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일

(반일감정에서 넘어옴)
일본에 대한 감정
혐일반일극일친일일빠

1 反日

反日. 일본에 반대함. 사상이나 신조, 운동, 사회적 분위기 등을 가리키기도 하나, 대체적으로 반일감정을 뜻한다. 그리고 반일감정이 지나치면 혐일로 변하게 된다.

한국의 반일감정도 중국과 마찬가지로 유명하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여자 피겨 스케이팅 경기 당시 NBC 해설자 스콧 해밀턴이 김연아아사다 마오와의 경쟁을 두 국가의 뿌리깊은 역사적 배경이 있어 경기가 더욱 긴장넘치게 되었단 해설을 할 정도로 외부에 알려져있다.

한중 외에는 주로 20세기 초반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거나 지배를 받았던 지역 혹은 일본과 전쟁을 벌였던 국가 및 태평양 전쟁의 상대국에 나타나는 현상. 한국(남한+북한), 중국, 동남아시아 지역,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등에서 존재하고, 2000년대 이후론 중국의 반일감정이 극심한 사실이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다만 일본은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서구권 제1세계 국가과 적극적으로 우호 관계를 맺고, 아시아 지역에서 미국 및 서구의 주요 동맹국으로 자리매김했으며, 거기에 가전, 자동차 등으로 대표되는 산업강국, 영화, 만화, 애니메이션 등의 문화 강국까지 여러 좋은 이미지를 가졌기도 하기 때문에, 일본에 대한 세계의 이미지는 소위 넷 우익들이 말하는 특정 아시아를 제외하면 좋은 편이다. BBC의 여론조사PEW 센터의 호감도 조사를 직접 확인해보면 알겠지만, 일본에 대한 서방권 국가들의 여론은 우호적인 편이다.

1.1 한국 내의 반일

1.1.1 역사

한국에서 반일도 유서깊은 감정이다.

일본은 삼국시대백제가야와는 우호적이었고 동맹 관계에 교류 역시 활발히 진행되었으며 고구려의 경우 그리 국가관계가 나쁘진 않았으나 지리적으로 워낙 멀어 양국 교류가 백제보다는 적었다.[1]그리고 신라와는 최악의 관계였다. 역사 기록을 보면 초기 신라는 심심하면 일본해적에게 약탈을 당했다. 이 관계는 후에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에도 나아지지 않았고, 신라의 전성기인 성덕왕 때와 경덕왕 때에 일본은 수백 척의 배를 동원해 신라 원정을 준비했지만 주도자였던 후지와라 나카마로가 사망하며 중지되었고, 발해와 친교를 맺고 신라를 견제하는 차선책을 선택했다. 다만, 가까운 탓에 민간 교류는 꽤나 활발 했다고 한다요즘에도 그래

나말려초 때에 신라구의 피해로 일본과의 사이가 틀어지는 것 같았지만, 고려와의 관계는 오히려 좋아졌다. 도이의 난으로 일본이 여진족들에게 초토화했을 때 고려가 지원을 해주는 등 우호적인 입장을 취했기 때문이다. 이후 일본과의 관계는 그냥저냥 평범한 상태로 이어졌지만 고려몽골의 침입을 겪은 후 다시 관계가 틀어진다.

여몽연합군의 일본원정으로, 고려는 이후에 벌어진 왜구의 침탈로 양국간의 감정이 험악해진 것. 정확히 말해 왜구의 침탈은 고려가 몽골에게 한참 얻어터지던 원종 시기부터 서서히 나타났다. 이 때 각국의 속사정이 굉장히 복잡했다. 여몽 연합군의 일본 원정의 경우 고려는 하기 싫었지만 억지로 했고, 왜구 같은 경우는 남북조 시대의 분열로 일본 중앙 정부에서 손을 쓸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당시에 전체상을 알 방법이 없었다. 세종대왕 때 간행한 삼강행실도를 보면 상당수가 왜구의 잔인한 면모를 보인다. 특히 열녀부분을 보면 왜구에게 욕을 보이고, 아니면 그 직전에 자살하거나 기타 방법으로 절개를 지키려는 열녀들의 모습을 강조한다. 비록 과장한 측면이 있더라도, 당대 왜구와 그 속에 들어간 조선의 일본 이미지를 보여준다.

거기다 결정적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으킨 임진왜란으로 전 국토가 황폐화하고 백성들의 삶이 파탄 지경에까지 이르자, 조선의 반일 감정이 최고로 치닫았다. 그나마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에도 막부가 나오고 겉으로나마 조선과 일본이 화해했지만, 양쪽의 앙금은 전혀 풀어지지 않았고 조선 통신사로 관계를 유지했지만, 조선 측의 경우 통신사를 통해 필사적으로 일본의 경제와 군사 상황을 알아내 경각심을 가지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통신사 제도는 문화 교류의 성격이 커졌다. 특히 왜란은 변경의 전투가 아닌 전면전으로 나라 전체가 비극의 현장이었다. 때문에 다른 국경의 전투나 변경 외적의 노략질과는 다른 차원으로 온나라 백성이 함께 공유하는 기억이 되었다.

1.1.2 현대

왜구임진왜란에 의한 반일감정은 근세 대한제국, 그리고 일본의 메이지 유신과 그에 따른 조선 침략 정책이 본격화하는 19세기 후반부터 이어지는 사건들과 식민지 통치에서도 점점 증폭되며 지속된다.

