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개
피겨 스케이팅 남자 싱글의 전설. 극강의 퀄리티를 자랑하는 정석적 점프와 폭풍 같은 스텝 및 풋워크, 그리고 대중을 사로잡은 매력적인 프로그램으로 피겨 스케이팅의 새로운 장을 개척한 사나이. 기술적으로 완성된 스케이터들은 야구딘 이전에도, 이후에도 존재했지만 야구딘은 패러다임을 통째로 바꾼 스케이터였으며 이 점이 다른 레전드들과 그를 구분짓는 특징이다.
구채점제 시절 올림픽에서 유일하게 심판 전원에게서 1위 판정을 받고 예술점수 6.0 만점이 4개나 등장하는 등 깨질 수 없는 기록을 세운 스케이터. 희대의 먼치킨이었으며 현역 시절 남자 싱글 피겨계의 최종보스. 이렇듯 믿기 힘든 성적을 낸 그를 기리는 의미에서 한국의 팬들은 그의 이름의 앞글자인 야와 신을 조합하여 '야신'[1] 이라고 부른다. 피겨 팬들에게 야신은 그 야신이 아니라 이 야신이시다
이름: 알렉세이 야구딘. 풀네임은 알렉세이 콘스탄티노비치 야구딘.
(러시아어: Алексей Константинович Ягудин , 영어: Alexei Konstantinovich Yagudin)
생년월일 : 1980년 3월 18일
출생: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
신체 : 175cm, 64kg
별명: 료샤, 알료샤[2], 야신, 야교주, 멸구딘(...) 등
선수 활동기간: 1993 ~ 1996 시즌 주니어, 1997 ~ 2002 시즌 시니어, 2003 시즌 은퇴 후 프로 전향
2 주요 경력
파일:Attachment/알렉세이 야구딘/c0035748 4b8cf82f85e3a.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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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번외경기 경력
2007
- - Japan Open 5위
2006
- - Ice Wars 1위
- - Japan Open 6위
2005
- - World Team Challenge 2위
- - Ice Wars 2위
2004
- - World Team Challenge 1위
- - Ice Wars 1위
2003
- - World Team Challenge 3위
2002
- - Hallmark Skater's Challenge 1위
- - International Challenge 5위
- - Canadian Open 1위
- - Top Jump 1위
- - Campbell's International Classic 1위
2001:
- - Goodwill Games 3위
1998:
- - World Professional Figure Skating Championships 1위
- - World Team Challenge 1위
1996:
- - Centennial on Ice 2위
1994:
- - Goodwill Games 8위
3 스케이터로서의 생애
3.1 성장과정
3.1.1 유년기
조야 야구디나와 콘스탄틴 야구딘의 외아들로 출생했다. 어린 시절 너무나 몸이 약했고 때문에 건강을 위해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4세부터 스케이트를 시작하였다. 이후 부모의 이혼으로 홀어머니 밑에서, 외가에서 성장하게 된다.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의 로봇공학자인 어머니의 가르침 덕분에 학업 성적이 우수했다고.[3] 게다가 어린 시절 시력이 나빠서 의사에게 '정상적 시력은 불가능하다' 는 진단을 받았으나 어머니의 헌신적 노력으로 좋은 시력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오오...
어린 시절의 성격은 학교 복도에서 소란을 피우는 전형적인 개구쟁이로 자존심이 강했다고 한다. 또한 그리고 승부욕이 대단해서 달리기 시합에서 언제나 1등을 했다는 얘기가 있다. 첫 코치는 알렉산드르 마이오로프로 점프, 스핀과 같은 피겨 스케이팅의 거의 모든 요소를 그에게서 습득하였으나 이후 공산주의 체제가 붕괴함[4]에 따라 정부로부터 급료를 받을 수 없게 된 마이오로프는 스웨덴으로 이주하면서 야구딘에게 자신의 스승인 알렉세이 미신을 소개시켜준다. 이때부터 선수로서의 야구딘에 대한 미신의 츤데레(...) 및 애증관계가 시작된다.
3.1.2 미신 코치 시절
점프 지도의 달인 배불뚝이 짜리몽땅 미신 영감님. 블레이드도 아주 잘 갈아서 야구딘은 은퇴 후 스케이트 날이 부서질 때까지 미신이 갈아준 날을 그대로 사용했다고.
