굳이 이런 짓을 하는걸까? 정보통신기술이 놀라울 정도로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20세기 말에 "21세기 미래의 생활상" 하면 약방의 감초처럼 끼어있던 것이 재택근무였음에도, 재택근무가 크게 확산되지 않은건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20]

게다가 대통령은 국민들의 민심을 읽고 국정 운영의 큰 방향을 잡아야 하는 자리이다. 그 민심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참모들이 여론과 정책 동향을 정리해준 것을 직접 확인할 필요가 있는데, 그걸 거의 하지 않았다는 것은 과연 박근혜가 국민과 소통할 의사가 있는지를 매우 의심하게 만드는 원인이다. 특히 언론과 소통이 중요한 대통령의 위치상 기자회견이 중요한데 박근혜는 지난 4년간 한 기자회견이 겨우 5번이다.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때 대통령의 7시간을 밝히라는 요구가 빗발치자, 이완구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기자들에게 "어느 나라가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밝히느냐. 오바마의 일정을 밝히라고 하는게 온당한 주장인가"라는 말을 했다. 물론 미국인들은 대통령의 일정을 상세히 밝히라는 요구를 하지 않는다. 요구하기 전에 백악관 홈페이지에서 대통령의 일정과 위치를 분 단위로 공개하니까. 그리고 9.11 테러 당시 초등학교를 방문중이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보좌관의 보고를 받고도 애들이 놀랄까봐 7분동안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지만, 미국인들은 이를 두고두고 까면서 의회가 이에 대해 수천 페이지 분량의 조사 보고서를 만들 정도이다. 이 정도로 대통령의 대처와 일정에 문제가 있다 싶으면 당장 의회에서 이를 그냥 넘어가지 않고 샅샅이 조사하여 보고서를 만들고, 이를 구글 검색으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 미국이다. 일본도 도호쿠 대지진 당시 약 100시간동안 총리 관저에서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까지 상세히 기록한 문건을 만들 정도로 최고 지도자의 대응을 철저하게 기록물로 남긴다. 심지어 조선시대에도 사관들이 왕을 감시하듯이 따라다니면서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여 조선왕조실록을 남겼었다.

그리고 멀리 갈것도 없이,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도 자신의 일정을 어디에서 누구를 만난다는 것까지 상세히 공개했다. 그런데 세월호 사고 당일 7시간의 행적을 2년 반이 넘도록 공개하지 않다가, 이제사 부랴부랴 공개했다는 것이 관저에서 계속 보고를 받고 있었다라는 것. 이걸 사실로 믿는다 쳐도, 문재인의 지적처럼 관저에서 출근도 안하고 대체 뭘 했다는 건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전임 이명박 대통령이 국무총리실 비선을 통해 일으킨 민간인 사찰사건과 달리 박근혜 대통령은 처음부터 수십년간 알고 지낸 몇몇 지인들, 즉 비선이 아니면 접근조차 어렵고, 모든 일을 극소수의 심복들을 통해 전달 받으려는 태도가 애초부터 이런 사건을 불러왔다. 당대표였던 김무성마저 대통령을 제대로 만나지 못했다고 토로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아예 그 이외의 사람들은 대통령에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속칭 문고리 3인방을 만나지 않으면 안되는 구조를 자초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사생활에서도 불법적으로 줄기세포 시술을 받았다는 것과 새누리당의 이혜훈 의원에 따르면 저녁 8시 이후에 드라마만 봤다고 하며, 쇼핑도 안했다는 것이다.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의 인터뷰에서는 토론에 대해서 모르는 것 같으며 대면보고를 1년에 6번밖에 안했다.#

이는 대통령에 대한 인간적 매력을 떨어트리는 근본적인 원인이 됐다. 무능하기까지 한데 구중궁궐에 숨어 대화도 안하니 지지율이 오를턱이 없다.

결국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이후로도 김병준 국민대 교수를 야당들과 여당에게 통보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내정하여 소통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초래하였다. 하지만 이는 시간 벌기를 위한 꼼수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박지원 "우린 함정에 빠졌다".

