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제

1 후한 말기, 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

薛悌

생몰년도 미상

자는 효위(孝威). 22세 때 연주종사(兗州從事) 신분으로 태산태수(泰山太守)였다.[1]

조조가 서주를 공격하는 틈을 타 여포가 복양을 공격할 때 연주종사로 있던 설제는 정욱과 함께 세 개의 성을 보존했으며, 태산태수를 지낸 적도 있어 진교와 교제하거나 고당륭을 임용해 독우로 임명했다. 군의 설제가 독군과 쟁론하다가 독군이 설제를 욕했는데, 고당륭이 노정공이 치욕을 받자 공자가 제지했을 때의 이야기를 하면서 고당륭이 칼로 독군을 위협하자 설제가 놀랐다.

조조가 장로를 정벌할 때에는 호군을 지내면서 교서를 받았고 서신의 겉봉에는 적이 도착하면 뜯어보라는 서신이 적혀있었으며, 215년에 손권이 10만의 군사를 이끌고 합비를 포위하자 서신을 뜯어보았다. 그 내용은 손권이 오면 장료, 이전은 출전하고 악진은 수비하지만 설제는 싸움에 참여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조비 대에는 왕사, 극가 등과 벼슬의 작위가 비슷했는데, 설제는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에 능해 살던 곳에서 한성(閒省)이라 불렸다. 조비는 설제를 조서에서 순수하지 못한 탐관오리라고 했으며, 왕사와 극가가 순수한 관리가 관내후를 내려 그를 부지런히 갚으라고 했다.

조예 대에는 독군으로 있으면서 군사를 지낸 두습과 함께 사마의에게 내년에 보리가 익으면서 제갈량이 필시 침범할 것인데, 농우에 곡식이 없으니 겨울 동안 미리 옮겨놓아야 한다고 했다. 진교의 뒤를 이어 상서령이 된다.

설제는 정욱전, 장료전, 양습전, 선제기, 고당륭전, 진교전 등에 보이는데, 집해에 따르면 양습전에 인용한 가리전과 위략에서 보인다는 내용이나 활동 사항을 보면 동일인물이 맞는 것으로 보인다. 고당륭전에 태산태수로 나온 설제만 동일인물인지 불명이다.

삼국지연의에서는 합비에서 서신을 받은 사람이 장료로 나와있다.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삼국지 3에 등장한다.

2 삼국시대 촉나라의 인물

薛齊
(?~?)

는 이보(夷甫). 설란의 손자, 설영의 아들.

설영이 유비를 따라 익주로 수행한 것으로 볼 때 적어도 유비가 익주를 점령한 이후에 임관했을 것으로 보이며, 상세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파군태수, 촉군태수 등을 지냈다.

파군태수를 한 시기에 대해서는 유비 시기에 파군태수로 임명된 사람이 기록상으로는 비관이 보이지만 물러난 시기가 나오지 않았으며, 유선 시기에는 보광, 장예, 동화, 양옹, 유은 등이 임명된 기록이 보이지만 관직이 옮겨진 시기를 알 수 없다.

촉군태수를 한 시기는 유선 시기에 여예제갈량 사후에 임명된 것으로 볼 때 적어도 여예보다는 늦게 촉군태수가 된 것으로 보이며, 촉이 멸망하자 5천 호를 이끌고 위나라에 투항해 위나라에서 광록대부를 지내 하동군 분음현에 살아 그 세가를 촉설(蜀薛)이라고 했다.

할아버지가 열전에 기록된 장수가 아니기 때문에 당대 사료에서는 찾아볼 수 없지만, 신당서 재상세계표에서 그의 할아버지인 설란의 이력을 설명하면서 그의 아들이라는 것과 함께 관직 등이 언급되었다.
  1. 진교전에 주석으로 달린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