초기에 야구딘을 맡았던 미신은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남자 싱글 금메달리스트인 알렉세이 우르마노프 대체 러시아에는 알렉세이가 몇 명... 를 올림픽에 대비 집중 지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야구딘은 그에게서 대체로 그룹 지도 형태의 수업을 받았다.[5] 그러나 1997년 알렉세이 우르마노프가 사타구니 부상 내가 고자라니 으로 시즌을 쉬게 될 무렵 각종 국제대회에서 야구딘이 계속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을 계기로 미신의 집중지도를 받기 시작하지만 두 살 아래의 예브게니 플루셴코가 미신의 휘하에서 두 살 위의 자신과 경쟁할 만큼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면서 다시 코치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6]
본래 미신의 코칭 스타일은 독재자적인 것으로 의상부터 프로그램의 모든 것을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선수에게 요구하는 타입이었다.[7] 그런 그의 스타일에 있어서 야구딘의 자존심 강하고 자유분방한 성격보다는 플루셴코의 자존심이 강하지만 고분고분한 성격이 더 마음에 들었던 것은 당연지사. 야구딘 자서전에 의하면 플루셴코가 미신의 총애를 받는 받면 자신이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 것을 견디지 못한 야구딘은 1998년도 세계선수권 우승에도 불구하고 돌아오는 미신의 쌀쌀맞은 태도(...)[8]에 그를 떠나기로 결심, 울면서(...) 미신과의 마지막 대화를 마치고 새로운 코치 타티아나 타라소바에게로 떠난다.[9]
3.1.3 타라소바 코치와의 미국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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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타라소바는 이전에 이미 코칭을 통해 러시아에 8개의 금메달을 안긴 유명 코치였다. 그녀가 야구딘의 코치를 맡을 수 있었던 것은 마침 그녀가 지도하던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의 금메달리스트 일리아 쿨릭이 은퇴를 하면서 여유가 생겼기 때문. 여전히 개구쟁이 성격인 데다 과거 그녀 스스로 '날아다니는 의자(flying stool)' 라고 평했을 만큼 점프만 잘했지 예술성은 한참 모자랐던 야구딘을 맡아서 타여사는 미신이 했던 점프 및 기술만을 반복적으로 훈련하는 전통적 러시아식 지도법이 아니라 전반적인 프로그램의 흐름을 훈련하면서 그 안에서 기술을 연습하는 미국식 지도법으로 야구딘에게 피겨 스케이팅에 대한 새로운 안목을 열어준다. 야구딘이 본격적으로 레전드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도 타라소바와 함께 미국으로 떠난 이후부터. 야구딘이 피겨계에 가져온 센세이션, 즉 예술성과 프로그램 전체의 완성도를 강조하는 스케이팅, 그리고 풋워크와 트랜지션 등의 전반적인 스케이팅 스킬이 중요한 평가요소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변화는 모두 이 시기 타라소바의 코칭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야구딘의 전성기를 함께 하면서 타라소바와 야구딘은 사제 관계를 넘어 모자지간으로 비유되는 매우 깊은 유대 관계를 맺게 된다.[10]
그러나 타라소바의 코칭이 야구딘에게 이득만 가져온 것은 아니다. 러시아에서 전통적인 러시아식 코칭을 고집하던 미신이 러시아 빙상연맹과 좋은 관계를 유지한 반면 미국에서 미국식 코칭을 하던 타라소바와 연맹은 관계가 좋지 못했다. 그 탓에 야구딘이 미신을 떠나 타라소바와 함께 훈련을 시작한 이후 러시아 빙상연맹은 야구딘에 대한 지원을 끊었다.[11]
