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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aty of San Francisco
日本国との平和条約(일본국과의 평화조약)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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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태평양전쟁의 전후처리를 위해 1951년 9월 서명되어 1952년 4월 발효된 일본과 연합국 간의 평화조약.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대일강화조약 등으로도 불린다. 이 조약으로 패전 후 연합국의 점령지역에 불과했던 일본이 식민지를 포기하고 공식적으로 다시 독립국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날 동북아의 과거사 문제를 일으킨 원흉 중 하나.
이때 일본과 아시아 국가들 간의 피해배상 문제도 논의되었는데, 피해 당사국이면서도 조약 채결이 있던 1951년 당시 한국전쟁을 치르고 있었던 대한민국과 북한, 중화인민공화국과 일본과의 직접 교전 당사국이었던 중화민국은 초대조차 받지 못했다. 이는 당시 중화민국을 초청하자는 미국과 홍콩 문제 때문에 중화인민공화국을 초청하자는 영국의 주장 등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들어가는 와중에 정작 큰 피해를 본 국가들이 초대받지 못하는 상황이 생겼다.
물론 한국은 진주만 공습이 이루어지던 시점 이미 일제의 식민지, 즉 일제의 일부였으므로 전후 배상 문제에 있어 나치로 비유하면 유럽 전쟁 피해국이 아닌 아프리카 식민지나 마찬가지의 상황이었다. 사실 독일 또한 유럽 전쟁 피해국에 대한 보상을 했을지언정 아프리카 식민지에 대한 보상은 제대로 하지도 않았으므로 한국 또한 이 조약에서 언급되었다 한들 변변찮은 배상으로 끝났을 가능성이 컸다. 오히려 역설적으로 당시 이 조약에 포함되지 않았던 국가들, 즉 한국, 중국, 대만에 청구권이 남아있는 이유는 이 당시에 언급되지 않았기 때문이고, 덕분에 대부분의 나라들이 더 유리한 입장에서 합의를 볼 수 있었다.
이 중 중국과 대만은 국가 차원의 청구권을 포기했으나 민간 청구권이 여전히 존재하고, 북한 또한 북일수교가 이뤄지면 배상금을 받을 수 있으나 이쪽은 일본 국민 납치 등 사고를 친게 많아서 과연 어떨지는 불확실하다.
2 일본의 영토 및 독도 문제
일본은 이 조약을 근거로 독도가 일본령이라는 억지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는 조약문을 자의적으로 유리하게 해석하여 궤변을 펼치는 것에 불과하다. 정작 이 조약에서는 독도에 대해서 일언반구 언급하지 않는다.
한국의 독립과 영토에 관련된 조항은 다음과 같다.
Article 2(a) Japan recognizing the independence of Korea, renounces all right, title and claim to Korea, including the isls of Quelpart, Port Hamilton and Dagelet.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제주도, 거문도 및 울릉도를 포함한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 권원 및 청구를 포기한다.
사실 1947년에 작성된 초안에는 위에 언급된 섬들과 함께 독도도 포함되었다. 이는 연합군이 제작한 지도 등에서도 확인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1949년의 개정판에서 독도가 일본의 영토 항목으로 이동되어버렸으나 그 후 1951년 6월의 개정판에서 일본의 영토에 대한 항목이 통째로 삭제되었지만 독도에 대한 언급은 복구되지 않는다. 이에 한국 정부에서 독도와 파랑도[2]를 문장에 추가시켜줄 것을 요구하였으나 거절당했고[3], 결국 최종판에서는 위에 적혀있는 문장으로 동결된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독도문제는 이런 맥락에서 비롯된다.
