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습

1 개요

杜襲

생몰년도 미상

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 자는 자서(子緖). 영천군 정릉현 출신으로 인재가 많았던 영천에서 태어났다.

같은 군 출신인 조엄, 진군, 신비와 함께 이름이 알려졌으며, 진수는 온화하고 순수하며 일을 원만하게 처리했기에 이 시대의 훌륭한 선비라고 평했다.

증조부는 두안, 조부는 두근이며, 형은 두기로 별도의 열전을 가진 인물이 아닌 동시대의 동명이인이다. 아들로는 두회가 있다.

2 정사

2.1 형주에서

난리를 피해 형주로 가 이 곳에서 자신과 같은 조엄, 번흠과 재산과 회계를 공동으로 하고 한 집에서 살았는데, 이 때 번흠이 자신의 뛰어난 재능으로 매번 유표를 놀라게 만들었지만 이걸 보고 두습은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내가 당신들과 함께 온 이유는 단지 물속에 잠겨 있는 용처럼 있다가 시절을 기다려 봉황처럼 비상하려는 것이오. 어찌 그대는 유목(유표)이 반란을 평정할 수 있는 군주로 생각하고, 나이 많은 것만 보고 그에게 몸을 의탁하려는 것이오? 그대가 만일 이러한 능력밖에 나타낼 수 없다면 나의 친구가 아니오. 나는 그대와 절교하겠소!

한 마디로 유표 같은 놈을 섬기는 바보 짓을 하냐는 소리

그 말을 들은 번흠은 비통한 표정으로 "청컨대 경건히 당신의 명령을 받들겠습니다."라고 했으며, 두습은 유표를 피해 장사까지 내려간다.

2.2 나의 주인님은 조조

건안 초년에 조조가 천자를 허도로 옮기자 두습은 시기가 적절하다고 여겨 고향으로 달려 돌아오고 그런 그를 조조는 서악현의 장으로 임명했는데, 이 서악현이라는 곳은 남쪽 변방 지역과 근접해 도적이 횡행했기에 백성들은 이들을 대비해 성곽을 지키느라 농사일이나 생산을 할 수 없었다.

당연히 토지는 황폐해졌고 백성들은 궁핍했으며 창고는 텅 비어 있었다. 두습은 이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노약자들은 집으로 돌아가 생산을 하도록 하면서 건장한 장정들을 남겨 성을 지키도록 했으므로 관리와 백성들은 환대하고 기뻐했다.

하지만 이 소식을 들은 도적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는데, 형주에서 바로 보병과 기병 만여 명을 출동시켜 성을 공격하자 두습은 즉시 현의 관리와 백성들 중 방어와 수비를 맡고 있는 50여 명을 불러 모아서 친척이 밖에 있어 스스로 수호하려고 하는 자는 임의로 성을 빠져나가도록 해주겠다고 하자 그들은 감복, 모두 머리를 조아리며 죽을 각오로 성을 지킬 것을 청한다. 두습은 직접 화살과 돌을 들고 사람들을 인솔해 힘을 합치니 관리와 백성들은 그의 은덕에 매우 감동해서 그의 명을 받기를 원했다.

하지만 적의 숫자가 숫자인지라 적진에 이르러 적 수백 명을 참수했으나 두습의 부하들은 30여 명이 죽고 그 나머지 18명은 모두 부상을 입었으므로 적들이 성으로 들어왔는데, 두습은 부상당한 관리와 백성들을 이끌고 포위망을 뚫고 탈출해 그 와중에 백성들의 거의 전부가 죽거나 부상당했지만 그를 배반한 사람은 없었다. 흩어진 백성들을 모아 마피의 군영으로 옮겼는데, 관리와 백성들은 그를 존경해 그를 따르는 것이 집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고 한다.