1945년 해방 이후에도 일본 전후 처리 미흡, 한국 정치인들이 독단으로 처리하고 묻은 한일협정과 그에 따른 일본의 태도, 기존의 사과 발언을 자주 뒤집는 행보가 현재 반일감정의 원인이다. 일부 극우 정치인들의 문제(독도 문제, 일본군 위안부,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 등)로 반일 감정은 계속해서 지속되고 있으며, 반일 감정을 가진 한국인들 중에선 민족주의적인 일본인이란 것 자체에 보이는 증오와 경멸도 많다. 그 예로 개, 돼지 도살까지 하는 극단적인 반일 시위도 벌인다. 또 다른 극단적인 사례로는 모처에서 초등생 유아를 대상으로 반일을 주제로 한 사생대회를 열었는데, 몇몇 그림 중에는 일본 만화 캐릭터로 일본을 까는(...)그림도 있었다. 한국 TV에서 방영하는 일본 애니메이션이 왜색을 빼고 현지화를 거쳐 애들이 만화를 보고 한국에서 제작한 애니메이션인 줄로 알아서였다. 과거에는 일본 문화 수입의 규제로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수입한 다음 방영시킬 때 제작국 은폐를 많이 해서, 대한민국 안에서 자신들이 봤던 일본산 작품이 일본 본토에서 만든 작품이라는 사실을 모르거나 대한민국에서 만든 작품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일본인들이 이 사진을 해외로 퍼트렸다. 물론 유포자들 중에는 이를 역선동 목적으로 터뜨린 혐한초딩도 꽤 많았다.(...) 똑같은 비뚤어진 애국심 혐한초딩들을 포함한 넷 우익들은 신이 나서 조롱했고 오히려 나라망신을 겪었다.

일본인이나 일본기업의 우수한 면에서 사실들을 깡그리 부정하는 일도 있다. 일본인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거나 객관적 사실이나 일본기업이 블루오션을 개척해 나간 방식을 배우자고 하면 쪽바리들에게 뭘 배우냐면서 그 사실 자체를 아예 거짓으로 몰아붙이는 경우도 있다. 이외에 한일전에서는 무조건 한국을 응원해야 하며, 일본이 승리하면 다른 국가에게 패배한 것보다 책임론 문제가 크게 대두되며 이때 일본 측에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발언이나 입장을 취하면 매국노 소리를 듣기도 한다. 역사 프로그램에서 일본 음악이 나와 항의가 들어오는 일도 있었는데 역사스페셜에 깔린 일본 코에이삼국지10 OST가 일본 음악이란 이유만으로 네티즌이 항의하여 방송사에서 사과한 일도 있고, 2004년에는 부산 동래구청 계단에 세운 도라에몽 동상을 반일 감정을 이유로 철거하기도 했다. 도라에몽이 무슨 죄야

이에 대한 비판 역시 존재하는데, 한국인의 반일감정은 주로 "한국인=일방적인 피해자이자 선량하며 무고한 사람", 일본, "일본인=일방적인 가해자이자 비열하며 사악한 사람"으로 몰아붙이는 이분법적이고 1차원적인 사고이며, 이때문에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각자의 민족주의만을 내세워 한일관계를 더욱 악화시키며,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물론 제국주의에 당한 역사가 있는 국가들은 이렇게 배타적으로 뭉치는 유대감이 강한 경우가 많다. 유럽에서도 서유럽아일랜드 공화국이나 동유럽폴란드 등지의 국민들도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서 상당히 민족적인 유대감이 강한 모습을 보이며, 영국, 러시아, 독일에 대한 증오/악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흔하다.

반일 감정과는 별개로 한국인들 중 일본 제품을 좋아하거나 일본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개 이런 사람들은 일본인 및 일본 문화들과 일본 정부 및 집단의 과거에 거는 태도를 별개의 문제로 보는 편으로, 기성 세대들 중 과거 일본 대중문화 개방 전부터 일본산 잡지나 음반을 몰래 들여와서 즐기는 때가 있었으며, 일본 문화는 싫어하더라도 일본 제품은 싸고 품질이 좋다고 호평하는 일도 많았다.[2] 이러한 현상은 현재진행형으로 엔저 현상이 발생하자 일본을 방문하는 한국 관광객 숫자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아베 신조가 처음으로 집권한 2006년에는 극우성향이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다시 집권한 2010년대부터 이러한 풍조는 줄어들기는 커녕 더더욱 증가하게 되었다. 아베가 세계의 지탄에도 불구하고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거나 개헌의 움직임을 보이는 등의 행보를 보인 것. 다만 개헌은 주로 아시아의 지탄을 받았고 서방에서는 오히려 러시아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일본을 지지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2015년 3월 8일 무라야마 총리가 침략을 부정해서는 안된다고 직접적으로 비판했으나 아베는 같은 날 당대회에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2015년 3월 9일 방일한 독일메르켈 총리가 우회적으로나마 독일은 과거와 직면했다며 전범국으로서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라는 의견을 피력하였다. 아베의 행동 때문에 한미동맹의 기반이 흔들리고 반일이라는 단어 아래 한중외교가 많이 호전된 것 때문에 불안해진 미국도 아베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계속해서 클레임을 걸고 있다. 주한미국대사 피습 사건 때 미국이 한미동맹이 굳건하다는 것을 강조한 이유도 셔먼 장관의 친일발언에 솟구친 반일감정 때문이다. 물론 다행히 한국이 한미동맹에 적개심을 가질 정도로 흥분했던 것은 아니었던지라 결과적으론 한미관계에 이롭게 된 듯.