러스크 서한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수정안 등을 볼 때 미국은 이 조항을 통해 독도를 한국에 귀속시키고 싶은 생각이 없었던 것은 사실로 보인다. 물론, 미국이 강화조약의 초안을 작성한 나라이기는 하지만, 그 조약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연합국이지 미국이 아니므로, 미국이 의도적으로 독도를 빼놓았다고 해서 그것이 조약의 해석에 적용될 수 있는지는 이론의 여지가 있다는 주장이 있지만 전후 일본의 영토문제는 태평양 전쟁의 승전국인 미국에 의해서 결정되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또한 미국의 일방적인 조약 수정은 이후 영국,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에 의해 항의를 받았으며 심지어 캐나다는 '일본의 처벌정도가 약하며 이를 수정하기 위해 일본의 4개섬을 제외한 모든 섬을 일본의 영토에서 제외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위의 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러스크 문서 논란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독도의 영유권에 대한 집요한 침해공작의 주범은 미국 국무부의 전통적인 친일파들이 있고, 그 당시 그들을 상징하는 인물은 미 해군 장교이자 외교관으로 종전 후 일본 측 정치외교고문으로 있던 윌리엄 시볼드다. 이 사람은 일본 여자와 결혼해 아예 일본에 귀화까지 한 인물로서 독도의 일본령화 공작에 앞장섰던 인물이다.
이 시볼드를 위시로 한 일본 내 우익세력과 국제정세상 일본에 동조한 미 국무부 내 친일파들이 독도를 놓고 흔들어 댔고, 그 와중에 한국 정부의 주미 대사관의 대사 이하 직원들의 병크로 인해 러스크 메모 파동이 일어난 것이다. 애초에 이들 대사관 직원이 독도에 대한 명확한 입장과 인식이 있었더라도 러스크 메모같은 병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애초에 극동 보좌관에 불과한 러스크의 메모는 말 그대로 쪽지A에 불과한 물건으로, 공식적인 문서도 아니고 국제법상 효력도 없고 미국 국무부를 대변하는 것 역시 아니다. 게다가 러스크는 샌프란시스코 강화회담의 주요 미국 대표도 아니므로 그의 쪽지는 자연히 듣보잡이 된다. 이는 한국에서만 제기된 주장이 아닌데, 일례로 세종대 독도종합연구소장인 호사카 유지 교수는 연합국의 합의를 전혀 받지 않은 문서이기에 이를 근거로 삼는 것 자체가 월권행위라는 것을 지적했다. 연합국 전체의 일치된 의견도 아니고, 미국 국무부를 대표하는 위치도 아닌데, 러스크의 공식문서도 아닌 일개 메모가 법적 효력을 갖고있을리가 없다는 이야기다.
러스크 메모 파동 이후, 독도의 지위는 한국전쟁의 정세에 따라 흔들렸는데 중공군의 참전으로 한국이 위태로울 때는 은근히 독도를 자기네 영향력 아래에 있는 일본령으로 하려는 미국의 의도가 노골적이었다가도 전선이 안정화되고 한국 정부가 버텨낼 듯 보이기 시작하자 은근히 일본 입장에서 발을 빼는 듯한 태도를 보인후, 결국 샌프란시스코 강화회담 체결 무렵엔 다시 러스크 메모 파동 이전의 SCAPIN677호 포고령의 입장으로 돌아갔다. 이는 카이로 선언과 포츠담 선언을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4]
일본 측에서는 SCAPIN677호가 일본의 영토를 확정한 것은 아니라는 명문의 문구와 샌프란시스코 조약상에서 일본이 돌려주어야 한다고 명기된 한국의 섬에 독도가 빠졌으므로 독도는 일본령이라고 주장하지만, 일본의 논리대로라면 현재 한국령인 한반도 근해 3천여개의 도서 중 일본이 돌려줄 것은 울릉도, 제주도를 포함해 3-4개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전부 일본령이라는 말도 안되는 개소리가 된다. 대한민국 외교부는 한국의 섬은 수천개가 넘고 독도는 울릉도의 부속도서로서 취급되어 언급되지 않았을 뿐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게다가 상기된 대로 일본의 로비로 인해 조약에서는 독도가 한국에 돌려주어야 할 섬 중 하나로 언급되지 않고 빠졌지만, 그렇다고 독도가 일본령이라고 언급한 것도 아니다. 그리고 그것이 왜 일본령이라는 일본 주장에 대한 반증은 바로 위에서 언급된 한반도의 부속도서 숫자가 3천여개나 된다는 사실로 충분히 가능하다. 더군다나 위에 언급된 섬인, 울릉도-제주도-거문도는 위치상 우리 영해의 가장 바깥에 위치해 한국의 영역을 표기하는 섬들도 아니다. 단순히 구한말 한국 주변에 다니던 서구인에 의해 가장 먼저 인식되고 가장 많이 인식되어 서구식 이름이 붙어있는 섬들일 뿐이라는 것이 한국의 주장인데 한국의 영해 내에 있는 섬에 대해서는 일일히 언급해야 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조약 당사국은 일본이므로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내용도 당연히 일본의 영토에 적용되며, 한국은 애초에 조약 당사국이 아니기때문에 한국의 영토권에 대해서는 어떠한 효력도 가지지 않는다. 다만 일본 정부가 어떠한 이유로든 한국영토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일본 열도의 부속도서가 아닌데 조약에도 누락되어 있는 독도는 당연히 일본령이 될 수 없다.
