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좌

정치적 스펙트럼
극좌좌파중도좌파중도중도우파우파극우
한국어극좌
한문極左
영어extreme left, far left
프랑스어extrême gauche
독일어Linksextremismus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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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스트이라크전 반대 시위 모습시위하는 미국 공산당원들의 모습
극우에는 히틀러가 안좋은 예라면 극좌에서는....[1]

급진적인 좌파성향을 보이는 사람. 극좌파라고도 한다. 극좌는 일반적으로 공산주의/사회주의적 성향을 보이는 쪽과 아나키즘적인 성향을 보이는 쪽으로 나뉜다. 이 둘은 사실 항목을 참고해보면 알겠지만 같은 극좌라고 묶기엔 서로 대비되는 면도 많고 공산주의자와 아나키스트들이 서로 싸우는 경우도 많다. 좌익계열 아나키즘 입장에서 공산주의자는 진정한 공산주의자가 아니라고 본다. 공산주의도 평등을 이야기하지만 모두를 동등하게 보는 평등이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이것도 평등의 탈을 쓴 권위적이고 획일적인 구조라고 본다. 반대로 공산주의자들 입장에서 아나키즘은 비현실적인 일탈로 본다. 국가자본주의자 vs 좌익소아병결국 이 둘은 평등에 대한 개념 자체가 다르다. 하나(아나키즘)는 모두의 가치가 동등하다는, 어찌보면 극단적인 자유주의와 통하는 부분이 있다면, 다른 하나(공산주의)는 하나의 가치 아래 평등하다. 그렇기 때문에 공산주의 국가가 파시즘 국가와 유사성을 지니는 경우가 생기는건지도 모른다. 극우에서 극단적인 자유주의와 극단적인 파시즘이 다른 것처럼 극좌로 묶기긴 하지만 이 둘은 엄청 다른 셈. 이 외 생태주의 정당들도 있다. 최근에는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카피레프트를 지향하는 해적당도 생겼다. 다만 이들은 극좌라고 보기는 어려우며, 사실상 정강정책은 중도좌익~좌익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좌파와 구분되는 극좌의 특징은 이상주의를 추구한다는 점이다. 특히 아나키즘 계열은 특성상 정치적 권력이 별로 없는 경우가 많고, 배타적 민족주의를 가진 사람도 거의 없다보니 국제적으로 연대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 사이에서도 분파가 다양해서 서로간 지향점이나 행동방식이 차이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 정확하게 딱 선을 가르기 힘들지만, 일반적으로 사민주의 처럼 의회민주주의 체제의 틀 안에서 합법적인 정당 정치 과정을 통해서 내부적으로 변화 시키는 것과, 경제적인 측면에서 자본주의의 큰 틀 자체는 인정하되 그 안에서 복지를 통해 그 폐혜를 줄이려고 하는 것을 거부하고, 저런 타협적 자세를 수정주의라 배격하며 여전히 체제 외에서 혁명을 통한 이상 실현과[2], 여전히 강경한 계급주의적 사회관에 기반하여 일체의 계급적 타협을 거부하고 소수파로 남을지언정 제도권 밖에서의 변혁을 고집한다는 측면에서 일반적인 현대 의회 민주주의 체제 내에서 주류적 좌파와 소수파 극좌의 구분이 나누어진다고 볼 수 있다. 독일의 경우를 예를 들면 전자, 즉 제도적 현실과 타협하며 좌파 정치를 추구하는 세력은 사민당이고, 이보다 더 강경한 비타협적 자세를 고수하며 평당원 차원으로 내려가면 여전히 혁명주의를 포기하지 않은 경우가 많은 좌파당은 극좌로 분류할 수 있다.

물론 이런 구분법은 상당히 일반화 된 차원의 정의로, 누가 메인스트림 좌파고 누가 극좌냐 문제는 결국 특정 지역과 국가, 그리고 그 현지의 정치적 분위기와 세력 간 파벌에 따라 케바케로 접근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저렇게 일반화 하기 힘든 경우인데, 당장 원내 진출한 전국 정치 수준에서 유일하게 유의미한 좌파 세력이라 할만한 진보정의당만 하더라도 서구적 기준에서도 극좌에 속한다 할 법한 상당히 급진적인 좌익 인사들과, 다른 의회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그보다 더 소프트한 사민주의 계열로 분류 되었을 세력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극좌 국가라고 불리는 곳은 대체로 공산당이 집권한 국가로서 중국베트남, 쿠바, 베네수엘라 같은 나라가 있다. 하지만 중국과 베트남은 공산당이 집권한 것은 맞지만 개발독재 국가일 뿐 극좌가 집권한 국가는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3] 또 베네수엘라 역시 권위주의포퓰리즘 국가이지 애초에 좌파하고는 거리가 멀다는 비판도 있다.차라리 북유럽 국가가 더 극좌적일지도

