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상드르 뒤마

Alexandre Dumas[1] 프랑스의 소설가 부자. 아버지는 대(大) 뒤마라고도 하며, 그에 따라 아들은 자연스레 소(小) 뒤마로도 불린다.

1 알렉상드르 뒤마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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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5년, 1860년과 비교해서 상당히 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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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간지나던 시절.

1802년 7월 24일 ~ 1870년 12월 5일

삼총사, 몽테크리스토 백작, 철가면 등의 소설로 유명하다.

할머니가 카리브계 흑인이라서 위에서 볼 수 있다시피 흑인계 외모가 섞여있는 점이 재미있다. 사실 뒤마가 흑인 혼혈이라는 이야기는 70년대 이전부터도 웬만한 세계문학전집 작가 소개에도 다 나오는 이야기지만, 어째서인지 2002년에 어떤 사진이 공개적으로 퍼지기 전에는 몰랐다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

뒤마의 할아버지는 카리브해에서 농장을 하던 사람이고 할머니는 당연히 몸종(...) 뒤마의 삼촌들은 모두 노예로 팔려갔다.(..) 뒤마의 아버지만 할아버지와 프랑스에 건너가 혁명기 평등한 사회분위기에 맞춰 교육을 받았다. 이후 프랑스 혁명전쟁[2]과 나폴레옹 전쟁 초반에 장군으로 활약했으나 이집트 원정 당시 불화로 귀국하고, 설상가상으로 귀국도중 포로가 되어 옥살이. 이후 나폴레옹의 칙령으로 색인 차별이 시작되자 실의에 빠져 사망하고 만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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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토마 알렉상드르 뒤마(Thomas-Alexandre Dumas, 1762-1806).

역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썼지만 재미를 위해서 역사왜곡(…)도 서슴치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해서 쓴 소설은 웬만한 양판소가공전기와는 비교도 안 되게 재밌다. 굳이 비교하자면 삼국지연의정도에 가깝지만 사실이 7, 허구가 3이라는 삼국지에 비하면 뒤마의 소설은 사실이 3, 허구가 7, 혹은 1:9 정도.(…) 사실 그의 소설은 모험물이라고 보는 게 좋다. 물론 열렬 나폴레옹빠라서 호레이쇼 넬슨 전기는 원균옹호설 정도의 왜곡을 자랑한다.

문학사에서는 크게 주목받지 못하지만 소위 말하는 고전 문학에서 이만한 재미를 주는 소설가도 드물다. 이쪽 바닥 사람이라면 한번 읽어보는 것을 추천하다. 원작은 아동용(?)과 달리 유쾌한 막장스토리도 꽤 많기 때문에 읽어보면 꽤 놀랄지도.

프랑스 문학의 대본소 작가라는 비아냥도 있다.행수를 늘리기 위해 말없는 캐릭터를 넣기도 했다. 몽테크리스토 백작에서 괜히 루이지 반파 이야기로 한 챕터를 때운 이유중 하나가 이거다.

대본소 작가라고 불릴만한 이유가 3류이하 작가들이나 문예 지망생들을 모아서 이야기를 구성하고 자신이 최종적으로 편집하는 공장 시스템을 유지했었다. 특히 이런 점은 그가 경제적으로 쫄딱 망한 이후의 태작의 원인이 된다. 해당 시기의 프랑스 소설 중에서 행수늘리기로 제일 악명높은 것은 빅토르 위고레미제라블에 나오는 워털루 전투 장면이다! 이 당시 행수늘리기가 이렇게 유행했던 건, 원고료가 행수(또는 단어수) 마다 일정액을 지급하는 형태로 산정됐기 때문에(...) 다만 다른 동시대 소설가들에 비해 뒤마가 이런 평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뒤마의 소설들이 흔히 말하는 순수문학 정통보다는 초기 장르들의 전통에 가깝기 때문이다. 즉, 당시부터 '재미있고, 잘 팔릴만한 소설' 로 쓰여졌다는 것. 물론, 수백년간 꾸준히 팔린다는 것이 뒤마의 작품들이 걸작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게다가 여기 관련해서 유명한게 삼총사 연재시 걸린 소송이다. 삼총사가 밀라디와 리셜리외의 밀담을 엿듣는 장면을 당시 동업자(라 쓰고 공장 보조라 읽는다)인 다른 작가에게 표절및 도용 혐의로 걸렸다. 당시 도제 제도가 유행한때에도 소송이 걸릴 정도면 좀 흠좀무인정도. [4]

잘 알려진 에피소드 중 하나는 뒤마의 말년 이야기인데, 뒤마는 말년에 아들의 별장에서 지냈다. 그때 아들 뒤마가 뒤마의 소설들은 모두 고전이 되었다고 했는데[5] 정작 뒤마는 글을 쓰는데 바빠서 자신의 글은 읽어본 적이 없었다고 허탈해했다. 이에 아들 뒤마는 삼총사와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가져다 주었다. 뒤마는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읽으며 몽테크리스토 백작은 진짜 명작이구나. 하지만 내가 결말을 읽을때까지 살아있을것 같진 않다라고 말했다.[6]

흑인 혼혈이란 점 때문에 평생 인종주의에 시달렸는데 이에 관하여 단편 소설 조르쥬에서 이런 명대사를 남겼다.

