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말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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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한반도의 정기를 끊고자 쇠말뚝을 산간벽지 이곳 저곳에 꽂아뒀다는 도시전설.

한때 백두산에도 일본이 쇠말뚝을 박아놨다는 사진이 나와 큰 논란을 야기했지만,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 요즘에 와서는 뜸해진 것 같지만 이거 찾아내서 죄다 뽑아내자는 조직이 아직까지 있다(그런데 이들 조직은 대개 무속인 협회들…). 지금도 간간히 TV에 나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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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총독부 말뚝에 한글이? 한글을 사랑하는 총독부

2 오해와 진실

진상을 알아보자면, 우선 조선총독부가 주도적으로 쇠말뚝을 박았다는 말은 많지만 그런 기록은 발견할 수 없다. 뭐 이런 주술적 의식을 비밀리에 했다면 관련 기록이 남아있는 게 의외일 테지만.

쇠말뚝을 박아서 지맥을 끊는다는 발상 자체가 우리나라의 풍수지리 전설에서 등장하는 것이며, 풍수지리라는 개념이 우리나라나 중국에 비해 매우 약한 일본에는 이와 비슷한 전설이 전혀 없다. 애초에 일제강점기 시대 일본인들은 풍수지리라는 개념 자체를 미신으로 취급했다. 오히려 당시 풍수지리를 믿는 한국인들이 산이 어떻고 물이 어떻고 하는 걸 소개하면서 이런 미신이나 믿는 조선인은 미개하다며 일본이 이들을 근대화 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써먹은 적은 있다. 미신을 역으로 이용해서 정신적 공격을 하려 한인용 오류: <ref></code> 태그를 닫는 <code></ref> 태그가 없습니다 일본이 아니꼬와 하는 인물(대표적으로 이순신, 권율 등 임진왜란에서 이름을 떨친 명장)들을 장군신으로 섬기거나 하는 것을 찾아 금지시키기 위한 것이였다</ref>것이었다면 오히려 대대적으로 알리면서 박았어야 한다. 기록도 없이 아무도 모르게 말뚝을 박는게 무슨 정신적 공격이 되겠는가? 게다가 하나의 단체, 혹은 일제 정부가 주도했다고 하기엔 말뚝 모양과 크기 등이 전부 제각각이다. 애초에 술객들이나 풍수가들 사이에서도 억지로 명당을 잡거나 지맥을 뒤틀거나 저주를 거는 행위는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른다고 하는데, 일제가 이런 쪽에 대해 잘 알았다면 했을 리가 없다.

그리고 재미있는 건 이와 관련된 도시전설로, 그때 TV에서 증언한 마을 주민에게 증거를 물어보니 PD그렇게 대답하라고 해서 일본 놈들이 박았다고 말했다는 말이 있다. 사실 90년대에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이런 신비주의 방송을 자주했다. 이 외에도 대단히 진지한 논조로 사주나 신점이 정말인 것처럼 방송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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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일본 종교단체가 백두산 천지에 일본 개국신 제사를 지내면서 쇠말뚝을 박았다는 사진이 자주 거론되는데 결론적으로 저건 쇠말뚝이 아니다. 2004년 당시 주간조선이 보도하고 다른 언론이 인용하면서 당시 이슈가 되었다.

사진 자체를 분석하면 아래 부분에 무엇인가 괴어 놓은 듯해 보이는데다가 제관의 몸에 가려진 부분이 있고 상판이 지나치게 넓고 얇은 데다가 홈들이 길게 나 있어 쇠말뚝이라고 보기에는 여러 물리적 특성들이 부적당하다.

2004년 3월 8일 방영SBS 백만불 미스터리 40회에서 이 사건를 조사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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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백만불 미스터리에서 당시 제사를 지낸 일본 종교단체를 취재하면서 밝힌 바에 따르면 신토에서 사용하는 제례용 나무탁자에 불과했다. 이런 탁자를 흔히 안(案)이라고 부르는데, 탁자 다리가 4개짜리, 8개짜리, 16개짜리 등이 있으나 8개짜리가 제일 흔하다. 그래서 다리가 8개인 안을 핫소쿠안(八足案, 8족안), 줄여서 핫소쿠(8족)라고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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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가 8개인 핫소쿠안 (사진출처: 위키페디아 공용)

사진을 핫소쿠안의 오른쪽 뒤에서 대각선으로 찍자, 우측 다리들이 하나로 모인 듯이 보여 말뚝으로 착각할 수 있는 착시를 일으켰다.

사진 속 사람들은 1921년에 창교된 신도텐코쿄(神道天行居)라는 종교단체 소속이다. 이들은 일본이 유대인들에게 영적으로 공격을 받는다고 믿고, 일본을 영적으로 방어하고자 신지(神璽)라는 물건을 땅에 묻거나 호수에 던지는 주술을 행하였다. 백두산에서도 신지를 천지 바닥에 가라앉혔다. 백두산에 말뚝을 박아 산을 쇠하게 하려고 하기는 커녕, 백두산을 일본의 중요한 영적 거점으로 보고 주술로 백두산을 방어하고자 하였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 페이지를 참조하면 좋다. 가장 확실한 반박으로 이 종교단체는 후지산을 비롯한 일본의 명산에서도 똑같은 의식을 거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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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말뚝 단체들이 간과하는 사항들 중 하나로 고층건물 시공시 기초를 다지기 위하여 파일 공법으로 지하 수십 미터 이상 파일을 박는다는 사실이 있다. 대도시 고층빌딩마다 저런 파일이 수십에서 수백 개가 박혀있다. 서울시 신청사 건립시에도 다량의 에이치빔을 박는 파일공법이 사용되었다. 게다가 연약한 지반을 다지기 위한 말뚝(파일) 공법은 조선시대에도 이미 비슷한 공법이 사용되었다. 경복궁 창건 당시 광화문에서도 뻘층과 모래층을 다지기 위해 나무 말뚝을 사용한 말뚝(파일) 공법으로 기초를 다졌다. 역시 함평 고막천 석교흥인지문의 기초 공사에서 사용한 나무 말뚝(파일) 공법이 확인된다.