3.2 압도적인 커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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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시니어 선수로서의 경력이 길다고 할 수는 없지만(애초에 피겨 스케이터들의 선수 활동 기간이 다른 스포츠 종목에 비해 매우 짧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2002년 솔트레이크 올림픽 챔피언, 1998, 1999, 2000, 2002년에 걸쳐 월드 챔피언 4회, 1998, 1999, 2002년에 걸쳐 유로 챔피언 3회, 1999년, 2002년의 그랑프리 파이널 우승 2회의 대기록을 가지고 있다. 특히 2002년에는 한 시즌에 그랑프리 파이널, 유러피언, 월드, 올림픽을 모두 휩쓸어서 남자 싱글 역사상 최초의 그랜드슬램을 달성하였다.[12]
3.2.1 플루셴코와의 라이벌리
야구딘은 같은 러시아 출신의 '황제' 라 불리는 예브게니 플루셴코와 전성기 내내 라이벌 관계로 유명했다. 전성기 동안 플루셴코와 계속 불꽃 튀는 라이벌리를 이루는 가운데에서도 야구딘이 시니어로 활동하기 시작한 바로 다음 시즌인 97-98시즌부터 은퇴 직전의 2001-2002 시즌까지의 다섯 시즌 가운데 야구딘이 발목 부상으로 인해서 고전했던 2000-2001 시즌을 제외하고 월드 챔피언은 모두 야구딘의 것이었으며 올림픽 금메달 또한 그의 것이었다. 아무튼 야구딘과 플루셴코는 금메달=승리, 은메달=패배가 되는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 이 두 사람이 경쟁하던 다섯 시즌 동안 둘이 참가한 모든 경기의 우승과 준우승을 둘이서 나눠먹은 덕분에[13]
그러나 워낙 서로 스타일이 달랐던 데다가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 그리고 2010년에 다시 복귀해서 은메달을 따는 등 플루셴코가 보여준 긴 커리어와 독보적 위치를 고려한다면 여러 모로 난형난제. 이 두 사람이 경쟁하는 동안 쿼드러플 점프를 아무렇지도 않은 듯 팡팡 뛰어댄 탓에 팬들의 기술적 눈높이가 하늘을 뚫을 기세로 수직상승하였고 이들을 본 피겨팬들은 남자 싱글이라면 쿼드러플 점프는 당연히 뛰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탓에 이후의 남자 스케이터들을 도탄에 빠뜨렸다.
미신 아래에서 동문수학하던 시절부터 야구딘과 플루셴코는 서로의 실력을 인정하고 의식하는 라이벌이되 관계는 좋지 않았던 걸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야구딘의 은퇴 이후 보이는 모습을 보면 전보다 많이 좋아진 듯.
이들의 일부(이 경우에는 정말로 일부) 극렬한 팬들 사이에서는 상대방 깎아내리기에 여념이 없는 모습을 보였으나 라이벌 관계가 성립된 가운데 상대방을 깎아내려봤자 제 얼굴에 침 뱉기. 따라서 두 선수의 팬들 또한 상대방 선수를 인정한다. 그런 면에서 보아도 진정한 라이벌리.
3.2.2 테니스공 사건과 2001년 세계선수권
2001년 그랑프리 파이널을 앞두고 잠시 자리를 비운 타여사의 '몸 조심하라' 는 충고를 뒤로 한 채 까불다 테니스를 치다가 공을 밟고 넘어져서(...) 오른발목에 부상을 입은 사건. 이 부상이 악화되어 2001년 세계선수권 직전에 가서는 심한 근육손상과 인대염좌로 걷기조차 힘든 상황이 된다. 코치와 닥터 모두가 출전 포기를 권유하는 마당에 '타이틀을 거저 내줄 수는 없다' 며 출전을 감행, 진통제 세 방을 맞고 출전한 첫 날의 쇼트 프로그램조차 제대로 수행할 가능성이 없다고 모두가 의심하는 가운데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쇼트 프로그램인 'The Revolutionary Etude' 에서 쿼드러플 토룹-트리플 토룹 컴비네이션과 트리플 악셀, 트리플 러츠를 모두 성공시키는 것은 물론 넘사벽 수준의 풋워크와 물 흐르듯 끊임 없는 완성도로 전설에 남는 프로그램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부상의 탓으로 첫 쿼드러플 컴비네이션의 높이가 낮았던 관계로 플루셴코에 이어서 쇼트 순위 2위를 차지. 1위에 대한 부담을 안고 시작한 프리 프로그램 '글래디에이터' 에서는 진통제 일곱 방(...)을 맞고 감각이 없어진 발을 끌고 나와 겨우겨우 쿼드러플-트리플 토룹 컴비네이션을 랜딩하였으나 이후 한 번의 손 짚음과 한 번의 넘어짐으로 인해 결국 월드 챔피언 자리를 처음으로 플루셴코에게 내어주게 된다. 연기 도중 이미 패배가 확정되었음을 감지한 이후에도 야구딘은 마지막 스트레이트라인 스텝 시퀀스를 전율이 흐를 만큼 멋지게 성공시켜 기립박수를 받아내니... 패하는 모습조차 투혼을 불사르는 사나이.