아울러 상기한 나라들에서는 경제적 평등을 중시하는 공산주의 계열이 압도적이지 아나키즘 계열은 전무하다.[* 사실 아나키즘의 항목에서 보듯이 아나키즘의 스펙트럼은 매우 넓다. 일부 자유지상주의자처럼 최소한의 정부와 국가를 지향하는 경우에서부터, '정부/국가=권위적인 존재'라며 중앙집권적인 정부나 국가 자체를 거부하는 경우도 많다. 어쨌든 오늘날 그 범위가 명확한 일정한 영토를 가지고 법제화 된 독점적인 행정력을 행사하는 국가 단위의 정치 집단이 아나키즘을 표방하는 경우는 전무하다. 굳이 찾자면 사파티스타나 시리아 [[[쿠르디스탄]]의 인민민주당 같은 단체 정도?] 그나마 진보정당이 각 나라마다 소수 존재한다.

사실 아나키즘과 공산주의 각 항목을 들어가 보면 자세히 나와 있는 점이지만, 극좌 세력의 지분을 양분하는 두 사상적 조류는 그 기원이나 논리 체계, 철학적 기반, 역사적 관계, 조직적 성격, 추구하는 바 등이 모두 판이하게 다르다. 따라서 저런 세력들을 통합적으로 묶어 '극좌'라 한방에 표현하는 건 이데올로기 같은 내부적 요소보다 현실 사회에서 정치 세력으로 활동할 때 작동하는 패턴, 즉 행동적 차원에서 사용할 때나 의미 있는 구분법이다. 이런 면에서 주로 (아나키즘 계열의 경우) 아예 정당 정치에 참여할 생각 자체를 안 하거나,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경우) 정당화 하더라도 비타협적 계급 투쟁 등을 내세우며 기본적으로 계급적 타협과 협력을 인정하며 대중성을 추구할 생각이 별로 없는 단체들을 극좌라 할 수 있다. 여기에 옛날 적군파 처럼 테러질까지 하거나 1980년대에 갈라서기 이전 콜롬비아 공산당FARC의 관계 처럼 국가의 통제를 받지 않는 소위 당군 같은 무력 단체까지 따로 있으면 빼도 박지 못할 극좌 세력이다.

2 각국 사례

2.1 아시아

2.1.1 대한민국

한국전쟁의 경험과 80~90년대 NL이나 주사파의 영향으로 '극좌=빨갱이=종북주의자'라는 인식이 강하다. 때문에 극좌라는 표현은 종북과 연계되어 사용된다.[4] 허나 반대측에선 오히려 종북주의자극우랑 궁합이 잘맞는 왜곡된 민족주의를 강요하기에 자기들 대신 종북주의자를 극우라고 욕하기도 한다.

사회주의와 관련한 단체로는 트로츠키주의를 주창하던 노동자 연대IS(국제사회주의)계열이 있다. 현재는 노동자연대로 개편되었다. 그 밖에 노동자 권력 수립을 추구하는 사회주의 전위당으로서 사회변혁노동자당이 있다.
이들 외에 아나키즘이나 생태주의를 주장하는 극좌는 좌파 지식인들 사이에서 나름의 호응을 얻고 있고 생태주의의 경우 정당도 있으나, 대중들에게 존재감은 극히 미미하다. 녹색당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태반.

여담으로 20세기 초 동아시아에서는, 아나키즘과 사회주의가 그냥 뒤섞여서 수용되었다. 한국, 중국, 베트남의 경우에는 민족해방과 독립투쟁을 위해서 받아들였고, 일본의 경우에는 당시 제국주의 국가였기 때문에 현실 변혁을 위한 수단으로 수용되었다.[5] 이들의 구분이 명확해진 것은 1920년대 무렵 소련의 영향을 받아 각국에서 공산당이 생기면서부터다.

이때부터 사회주의와 아나키즘 세력은 결별하는데, 재일조선인으로 구성된 사회주의운동단체 '흑도회'나 프롤레타리아 예술운동을 표방한 예술단체 '카프' 등의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이들 단체가 결성할 당시에는 아나키스트와 사회주의자들이 공존했으나, 이후 아나키즘과 사회주의가 구별되고 아나키스트와 사회주의자들간 대립이 본격화되면서, 사회주의세력은 아나키스트들에 대해서 '극좌', 아나키스트들은 사회주의자들을 비인간적인 '권위주의자'라고 비판하게 된다.

