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담

1 전한 시대 사상가 司馬談

사기》의 저자 사마천의 아버지로 그는 천문과 역법을 주관하고 황실의 전적을 관장했다. 한무제 때 한나라 황실의 봉선 의식에 참여하지 못해 화를 이기지 못하고 죽었는데 아들에게 자신이 쓰던 사적을 완성해 달라고 유언했다.

한서 사마천 열전에 의하면 제자백가 사상 중 음양가,유가,법가,묵가,명가,도가를 비교하면서 다 각각 장단점이 있지만 도가는 이러한 사상들의 장점만을 모두 취할 수 있다며 도가를 높이 평가했다. 이는 아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는지 사마천은 사기에서 도가식 무위지치를 지향했던 한문제한경제 시기를 문경지치라 하여 매우 높게 평가했다.

사기에서는 피휘를 해서 담(談)자를 동(同)자로 기록했다.

2 동진의 5대(진의 9대) 황제 司馬聃

항목 참조.

3 서진의 황족

司馬澹

생몰년도 미상

서진의 인물. 자는 사홍(思弘).

웅중복사를 지내면서 283년에 아버지 낭야왕 사마주가 사망하자 형제들과 땅을 나누어 받았고 동무공에서 무릉왕에 봉해져 식읍 5200호였으며, 대장군, 중호군으로 전임되었다. 그의 성품은 질투와 시기가 많아 효성과 우애가 없었으며, 사마요가 좋은 명성이 있어 부모에게 사랑받자 그를 싫어해 원수같이 여겼다.

291년에 사마요가 양준 일파를 주살한 것으로 인해 멋대로 상을 주는 것을 보고 이로 인해 사마요와 틈이 더욱 벌어져 참소했으며, 사마량이 이를 믿어 참소했고 사마담은 그를 폐해 옮기자고 주장했다.

300년에 사마륜이 군사를 일으켜 가남풍을 몰아낼 때 영군장군이 되었고 자신과 친한 곽간이 술에 취할 때 장화에 대한 원한을 이야기하자 술에 취했던 사마담은 그들을 나란히 죽여 사마륜에게 그 머리를 보냈고 이에 대해 사서에서도 그의 주정부리는 것의 사나움이 이와 같았다고 말할 정도였다.

시호는 장왕(莊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