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로마케

Ἀνδρομάχη

테베의 공주이자 트로이의 왕자 헥토르의 아내.

에에티온 왕의 외동딸로 남편 헥토르와의 사이에 아들 아스티아낙스가 있다.

1 생애

1.1 트로이

헥토르의 정숙한 처로서 행복하게 일생을 보내고 있었는데, 남편의 동생 파리스가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를 납치해 와 트로이 전쟁이 일어난다. 헥토르는 트로이의 총사령관이자 최고의 무장으로 전쟁해서 활약했고, 그녀의 오빠인 포데스 역시 헥토르와 함께 활약했다. 하지만 헥토르가 아킬레우스의 절친인 파트로클로스를 죽이고, 이 때의 시체 쟁탈전에서 오빠 포데스가 메넬라오스에게 사망하고 시신도 끌려가 치욕적으로 훼손된다.

친구의 죽음에 열받은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와 결투를 하게 되는데, 안드로마케는 남편이 도망쳐서라도 돌아오기를 바랬다. 헥토르가 아킬레우스에게 패하여 죽고 전차에 매달리는 치욕까지 당하지만, 다행히 프리아모스 왕이 시신을 되찾아와 장례를 치른다. 이후 그리스의 장군 오디세우스의 지략으로 트로이가 함락당하고, 그녀의 아들 아스티아낙스는 아킬레우스의 아들인 네오프톨레모스에 의해 성벽에서 던져져 죽는다. 이 상황에서 더 나빠질 상황이 있을까? 있다.

안드로마케는 트로이 정복 최고의 전리품이었고, 헥토르 외에는 남자를 모르는 안드로마케를 차지하는 것 이상의 달콤한 유혹은 없었기 때문에, 그리스의 장수들은 누가 헥토르의 아내를 차지할 것인가에 대해 자신들의 공을 늘어놓고 다퉜다. 여기서 네오프톨레모스는 아버지의 공로를 내게 물려준다고 했으니 자신이 안드로마케를 가지겠다고 했다. 안드로마케는 전령으로부터 이 말을 듣고는 통곡했다.

안드로마케는 아들의 원수이자 남편의 원수의 아들의 첩이자 노리개가 되어 그와 억지로 몸을 섞게 된다. 네오프톨레모스는 단 10세에 불과했다.[1][2]

안드로마케의 나이에 대해서 확실한 언급은 없지만 네오프톨레모스보다 적어도 약 20년 연상이다. 아킬레우스보다 나이가 많은 헥토르의 아내인 만큼 이 정도의 나이차는 된다.

그리운 당신... 당신이 여기 계셨더라면... 당신 아내의 방패가 되어 주셨을 것을... 슬픔은 멈출 길 없고... 눈물을 흘리며 이별을 고해야 하는 우리 고향땅... 대담무쌍한 창 끝으로 수많은 그리스인들을 무찌른 빛나는 당신... 아아, 그리운 헥토르여, 부귀와 가문, 그리고 용맹과 지혜가 다 남보다 뛰었던 당신. 저에게 과분한 남편. 부모의 집을 떠나 당신에게 시집 와서 처녀의 자랑을 바친 그대여. 당신은 가고 저는 이렇게 포로가 되어 천한 종노릇을 하기 위해 뱃길로 떠납니다... 어머님이 통곡하는 폴릭세네의 죽음도 이 몸의 불행에 비하면 가벼운 것. 이제 이 몸에게는 모든 인간이 가질 수 있는 희망조차도 없답니다.

1.2 이후

안드로마케가 네오프톨레모스와의 사이에서 몰로소스라는 아들을 낳았다는 것은 어느 전승에서나 똑같지만, 이후에 대해서는 네오프톨레모스가 에페로이스를 건국했는지, 프티아로 귀환했는지와 안드로마케를 단순히 첩으로 여겼는지, 진심으로 사랑했는지에 따라 갈린다.

장 라신의 비극에서는 네오프톨레모스가 안드로마케를 사랑하게 되서 아스티아낙스를 죽이지 않고 에페로이스에 끌고 와 자신과 결혼하지 않으면 아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한다. 안드로마케는 남편 헥토르에 대한 정절을 지켜야 할지, 아들을 살려야 할지 고뇌하다가 네오프톨레모스의 청혼을 받아들이고 네오프톨레모스와의 첫날 밤에 관계를 가진다. 하지만 네오프톨레모스의 약혼녀였던 헤르미오네는 질투에 미쳐 사촌 오빠 오레스테스에게 부탁해 네오프톨레모스를 죽인다. 그리고 자신이 여전히 그를 사랑한다는 것을 깨닫고 오레스테스를 저주하며(...) 자살하고 오레스테스도 헤르미오네의 죽음에 슬퍼하며 자살한다. 이후 테티스는 안드로마케가 네오프톨레모스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후에 몰로시아가 되는 땅으로 안드로마케를 보낸다. 안드로마케는 몰로시아에서 몰로소스를 낳고 몰로소스는 몰로시아인의 시조가 된다.

에우리디케의 비극에서는 정실인 헤르미오네의 질투를 받는다. 헤르미오네는 원수한테 가랑이나 벌리는 색녀라고 안드로마케를 모욕하고, 아이를 낳지 못하는 이유를 안드로마케가 자신을 저주했다고 여겨 네오프톨레모스가 델포이에 간 사이에 안드로마케와 몰로소스를 죽이려고 한다. 다행히 펠레우스가 구해주지만, 네오프톨레모스는 이미 델포이에서 오레스테스에게 사망한 후였다. 네오프톨레모스 사후, 헤르미오네는 오레스테스와 결혼해 아들 키사메노스를 낳는다. 안드로마케는 헥토르의 동생인 헬레노스와 재혼해[3] 왕비가 되어 케스트리노스를 낳는다.[4] 여전히 헥토르를 그리워하고 로마를 세우러 가는 아이네이아스를 만나기도 하는데, 이 전승이 제일 유력하다고 여겨진다.