메르켈 총리가 다녀간지 얼마되지 않아 일본은 독일 교과서의 위안부 기술이 왜곡되었다고 주장했다. 이러니 반일감정이 사그러들 날이 없다.

1.1.3 모순된 반일 감정

일제 강점기에 태어난 어르신 세대들의 경우, 반일 감정이 있으면서도 국까 성향이 강한경우도 있다. 일본의 발달된 기술이나 질서 의식에 대해서는 칭찬하면서 조선 놈들은 이래선 안 돼라고 하는 식.

어르신들이 살아온 시대를 생각해 보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기는 하다.

그런데, 20~30대가 모이는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보면, 같은 세대에 비해 반일 감정이 강한 사람들 중에도 모순된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일본 지진 소식이 들릴 때마다 기뻐한다거나, 음악 페스티벌 라인업에 일본인이 포함되는 것까지도 혐오할 정도로 극단적인 반일 감정을 보이지만, 정작 국내 친일파 비판이 이슈가 되면 침묵하는 것이다. 보수 성향을 보이는 젊은 유권자 중에 그러한 성향이 보인다.

물론 친일파 논란은 여야 모두 벗어날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해당 커뮤니티에서 그러한 논란이 이슈가 될 때 한 번도 명확한 의사를 드러내지 않았던 사람이 정치 관련 이슈가 나오면 그런 논란과 관련된 정치인을 적극 지지한다는 것은 교묘하게 논란을 피한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람은 심지어 친일 미화 논란 교과서가 커뮤니티 내 이슈가 되었을 때도 침묵한다.

1.1.4 온라인상에서의 반일 감정

당연히 인터넷이 발달한 시대에도 일부 한국인들을 거쳐서 반일 감정은 그대로 이어졌으며 수많은 사이트에서 극도의 반일 감정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볼 수가 있다. 대개 익명인 인터넷인 만큼 노골적 표현이 많은데 일본에 관한 얘기만 나오면 원색적인 욕설 및 공격성 글이 올라오기도 한다. 특히 과거사 문제나 독도 문제가 나오면 그 공격성은 평소보다 크며 한국판 혐한초딩을 보는 듯한 일본과 일본인 그 자체를 혐오하는 공격적인 성향을 보인다.

또한, 포털 사이트나 언론사에서 일본 관련 기사가 올라와도 욕설과 비방을 잇는데, 특히 일본 지진에 관한 기사가 올라오면 조롱하는 글을 올리는 극단적인 일도 있다. 특히 과거사 문제나 독도 문제가 터지면 댓글 수가 늘어서 일본에의 원색적인 글로 반일 감정도 부추기며, 그 밖에도 일본과 관련한 기사는 대부분 부정적이고 혐오적인 시선으로 악플이나 일본을 조롱하는 댓글들이 장식한다. 이런 와중에 조금이라도 친일 성향이 있거나 반격하는 글이 올라오면 공격성 글로 배척도 한다. 일부는 해당자의 홈페이지까지 쫓아간 뒤 서슴없이 모욕적인 글을 올리며, 더 나아가서는 범죄 수준으로 개인용 메일이나 쪽지로까지 공격적인 말도 한다. 게다가 최근 일본 애니메이션의 원활한 유입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에 빠지거나 그와 연관이 있는 코스프레만 해도 욕설(친일파라든지, 매국노라든지 하는)을 퍼붓는 사람도 있다. 애니메이션도 무슨 죄냐

심지어 2011년에 전북 현대와 일본 세레 오사카와의 경기에서 전북 현대 서포터즈에서 대형 플래카드에 일본 대지진을 축하한다라는 글도 올렸고 2012년에는 20대의 한 한국인 청년이 유튜브일본인들은 지진이 났을 때 모두 죽어주셨으면 싶습니다. 일본인들이 이 세상에서 멸종하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라는 동영상까지 올렸으니, 일본의 넷 우익 뺨칠 만큼 한국 온라인상의 반일 감정이 얼마나 심한지 드러난다. 잘도 사이코패스 같은 동영상을 만들다니

저질 오타쿠 애니 문화를 퍼뜨리는 오타쿠 종주국이라는 이유로 반일을 외치는 이도 있다. 그들은 일본의 무분별한 저질 오타쿠 애니 양산 행위 때문에 동아시아 아니, 세계가 오염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디씨인사이드 등에서 활동하는 오타쿠 중엔 일본 애니를 찬양하는 것을 넘어 일본을 찬양하는 놈들이 꽤 있다보니 그에 대한 혐오감이 기존의 반일감정에서 극렬한 혐일감정으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이들의 활약(?)을 무시할수 없는게, 일반인들은, 평소에 일본에 대해 관심이 없다가도, 이들의 행태에 대한 반발로 혐일로 돌아서는 경우가 많다. 일본의 넷 우익이나 정치인들의 어그로성 발언이야 잊을만 하면 한번씩 터트려주지만, 이들은 정말 정말 꾸준하다. 오히려 일본 넷우익이나 정치인들보다도, 이들의 행태에 몸서리 치는 사람들도 많다. 한일우호를 외치며, 자신들의 취향들을 인정받고 싶어하지만, 현실은 시궁창.. 어쩌면 고도의 혐일일수도

순서를 적자면 친일 오타쿠를 혐오 -> 오타쿠를 혐오 -> 일본 애니를 혐오 -> 일본을 혐오.

