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진의 황족 司馬繇
(? ~ 304)
낭야무왕 사마주의 셋째 아들로 283년에 사마주가 죽자 동안공에 봉해졌으며, 산기황문시랑, 산기상시 등을 역임했고 그의 수염은 아름다웠다고 한다. 성품이 굳세고 위엄과 명망이 있으면서 박학해 재주가 많고 효성과 우애가 있어 상을 치를 때도 극진했다.
291년에 가남풍의 명을 받아 정변을 일으켜 운룡문에 주둔해 여러 군사를 통솔하면서 양준 일당을 몰살시켰고 이 때 문앙을 양준의 일파로 모함했는데, 그 이유는 사마요의 어머니 제갈씨가 제갈탄의 딸이라 사마요가 제갈탄의 외손자가 되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은 일로 문앙을 모함해 결국 문앙은 죄없이 멸족당했다. 그런데 그 이유들을 보면 결국 '제갈탄의 난'과 모두 관계있다.
- 당시 문앙의 항복이 수춘성의 사기를 크게 떨어뜨려 성이 함락되고 제갈탄이 죽은 일
- 당시 오나라에 인질로 갔던 제갈탄의 아들 제갈정이 오나라가 멸망한 후 초야에 묻혀 지내다가 죽은 일[1]
- 당시 사마요의 백부 사마사를 간접적으로 죽인 일[2]
이 때의 공으로 우장군이 되어 사성교위를 거느리고 동안왕이 되어 식읍 2만 호와 시중이 더해졌으며, 또한 전군대장군을 겸해 우위를 거느렸고 상서우복사로 옮겼다가 산기시랑이 더해졌다.
사마요가 양준 일파들을 주살한 것에 대한 상이 삼백여 명에 주어졌는데, 사마요가 주살한 것의 상을 마음대로 행했고 이로 인해 사마담과 틈이 벌어져 사마요는 참소당했고 이를 믿은 사마량이 사마요의 관직을 면직시키고 공으로 만들어 고향에 돌려보냈다.
그대로 머물러 그 말에 거슬러 폐해져 대방으로 옮겨졌다가 영강 초(300년)에 다시 징소되어 동안왕, 종정경이 되었고 상서, 좌복사 등으로 차례로 옮기다겼다. 혜제의 명을 빙자한 사마치, 사마월이 사마영과 싸울 때 사마요는 모친의 상으로 인해 업군에 있다가 사마영에게 병사를 해산하고 항복하기를 권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사마영의 군대가 패한 후에 사마영이 원망하면서 사마영에게 살해당했다. 그는 후사가 없어서 형 사마근의 차남 사마혼이 뒤를 이어 동안왕 자리를 계승하지만 요절하는 바람에 단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