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장관회의


Совет Министров СССР
Council of Ministers of the USSR
소련 장관회의, 각료회의, 대신회의[1]

소비에트 연방의 3대 국가기관
소련 공산당대회소련 최고회의소련 장관회의
소비에트 연방행정부
소련 인민위원회의소련 장관회의소련 내각[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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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장관회의가 개회되던 건물인 모스크바 크레믈린 대회궁전(Сенатский дворец). 붉은 광장에서 레닌 묘 바로 뒤에 서 있는 건물이며 특유의 돔과 그 위에 붉은색 깃발은 소련 정부의 상징이었다.

1 개요

- 소련 장관회의, 즉 소련 정부(правительство)는 소련 국가권력의 최고 집행 및 처리기관이다.
- 소련 장관회의는 연방회의 및 민족회의의 합동회의에서 소련 장관회의장, 제 1부의장 및 부의장, 소련 장관(각료), 소련 국가위원회 의장을 구성원으로[3] 하는 소련 최고회의에 의해 조직된다.
연방구성공화국 장관회의 의장은 그 직무상 소련 각료회의의 구성원이 된다.
소련 장관회의장의 제안에 따라 소련 최고회의는 소련의 다른 기관 및 조직의 지도자를 소련 정부의 구성원으로 가입시킬 수 있다.
소련 장관회의는 새로 선출된 소련 최고회의의 제일차회기에서 그 전권을 이양한다.
- 소련 장관회의는 소련 최고회의에 대하여 책임을 지며 그에게 보고할 의무가 있다. 또한 소련 최고회의의 폐회 중에는 소련 최고회의 상무회에 대해 책임을 지고 그에게 보고할 의무를 진다.
소련 장관회의는 그 활동에 관해서 소련 최고회의에 정기적으로 보고한다.

소련 헌법(브레즈네프 헌법) 제 128 ~ 130조.

명칭만 보면 장관들이 모이는 회의 혹은 국무회의 정도로 보이지만 소련행정부이자 내각이다. 소련 정부를 칭하면 이 장관회의를 말하는 것임을 헌법에 명기하고 있다. 소련 장관회의는 소련 최고회의의 권한에 속하는 제문제가 아닌 한 소련의 관할에 관계된 국가관리를 해결할 권한을 가진다. 장관회의는 소련 최고회의의 휘하기관으로, 장관회의장 등의 각료는 최고회의에서 임명되었다. 소련 최고회의, 소련 최고법원과 함께 3대 헌법기관이며, 장관회의장은 소련의 총리에 해당한다. 그러나 공산당 1당 독재국가인 소련의 경우에서는 국가운영에 대해 정부 입장의 장관회의 외에도 당 정치국에서 업무를 처리하였다. 정치국의 실권자들이 모인 서기국의 서기들은 각자의 전문분야와 부서를 가지고 이들을 감독했으므로 장관들도 서기국의 감독을 받았다. 한마디로 서기장끝판왕. 그러나 소련의 정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당권의 정점인 서기장 외에도 최고회의장과 장관회의장이 반드시 등장하게 되어 있는데, 엄연히 국가권력의 최고기관이기 때문이다. 또 장관회의(Совет Министров)는 소련 뿐 아니라 연방의 각 공화국들도 가졌다. 따라서 전연방을 어우르는 행정부일 경우에는 소련(СССР)이라는 말을 붙여야 정확하다.

초기 러시아 연방공화국 시절에는 인민위원(Народный комиссар)들로 구성된 '인민위원회의(Совет Народных Комиссаров)'를 내각으로 두었고[4] 그것이 이어지다가 1946년 3월 15일 인민위원회의를 장관회의로 개칭하고, 인민위원은 장관(Министр)으로 직함이 바뀌었다. 한 마디로 국제적인 명칭을 받아들인 셈이다. 이에 따라 '인민위원부'의 명칭을 가진 정부 기관은 전부 (部)[5]으로 변경되었다. 예를 들자면 내무인민위원부(НКВД) → 내무부(МВД).