사실상 저런 극단적 사례들은 이미 반일의 수준을 넘어선 혐일의 영역에 들어선 셈., 그러나 일본 애니메이션의 인기가 점점 증가해 예전처럼 마냥 혐오하는 분위기는 줄어들고,[3] 이렇게 반일 감정이 종전에 비해 다소 사그러드나 싶었지만 아베 내각 집권 이후 일본정부의 온갖 망언과 갖은 도발, 그리고 넷우익들의 적극적인 활약? 등으로 한국 내의 반일감정이 반일을 넘어 혐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한일관계 문서 참조. 하지만 한국 내에서 오타쿠의 대한 일반인의 인식이 최악이기 때문에 혐오하는 분위기가 다시 살아나기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온라인에 별로 밀접하지 않은 중노년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극도의 혐오와 반감이 여전히 남아있으며 지금도 이들은 여론 조사상에서도 반일감정이 여전히 깊은 세대임을 체감할 수 있다. 온라인의 밀접상 이들의 정서가 반영되지 못해서 그렇지 실제로 이들 사이에서 반일정서의 여운은 남아있는 편. 특히 일부 노년층 사이에서는 일본 글씨가 쓰여진 음식점 간판만 봐도 여기가 왜놈 쪽발이들 사는데여? 한국땅인데 왜놈 글씨가 왜 써져있어?라며 혐오하는 듯한 발언도 내뱉는다. 다만 이 경우 그 분들은 일제강점기의 여파를 직접 겪거나 그 영향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등 그 모진 세월을 온 몸으로 겪어내신 분들이기에 단순히 반일로 치부하기엔 어폐가 있다.

1.2 북한의 반일

북한은 1945년 해방 및 남북 분단 이후 미국 및 서방국가에 버금갈 만큼 일본을 매우 적대시해 왔으며, 해방 및 남북분단 당시 소련군이 진주하면서 소련의 공산화 계승과 나라를 건국할 시조(始祖)의 우상 숭배화를 민중 앞에 확산시키러 가장 없애야 할 잔재거리로 당시 북한에 남아있는 일본인을 지목하여 모조리 쫓아내거나 반동분자로 몰아 때려 죽이기도 하였다. 넓게는 과거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했던 친일파매국노로 있던 인물들도 들어갔다. 이런 면에서는 친일파, 매국노 숙청에 미적지근했던 남한보다 이미지 메이킹을 확실히 했다고 볼 수 있다. 사실은 친일경력자를 여럿 등용한 것은 마찬가지였음에도.
특히 과거사 문제 등으로 반일성향이 깊은 편이며 일본측의 과거사 망언과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에도 반발하였던 적이 있고, 왜왕을 우리의 민중에게 고통을 주게 한 불구대천의 원흉이라고도 주장하였다. 국가의 뿌리를 항일에서 찾으니 전세계에서 반일이 가장 심하다고 한다.[4]

그리고 일본도 북한을 매우 싫어한다. 일본인 납치 사건 및 영해 불법 침투 사건, 그리고 틈만 나면 쏘아대는 로켓 등등으로 군사적으로는 한국보다 더 민감하게 반응할 정도.

하지만, 일본인들의 반북 감정은 북한의 반일 감정에 비하면 양반이다. 아베 신조납북 일본인 문제 해결과 박근혜 대통령의 한중 공조에 대응한 친북외교를 했었을때 지지하던 일본인도 많많치 않았었다.

1.3 중화권의 혐일

1.3.1 중화인민공화국

혐일/중국참조.

1.3.2 홍콩

흔히들 일뽕들이 홍콩이 친일 성향이 강하다는 말을 해서 홍콩이 친일 성향이 강한줄 아는 경우가 많으나, 홍콩의 경우에도 본토 못지 않게 반일감정이 심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4년간 일본에게 점령되었다. 그 사이 중국인에게 한 잔학 행위가 꽤 많아서 홍콩인들의 반일 감정은 본토 중국인이나 한국인과 맞먹는다. 지금도 가끔 조어도 문제나 역사교과서 왜곡 등이 터지면 홍콩 내에서 홍콩 극우들이 반일 시위도 한다. 그렇지만, 평범한 일본사람이나 일본 문화에게는 우호적이다. 아니 애초에 홍콩인은 모든 외국인(중국 본토인 제외[5])에게 우호적이고 친절하다. 단지, 일본 우익이나 정치인에게 반감이 클 뿐이다. 물론 이 곳에도 극우는 있어서 반중반일을 겸한다.

1.3.3 중화민국

대만에선 정치권과 달리 민중들 사이에서는 반일 감정이 그리 심하지는 않고 오히려 친일에 가까운 면도 있다. 대만-일본 관계 참고.