2.1.2 북한

과거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표방했던[6] 북한의 경우에서는 당연히 '극좌'는 '비판받아 마땅할 존재'다.(...)

다만 북한에서는 '극좌'나 '좌파'라는 단어를 잘 쓰지 않는다. 이는 위가 큰 사람이 영도하는 은 무조건 옳은 것이기 때문이다. 즉, 좌우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옳고 그름의 문제이다. 믿지 않으면 걍 이교도인 셈.(...) 과연 제정일치국가

북한에서 '극좌'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에는 주로 '아나키즘' 관련 단체나 자신과는 전혀 다른 사상을 지닌 정상적인 좌익단체를 비판할 때, '극좌적 모험주의'라는 표현을 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국외의 단체를 가리킬 때의 경우에 한하며, 국내의 경우에는 대체로 좌경적 모험주의라는 표현을 쓴다. 과거 숙청 시 죄목으로 언급되거나, '좌경적 모험주의를 배격하자'와 같은 구호로 사용된다. 사실상 좌익과 우익 모두를 이교도이기 때문에 비난비판한다.(...) 하지만 이 단어 역시도 그리 자주 사용되진 않는다. 대신 '종파주의'라는 단어를 주로 사용한다.

과거 정적들을 제거할 때도 '8월 종파사건'처럼, '종파주의자'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 '종파주의'는 '반당적'이고 '반혁명반김일성적인' 것으로, '극좌적 모험주의'보다는 '개인주의' 같은 '우익'의 의미에 가깝다. 즉, 당의 통일된 뜻에 반대하여 사사로이 파를 만든다는 의미. 쉽게 말해서 이교도 한국전쟁 전후로 숙청된 박헌영이나 리승엽도 '간첩'이나 '반역자' '반혁명분자'라는 죄목으로 제거되었다.

오히려 한국에서 북한과 북한의 선군정치를 비판할 때 '극좌 군사모험주의'라고 비판한다. 북한의 도발도 '극좌 군사모험주의의 결과물'이라는 식. 이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극좌=빨갱이=종북주의자'라는 사고방식에서 기인한다. 당연히 북한은 극좌 국가가 아니다. 결론적으로 김씨 왕조가 없어진다면 모를까, 그 이전에 북한 땅에서 극좌적인 주장이 표면에 나오기는 힘들 듯하다.

2.1.3 중국

국공내전에서 승리하면서 건국된 만큼, 태생은 극좌국가이다. 기본적으로 농촌을 매우 중요시 여겼고 농촌을 토대로 한 공산혁명을 꿈꿨다. 또한 공산당이 집권한 만큼 최종적으론 국가와 군대도 해체해야한다고 주장한 마르크시즘을 계승하여 인민해방군 같은 용어를 쓰기도 한다.[7]

50년대말 농촌의 자립과 공산혁명 실현을 위하여 '대약진 운동'을 벌이지만, 이상만 높았을 뿐 참혹한 실패를 겪는다. 이로 인하여 온건세력(일명 보수파)이 대두되었으나, 마오쩌둥은 이를 분쇄하기 위해서 문화대혁명을 벌인다. 이 역시도 분명 목표는 '이타주의적이고 자기희생적인 새로운 사회주의 문화 창출'이라는 식으로 괜찮아 보이긴 하는데(...) 참혹한 퇴보와 흑역사만을 낳았다. 이러한 연이은 대실책과 함께, 중국 공산당 내 극좌세력은 몰락하게 된다.

이후 80년대에 접어들면서 '선부론' 입장에 따라 자본주의적 요소가 도입되면서, 현재의 중국은 더 이상 '극좌국가'로 볼 수 없게 되었다. 물론, 정치적 측면에서는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으며, 현재의 상태는 언젠가 실현될 '공산주의'를 위한 중간 단계라고 언급하기는 한다. 일단 형식적일 수 있지만, 중국의 자본주의 도입은 '선부론'의 입장이다. 즉, 먼저 부자가 된 다음에 가난한 사람을 돕는다는 것. 현재 중국은 자신을 '사회주의 초급단계'로 규정하고 있고, 어느정도 수준에 도달하면 자본주의적 요소를 버리고 공산주의 혁명을 실현시켜야 한다고 이야기하긴 한다. 부자들이 가만 있을지..지들이 권력잔데...