끝으로 일본이 러스크 메모와 SCAPIN677호에 집착하는 주된 이유는, 샌프란시스코 조약은 독도가 일본령으로 결정되었다는 일본측의 주장과는 달리 아예 그런 내용 자체가 없다는데 있다. 대신 '연합군 사령부의 모든 지령을' 유효한 것으로 인정하는 Article 19.(d)항 조항이 있을 뿐이다. 일본은 위 포고령에서 "패전국 일본의 영역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라고 언급된 구절을 빌미로 677호에서 일본영역에서 제외된 독도의 일본령 잔류를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해당명령의 6조는 단순히 677호 이후로도 얼마든지 영토를 수정할 수 있다는 의미이지 이것으로 인해 해당 명령이 무효화가 되는것이 아니다. 오히려 해당 명령의 5조에서는 이 명령은 연합군 사령부의 모든 지시, 명령에 대해서 유효하다고 하였다. 만약 사령부가 이를 수정하려 한다면 추가로 명령을 내려 수정했을 것이지만 그런 명령은 군정 종료 당시까지 내리지 않았다. [5]
결과적으로 위에서 언급된 대로 Article 19.(d)에는 677호를 비롯한 점령군 당국의 모든 조치를 인정한다고 되어있다. 간단히 말해서 포고 당시에는 영역으로서의 의미가 없었던 677호가 51년의 최종 합의된 이 조항으로 이때부터 비로소 패전국 일본의 영역획정의 준거자료로 활용되게 되었다는 걸 의미한다. 한마디로 의미가 추가된 것이다. 즉 677호로 확정된 영토는 강화조약 체결 당시까지도 유효하였고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19.(d)조에 의해서 완전히 확정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독도는 이미 677호 명령에 의해 일본령이 아니게 되었고 이것이 확정되었으니 일본은 이를 근거로 영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
Treaty of Peace with Japan, San Francisco, Article 19 (d) :
Japan recognizes the validity of all acts and omissions done during the period of occupation under or in consequence of directives of the occupation authorities or authorized by Japanese law at that time and will take no action.
점령기간 동안 점령군 당국의 지령하에 또는 그 지령 결과로 실시된 모든 조치 및 부작위(不作爲)의 효력을 인정한다.
SCAPIN 제677호 제5조
The definition of Japan contained in this directive shall also apply to all future directives, memoranda and orders from this Headquarters unless otherwise specified therein.
본 지령내에 들어있는 일본의 영토권 규정은 달리 지령내에서 특별히 규정하지 않는 한 본 총사령부에서 발동하는 장차의 모든 지령, 각서 및 명령에 적용된다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독도의 일본령을 승인했다고 구라를 치면서 정작 해당 조항에 대해선 대해선 홍보하지 않고 있다. 사이비 종교마냥 같은 조약내에서 자기 입맛에 맛는 조항만 골라 뽑아 써먹고 있는 것이다. 물론 매우 당연하고 그 내용이 널리 퍼져있는 조약에서 어거지로 필요한 내용만 뽑아와 우기는것이기 때문에,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잘 모르는 일반인 정도는 속일 수 있어도 정부 차원으로 조금만 넘어가면 통하지도 않는다. 즉 근거도 없는 억지 궤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도 이런 내용에 일일히 부들부들할 필요가 없는 것이 결정적으로 독도는 한국이 실효지배중인 상황이다. 영토 분쟁으로 백날 치고박고 싸우는 전세계의 사례에서 가장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은 종이쪼가리 몇장이 아니라 실효지배 여부였으므로... 일본이 한국과 단교할 생각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이런저런 절차를 거쳐 독도에 일장기를 꽂는 시나리오 자체가 성립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