헌데, 대만에서도 난징 대학살은 절대로 부정하지 않는다. 당장 현 중화민국이 피해 당사국 중 하나고, 난징은 당시 중화민국의 수도였으니. 중화민국 정통주의자의 경우 중화인민공화국이 자신들의 공과를 뺏어갔다고 분개하기도 한다. 하지만 과격한 독립주의자 대만인의 경우 중일전쟁이니 난징대학살이니 남의 나라 역사로 치부하고, 누가 추모하면 욕설을 퍼붓고 오히려 중국놈들 잘 죽었다고 고인드립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6] 영토 문제에는 강경해서, 전임 총통 마잉주센카쿠 열도를 ICJ에 제소하자라며 역제안도 했고 대만인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방문하여 일본 극우들을 당황하게 했다. 다만 당시 정권이 본토에서 넘어온 중국 국민당이고 일본과 직접 싸운 당사자라서, 역설적으로 일본 극우들이 국민당 정권을 안좋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미국이나 일본 주류 정계는 중국본토가 대만을 합병하지 않고 대만정부가 독립을 시도하지 않는, 즉 현상 유지를 원하는 경우가 많으나 극우들은 대만을 완전히 독립시켜 반중국 동맹 체결을 주장하기도 한다. 이에 동조하는 대만인 일부가 위안부 등 일본의 전쟁범죄중국 공산당(+ 중국 국민당)의 날조라고 주장하기도.

본토 출신 외성인들은 중화민국의 구성원으로 항일 전쟁을 치룬 것은 물론 일본군 만행의 직접적 피해자니 기본적으로 일본에 적대적이고 실제로 일본에 협력한/협력했다고 간주된 집단을 매우 가혹하게 탄압했다. 한간이야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고 만주족과 대만 본성인은 집단 전체를 도매금으로 묶어서 짓밟았다. 특히 한간의 경우는 국민당이 워낙 가혹하게 탄압하니까 중국 공산당의 편이 되었는데, 이게 국공내전에서 국민당이 지는 하나의 요인이 되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리고 그 이전에 타이완 민주국[7] 설립 때 일본군이 잔학한 토벌을 펼치기도 했었다.

대만에도 극우가 존재해서 반중국대륙, 반한, 반일을 동시에 한다.

1.4 미국의 반일

2차대전 때에는 반일 정서가 강했지만 현재는 전쟁이 끝난지 오래여서 그 정서가 약하거나 거의 없다. 하지만 태평양 전쟁에 관련이 있는 노년층 세대중엔 일본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태평양 전쟁에 참전했던 참전용사들이 그런 경우로 "잽(Jap, 일본인 비하 명칭)등의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또 경제마찰 때 일본에 대한 감정이 매우 악화되기도 했었다.

1.5 러시아의 반일

러시아 국민들은 친일 성향이긴 하지만 싫어하는 쪽이라면 이쪽도 만만치가 않은 편이다. 러일전쟁에 관한 문제도 있는 편. 물론 2차대전 말기에 다시 소련군일본군과 붙어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지만 그 감정은 아직도 남았고,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쿠릴 열도 분쟁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러시아 대표팀이 일본에 졌을 때 화난 러시아인들, 특히 쿠릴 열도가 있는 극동 거주민들은 대규모 폭동을 일으켜 일본차를 불태우고 심지어 대사관 의전차량을 공격했을 정도다.

쿠릴 열도에 러시아해군 및 산하 육전사단, 그리고 공군 등 군대를 주둔시킴과 동시에 중국군과 연합 훈련을 하기로 결정했기에 러일관계도 얼어붙는다. 몇 차례 걸쳐 내무군 소속 해양경찰대가 일본인 어부를 사살하는 사건도 있었다.

그 밖에 도호쿠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한국/미국/중국/러시아가 일본과 갈등이 많은 상태였어도 많은 도움과 지원을 보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그런 도움을 받고도 영토 주장을 계속함도 모자라 태평양에 방사능 오염수를 무단으로 버리고, 일본 정부가 자국의 방사능오염 물건들을 계속 수출하려는 모습을 보여 일본에 대한 러시아의 태도가 급격히 싸늘해졌다.

2014년에는 러시아 부총리인 드미트리 로고진이 문제의 쿠릴 열도를 방문했을때, 일본에서 항의하자 "일본인은 할복 자살하라"고 발언했다. 중국과 한국네티즌들은 매우 통쾌하단 반응인 반면 친일 미국 네티즌과 일본 네티즌들은 섭섭한 반응을 보였다.

1.6 동남아시아의 반일

동남아시아는 일본을 매우 좋아하는 편인 지역이다. 참조.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이 동남아 국가들을 침공했다지만, 동남아 국가들을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되게 오랫동안 괴롭힌 것은 서구의 식민제국들이었으며, 전후 일본은 막대한 배상을 했고 또 천문학적인 금액을 꾸준히 원조하고, 투자 또한 지속적으로 해왔기 때문.

다만 반일 감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인도네시아는 다른 동남아 나라처럼 식민통치를 겪어 수카르노, 수디르만 등 독립 투사등이 일본과 네덜란드의 점령에게 저항한 나라다.

말레이시아는 외교부 인사가 일본에 대하여 2차대전 당시 동남아를 쳐들어와 학살과 약탈을 벌였다면서 차라리 영국이 조금은 낫다는 말까지 대놓고 하여 일본인들을 무안하게 만든 일이 있다.(일본은 없다에 나오는 이야기). 실제로 민간인을 8만 명이나 학살했고, 특히 중국계들의 피해가 막심해 화교들 사이에서는 반일감정이 매우 깊다. 당시의 말레이시아는 지리상으로 중국과 가까워서 화교들이 많이 이주해서 살았는데, 말레이계와 중국계사이를 이간질해서 서로 죽이게 했다고.