에페로이스 건국이 아니라 프티아에 귀환했다는 전승에는 헤르미오네에 관한 언급이 없고, 네오프톨레모스와의 사이에서 장남 암피알로스(몰로소스)를 낳는다.[5] 이 루트는 네오프톨레모스의 유일한 생존 루트지만[6], 안드로마케에게는 최악의 루트.

몰로소스 이외에 네오프톨레모스의 아이를 낳았다는 전승은 프티아 버전일 확률이 매우 높다.[7] 네오프톨레모스와의 사이에서 암피알로스, 몰로소스, 피엘로스, 페르가모스 무려 네 아들을 출산한다. 고대 그리스에서 안드로마케의 나이에 다산하는 경우는 드물었는데, 이에 대해 하이기너스(Hyginus)의 기록에 짤막한 언급이 있다.

안드로마케의 어머니는 에에티온과의 사이에서 아들 7명을 낳고 안드로마케를 낳았는데, 안드로마케도 네오프톨레모스의 아들 7명을 낳고 다음 해에 을 낳았다는 이야기도 있다.[8][9] 금슬이 좋았던 헥토르와의 사이에는 아이가 하나밖에 없었지만, 최악의 원수의 자식을 많이 낳았다는 거에서 아이러니.[10]

베르길리우스의 기록(Virgil III)에 의하면 네오프톨레모스는 자신의 어머니인 데이다미아를 헬레노스에게 아내로 주고 자신은 안드로마케와 정식으로 결혼했다고 한다. 이후에 별다른 언급이 없는 것을 보면 끝까지 네오프톨레모스에게서 벗어나지 못한 모양이다.[11]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도 잃고 원수의 아들만 잔뜩 낳고 참 인생 불쌍한 처자지만... 적어도 에피루스의 왕비가 됐다면 이후의 인생은 평온했을 것으로 보인다.

2 여담

안드로마케와 헥토르의 아들, 아스티아낙스는 사실 죽지 않고 이름을 프랑쿠스로 개명한 다음 프랑크 왕국의 시조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어떻게 목숨을 건진 건지는 설이 많다.[12] 하지만 광란의 오를란도La Franciade 등에 따르면, 아스티아낙스는 분명히 생존했고 카롤루스 대제의 선조가 된다. 만약에 안드로마케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그나마 위안이 됐을 것이다.

암피알로스나 몰로소스가 알렉산드로스 3세의 어머니 올림피아스의 조상이라고 한다. 다만 상술했듯이, 올림피아스가 네오프톨레모스와 안드로마케의 딸이라는 설도 있었기에 알렉산드로스가 아킬레우스의 후손이라고 주장하기 위해 만들었을 가능성도 높다.
  1. 네오프톨레모스의 어머니는 아킬레우스가 트로이 전쟁에 참가하지 않으려고 숨어있을 때 그에게 강간 당해(혹은 눈 맞았거나) 네오프톨레모스를 임신했고, 트로이 전쟁이 시작하고 10년 후 그가 참전한다. 정확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나이를 많이 올려잡을 순 없고 대충 10세 언저리인 것은 맞을 것이고, 최고 전사의 아들이니 아주 좋은 유전자를 타고 났을 것이며, 처형도 가능했던 것으로 볼 때 좀 육체적으로 조숙했을 거라는 가정은 할 수 있다.
  2. 실제 후기 청동기 시대 동지중해 지방의 전쟁 관습 중에는 정복당한 지역의 왕이나 귀족들을 어린 소년의 손으로 죽임으로써 적에게 최대한의 모욕을 안기는 풍습이 있었다. 따라서 트로이가 함락된 뒤 트로이의 왕과 귀족들을 죽일 때, 그들에 대한 모욕과 아킬레우스의 복수의 의미로 아킬레우스의 어린 아들에게 처형을 맡긴 것 자체는 당시 관습이다.
  3. 헤르미오네와 결혼했을 때 넘겼다는 설도 있다.
  4. 케스트리노스는 헬레노스와 데이다미아의 아들인 겐테르라는 전승도 있다.
  5. 장남이 누구인지는 학자마다 다른다. 파우시아는 몰로소스를, 가이우스 율리우스 하이기너스는 암피알로스를 장남으로 기록했다.
  6. 단, 델포이에서 깽판치다 죽는다는 전승이 있기는 하다.
  7. 헤르미오네가 나오는 전승에서는 몰로소스만 언급된다.
  8. 단, 이 전승을 따르면 안드로마케는 거의 40을 넘어서까지 아이를 낳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물론, 지금 시대에도 출산을 하기에는 늦은 나이. 네오프톨레모스의 나이는 적어도 18살
  9. 이 이야기는 알렉산드로스의 어머니를 직접적으로 네오프톨레모스의 딸이라고 서술한 전승인데, 시대를 보면 맞지 않다. 그냥 알렉산더가 아킬레우스의 후손이라는 소문 중 하나라고 보면 될 듯.
  10. 네오프톨레모스가 헤르미오네와 자식을 낳지 못했던 것을 보면 네오프톨레모스와 안드로마케의 유전자 궁합이 좋았다고 밖에(...)
  11. 다만 짤막한 기록이기에 아이를 몇 명 낳았는지에 대해서는 적혀있지 않다.
  12. 안드로마케가 다른 아기와 아스티아낙스를 바꿔치기했다는 설, 제우스가 구해줬다는 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