5 대통령 당선 이후

5.1 도 넘은 사치

각종 언론 보도들을 통해 박 대통령이 그간 의, 식, 주 전반에 걸친 초호화 생활을 해왔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 사치스러운 의생활

2014년 한 해 동안만 입은 공식 의상만 122벌이라고 한다.# 독일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같은 여성 지도자임에도 불구하고 몇 년 동안 같은 정장만 입는 청렴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 비교가 되어 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후일 밝혀진 바로는 그간 보아왔던 비슷한 옷들은 모두 명품이 아닌 최순실 측근 디자이너의 작품이었다. 게다가 전세계 외교 무대에서 국가를 대변하는 인물인 국가원수에게 겉옷 안에 입는 기본옷으로 만 원짜리를 입혔다고 한다. 질이 좋으며 가격은 최저, 디자인은 버린 중저가 브랜드인 유니클로에서도 만 원짜리는 구석에 쌓여있는, 인기없고 질도 하급이라 재고처분 세일 가격으로나 볼 수 있는 가격이다. 이는 최순실 측이 얼마나 대통령을 꼭두각시 취급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21] 물론 거기서 얼마나 많은 횡령이 있었을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10월 말 최순실이 대통령이 입던 옷의 대금을 지불하는 영상이 발견되었다. 이 경우 이 돈이 최순실의 개인자금일 경우 뇌물로 간주될 수 있고, 국가 예산일 경우 국가 예산을 공적 책임이 없는 민간인이 집행한 꼴이 된다. 최순실이 박근혜와의 친분을 이용해 여러 정보를 미리 받고 자신의 사적 이익을 챙긴 정황이 포착된 시점에서 발견된 영상이다. 청와대에서 옷값으로 얼마나 지불했고 거기서 어느정도 되는 차익의 횡령이 있었는지도 조사가 필요한 부분이다.

국립중앙박물관장 해임 건에서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프랑스 명품을 좋아한다고 알려져 있다.

  • 사치스러운 식생활

2016년 8월 11일 이정현 신임 당대표 회동 만찬에 나온 바닷가재, 훈제연어, 캐비어 샐러드, 송로버섯, 샥스핀[22], 한우 갈비[23] 등의 초호화 메뉴가 구설수에 올랐다. 전임 대통령들이 해외 주빈에게도 검소한 요리를 대접한 것에 비하면 지나치게 과도하다는 평이다. 여당 대표에 취임한 것을 축하하는 의미라고 하기에도 과한게, 이전에 김무성이 같은 신임 당대표 자격으로 회동 만찬에 참석했을 때는 일반적인 중화요리 코스로 대접한 사실이 있다. 박근혜가 만찬 메뉴에 개입한건지 누구의 책임인지는 알려진 바가 없지만 검소한 대통령이었다면 사전에 모든 만찬에서 지나치게 화려한 음식은 금했을 것이다.

게다가 저 자리에서 전기료 누진제 완화에 대해 담화를 나눴다고 하는데, 자신들은 호화스런 만찬을 즐기면서 여름철 전기료 때문에 고생중인 서민들한테는 고작 6,000원 정도 내려주자는 얘기가 오갔다는 것이다. 만찬내용이 기사화된 후 이에 대한 강한 비판들이 쏟아졌다.# 또 다시 인선과 변별력의 문제가 드러나는 만찬이다.

공교롭게도 7월 울산시장 방문 당시 고춧가루를 굉장히 귀하다고 하거나[24] 소라형 과자라는 걸 생전 처음 본 듯한 모습을 보여,朴, 휴가 중 울산 시장 방문.."고춧가루 소라과자도 몰랐다" ..서민경제 챙긴다? 일부 네티즌들로부터 "개돼지나 먹는 사료라서 모르시는가 보다"라는 비아냥을 사기도 했다. 후속보도에 의하면, 박근혜 대통령은 토속음식과 채소, 소식을 선호한다고 알려져 있으며, 청와대 주방팀에서 일한 요리사의 말에 의하면 "박근혜 대통령은 까다로울 정도로 정갈하고 담백하며 간이 세지 않은 음식을 찾아서 신경이 많이 쓰인다”라고 말한 바가 있다.엘리제궁서 퇴출된 송로버섯, 왜 청와대 식탁에 올랐을까