아울러 중국이 자본주의적인 요소를 도입하긴 했지만, 여전히 사회주의적 경제 체제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가령, 토지는 '국가의 소유'로 개인과 기업에게는 '사용권'만 주어지며 '사용료'를 국가에 지불해야한다. 사유재산의 경우에도 2007년 물권법이 제정되면서 비로소 '개인이 합법적으로 취득한 재산에 대한 소유권을 인정하고 이를 법률로 보장하게 되었으며, 그나마 이 법률 자체도 기본적으로 공유제에 기반을 두고 있다. 또 당연히 아나키즘 계열과는 거리가 멀다.노벨평화상 받은 위인 구금하는 나란데머

사실 중국에서도 '극좌주의'는 비판 용도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정통적인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모범적인 사회주의 혁명단계로 간주하기 때문. 예를 들어 문화대혁명 이후 이를 흑역사화 하는 과정에서 이것은 극좌로 간주했다. 막상 4인방을 위시로 한 문혁 숙청자들은 우파로 간주했지만.(...?)

현재 중국 내의 노동착취나 심각한 빈부격차 문제로 인해 일부 마오이스트들이 노동자들 사이에서 다시 인기를 얻고 있기는 하다. 위의 문혁 당시 홍위병 출신 중에선 지금도 자신들이 옳았다고 생각한다고 대놓고 인터뷰하는 사람도 있는 편.(...)[8]

2.1.4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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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10월, 일본의 국제 반전데이 투쟁(일명 '신주쿠 소란 사건')[9]

일본제국 시절에는 사실상 반정부/반체제관련 사항은 대부분 극좌로 분류되었다. 가령, 30년대 일본 정부의 자료들을 보면 3.1 운동이나 6.10 만세 운동 같은 독립운동들을 '극좌세력이 주도했거나, 극좌세력의 난동'식으로 언급하며, 이 날을 '극좌세력의 기념일'로 분류하고 있다. 이러한 반체제운동을 탄압하기 위해서 제정된 것이 치안유지법.

20년대말~30년대초까지만 해도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는 사회주의자들이나 아나키스트들이 활발하게 활동했었고, 전국적인 규모의 노동조합 조직도 탄생했었다. 특히 5월 1일 노동절만 되면 대규모 행사가 거행되었으며, 이를 막으려는 경찰의 대규모 탄압과 검거작전이 벌어졌다. 하지만 만주사변을 시작으로 일제가 본격적인 군국주의의 길을 걸으면서, 극좌세력과 극좌운동은 사실상 와해되었다.

그러다 전후 치안유지법이 폐지되면서 다시 사회주의 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지기 시작했다. 일본 공산당도 합법화되었으며, 이들은 무장투쟁을 기치에 걸고 선거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레드 퍼지를 비롯한 탄압과 공산당의 선거 참패 등으로 인하여, 일본 공산당은 무장투쟁 노선을 폐기했고 극좌운동은 침체기를 맞이하는 듯 했다.

그러던 가운데 50년대말 이른바 '신좌익'[10]이라는 세력이 등장하고, 이들에 의해서 '분트(공산주의자 동맹)'와 '혁공동(혁명적 공산주의자 동맹)'이 결성되면서 극좌운동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다.

주로 '민주주의 분쇄'[11][12], '오키나와 반환'[13] 등의 구호를 내걸며 운동을 전개했으며, 이러한 운동은 안보투쟁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안보투쟁이 사실상 실패로 끝나면서 분트는 분열되었고, 전공투와 같은 학생운동단체와 적군파를 비롯한 무장혁명세력들이 등장하게 된다. 그러나 전공투의 과격시위와 적군파의 무장게릴라테러활동은 당연히 극좌세력에 대한 검거작전을 낳았으며, '극좌'뿐만 아니라 사실상 '좌익' 전반에 대한 대중적인 인식이 악화되었다.[14] 이에 따라 일본의 극좌세력과 극좌운동은 침체일로를 걸으면서 오늘날에 이르게 된다.

현재 몇몇 단체나 소규모 모임을 제외하고는 일본에서 세가 있는 극좌 단체는 거의 사멸했다고 볼 수 있다. 현존하는 단체는 다음과 같다.