장관회의는 1990년 미하일 고르바초프대통령에 취임하자, 최고회의의 휘하가 아닌 대통령 휘하의 소련 내각(Кабинет Министров СССР)으로 변경되었고, 장관회의장은 직함이 '소련 총리'(Премьер-министр СССР)로 변경되었다. 하지만 이때 소련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여서, 1991년이 되면 이미 국가기능이 상실될 지경에 처하자 내각도 해체상태가 된다. 소련 내각은 1991년 8월 24일 소련 국민경제긴급관리위원회(Комитет по оперативному управлению народным хозяйством СССР), 1991년 9월 5일 공화국간경제위원회(Межреспубликанский экономический комитет СССР),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국가간경제위원회(Меж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экономический комитет СССР) 등등의 이름으로 변경되며 표류하다가 최종적으로 1991년 12월 25일 업무가 중단되었고 소련은 망했다. 소련 붕기 이후 러시아 연방에서도 내각(Кабинет Министров)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2 구조

소련 장관회의는 행정부로서 소련이라는 크고 아름다운 나라를 관리해야 하다보니 시작부터 관리기구는 매우 복잡하게 짜여져 있었다. 초기 인민위원회의(СНК) 시절에는 국유화로 인한 국민경제회의가 인민위원회의의 휘하로서 통합된 공동체(콜호스, 콤비나트 등)들을 관리했으나 1932년 최고국민경제회의가 폐지되고 인민위원부가 설립되었다. 인민위원부는 초기에는 중공업, 경공업, 목재공업의 3개로 출발했으나 1956년 말이 되면 공업부만 하더라도 31개나 되었다.

소련의 각 들은 다음의 구분을 가졌다. 다른 기관을 통하지 않고 소련 장관회의의 직접적 지도를 받는 경우(전연방성)와, 각 공화국 내에도 장관회의가 따로 있어서 소련 장관회의에 종속된 관계인 경우(연방공화국성)가 있었으며, 소련 장관회의에서는 관리하지 않고 각 공화국 장관회의에만 속한 경우(공화국성)가 있었다. 스탈린 사망 이후에는 이러한 편제의 개혁이 이루어져 1957년 5월에 부분별로 묶어 편성되었던 이러한 시스템을 제거하고 지역주의에 입각하여 산업관리기구를 재편하게 되었다. 국민경제회의는 부활하였고 같은 부문의 기업이 각 지구의 국민경제회의의 관할 안에 속하게 되었으며 1962년 12월에 이르면 경제관계로 묶인 성(묶음)은 전부 정리되었다. 그러나 이 당시 각 지역별로 산재된 국민경제회의는 105개 이상이었기 때문에 지역주의가 피폐하고 중앙통제력의 상실로 따로 놀게 되자 그 권한과 경계에 곧 너프가 시작되어 1963년 에 47개로 감소하게 된다.

이런 국민경제회의체제는 니키타 흐루쇼프의 실각 및 삽질 이후 문제점이 크게 지적되어 1965년 9월, 새 장관회의장인 알렉세이 코시긴(Алексей Н. Косыгин)에 의해 대개혁이 실시된다. 지역분권적 관리방식을 폐기하고 다시 성(묶음)을 부활시켜 부문별 원칙에 따른 경제관리제도가 채용되었다. 이는 1977년 헌법 개헌 이후에도 유지되었고 일부 부들은 새로 추가되기도 했다. 각 중앙행정기관(부)가 아닌 부속기관, 즉 국가위원회의 수장도 각료가 된다.

2.1 상무회(Президиум)

- 인민경제의 지도와 보장에 관련된 제문제 및 기타 국가관리의 제문제의 해결을 위해 소련 장관회의의 상설기관으로서 소련 장관회의장, 제1 부의장, 부의장으로 구성되는 소련 장관회의 상무회(Президиум Совета Министров СССР)가 활동한다.

소련 헌법(브레즈네프 헌법) 제 132조.

소련 최고회의처럼 장관회의도 평시에는 상무회에서 업무를 전담했다. 다른 장관들은 자기업무 감독하느라 바쁘다. 그러나 최고회의나 공산당대회처럼 상무회나 중앙위원회 의원을 따로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장관회의장과 부의장 등 핵심 각료들이 구성하는 기관이다. 이 때문에 '장관회의 상무회'라고 따로 칭하는 일은 거의 없다. 보통 인원은 30여 내외를 오락가락하나, 정부 규모에 따라 줄거나 늘어난다.

2.2 정부 부처

소련 말(1980년대 후반) 기준. 혹시 해당 항목이 만들어지는 경우, 링크추가바람.