한겨레의 박근혜 관련 동영상을 보면 주변에서 박근혜의 영애시절을 보았던 자들은 박근혜는 육영수 여사의 요리를 도왔고 북엇국을 잘 끓여서 한번 대접받은 적이 있다고 하는 증언이 있다. 이것으로 보아 박근혜는 그 시대의 정갈한 한정식집 같은 밥상차림을 고집했을 걸로 보이고 이에 최순실 측도 청와대 시절이나 가정에서 먹었던 종류의 음식을 제공했을 것으로 보인다. 노점어묵이나 떡볶이, 고춧가루, 소라과자 같은 것에 대해 무지한 것은 누군가의 수발에 기대어 밖을 경험하지 못하고 살아온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박근혜는 시장에 서민 코스프레를 하러 갔다가 족발을 보고 "이게 서민 음식이에요"라고 말해 빈축을 산 적도 있다. 상류층 음식은 아니지만 아마 누군가 박근혜가 처음 보는 족발을 보고 뭐냐고 물었을 때 서민들이 먹는 족발이라는 음식이라고 소개하여 그리 기억을 하고 있는 듯 싶다.

이런 까탈스러운 식성은 전 대통령들과 비교해봐도 너무나 비교된다. 노무현이나 이명박은 사회 밑바닥부터 자신의 입지를 다져왔고, 그 영향으로 음식을 가리지 않아서 식단이 구설수에 오르지 않았다. 뭐든 잘 먹어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 먹방의 시초란 말도 있으며, 어묵꼬치, 설렁탕, 국밥, 찌개류 같이 서민적이고 회사주변에서 때울 만한 음식을 주로 먹는 사진이 많다. 그리고 노무현은 여러 이유로 (주로 경호상 이유) 혼자서 라면 하나 편히 끓여먹을 수 없어서 운영관[25]이 끓이게 시키고 서로 반 개씩 먹는 등의 고생을 했다는 일화가 있다. 김영삼은 그 유명한 칼국수 대통령이었다.[26] 그나마 김대중미식가 기질이 있었지만, 이쪽도 그냥 홍어 같은 고향 음식을 즐기고, 세세한 부분에서 입맛이 약간 까다로운 정도였다. 박근혜처럼 구설수에 오를 정도로 음식 가지고 사치를 부리지 않았다.

물론 모든 대한민국 대통령이 요구받는 검소한 식단이 이 정도로 고행에 가까울 정도의 기행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 말부터 시작된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 속에서 민중은 참혹한 기아를 겪어왔기에, 역대 대통령들은 검소한 식단을 국민의 눈높이에 맞춘다는 정치적 메시지의 수단으로 활용해왔다. 조선시대의 임금의 밥상도 중국 청나라, 명나라 같이 화려하지 않고 검소함을 보여왔듯이[27] 이것은 오래 전부터 내려오던 국가 원수의 모범적 태도다.

  • 사치스러운 주생활

청와대를 벗어나서 해외를 순방하거나 국내 지방을 방문할 때도 침대 매트리스나 변기를 새로 교체하는 등의 상당히 무리한 요구를 하는 사례가 빈번하였다. 당연한 일이지만 이는 지극히 비효율적/비정상적이며 여기에 투입되는 모든 비용은 세금으로 충당된다. 실제 사용하기라도 했으면 모르겠지만 '대통령이 사용 할 수도 있으니까 뜯어고쳐야 한다'는 식으로 과잉의전이 이어진 사례가 무수히 쏟아지고 있는데, 단 5분 사용하려고 대기실을 개조한 사례부터, 아예 들르지도 않았는데 소변기를 없애고 좌변기를 뜯어고친 사례까지 별 희한한 목격담이 끊이질 않는다. 이는 단순히 사치 수준이 아니라 결벽증, 강박장애를 의심할 정도인데 이에 대해서는 박근혜의 자질 문서에 자세히 나와 있다.