"내 아버지는 물라토요, 조부는 깜둥이었으며, 증조부는 원숭이었소. 알겠소, 선생? 우리 집안은 당신네가 끝나는 곳에서 시작했단 말이오."

뒤마가 죽은 후, 그는 자신이 태어난 고향 마을 묘지에 묻혀 있었지만 2002년에 그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그의 무덤을 파서 유해를 꺼내도록 했다. 삼총사의 등장인물들인 다르타냥, 아토스, 아라미스, 폴토스로 분장한 공화국 수비대(Garde républicaine, 프랑스 헌병대의 일부) 4명이 푸른색 비단으로 덮은 뒤마의 새로운 관을 에워싸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 프랑스의 위인들이 잠든 파리 팡테옹으로 운구해 이장했다.

빅토르 위고(왼쪽), 알렉상드르 뒤마(가운데), 에밀 졸라(오른쪽)

그 후 시라크 대통령은 인종차별주의가 존재했지만 이제 뒤마가 빅토르 위고에밀 졸라의 곁에 안장됨으로써 잘못된 것이 바로잡혔으며, 프랑스 출신의 위대한 작가들 중에서도 뒤마 만큼 널리 읽히는 사람은 없다고 연설했다.

1.1 작품 목록

2 알렉상드르 뒤마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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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 동일인물이 아니다! 사진이 아버지랑 상당히 닮긴 했지만...


1874년, 간지나게 나이먹었다.

1824년 7월 27일 ~ 1895년 11월 27일

1. 의 뒤마의 아들. 아버지 뒤마와 동명 이인이 되어버린 이유는 사생아인 아들에게 1.의 뒤마가 이름을 붙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후대에는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fils=아들, 영어의 junior에 해당하는 표현)라는 명칭을 붙여 구분한다. 법적으로 아들로 인정받기는 했으나 사생아였던데다 거의 10살이 될 때 까지 거리에서 자라 문맹이었고, 흑인 혈통도 섞여있어 다니던 학교에서 흠좀무왕따를 당했다.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낸 탓인지 불우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무척이나 관심이 많았고, 그의 작품들에서는 실제 사생아로서의 경험담이나 어머니로부터 모티브를 얻은 불행한 미혼모의 묘사 등을 자주 찾아볼 수 있다.

뒤마 피스 또한 아버지와 같은 소설가이자 극작가의 길을 걸었는데, 글 쓰는 스타일은 아버지 뒤마와 극단적으로 달라서, 방대한 양을 빠르게 써내려간 아버지와는 달리 문장 하나를 붙들고 하룻밤새 고민하는 부류의 작가였다.[9] 실제로 뒤마(大)와는 "네가 문장 한 줄을 쓰는 동안 나는 책 한 권을 완성시킬 수 있다(뒤마大)" "아버지가 쓰신 책 한 권을 저는 한 문장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뒤마 小)" 정도의 대화를 나누었다고(...). 그의 대표작은 단연 춘희, 혹은 동백꽃 아가씨(La Dame aux camélias). 불치병에 걸린 고급 매춘부와 순수 청년의 순애보적 사랑 이야기로, 실제 뒤마 피스 자신의 경험에서 모티브를 따 온 자전적 소설이다. 춘희는 베르디에 의해 라 트라비아타라는 오페라로 각색돠었고 그 오페라 또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춘희는 지금까지도 세계적 사랑을 받고 있는 연애소설의 고전이자 전형이 되었다.

이 뒤마가 쓴 춘희가 문학소녀 시리즈의 4권인 문학소녀와 더럽혀진 천사의 소재가 되었다

  1. 여담으로 이름의 철자가 Dumas라서 쇼생크 탈출의 헤이우드는 영어 읽듯이 덤애스(Dumbass-멍청이)라고 읽어서 동료 수감자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2. 외국을 상대로 한 전투 뿐만 아니라 내전이었던 방데반란의 진압도 맡았는데 항목에 있는 내용을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자랑스러운 일은 결코 아니다.
  3. 뒤마의 아버지의 전기가 2013년 발표되어 퓰리처 상을 수상한다.
  4. 그래서 뒤마는 원래 나온 설정에서 대사를 더 넣고 밀래디의 비밀을 넣고 추기경과 삼총사와의 만남 부분을 재창작하고 순서를 바꾸었다.
  5. 좋게 말하면 그런거고 후속작이 제대로 된 것이 없어서 작가로서 잊혀졌다는 것에 가깝다.
  6. 자뻑+몽테크리스토 백작이 얼마나 긴 소설인지 보여준다. 참고로 영역판은 대략 1500 페이지에 110 챕터가 넘는다
  7. 여기서 파트 3만 따로 뗀 것이 철가면이다.
  8. 마고는 왕비이지 여왕은 아니다. 프랑스어 Reine 이나 영어 Queen 을 '여성 군주(여왕)'로만 해석하고 '남성 군주의 배우자(왕비)'라고 해석할줄 모르는 일부 번역자들의 대표적 오역 사례. 고질적 병폐 왕비를 여왕으로 만들면 뭔가 있어 보이나?
  9. 그의 희곡 첫 작품은 결국 뒤마 자신의 손으로 갈기갈기 찢어버렸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문장을 외우고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