  • 혁명적 공산주의자 동맹 전국 위원회 (革命的共産主義者同盟全国委員会) : 통칭 '중핵파(中核派)'로 불리는 단체로 '혁공동'에서 분리해서 나왔다. 아래의 '혁마르'에 두뇌파들이 몰려있다고 한다면 이 쪽에는 행동파들이 몰려있다. 그렇기 때문에 실력투쟁을 하는 편이었다. 70년대 이후 과격 투쟁노선으로 분열을 거듭하여 지금은 사실상 분열상태이다.
  • 일본 혁명적 공산주의자동맹 혁명적 마르크주의파(日本革命的共産主義者同盟革命的マルクス主義派) : 통칭 혁마르파(革マル派)로, 모든 신좌익 세력과 사이가 정말 안좋다. 분열 이전 혁공동 시절에는 이데올로그들이 혁마르에 많이 참여했기 때문에 직접적인 행동보다 두뇌적으로 행동하고 조직 온존주의적이다. 즉, '혁명의 날'이 오기 전까지 조직을 온존시켜야 한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자칫 조직붕괴로 이어질 수 있는 행동은 삼가한다. 그리고 야스다강당사건 시기에는 신좌익당파의 패색이 짙어지자 다른 섹트를 배신하고 밤중에 단체도주(...)를 하거나 산리즈카투쟁(三里塚闘争)중 패색이 짙어지자 정부와 협상하고 투쟁을 빠졌으며, 국철 민영화 시기 중핵파가 민영화 반대투쟁을 하는 중에 정부와 협상하여 민영화를 받아들이는 등 조직본존을 위해서라면 투쟁(共闘)하던 타섹트를 단칼에 배신해버리는 잔혹함(...)도 가지고 있다. 즉 미움받을 이유가 있는 것. 그렇지만 이렇게 조직 온존주의적이기에 중핵파나 사청동 같은 다른 섹트와 다르게 지금도 대학에서 공인을 가지고 있는 자치회가 존재하고 있으며 JR노조를 장악하고 있는 최대세력을 자랑하고 있다. 문젠 그 날이 언제 오냐는 것.
  • 교토대학정치경제연구회그룹(京大政治経済研究会グループ) : 본래 교토대학정시경제연구회그룹은 교토대학정경연구회라는 서클을 거점으로 한 논섹트 운동세력이다. 현재 혁마르파 산하라고 하는 경우도 있으나, 중핵파 산하라고 하는 경우도 있는 등(중핵파에서는 혁마르파 별동대라고 비난하고, 다른 쪽에서는 중핵파 산하라며 비난하니;;;) 사실상 독자성을 상실했다.
  • 호세이대학문화연맹(法政大学文化連盟) : 호세이대학 극좌 단체로 본래는 호세이대학 문화계 서클을 총괄하며 시들어가는 일본 학생운동의 한줄기 빛 같은 존재였지만, 마츠모토 하지메를 중심으로한 논섹트들이 대학을 졸업. 그리고 대학의 규제강화로 인해서 2000년대 초반 공인 취소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단체검거, 그리고 90년대 쫓겨난 중핵파가 귀환하여 현재는 중핵파 산하라고 해도 될 정도의 단체가 되어버렸다.

한편, 일본 공산당이나 사회당, 사민당은 극좌로 보기 어렵다.

  • 일본 공산당이 이름 때문에 극좌라는 오해를 받기 쉽지만, 현재의 일본 공산당은 극좌와는 거리가 멀다. 일본 공산당은 1950년대 무장투쟁노선의 폐기를 시작으로, 1970년대 중반부터 계급 투쟁을 포기하고 극좌와의 연계를 끊으면서 시장경제를 수용했다. 이른바 '사랑받는 공산당(愛される共産党)' 선언후 온건화되었다. 하지만 사민주의를 내세우지는 않으며, 그 색깔은 유로커뮤니즘 즉 의회제도를 통한 공산주의 실현에 가깝다.(물론 공산당은 자신들을 유로커뮤니즘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일본 공산당은 유로커뮤니즘의 NATO협력에 비판적이다.) 이에 따라 현재 일본 공산당은 지역에서 생활정치를 펼치며 나름의 기반을 가지고 있다. [15]
  • 일본 사회당[16]의 경우, '반미투쟁' 등으로 인하여 극좌적인 노선을 추구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 정당은 기본적으로 사민주의를 추구하며 평화헌법 수호를 기치에 두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평화헙법에 따라 자위대 폐지와 미일안보조약 폐기를 주장했다. 이에 따라 반미적인 노선을 추구한 것은 사실이지만, 극좌적으로 보기는 어렵다. [17]