5.2 김영삼 전 대통령 영결식 불참

2015년 11월 26일 건강상의 이유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 불참했다.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영삼 전 대통령 빈소를 찾아 헌화하였으나, 국회의사당 앞 뜰에서 약 1시간 20분 정도로 진행되는 영결식에는 대통령 주치의인 서창석 서울대병원 교수의 권고로 불참. 박 대통령의 건강상태를 피로가 누적돼 면역력이 감소한 상태이며, 안정이 필요한데 오늘 같은 추운 날씨에 1시간 30분 동안 실외에 있기에는 무리[28]라는 얘기다. 최근 고열과 인후염을 동반한 감기증세를 보여 운구차가 떠나는 8분 동안 지켜보았다고 한다. 그래서 '최초로 국가장 영결식에 불참한 현직 대통령'이 되었다. 김영삼의 장남 김은철이 거의 죽어갈 지경으로 건강이 나쁨에도 중절모와 선글라스를 낀 채 장례식장에 모습을 드러낸 것과 대조적이다.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박 대통령이 개인사를 이유로 참석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전직 대통령의 국가장에 현직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은 것 자체가 무례다. 아무리 사이가 나빴어도 전직 대통령이었으며, 국민들이 찍은 사람이었다. 당연히 예우할 존재다. 미국에서도 현직자가 전직자에게 무척 깍듯이 대한다.[29]

참고로, 박근혜는 안 그래도 그간 잦은 출국으로 무슨 여행다니냐고 까였었는데, 영결식 이후 29일에 기후회의 참석으로 출국하면서 '영결식 갈 힘은 없는데 여행 갈 힘은 있다'고 또 까였다.

5.3 농지 소방호스 직사

메르스 대유행 시기였던 2015년 6월 21일, 박 대통령은 강화도 가뭄 현장을 방문해 농민들을 격려하고 직접 소방호스로 논에 물을 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안 그래도 '전염병 유행으로 흉흉한데 대처도 제대로 안하고서 여론 환기용 쇼 아니냐', '물을 주다 말고 떠났다', '논 물 대기는 있지만 물 쏘기는 처음 듣는다' 등 비판 여론이 일어났다.[30]

박 대통령이 다녀간 해당 논을 찾은 노컷뉴스 취재진은, 소방차 4대와 급수지원 차량 4대, 산림방제용 차량 1대를 이용해 집중적으로 급수를 하는 모습을 확인했다. 15톤 급수지원 차량 4대가 한 번에 공급하는 물의 양은 60톤이나 됐고, 급수를 시작한 지 하루 만에 거북이 등껍질처럼 쩍쩍 갈라져 있던 논바닥에 물이 차서 2천 평 논을 가득 채웠다. 마을 이장은 "가뭄으로 이미 죽은 곳은 포기하고 살아있는 부분만 살리려고 군에서 급수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대통령이 물 뿌리고 간 논에만 물을 계속 대자 주변 메마른 논에서 모내기를 준비하던 한 농민은, 답답한 마음에 물을 대줄 것을 요청해 모판에 물을 공급받았다.

5.4 발언 문제

해당 문서 참조.

5.5 약물 오남용 의혹

11월 넷째주 들어서 에토미데이트, 리도카인, 비아그라, 백옥주사 등의 약물을 국비로 구입하여 오남용 하고 있다는 의혹까지 불거지고 있다. 리도카인은 국소마취제로 감각을 둔화시키고 통증을 완화시키는 약품인데 조루증환자에게 쓰이기도 한다. 청와대에서 구입한 것은 리도카인 주사액으로 조루증으로 쓰이는 겔 타입과는 다르다. 주사액은 수술용으로 쓰거나 케타민과 같은 마약성 약품과 섞어서 쓰이기도 한다. 백옥주사는 항산화효과 등으로 미용목적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글루타치온의 해독효과때문에 마약 성분 세척용으로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전 세계일보 사장 인터뷰[31] 2016년 12월 29일 주사 아줌마라는 비선 진료 의혹이 제기되었다.[32][33]

5.6 특검수사 방해 및 탄핵심판 고의지연

법이 예상하지 못한, 법을 뛰어넘는 초유의 사태

대통령이 헌법수호와 법질서 수호의 의지를 내동댕이 친 또 다른 사례다. 다른 사례는 말할 것도 없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자잘한 사건까지 치면 양이 너무 방대하기 때문에 크게 3가지 문제로 묶어서 정리할 수 있다.

