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광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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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光玉
1942년 01월 29일 ~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 관료이다. 호는 범봉(凡峯)이다.

1942년 전라북도 전주부에서 태어났다. 서울 중동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영어영문학과에 재학 중 6.3 항쟁에 참여하여 제적당하였다. 이후 신민당에 속하여 3선 개헌 반대 운동을 하였다. 1978년 신도환 최고위원의 보좌역으로 활동하였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한국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관악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임철순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그러나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민주당 바람에 밀려 신한민주당 김수한 후보와 민주정의당 임철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같은 해 민주한국당을 탈당하고 신한민주당에 입당하였다. 1985년 고려대학교 앞 시위 선동 사건으로 박찬종, 조순형 등과 기소되어 유치장 신세를 지기도 하였다. 1986년 민주화추진협의회 대변인을 역임하였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평화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관악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0년부터 1992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노동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민주당 사무총장에 임명되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신한국당 이상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서울특별시장에 출마하려 하였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이 행정가 출신 고건을 낙점하자 격하게 반발하였다. 반면 똑같이 서울특별시장 출마를 꿈꾸던 노무현은 덤덤하게 포기. 1999년 서울특별시 구로구 을 지역구 재보궐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0년부터 2001년까지 대통령비서실장을 역임하였다. 2001년 새천년민주당 대표최고위원이 되었다.

그러나 2000년 나라종합금융 퇴출과 관련해 3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2002년 징역 2년6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2008년 사면, 복권되었다.

2012년 정통민주당을 창당하여 제19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X맨 노릇을 한 후(...)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새누리당에 입당하여 김경재, 한화갑 등과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였다. 선거 후 그에 대한 공로로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되었다.

2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선거종류소속정당득표수(득표율)당선여부비고
1981제11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12선거구)[1]민주한국당47,668 (22.4%)당선 (2위)
1985제12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관악)민주한국당64,475 (23.2%)낙선 (3위)
1988제13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관악 갑)평화민주당51,199 (39.0%)당선 (1위)
1992제14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관악 갑)민주당56,061 (42.5%)당선 (1위)
1996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관악 갑)새정치국민회의43,197 (37.7%)낙선 (2위)
19991999년 상반기 재보궐선거
(15대 국회 서울 구로 을)[2]
새정치국민회의27,826 (53.5%)당선 (1위)
2012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관악 갑)정통민주당5,207 (4.1%)낙선 (3위)
  1. 관악구
  2. 전임자 이신행 당선무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