2.1.5 팔레스타인

팔레스타인 해방인민전선(PFLP)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표방하며, 무장투쟁과 분리주의, 혁명적 사회주의를 추구한다. 여기에서 갈라져 나온 팔레스타인 해방민주전선(DFLP)는 마오이즘을 표방한다. PFLP와 DFLP 둘다 세속주의도 추구하여 이쪽의 여성들은 히잡을 강요하지 않아 서구적으로 꾸민 여성들이 많다. 이쪽은 여성 대원이 다른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보다 더 많다. 유명한 사람이 최초의 여성 게릴라인 레일라 칼리드다. 골수 이슬람주의인 하마스도 이점을 마음에 안들어하지만 우군 하나가 절실하다보니 이쪽의 세속주의는 어찌 못하고 묵인해준다. 파타야 세속주의라서 큰 문제없지만. 여담으로 PFLP는 팔레스타인 내 제3당의 영향력을 갖고 있으며, 과거에 여러차례 PLO를 보이콧하기도 했으나 현재는 PLO와 연대한다. 그리고 DFLP는 2006년 총선에서 팔레스타인 인민당, 팔레스타인 민주연대와 연대하여 "대안"이라는 이름으로 출마하였다. PFLP, DFLP는 과거에는 강경 무장투쟁을 주장하였지만, 현재는 주로 대중운동[18]을 주도하는 식으로 독립운동을 한다. PFLP와 DFLP 둘다 이스라엘에게서 테러단체로 간주되지만 DFLP는 성격이 파타처럼 온건해서 미국과 국제사회에서 테러단체 지정이 해제되었다. 물론 이스라엘은 계속 테러단체로 간주하지만. 현재 갈수록 악랄해지는 이스라엘의 탄압에 이들도 분노하여 무장투쟁을 변함없이 벌이고 있으며 하마스와도 연대해서 싸운다. 파타와도 연대하지만 그들의 부패와 무능함에 굉장히 부정적이다.

2.2 유럽

유럽정당으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표방하는 공산당-노동당 이니셔티브(Initiative of Communist and Worker's party)가 존재한다. 그러나 EU에서 인정하지 않은 상태이고, 대부분 공산당들은 유럽공산주의를 표방하며 유럽좌파당에서 활동하는지라[19] 상황이 좋지 않다. 2명의 그리스 공산당 소속 MEP(콘스탄티노스 파파다키스, 소티리오스 자리아노포울로스)가 현재 원내 비교섭단체(Non-Instrict)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 외에도 유럽범위 정치기구(유럽정당과는 다르다! 유럽정당과는!) 중 유럽 반자본 좌파(European Anti-Capitalist Left) 내에는 일부이기는 하나 트로츠키주의[20]나 좌파 자유지상주의[21] 등을 주장하는 극좌 정당들도 있다.

2.2.1 소련/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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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ttachment/극좌/parad noyabr.jpg
1981년 11월 7일, 혁명 기념일을 맞아 소비에트 연방군인들이 행진하는 모습

러시아 혁명당시 임시정부의 여당이였던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을 점령한 극좌 볼셰비키들은 중도좌파 멘셰비키를 숙청하였으며, 10월 혁명 이후, 소비에트 러시아가 세워진 이후에는 러시아 대륙은 70년간 극좌들이 사회의 주도권을 가지게 된다.[22] 물론 여기서 극좌는 아나키즘적 극좌와는 거리가 멀다. 소련이 무너진 이후에는 소련 공산당의 자칭후신인 러시아 연방 공산당이 그 뒤를 이어가고 있다. 다만 얘네들은 박노자 등 좌파적인 지식인들에게도 비판을 꽤 받는다.

한때 제국시절 러시아의 아나키스트들은 러시아 혁명 때 볼셰비키들을 따라 공산혁명을 지지했으나, 볼셰비키들이 배신을 때리고 아나키스트들을 숙청시킨 일이 있었기 때문인지, 러시아의 아나키스트들은 볼셰비즘 레닌주의자들과 사이가 나쁘며,[23] 오히려 반푸틴 성향의 리버럴 우파들과 같이 활동하기도 한다. 심지어 신자유주의나 자유지상주의자들도 포함.

대표적인 러시아의 자유주의적[24] 극좌 정당으로는 좌파전선이 있다. 사실상 좌파전선은 일부 급진적 사민주의자/민주사회주의자들부터 트로츠키주의, 아나키즘 등 다양한 사회주의적 팩션들이 모인 포괄정당이나, 극좌의 영향력이 가장 크므로 보통 극좌 정당으로 분류된다.