1. 대통령 특권을 오남용한 범죄자 비호 및 입 맞추기 의혹
최순실 및 측근들과 어떤 루트를 통해 입을 맞추고, 청와대가 기밀시설이라는 점과 대통령의 불체포특권을 남용해 수사를 방해하고 있다는 의혹이다. '박근혜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서 구치소 내 청문회를 진행하고자 하는 의원들의 진입을 막거나, 물리력을 행사하는 등 협박한 의혹이 있다. 또한 구치소장이 법무부 장관대행과 실시간으로 연락을 주고 받으며 상황보고를 올렸다고 한다. 특검은 최순실, 안종범, 정호성 등 피의자들에 대해 '비둘기가 날아다니고 있다'[34]고 판단, 압수수색을 진행하려 했으나 최순실, 정호성에 대한 수색영장이 기각되었다. 여기에 대해 박근혜 측이 실제로 이들과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기 때문에 청와대의 영장기각 압력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 정황증거는 많이 있으며, 물증확보를 위해 수사를 하려 하면 영장이 기각되는 상황.

청와대에 숨어서 농성하고 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청와대는 범죄현장이다. 증거인멸이 있었다는 정황과 증언은 이미 확보 된 상황이나, 물증확보를 위한 압수수색을 '청와대를 압수수색한 전례가 없고, 기밀시설이라 특검의 출입을 허가할 수 없다'는 논리로 거부하고 있다. 언론에 공개 된 특검 시나리오에 따르면 특검이 강행돌파를 선택 할 경우 청와대에서 발포하면 어쩌느냐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 이미 법적으로는 압수수색을 거부 할 수 없다는 것이 대부분의 법학자들의 생각이고, 법원 역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 한 상황인데 군사력을 동원한 물리력으로 막고 있다는 말이 맞는 말이다. 청와대 압수수색 및 박근혜의 대면조사를 거부함으로써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구속영장까지 기각 되었다.