2.3 중앙으로

그런 그의 활약에 종요가 표를 올려 두습을 의랑삼군사에 임명할 것을 요청하고 같은 군 출신 순욱까지 그를 추천하자 조조는 두습을 승상군좨주로 임명한다. 213년 5월 조조가 위공으로 봉해져 헌제로부터 사양하고 있을 때 이를 받기를 권하는 인물 중 하나로 이름을 올렸다. 이걸 권한 사람 목록을 다 적기에는 여백이 부족하여 적지 않는다

11월에 조조가 처음으로 상서, 시중 ,육경을 둘 때 두습은 시중으로 임명되어 왕찬, 화흡과 함께 중용되었으며, 이 때 왕찬은 조조와 함께 수레를 타고 다닐 정도의 권세를 자랑했지만 존경을 받는 점에 있어서는 화흡, 두습에 미치지 못했다. 두습이 조조를 혼자 만나러 간 후에 밤 늦도록 돌아오지 않자, 왕찬이 질투심에 옆에 있던 화흡에게 조조가 두습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물어봤다가 화흡에게 쪼잔하다고 욕먹은 일화도 있다.

2.4 한중 공방전

그 후 승상장사를 겸하면서 215년에 장로 정벌에 참가했으며, 수도로 돌아온 조조로부터 부마도위로 임명받아 한중의 군사를 통솔하게 되니 두습은 스스로 백성들을 어루만지며 계도해 8만 명을 스스로 낙양과 업성으로 이주시킨다.

한중 공방전이 발발하면서 그 와중에 하후연이 죽는 상황이 일어났는데, 원수를 잃은 위나라 군대는 그야말로 자포자기한 상태였다. 두습은 곽회, 장합과 연합해 군대의 사물을 주관하고 장합을 원수로 삼아 군사들의 마음을 통일시킨다.

그 후 전투에서 패배한 조조는 장안을 지킬 유부장사의 추천을 일을 주관하는 자들로부터 받는데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자 결국 이렇게 선언한다. 결국은 답정너

천리마를 방치하고 타지 않으면서 어찌하여 전전긍긍하며 다시 찾으려 드는가?

그러면서 두습을 유부장사에 임명해 관중에 주둔해서 지키게 한다.

2.5 허유와 관련된 일화

이 때 허유라는 자가[1] 군사를 이끌고 귀의하지 않고 조조에게 불손한 언행을 일삼는데, 이에 조조가 길길이 화가 나서 그를 먼저 토벌하려고 한다. 주위 사람들이 괜히 그런 곳에 힘을 낭비하지 말고 힘을 합치는 것이 더 좋다고 하자 조조는 칼을 무릎 위에 올려 놓고 듣지 않으려고 한다.

이 때 두습이 말을 하려고 들어오니 조조는 듣기도 전에 이미 생각이 결정됐으니 얘기하지 말라고 했지만 두습은 말한다.

만일 전하의 생각이 옳다면 신은 곧 전하를 도와 이 일을 성사시키겠습니다. 그러나 만일 전하의 생각이 틀리다면 비록 결정되었을지라도 응당 바꿔야 할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신의 선수를 말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어찌 아랫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분명하지 못하십니까?

그러자 조조는 오만하게 구는 허유를 어찌 그냥 놔둘 수 있느냐고 하며, 그러자 두습은 허유가 일반인임을 조조가 스스로의 입으로 말하게 하고 결정타를 날린다.

오직 현인만이 현인을 알아보고, 오직 성인만이 성인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보통 사람이 어찌 비범한 인물을 알아볼 수 있겠습니까? 지금 시랑이가 길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 시랑이를 먼저 공격한다면 사람들은 전하께서 강함을 피하고 약함을 공격하고, 나아감에 용감하지 못하고 물러남에 인자하지 못하다고 할 것입니다. 신은 천 근이나 되는 화살로는 쥐의 발등을 맞추지 못하고 1만 석이나 되는 종은 당목으로 소리를 일으키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보잘 것 없는 허유가 어찌 전하의 신 같은 무예를 수고롭게 하기에 충분하겠습니까?

그 말에 결국 조조는 두습의 말을 인정하면서 허유를 두텁게 대해 아군으로 얻는다.

2.6 이후

220년에 조조가 죽고 조비가 위왕이 되면서 관내후의 작위를 받고 얼마 안 되어 황제에 즉위하자 독군양어사로 임명되면서 무평정후로 봉해졌으며, 또 독군양집법으로 임명되었다가 중앙으로 들어가 상서가 되었다.