송전용 철탑, 지하철, 빌딩 등도 기반공사로 지하를 파헤쳐야 하는 사회 기반 시설로, 이런 것들을 스스로 건설하지 않냐고 일본 쪽에서 반박 및 비판하기도 한다.

이런 풍수 공격을 지금도 믿는 사람이 있어서, 유명한 위인이나 특정 조상의 묘에 쇠로 된 칼붙이를 집어넣어서 그 자손의 정기를 끊어 놓는 저주 계열의 주술로 사용되기도 한다. 1999년에 어떤 정신 나간 무당이순신 장군의 묘에 그런 짓을 한 적이 있어서 화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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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말뚝의 정체는 대한민국 정부에서 측량용으로 꽂은 것과거 국군 임시 막사 설치시 꽂아 놓고 잊어 버린 것이 대부분으로 추측된다. 실제로 위 사진의 몇몇 쇠말뚝을 보면 위가 고리형으로 된 게 군인들이 임시 천막 설치할 때 쓰는 지주핀과 똑같이 생겼다. 심지어는 말뚝에 한국 정부 각인이 찍혀 있는 경우도 있다고.

기어이 한 신문사에 의해 이 괴담의 정체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 다만 여기서도 아예 대놓고 "그런 거 없다" 하기는 뭣했는지 그냥 "고증을 철저히 했어야 했는데 경솔하게 했다" 식으로 넘겼다.

무엇보다 사람이 산의 정기를 끊겠다고 말뚝을 박았지만 산은 머리만 긁적이고 말았어요. 산 : 아니 쇠꼬챙이 하나 꽂아서 뭐... 나보고 뭘 어쩌라고... 시발

조선일보에서도 이 쇠말뚝 괴담에 대해 인터넷판 1면으로 괴담의 허상에 대해 분석한 기사를 보도하는 등 쇠말뚝 괴담에 대한 반성이 시작되고 있다. 한국일보 보도에 비해서도 좀 더 단호하게 말뚝 괴담을 부인하고 있는 것이 포인트.#

3 여담

2010년 초에 전라남도 무안군에서 쇠말뚝(이라기보다는 철침)이 다량 발견되었다. 보통 것과는 다르게 묘지에만 집중적으로 수십 개 혹은 수백 개씩 박혀 있었고, 무덤도 남자가 있는 집의 무덤만 골라서 박혀 있었다고 한다. 흠좀무. 기사

그리고 북한 개성에서도 발견되었다고 한다. 日帝 쇠말뚝, 북한 명산에서도 대거 발견 북한에서는 이것를 일제가 풍수지리설에 기초하여 “우리 인민들에게 패배의식을 심어주려고 악랄하게 책동”한 것이라고 선전하며 반일감정 고취용 소재로 써먹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쇠말뚝 뽑겠다고 돌아다니는 양반들이 이젠 대북사업의 일환으로 북한 내 쇠말뚝 제거 사업을 추진하는 중이다. 다만 남북관계가 이모양 이꼴이라 단기간에 성사되기는 힘들 듯. 차라리 그게 나을 것 같긴 한데 이런 떡밥이라도 없으면 남북관계 물꼬 트기도 쉽지 않고.... 에라이....

만화 풍장의 시대에도 쇠말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들이 가슴을 쥐어뜯고 으아악(…).

임진왜란 당시 이여송이 한민족의 정기를 끊으려고 방방곡곡에 혈침을 박거나 맥을 끊었다는 비슷한 민간설화가 여러 곳에서 전해진다. [1] 그러나 전설이 전해지는 곳 중에서는 아예 이여송이 간 적이 없는 곳도 있어 역사적 신뢰성이 크게 떨어진다. 풍수지리설을 대중적으로 믿는 조선 민중은 조선 땅에 들어온 외세의 세력을 풍수지리와 연결하여 이런 저런 음모론을 상상하기 십상이었던 모양이다. 문제는 그게 환빠 같은 사람들에게 아직도 약발이 먹힌는 점이겠지만.

환빠들 중에서도 이 괴담을 사실로 믿는 이도 있다.

쇠말뚝은 한민족에 대한 간접적인 찬양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다. 쇠말뚝이 박혀 억제되긴 하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엄청난 숨겨진 힘을 가졌다는 명제가 우선되어야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대놓고 상국을 자처하는 중국, 특히 임진왜란 당시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조선을 구하러온 명나라 장군, 한양의 중심부에 보란듯이 거대한 총독부를 건설한 일제가 정신적인 위협을 느낄 정도로 장대한 지형을 가진 한반도와 그 덕분에 (현실적인 상황과는 정 반대로) 엄청난 잠재적인 힘을 가진 한민족이라는 명제를 납득할까. 임진왜란이나 일제 강점기, IMF처럼 국가 위기 상황에서 이런 도시전설이 나온다는 점등을 고려해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지형이나 쇠말뚝과는 관계없이 물길을 막고 산들을 무지하게 깎아 내리고 아파트를 지어가며 허허벌판에서 엄청난 경제발전을 이룬게 대한민국이라는 점에서 현실적인 자긍심과는 동떨어진 이야기이다.
  1.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정조가 신하들에게 이 설화의 진위를 묻는 장면이 나온다. 택리지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