2. 특검과 탄핵 정당성 훼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조사하고 있는 특검에 대해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하다 본인에게 불리해지니 이젠 '청와대 압수수색, 대통령 피의자 명시는 위헌'이라는 설득력이 떨어지는 주장을 하고 있다. 게다가 관제데모 지시 의혹이나 물증, 증인 진술에 명백히 반하는 행위에 대해선 구체적 해명이나 증거 없이 특검이 중립적이 아니라 대통령 흠집내기를 하고 있다는 본인 이름으로 임명한 특검의 정당성을 부인하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게다가 한술 더 떠서 대통령 변호인측은 헌법재판소의 공정성까지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넘어져 재판관들한테 주의까지 받는 등의 행태를 보면 탄핵기각을 노리는 것은 물론, 탄핵이 인용되더라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 뿐만 아니라 탄핵 인용 전에 사퇴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3. 국정을 위임 받았다는 책무에 대한 무책임한 자세
박근혜가 법을 뛰어넘었다고 보는 가장 큰 이유. 탄핵심판은 '대통령이 하루라도 빨리 업무에 복귀하려고 할 것이다'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전제로 법과 제도가 만들어져 있다. 대통령 측이 고의로 탄핵심판을 지연시켜 국정공백 및 혼란을 부추길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다. 그야말로 법이라는 제도의 허점을 치고 들어온 것이다. 대통령은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 받아 국가를 제대로 운영해나가야 할 의무와 책무가 있는데 의무를 져버렸으니 탄핵사유고, 책무를 져버렸으니 무책임한 인간이라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탄핵 인용 이후에도 바로 퇴거하지 않고 퇴거시간대를 가지고 말을 바꾸며 버티기 작전에 돌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1. 그런데 최태민의 아들인 최재석이 2017년 1월 김어준의 파파이스에서 주장한 바에 의하면, 이 스토리는 언론이 잘못 알고 있는거라며 최태민과 박정희는 일제 시절부터 아는 친구 사이였다고 한다. 당시 각각 일제순사와 장교였던 두 사람은 일본에 유학을 갔는데 이때 서로를 알게 되었고(일본에 관련 기록이 있는지 후지tv에서 이러한 사실을 먼저 알고 있었다고 한다), 이후 최태민은 공화당에서 중앙위원, 서대문 지구위원장 등을 지내며 정치활동도 좀 하지만 JP에게 공천을 못받아서 종교인으로 변신했다는 것. 그리고 박근혜가 아닌 박정희부터가 이때 무상지원 등의 혜택을 주었다고 한다.
  2. 이런 최재석의 주장은 육영수가 생전부터 박근혜 남매들에게 최태민에 대해 주의를 준 적이 있다고 하는 증언과도 나름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 다만 박정희와 최태민이 지인 관계라면 왜 육영수는 그를 견제했고, 이후 박정희는 최태민을 친국까지 했는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즉, 박근혜와 최태민과의 만남 과정부터가 불확실하고 미스터리한 부분이 너무 많다. 일단 여러 인물들의 말을 조합해 보면 최태민과 박근혜는 육영수 사망 전부터 최소한 안면은 트인 상태였던 것으로 보이고, 이후 육영수가 사망하면서 급속도로 가까워진 것 같다. 물론 이 부분은 훗날 국내를 뒤집어놓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거대한 사건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좀 더 명확해질 필요는 있어 보인다. 다만 최태민이 사망한 이 시점에 가장 확실한 해명은 박근혜의 자백이겠으나, 박근혜가 있는 그대로 100% 진솔하게 답변할 확률도 그다지 높진 않아보인다.
  3. 청와대에 최태민과 재벌들이 구국여성봉사단을 이유로 드나들며 집회를 가졌다. 이를 눈 감아 준 것이 경호실장 차지철이다. 잠깐, 사이비 종교인이 청와대를 들락거리며 이권에 개입하고 부정축재한 사건?
  4. 최태민은 정통 개신교 어느 곳으로부터도 안수받은 목사가 아니라고 김계원씨(당시 대통령 비서실장)가 증언했다.
  5. '거부 할 수 없는 예언이 있었다'라던가, 대국민담화에서 나온 '모든 인연을 끊고 살겠다' 등의 발언이 너무도 종교적이다.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육영수의 현몽을 예언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상식적으로 수석비서들이 대면을 못하는 상황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한데 동생들 뿐 아니라 모든 공직자들과의 관계를 꺼린 것도 종교적 수행의 과정으로 이해하면 딱딱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박근혜 본인이 가족, 친구, 참모들과 떨어져 방에 틀어박혀 지내거나, 국정에 대해 사심(이라고 본인은 이해하고 있지만 실상은 자기생각)을 넣지 않고 최순실의 의견(본인은 신탁이나 예언으로 이해하고 있을 수 있다)을 구하는 것 등을 신의 뜻을 받드는 종교적 수행의 과정으로 이해한다면 이에서 손을 뗄 것이고, 그 부분을 파고들어 최태민 부녀가 전횡을 일삼을 수 있었을 것이다. 종교팔이 사기꾼들이 사기 치는 수법도 이와 같다.
