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보통국가화에 중국과 함께 힘을 실어준다. 자위대의 창설의 배경은 반공전선의 형성으로 국공내전으로 반공국가인 중화민국의 몰락과 미소관계의 악화가 주요했지만 북한의 남침으로 주일미군이 한반도에 투입되면서 치안 공백을 막기 위해 조직의 설비가 빨라진 경향이 있다. 북한은 소련, 중화인민공화국과 더불어 자위대의 산파 가운데 한 명이라 불릴만 하다. 북한은 미사일 실험을 할 때도 일본 열도 쪽으로 날리는 경향이 있는데 1990년대에 일본 인근에 떨어진 미사일은 일본 사회에 굉장히 큰 충격을 줬다. 그리고 2006년 10월 북한의 핵 실험 후 일본에선 방위 문제가 급물살을 탔고 이듬해인 2007년 1월 9일에 방위청은 방위성으로 격상됐다.
재일교포 북송 등 북한과 일본의 잇속이 맞아 떨어지는 때도 있지만 일본인 납치라든가 일제강점기, 북핵문제 등으로 현재 사이는 나쁘다. 재무장을 노리는 일본 우익들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시험을 이유로 일본의 안보 위협을 강하게 어필한다. 일본인 납치 등의 일로 일본인들의 대북 감정은 좋지 않고 조총련에 대한 지원 삭감 등에서 잘 나타난다. 일본의 보통국가화를 견제하려는 한국 입장에선 북한의 행동이 환장할 노릇. 2010년대 이후로 한국의 경제력과 국력이 상당한 수준으로 성장하는 걸 일본이 계속 견제하기 시작하고, 일본 정부의 우경화로 인해 한국과 중국이 가까워질 때마다 한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이 북한에게 접근하는 경향이 가끔 있다. 하지만 이래저래 갈등이 많아도 한국과 일본은 일단 미국을 필두로 한 서방세계 쪽 동맹관계라 대체로 일본 정부는 대한민국을 지지한다.[1]
요코다 메구미가 대표적인 북일관계의 상징. 일본에서 전공투가 날뛰다가 과격화된 1970년대에는 요도호 사건 같은 게 일어나기도 했다. 육영수 저격 사건 당시에는 범인인 문세광이 북한의 개입이 있긴 했지만 것보다 일본의 극좌단체와 연계됐던 탓에 한일관계가 최악으로 치닿기도 하였다. 일본 입장에선 북한 때문에 돌아버릴 일이었다. 사죄조로 외교관을 보내고 난리났었다.
일본의 사민당은 북한과 교류가 있지만 일본 공산당은 상당히 북한에 비판적이다. 물론 각국의 공산당들 뿐만 아니라 냉전 중반부터 김일성 왕국 체제를 수립해가는 북한은 공산주의 진영 국가들에게서도 막장 취급을 받았다.
2002년에는 일본 총리였던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북한을 방문해 납치자를 데리고 일본으로 귀환했다. 사진을 보면 관방장관이었던 아베가 보인다.그 와중에 아베의 눈초리를 보면 뭔가 웃기다. 자신의 은인인데도 말이지. 응? 2004년에 한 번 더 방북했다. 2013년에는 아베 신조 내각의 특명담당인 이지마가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아베 신조가 이로 인해 방북할 것이란 얘기가 돌았으나 무산된 듯.
일본 언론에서는 소련이 무너진 뒤로는 북한을 주로 이슈 타깃으로 삼고 있다. 많은 카더라 통신이 일본발 언론에서 흘러나오는 편이다. 김정남도 일본인 기자랑 인터뷰를 자주 했고. 방위백서에서 소련이 주적에서 삭제된 뒤에 자위대는 중국과 북한을 가상 적국으로 보고 있다.
2014년 5월 29일에 일본 정부는 북한과 납북 일본인 재조사를 합의했다. 그로 인해 대북경제제재도 해제될 예정. 반북감정이 강한 일본임에도 불구하고 아베 신조 등을 위시한 일본 정부에서는 일본의 역할 강조를 위해 북일관계 개선을 노리고 있으며 북한도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한 새로운 탈출구로 일본을 찾고 있다. 한중관계가 호전을 보일 때마다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물론 이런 상황은 한-일을 사이좋게 만들어 중-북-러를 견제하려는 미국이 보기엔 정말 환장할 상황이지만..
4차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이후에 대북제재가 추가제재를 받으면서 다시 한미일동맹이 강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 와중에 아오모리 현에 있는 롯카쇼무라(六ヶ所村) 핵연료주기(사이클) 시설 기술이 북한으로 유출됐다는 의혹을 수년 전 유엔이 현지 조사하려고 했으나 일본 정부가 거부한 것으로 드러났다. #- ↑ 일본이 북한으로부터 위협이 된지 전체적으로 20년이라는 것이다. 그 이전에 일본 우익들은 북한에 대해서 중국의 동맹국 이라는 감안하면 큰 위협도 없고 중국과 큰 마찰이 필요가 없고 위협이 있더라도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어서 개헌과 재무장에 대한 목소리가 별로 없었다.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 이후에 일본에 실질적인 위협이 오면서 재무장과 개헌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하여 안보법에 대해서 꾸준히 주장하였다. 미국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시쿼스터 군비 감축에 들어가면서 대중국포위 정책에 따라 일본이 중요시하면서 개헌과 재무장과 관련한 안보법에 대한 주장과 이해관계가 떨어지면서 현재는 안보법안이 통과하면서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 일본의 재무장에 대해서 북한의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