2.2.2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는 일찍이 1918~1921년까지 nabat이라는 아나키즘 단체가 있었고, free teretory라는 코뮨들로 이루어진 아나키즘 사회도 있었다. 적백내전까지는 러시아 공산주의자들과 함께 차르를 갈아엎는데 협조하였지만 러시아가 의회인 두마를 폐쇄하자 이에 실망하고 흑군으로서 적백내전에 적대하게 되지만 공산주의자들이 각각의 요충지에서 징집을 하면서 군대 같은 체제를 갖추고 백군을 밀어내자 사라졌다.뭉쳤다찢어졌다 얽히고설키는 공산주의자와 아나키스트 이후 스탈린 치하에서 우크라이나 대기근 등의 반발로 분리주의자/독립주의자들과 합류하여 싸웠다.

현존하는 우크라이나의 극좌 정당으로는 트로츠키주의, 반파시즘을 표방하는 보로트바당이 있다. 앞서 서술한 러시아 좌파전선과는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

2.2.3 독일

좌파당(Die Linke)의 파벌 공산주의자 플랫폼(Kommunistische Plattform; KPF) : 민주사회당[25]의 계승을 자처하는 당 내의 파벌. 좌파당 안의 다른 정파[26]에 비해 독일민주공화국에 대해 관대한 평가를 가지고 있으며,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내세운다. 공산주의자 플랫폼의 목표는 공산주의의 경험과 교훈들을 가지고, 새로운 공산주의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말 그대로 극좌적인 주장들(사유재산제 폐지, 현행 권력체계의 부정[27] 등...)을 한다. 헌법보호청[28]에 의하면, 이 파벌에 가입한 인원은 2007년 기준으로 850명이며, 이는 좌파당 당원의 1%선에 해당한다.

한편 서독에서 1968년 공산당이 합법화 되면서 독일 공산당이 재창당되었다. 현재 당원 수는 대략 3000~3500명 정도라고 한다.

2.3 아프리카

2.3.1 남아공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심해지는 빈부격차, ANC의 미온한 사회민주주의적 개혁에 반발하여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내세우는 경제자유투사당이 등장하였다. 흑인, 백인에 상관없이 주로 빈곤층으로부터 지지를 받으며, 원내 제 3당이다.