226년에 조예가 즉위하자 평양향후로 봉해지고 진천으로 출격한 제갈량의 군세를 조진이 막은 후에 두습은 대장군 군사로 바꿔 봉해졌으며, 식읍 1백호를 나누어 형 두기에게 주면서 두기는 관내후의 작위까지 받는다. 231년에 조진이 죽고 사마의가 뒤를 이은 뒤에도 또 군사로 임명되고 식읍 3백 호가 증가되어 550호가 된다.

2.7 진서의 기록

231년에 제갈량이 천수를 습격한 이후 사마의의 공격으로 이들이 물러난 후[2] 군사로 있던 두습이 설제와 함께 사마의에게 내년에 보리가 익으면 제갈량이 침범할 것인데, 농우(농서)에 곡식이 없으니 겨울 동안에 미리 옮겨놓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사마의는

제갈량은 기산으로 두 번 출병하고 진창을 한 번 공격했다 꺾이고 돌아갔소. 설령 그가 뒤에 출병하더라도 다시 공성하지는 않고 응당 야전을 바랄 것이며, 필시 농동에서일 것이고 농서는 아닐 것이오. 제갈량은 늘 군량이 부족한 것을 한스러워 했으니 돌아가서는 필시 곡식을 비축할 것이라 내가 헤아려보건대 3년 안에는 움직이지 않을 것이오.

라고 말하니 과연 234년에 제갈량이 야곡을 통해 공격한다.

2.8 죽음

그 후 질병으로 중앙으로 돌아와 태중태부로 임명되었다가 죽은 후에는 소부로 추증되었으며, 시호를 정후라고 했다. 후사는 아들 두회가 잇는다.

3 연의

삼국지연의에서는 보통 등장하지 않는 문관 캐릭터들과는 달리 한중 공방전의 정군산 전투에서 하후연의 부장으로 정군산 서쪽을 지키며, 황충의 공격으로 산을 뺏기고 하후연이 사망한 후에는 장합과 함께 패군을 수습 후 한강에서 조조를 맞이한다. 황충한테 죽지 않은 게 어디냐 연의

4 기타

조비가 태자이던 시절부터 조비와 친하게 지낸 하후상을 업신여겨 이익이 되지 않는 친구라면서 특별한 대우를 할 필요가 없다고 조조[3]에게 말하기까지 했다. 이 때는 그냥 넘어갔지만 후에 조비가 하후상의 애첩을 죽이는 병크를 터뜨린 뒤에 하후상이 애첩의 무덤을 파헤치는 더한 병크(…)를 저지르자 조비는 "두습이 하후상을 업신여길 이유가 있었구만!"으로 응수한다(…).

2013년 기준으로 널리 퍼진 국역 화흠전에는 조예가 무습이란 자에게 조서를 내려 화흠에게 줄 때 "또한 두습에게 조칙을 내려 이르길 화흠이 반드시 일어나길 기다려서 돌아오라고 했다. 화흠이 어쩔 수 없이 일어났다."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오역으로 원문에서는 '又詔襲:「須歆必起,乃還。」歆不得已,乃起。'이라고 하고 있으며, 직역하면 “또 습에게 조서를 내렸다. '반드시 화흠이 일어나야 돌아와라.' 화흠은 부득이하여 조정으로 나왔다.”이다. 문맥상으로 여기에서의 습은 전혀 언급되지 않는 두습이 아닌, 앞에서 조서를 들고 나가는 것으로 이름이 나온 무습이다.

5 미디어 믹스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삼국지 3에 등장한다. 능력치는 대체로 균형있지만 높지는 않다.

삼국지 영걸전에서도 등장하는데 정군산 전투에만 등장하며 클래스는 의적. 레벨, 능력치 모두 그저그래서 그렇게 위협적이진 않다. 이후 등장이 아예 없는 엑스트라격 인물이라 생사 여부는 불명.
  1. 원소 휘하의 허유와는 동명이인이다. 언행은 우리가 아는 허유 같다만 아예 《태평어람》에서는 한 술 더 떠서 허유(許遊)라고 기록하였다.
  2. 이에 관해서는 사서간 차이가 있지만 여기서는 두습의 기록이 실린 진서를 기준으로 기록한다.
  3. 이것도 번역본에 따르면 조조지만 뒷 얘기를 보면 조비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