소련 장관회의

  • 전연방성
    • 항공공업부
    • 자동차공업부
    • 무역부
    • 가스공업부
    • 민간항공부
    • 경/식품공업용기계/가정용기계제작부
    • 기계제작공업부
    • 해양선박부
    • 의료공업부
    • 국방공업부
    • 일반기계공업부
    • 계기/자동화기기/제어장치공업부
    • 교통부
    • 무선공업부
    • 셀룰로이드/제지공업부
    • 중형기계/기구공업부
    • 건설/도로/공공용기계공업부
    • 조선공업부
    • 트랙터/농업기계공업부
    • 운수건설부
    • 중형발전/운수기계공업부
    • 화학/석유기계공업부
    • 전자공업부
    • 전기기계공업부
    • 공작기계/기구공업부
  • 연방공화국성
    • 고등/중등전문교육부
    • 지질부
    • 보건부
    • 문화부
    • 경공업부
    • 벌채/수목가공공업부
    • 토지개량/수리부
    • 조립/특수건설부
    • 육류/우유공업부
    • 석유채굴공업부
    • 석유정제/석유화학공업부
    • 국방부
    • 식품공업부
    • 건설재료공업부
    • 어업부
    • 통신부
    • 내무부
    • 농업부
    • 상업부
    • 석탄공업부
    • 재무부
    • 화학공업부
    • 비철야금부
    • 철강부
    • 전력/전화부
    • 건설부
    • 공업건설부
    • 농업건설부
    • 중공업기업신설부
    • 교육부
  • 부속기관
    • 국가계획위원회
    • 노동/임금문제국가위원회
    • 자재/기술공급국가위원회
    • 조달국가위원회
    • 과학기술국가위원회
    • 임업국가위원회
    • 직업기술교육국가위원회
    • 건설사업국가위원회
    • 대외경제교류국가위원회
    • 국가안전위원회
    • 소련 농업기술/자재공단
    • 소련 국민교훈위원회
    • 소련 국립은행
    • 소련 중앙통계국

소련 장관회의 인원이 100명이 넘는 이유는 장관웨이브

3 역대 의장

굵은 선은 서기장 겸임.

소련 장관회의(Совет Министров СССР) 의장
이름집권 기간
이오시프 스탈린(Иосиф Виссарионович Сталин)1946년 3월 19일 ~ 1953년 3월 5일[6]
게오르기 말렌코프(Георгий Максимилианович Маленков)1953년 3월 5일 ~ 1955년 2월 8일
니콜라이 불가닌(Николай Александрович Булганин)1955년 2월 8일 ~ 1958년 3월 27일
니키타 흐루쇼프(Никита Сергеевич Хрущёв)1958년 3월 27일 ~ 1964년 10월 15일
알렉세이 코시긴(Алексей Николаевич Косыгин)1964년 10월 15일 ~ 1980년 10월 23일
니콜라이 티호노프(Николай Александрович Тихонов)1980년 10월 23일 ~ 1985년 9월 27일
니콜라이 리시코프(Николай Иванович Рыжков)1985년 9월 27일 ~ 1990년 12월 26일
소련 총리(Премьер-министр СССР)
이름집권 기간
발렌틴 파블로프(Валентин Сергеевич Павлов)1991년 1월 14일 ~ 1991년 8월 22일
  1. 일본에서는 장관을 '대신(大臣)'이라고 하기 때문에 이렇게 칭한다. 특히, 예전 러시아어 원서번역본이 부족했던 시절에는 보통 일본어 중역본을 썼기 때문에 지금도 '소련 대신회의'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는 편. 중국에서는 '부장회의(部長會議/部长会议)'라고 한다.
  2. Кабинет Министров СССР. 실제로 의미가 그냥 소련 내각이다. 이 때부터는 소련 최고회의의 휘하가 아닌 소련 대통령 휘하로 바뀌었다.
  3. 대략 전부 합쳐서 100여명 정도이다.
  4. 인민위원회의의 초대 의장이 바로 블라디미르 레닌. 보통 그의 직급이 수상으로 번역되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공식명칭은 당연히 인민위원장인데 북한도 아니고...
  5. (省)으로 번역해도 된다. 실제로 한국 기준으로는 ''지만, 일본어 중역본일 경우 '성'으로 번역되는 경우가 많다. 혹은 전연방성, 연방공화국성 등의 묶음과 각각의 중앙행정기관구분하기 위해 따로 번역하는 경우도 있다. 이 문서에서도 그렇게 한다.
  6. 소련 장관회의가 생기기 전, 1941년 5월 6일부터 이미 소련 인민위원장(Предсовнарком СССР)이었다. 즉 직함만 바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