베트남은 2차대전 당시 프랑스를 일시적으로 뭉개고 쳐들어온 일본을 환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국부 호치민은 일본도 프랑스 못지않은 제국주의 침략자라고 견제했고, 베트남 교과서에서도 일본의 식민지배를 비난하고 있다.이렇게 강력하게 규탄하게 된 이유는 태평양 전쟁 시절 베트남을 점령한 일본은 조선에게 그러했듯 베트남에게도 일본군의 각종 민폐세트와 더불어서 당연히 쌀을 강제로 수탈해서였다. 그러다가 1945년 수탈과 더불어 대기근이 일어났다. 일본군의 쌀 공출과 홍수-가뭄으로 온 흉년, 미군 잠수함 공격에 남부 베트남에서 쌀 수송의 난항은 기록적인 대기근으로 돌아왔다. 당시 북베트남 인구는 1,000만 정도였는데, 이 대기근에서 아사자만 200여만 명. 이런 상황에서 베트남인은 일본에의 적개심이 커졌다. 때문에 베트민은 세력을 크게 늘릴 수 있었고, 일본 항복 직후 일시적이나마 베트남 전토를 장악하는데 성공한다. 인구 1/5이 굶어 죽었는데 강제적인 쌀 공출을 하면 당연히 분노했을 것이다. 참고로,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한 베트남인의 체험문학작품을 보면, "쌀을 가져가면 안 돼! 가져가지 마라!"라고 울부짖는 여인을 칼로 베어 죽이고 어거지로 쌀을 공출하는 일본군의 모습이 보인다.

라오스에서는 선생으로 봉사하는 한국 봉사단체 KOICA 교사의 증언에 따르면 라오스 세계사 교과서도 '일본은 2차대전 침략국가로 아시아 여러나라를 침략하여 학살을 벌였다'고 집필했다고 한다.

필리핀의 경우는 2차대전 때 태평양의 이탈리아 전선 소리 들으며 학계의 추산으로 70만~100만, 인구의 5~9%가 2차대전으로 인한 파괴, 학살, 기아로 죽으며, 수도인 마닐라만 하더라도 유서 깊은 스페인 식민 시절 부터 보존 되었던 구시가지가 가루가 되어 버리는 등 물질적으로 태평양 전선의 핵심 중 하나로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당장 바탄 죽음 행진 같은 전범 행위가 대거 발생한 곳인만큼, 정치적 상황이 혼잡하서 대립이 극심한 나라임에도 항일 투쟁 만은 공산당이나 신인민군 같은 좌익, 막사이사이 같은 우익, 모로 해방 전선 같은 소수 민족 분리주의 계열 마저도 협력하며 공유하는 역사이다. 막사이사이는 자신의 반일 투쟁 경력이 정치적으로 큰 도움이 됐고, 독재자 마르코스도 엉터리지만 자신이 전쟁 도중 항일 투쟁에 나섰다고 말했다.

싱가포르는 2차대전 당시 일본에게 겨우 4년 지배당했음에도 무수한 중국화교들이 일본군에게 학살당하고 말레이계와 이간질시켜 일본군이 물러나고 골머리를 앓아서인지 교과서가 꽤 반일적이다. 그렇지만 일본문화에 대해서는 굉장히 우호적이며 싱가포르인과 일본인 간의 통혼도 잦고 일본인 이민도 많다. 당장 싱가포르에서 영어표준중국어 외에 메이저 언어로는 일본어가 있을 정도이다. 정부 대 정부로 볼때 싱가포르일본은 경제 및 군사적 협력관계이며 최근 중국견제를 위해 싱가포르와 일본의 양국이 가까워지는 경향이 있다. 아베 신조싱가포르를 방문해 집단적 자위권 지지를 호소한 바 있다. 물론 정부 대 정부 차원이나 일반 일본인, 문화에 대한 우호감정과 별개로 제국주의 일본이나 일본 극우는 철저히 까인다.

미얀마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자세한 항목은 기무라 헤이타로 참조.

그 밖에 일본의 식민지 신세였던 캄보디아에서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여기 왕이었던 시아누크가 상당히 친일파였다는 점.