3 극좌 정부와 집단의 범죄, 사건

4 관련 문서

  1. 왼쪽부터 김일성, 이오시프 스탈린, 마오쩌둥. 모두 권위주의적 극좌로 분류된다.
  2. 그 혁명이 무력을 수반하느냐, 주로 비폭력적인 시민사회적 혁명을 추구하냐는 그 이후의 문제이다
  3. 사실 '공산주의 국가=극좌적인 국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정작 이들 국가에서는 극좌적인 사상을 '극좌적인 모험주의'라면서 배척하였다. 자칫하다간 국가나 당의 근본을 뒤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공산주의는 '민족주의'보다는 '국제주의'적인 사상이다. 하지만 마오쩌둥이나 호치민은 공산주의자면서 민족주의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다.(...)북쪽 김씨만 봐도...
  4. 예를 들어 중도파 성향의 사회자유주의 or 신자유주의를 표방한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극우들은 대북정책(사실 따지고 보면 햇볕정책도 극좌랑은 딱히 연관성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때문에 종북과 연관지어 극좌정권으로 분류하는 경우가 많다.
  5. 관련해서 『함께 읽는 동아시아 근현대사 1』(2010) 참고.
  6. 그나마 명목상이라도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헌법에 명시했던 시절이 있으나, 그나마도 2009년 선군정치를 주장하면서 빼버렸다. 사실상 지금의 북한 체제는 파시즘이나 제정일치국가에 가깝다.
  7. 인민해방군은 국가가 아니라 공산당 소속이다. '국가의 군대'는 '압제자의 군대'라는 인식 때문으로, 어디까지나 이 군대는 '인민을 해방시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조직된 군대'라고 설명한다.
  8. 기본적으로 중국 정부는 문화대혁명을 흑역사로 보며, 대체로 언급하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흑역사만 있는건 아니라면서, 재평가해야한다는 소리도 간혹 있긴 하다.(...)
  9. 이전 서술에서는 적군파로 소개되었으며 인터넷에서도 적군파 사진으로 소개하는 경우가 있지만, 지역 자체가 도쿄인데다가, 들고 있는 깃발이나 시위복장 등을 볼 때 전공투로 보인다.
  10. 일본 공산당은 '구좌익'이라면서 결별했다. 이들의 결성에 대해서는, 스탈린 격하를 비롯한 국제적인 변화도 한 몫했지만, 일본 공산당이 무장투쟁 노선을 폐기한 것도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당시 일본 공산당 당사가 요요기에 있었기 때문에, 반(反)요요기'파라고 하기도 한다.
  11. 신좌익계 당파는 전후 민주주의를 가짜 민주주의로 보고 분쇄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키자고 주장했다.
  12. 반면 신우익은 신좌익과 전후 민주주의 분쇄를 공유하고있지만 전후 민주주의 분쇄를 통한 사회주의 혁명이 아니라 천황제를 통한 민주주의를 외치고 있었다.
  13. 오키나와 반환 혹은 각 섹트에 따라서는 오키나와 해방.
  14. 유럽의 경우에는 68운동 이후로 일본에 비해 극좌 테러조직이 난립하는 등 더 과격하기는 하였지만, 이들의 운동은 덜 교조적이었기 때문에 당시의 극좌 운동은 낭만화되었고 오늘날 극좌파들은 과거에 별 영향을 받고 있지 않다. 하지만 이렇게 68운동을 지나치게 낭만화하는 것에 대한 반발도 분명 있고, 당시의 운동에 대한 비판도 많다.
  15. 관련하여 일본 공산당의 약진은 분명 일본 공산당의 인기증가도 있지만 한편으론 일본 투표율 저하로 인해 조직표를 가지고 있는 정당이 우세하게 된 점도 있다.
  16. 90년대 몰락 이후 사실상 일본 사회민주당이 이를 계승했다.
  17. 이전 서술에서는 '반미투쟁을 하며 극좌적 노선을 고수하다 몰락하였다.'라고 서술하지만, 이 정당은 태생부터 범연대적인 정당이라 좌익 및 우익 세력 등의 연합에 가까웠다. 더군다나 이를 묶어줄 강력한 구심점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당원들의 탈퇴와 재입당이 빈번히 이루어졌다. 특히 90년대 사회당의 몰락의 경우에는 도이 다카코에 의해 마돈나붐이 일어났는데도 불구하고 정권탈환 실패, 그 이후 도이를 잇는 마땅한 후계자가 없었다는점, 무라야마 총리정권 시절 한신대지진으로 인한 지지율 폭락으로 인해 정당 재편이 일어나면서 사회당 우파를 중심으로 중요멤버들이 민주당으로 이행한다. 이로 인해 사회당이 사라지고, 좌익계열에 의해서 사회민주당이 결성된다. 나름 중도좌파에 가까운 성향이지만, 여전히 뚜렷한 색깔을 드러내거나 구심점을 잡지 못하고 있는 터라, 현재 약소정당에 머물러 있다.
  18. 가령 총파업, 인티파다 등. PFLP 내부에서는 제3차 인티파다를 주도하자는 의견도 나오는 상황
  19. 키프로스 노동인민진보당, 프랑스 공산당 등
  20. 가령 영국의 사회주의 노동자당(SWP), 프랑스의 독립 노동자당(LO)
  21. 포르투갈의 좌파 블록(BE)
  22. 전세계적으로 극좌가 권력을, 그것도 절대 권력을 차지하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다. 동유럽의 공산독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독재 정권이 서로 사이는 나쁘지만 극우 정권인 것만 봐도 알수 있다.
  23. 사실 아나키스트들은 19세기 중후반에 공산주의자들과 '자본주의 논쟁'을 벌이며 서로 대립하던 관계였고 이들이 세운 정당인 사회혁명당의 우파는 몐셰비키와 손잡고 볼셰비키와 대항했었다. 내전기에는 볼셰비키의 적군에 맞서서 싸웠을 정도. 아나키스트들 중에 볼셰비키를 지지한 세력은 사회혁명당의 좌파들로서 이들은 레닌과 스탈린의 통치기에 숙청당했다.
  24. 이 경우 자유주의는 반권위주의를 가리킴
  25. 동독의 집권당이었던 독일 사회주의통일당(Sozialistische Einheitspartei Deutschlands)의 후신이다.
  26. 좌파당 내의 '파벌'이라 할만한 세력들은 6개 정도가 존재한다. 당연하지만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모두 좌파.
  27.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실현이라던가
  28. 독일에서 정당이나 정치인을 시찰하여 헌법에 적합한지 시찰하는 기관. 독일공산당이나 신나치당 등이 이 기관에 의해서 해산당했다. 또한 헌법보호청은 일부 주에서 공산주의자 플랫폼을 시찰대상에 올렸다.
  29. 태생은 극좌국가이나 종파사건 이후에 극우 민족주의 국가로 변절. 다만 1998년까지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성향이 어느정도 남아있었다. 그 이후에 공산주의를 삭제하여 사실상 극우의 나라(극좌를 표절한 극우 성향)가 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