  6. 최태민을 옹호하는 부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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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이는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 재현되기도 했다.
  13. 2016년 12월 신동아에서는 6억원중 3억원을 수사비로 돌려주고 3억원만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언론에서는 6억원을 받았다고 하고 무엇보다 신동욱측이 박근혜가 6억원을 받은게 맞다고 한다.
  14. 당시 제보자는 국회의원들도 많이 맞으러 와서 크게 생각 안하고 이사람도 똑같구나라고 생각했다고…
  15. 이때 병원 관계자들은 최순실이 성격이 급해서 모든 것이 착착 이루어져야만 했다고 한다.
  16. 정확히 말하자면, '문재인이 청와대에 있을 김정일한테 편지'라고 썼다.
  17. 물론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경호상의 문제 때문에 그럴수 있다. 하지만, 국회의원과 당 대표 시절에도 이래야 할 필요가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18. 묘심화는 우울증에 시달리던 탤런트 김수미를 퇴마 치료하였다고 한다.
  19. 여담으로, 누군가 묘심화에게 퇴마사라면 박근혜로부터 최태민의 영을 떼어내지 뭐하냐고 물은적이 있는데 박근혜가 최태민의 영이 붙어있다면 그랬을 텐데 그런 것은 아니라고 답변하였다.
  20. 컴퓨터와 사무용 소프트웨서 그리고 인터넷의 발전으로 각자의 집에서 화상회의를 하면서 업무를 처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건 큰 비용이 들지도 않는다. 필요한건 초고속인터넷, 그룹웨어, 캠카메라, 마이크, 화상채팅 프로그램 정도?
  21. 일반 외교관에게도 옷 잘 입고 세련되게 다니라고 품위유지비가 많이 지급된다. 그런데 국가원수인 대통령에게 그랬다는 건 매우 충격적이다. 대통령의 옷은 어느 나라를 보아도 그 나라를 대표하는 브랜드 혹은 장인이 만든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국내 최고의 한복명인들이 기대가 많았다는 인터뷰를 보아도 알 수 있듯(관련 사설), 대통령의 옷은 한 국가의 최고 명품 브랜드가 무엇인지를 부각시키면서 그 나라의 능력을 말해주는 중요한 것이다.
  22. 샥스핀 항목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생산과정부터가 상어를 산채로 지느러미를 잘라내고 버려서 죽게 만들고 남획으로 상어의 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에서 오바마 및 시진핑 등도 구설수에 오른 바가 있다.
  23. 한우갈비를 주메인으로한 메인 두세가지만 코스로 돌리는 한정식 정도였다면 만찬으로 적당했을 것이다.
  24. 다만 이 부분은 전체 영상을 보면 "국산 유기농 고춧가루"라고 설명하는 부분이 앞에 있다고 한다.
  25. 대개 운영관은 2년 정도마다 바뀌기 마련이었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 당시 청와대 운영관은 임기 내내 노 전 대통령과 함께하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고, 퇴임날 봉하마을까지 내려가서 마지막 식사를 차렸다고 한다. 청와대에서 나온 이후 서울 경희대 근처에 치킨집을 열었는데, 블로그에 올라온 후기 등에 의하면 그 운영관이 사장이었을 때 굉장히 잘나갔다고 한다.
  26. 하도 칼국수만 먹어대는 통에 대통령이 영양실조에 걸릴까봐 조리사가 부재료라도 푸짐하게 넣으려고 애를 썼다고 한다.
  27. 드라마에서 나오는 수랏상이 늘 화려해 보여서 그렇지, 실록을 뒤져봐도 국가에 전쟁, 기근 등이 있을 때 왕이 한그릇만 먹고 지냈다는 기록이 수두룩하다. 이것은 신하들한테 사치를 부리지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이기도 했다.
  28. 정작 어린이 합창단은 코트도 못 입고 대기해서 또 빈축을 샀다.
  29.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물의를 빚고 사임한 닉슨 대통령이 1994년 사망했을 무렵에도, 공화당과 민주당 전현직 대통령(당시 빌 클린턴 재임기)이 장례식에 참석해 유가족을 위로하였다.
  30. 사실은 이런 쇼를 하기보다는, 어떻게든 있는 수자원을 더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그에 대해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면서 일을 추진하는 게 대통령으로 할 일이다. 이런 직사쇼 백날 해봐야, 행정절차 처리를 통해 수자원 배분을 하루 하는게 더 효과적이다.
  31. 2014년, 세계일보에서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을 보도하도록 하였던 조한규 사장은 청와대의 압력에 시달리다가 결국 경질되었는데 2016년에 이와 관련하여 김어준의 파파이스에서 인터뷰를 하였다.
  32. 채널 A에서 다루었다.
  33. 대통령의 건강은 국가의 안보와 직결된 것이라 이런 식의 비선 진료는 국가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된다. 미국백악관에서는 대통령 전담 의료진을 뽑을 때 반드시 미 육군 군의관으로 뽑는다.
  34. 외부로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는 뜻의 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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