다만 동남아시아의 반일은 대체적으로 그다지 격하지 않다. 그저 역사적으로 '일본이 잘못했다' 정도만 알고가는 때가 대부분이며, 한국과는 달리 다른 서양 국가에게 오랫동안 식민지배를 받았고 일본의 직접적인 점령이 매우 짧아서이며 과거는 과거라고 생각하는 경향도 고려해야 한다. 국민적인 정서상 한국이나 중국에서 보여주는 극단적인 반일감정은 없다고 봐야 옳다. 게다가 피해 당사국들이 일본의 보통국가화와 재무장을 적극적으로 찬성한다. 여기에는 남중국해 영토 분쟁 문제 때문에 중국이라는 공동의 적을 함께 견제하려는 의도도 있을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으로 현 동남아시아 지역 국가들이 친일적이라고 해석하면 곤란하다. 이 지역의 민족 구성과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집권 정치층과 일반 대중을 나눠서 봐야 이해할 만한데,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동아시아 국가들과는 달리 국민국가라는 개념이 근대까지 없었으며, 부족 중심의 복잡한 정치 타협체이다. 다르게 얘기하면 일본의 동아시아 진출은 일본인 대 한국인, 일본인 대 중국인 식의 민족 대립 양상을 띠었지만, 이 지역에서는 몽 vs 크메르 vs 일본인 vs 화교 vs 베트남인... 이런 상황에서 비록 엄청난 병크를 저질렀지만, 현재 당장 국내 정치적으로 심각한 갈등은 국내의 다른 여러 제 민족이 일으킬 때가 훨씬 더 많다. 따라서 한국이나 중국 등에서 보이는 극명한 반일 양상이 없다. 특히 동남아시아 몇몇 국가의 지도층은 서양의 식민지를 벗어나러 의도적으로 친일에 끼었다가 전쟁 후반부에 반일로 돌아선 때도 있어서 대놓고 반일이 아닌 때도 있다. 놀랍게도 그 유명한 아웅산 수 치 여사가 이끄는 계열이 여기에 들어간다. 이들 국가에서 정치층은 자신의 지지기반인 특정 부족을 위해, 그리고 정치적 입지 강화를 위해 이 지역의 자원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투자와 지원을 하는 일본 정부와의 협력을 전략적으로 강화하려고 든다.

중국과 한국은 동북아시아 특유의 민족주의 성향이 크며, 두 나라는 과거 일본이 독주하다시피하던 1980~2000년대와 현저히 달라진 현재 높은 국력까지 더해 일본이 하는 행동에 따라 반대/방해하거나 앞길을 가로막을 만큼의 입지까지 있어 현재까지도 국가 차원이나 국민 차원의 마찰이 잦다. 그 일과 달리 이젠 한중일이 경제적으로 탄탄히 얽혀서, 서로 반발과 견제는 할지언정 경제적으로 서로의 관계가 끊어지기는 매우 힘들다.

요약해서 정리하자면 동남아시아의 반일은 동아시아보다 약한데, 식민 지배가 짧았기도 하지만 민족국가 구성이 느렸고, 지난 20년간 일본이 이곳에 끊임없이 투자로 구애해서였다. 다르게 말하자면, 이런 모습은 정서와는 관련없이 실익을 위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봐야 옳다.

1.7 그 외 나라의 반일

인도 공화국의 세계사 교과서도 일본을 침략국가라고 규정한다. 인도 초대 총리인 자와할랄 네루(1889~1964)가 영국의 의해 교도소에 갇혔을 때 딸인 인디라 간디(1917~1984)에게 보낸 편지를 봐도 3.1 운동을 찬양하며 한국을 억누르는 일본도 영국과 똑같은 제국주의 침략자라고 비난했다. 특히 러일 전쟁 때는 '동양의 한 나라'가 열강을 꺾었다는 점에서 일종의 희망을 가졌던 그이기에 배신감이 더욱 컸을 것이다. 그런 그가 초대 총리였으니 인도 세계사 교과서에선 일본은 영국과 똑같은 침략자인 것이다. 일본 극우들은 반일파(?) 네루가 아니라 찬드라 보세가 인도 총리였다면 일본과 인도는 사이가 더 좋아졌겠다란 헛소리를 이야기하는데, 어차피 찬드라 보세는 친일파가 아니라 일본이나 심지어는 나치의 힘을 빌려서라도 영국에 맞서려던 것 뿐이었다. 그가 일본을 환장하게 좋아했다는 근거는 없다. 좋아했든 싫어했든 결과적으로는 뒤통수 맞았고 어차피 연합국 소속 국가인 식민지의 입장에서는 연합국이나 추축국이나 그놈이 그놈이다. 일단 영국이 인도에 한 짓을 보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2차대전은 선과 악의 전쟁이 아니었고 연합국도 결코 좋은 놈들은 아니다. 제국주의 항목 참조. 그저 추축국이 더 미친 놈들이었을 뿐.

유럽은 현재는 반일 정서가 거의 없지만 태평양 전쟁에 관련이 있는 장년층 세대들은 일본을 결코 좋게 보지 않는다. 특히 네덜란드 에서 심했는데 일단 나치한테 제일 크게 당한 나라가 네덜란드 기도 하고 일본은 나치의 동맹국 이면서 바타비아 식민지를 침략해 많은 네덜란드 인이 죽고 많은 숫자의 네덜란드 여자들이 끌려가 위안부가 된 역사가 있어 아직 2차대전 참전세대가 많이 살아있던 1970년대에 히로히토 전 일본 국왕이 네덜란드를 방문했을 때 테러를 당할 뻔 했다. 다만 지금은 전쟁이 끝난 지 오래라 반일감정이 많이 사라진 편이다. 때문에 보수주의자나 우익 같은 사람들을 빼면, 전쟁과 관련이 없는 현 세대는 반일정서가 없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래도 역사는 역사니 일본을 독일과 세트로 외교적 차원에서 현재까지 괴롭힌다. 대표적인 사례가 두 나라(독일과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늘 적극적으로 방해하는 것.

태평양 전쟁 때는 반 독일, 반 이탈리아 정서처럼 반 일본 프로파간다 역시 유행했고, 뽀빠이배트맨등의 만화 작품에도 이런 정서가 많이 반영된 것을 볼 수 있다. 닌자와 싸우는 배트맨

호주의 경우는 포경반대 시위나 포스터가 수시로 보이는 나라로서 그 타겟은 물론 일본이다. 일본 어선이 함부로 자국의 해역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미 해군중국 해군과 연합하여 군사 훈련을 통해 일본 어선을 견제한다. 강력히 조치하며, 맬버른 같은 도시에 가면 이러한 광경을 상당히 자주 볼 수 있다. 또한 과거에 호주는 일본 어선을 무자비하게 격침시켜 일본의 불법 조업을 막고자 노력한 바 있으며, 자국에서 필리핀인 살인사건이 일어난 적이 있는데 그 이유는 죽은 필리핀인을 일본인으로 착각해서였다. 호주는 건국 이후 유일하게 일본군에게 본토를 침략당한 적이 있기 때문에 감정의 골이 꽤 깊은 편.

물론 전쟁세대만큼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일본에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본 국가들에서는 일본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미국도 예외가 아니며, 심지어 일류와 오타쿠 문화가 꽤 성행한 프랑스 또한 마찬가지다.

흔히 사람들은, 위안부 문제가 동아시아권만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위에 언급한 나라들은 다 명백히 일본에게 피해를 입은 나라들이다. 단지 가까운 나라들이 더 심했을 뿐이다. 인원이 적었을 뿐, 백인 위안부도 존재했다. 특히 네덜란드는 현 인도네시아의 중요성 때문에 꽤 심하게 타격받았고, 그 피해사례도 한국이나 중국과 비슷하다.
일본의 잔인함이 동양인들에게만 발휘된 건 아니다. 미군들과 영국군들도 일본과 전쟁을 치르며 자국의 포로들이 숱하게 고문을 받았고 프랑스나 네덜란드 위안부 피해자도 많다. 드 골이 괜히 일본 총리보고 외판원같다고 깐 게 아니다. 때문에 국가 차원으로 일본을 괴롭히는 네덜란드는 물론이고, 당시 일본에게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피해를 입은 국가들은 어느 정도 일본을 좋지 않게 보거나 일본의 과거사 문제를 압박하는 일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때가 있다. 대표적으로 2014년 프랑스 국제 만화 전시전에서 프랑스 정부가 한국의 위안부 문제 관련 작품들을 전시하는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이에 반발한 일본 작가들의 역사왜곡 전시물들을 강제 철거했던 일이 있었다. 이건 단순히 일본에 대한 반감보다는 일본이 게시한 작품들이 제 3국의 입장에서도 상식적으로 봐주기 어려웠던 원인도 있지만.

그 외에 오세아니아, 즉 태평양 군도의 여러나라들에도 동남아시아와 마찬가지로 반일감정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일본에게 점령당했던 오세아니아의 여러 섬나라들도 일본의 침략, 지배를 받았으며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일본어를 강요하며 원주민들을 패거나 심지어 죽이기까지 했다고 한다.(특히 파푸아뉴기니가 제일 심하게 당했다) 점령은 안 당했지만 투발루인들의 경우는 일본군들이 멜라네시아나 미크로네시아 등 점령지에 거주하거나 일하던 투발루 노동자들을 감옥에 가두기도 했다. 나중에 미군, 영국군의 도움으로 풀려났지만. 주로 오세아니아 지역은 노인세대들의 반일 감정이 심하며 물론 젊은 층들은 노인들만큼은 아니지만, 일본의 잘못을 모르는 것도 아니며, 비판을 안 하는 것도 아니다. 동남아시아의 반일감정보다 낮을 뿐이지, 아주 없다고 볼 수는 없다.

1.8 관련 항목

  1.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까웠던 백제, 신라와 달리 고구려는 워낙 먼 데다 험한 동해 바다가 가로막아 고구려와는 교류, 접촉이 적었다.
  2.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하던 80년대 당시, 일본으로 여행을 간 한국 아줌마들이 귀국할 때 한 명도 빠짐없이 양손에 코끼리 밥솥을 들고 있더라는 일화도 있다.
  3. 다만 일본 애니를 좋아하는 것과 반일 감정은 전혀 다른 별개로 치부될 수 있는 문제이다. 실제로 일본 애니나 음악같은 문화를 좋아하면서도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는 반감정을 갖고 있는 국민들도 상당히 많다. 이것은 문화를 사랑하는 것이 곧 국가를 사랑하는 것으로 이어지지는 않기 때문. 매의 눈으로 얼핏 지나가는 군국주의 옹호나 반한 소재조차 판별해내 비판하는 사람들은 매우매우 많다. 0.5초도 놓치지 않지!!
  4. 국가의 뿌리가 항일에 있는 것은 대한민국도 동일하다. 이는 일본에 맞서 싸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한국의 정식 정부로 계승한 것을 인정한 것에서 비롯된다.
  5. 중국 본토인이어도 광저우상하이 출신에게는 우호적이고 친절하다.
  6. 실제 한 대만 연예인이 페이스북에서 난징 대학살을 추모하는 말을 했는데 자기 나라나 관심하라는식으로 비난하는 리플들이 달렸다.
  7. 영문명 The Republic of Tawian, 혹은 The Republic of Formosa라고도 불리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