3.2.3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금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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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시즌 플루셴코에게 월드 타이틀을 내어준 설욕을 위해 절치부심으로 준비한 것이 2002 시즌. 사실 야구딘은 2001 세계선수권의 패배 이후로 슬럼프에 빠져서 충동적으로 스케이팅을 그만 둘 생각을 했었으나 타여사의 독려와 정신과 상담에 이르는 초강수 덕택에 부활에 성공한다. 새로 준비한 프로그램인 '윈터' 와 '맨 오브 더 아이언 마스크(이하 아이언 마스크)' 로 2001-2002 시즌 그랑프리 파이널을 탈환, 그리고 이어서 유럽선수권 또한 탈환하였다. 그러나 러시아 연맹과의 관계는 계속 최악이어서[14] 이를 이용하여 서유럽의 모 국가에서 야구딘에게 자국의 올림픽 위원회 위원장은 물론 고위 정치인과 체육계 장관을 파견하여 귀화 출전할 것을 제안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야구딘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그리고는 솔트레이크 올림픽에서 금메달. 야구딘이 모든 프로그램을 클린한 반면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플루셴코가 쇼트에서 넘어지면서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한다. NBC에서 방송된 경기 영상을 보면 쇼트 프로그램인 '윈터' 의 시작 전 링크에 들어서서 마음을 가다듬는 야구딘을 미신 코치가 뚫어지게 쳐다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따... 딱히 관심이 있어서 그러는 건 아냐! 아무튼 이때의 프로그램인 '윈터' 와 '아이언 마스크' 는 야구딘을 대표하는 연기가 되었으며 전세계 피겨팬들에게서 가히 폭발적인 반응을 얻어냈다. '윈터' 에서는 눈 내린 자작나무 숲을 형상화한 의상과 스케이트날로 빙면을 갈아 눈을 만들어 뿌리는 연출, 겨울날의 즐거움과 여러가지 모습들을 표현한 안무, 얼음이 튀어오르는 정열의 토스텝으로, '아이언 마스크' 에서는 갇힘과 고난, 극복과 자유를 상징하는 마임 연기에 펜싱 스텝, 4-3-2 컴비네이션 등 완벽한 테크닉으로 대중성과 예술성, 기술성 모두를 전인미답의 경지 너머로 끌어올린 것. 특히 야구딘이 훈련을 받던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에서의 인기는 자국 선수들을 능가할 정도. 반면 미국에서 훈련받았다는 점에서 얻어진 일종의 배신자 기믹으로 인해 러시아에서의 인기는 플루셴코에 미치지 못했다. 게다가 이 프로그램들에 대한 어느 섬나라의 반응은 절대적이어서 올림픽이 끝난 직후 도쿄에서 열린 2002 세계선수권에서 야구딘은 프리 프로그램이 끝나고 산더미 같은 꽃의 세례를 받는다(...) 그리고 어느 코 큰 키 작은 놈들이 애들을 맡기기 시작하는데...[15]
3.3 부상과 은퇴
2003년, 만 23세의 한창의 나이로 갑작스럽게 은퇴를 하게 된 배경에는 고관절 부상 문제가 있었다. 선천적으로 고관절이 좋지 못했던 데다가 수 년간 4회전 점프와 트리플 악셀의 충격을 고스란히 받아온 고관절이 완전히 망가져서 더 이상 컴페티션은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은 것.[16] 02-03 시즌 그랑프리 시리즈 첫 경기의 스케이트 아메리카에서는 쇼트 프로그램에서 선두를 달렸지만 결국 고관절 문제로 프리 스케이팅을 기권했다. 시즌 출전 예상 경기를 모두 포기하고 치료에 전념했지만 끝내 회복되지 않았고 이듬해 2003년 11월 스케이트 캐나다에 초대되었을 때 아마추어 경기에서의 은퇴를 발표했다. 은퇴식에서의 'Memorial' 과 함께 스케이트 아메리카 쇼트 프로그램에서 최고가 된 연기 '레이싱' 이 공식 아마추어 경기에서 그의 마지막 연기가 되었다.
갑작스럽게 은퇴를 선언하게 된 야구딘은 프로 전향 이후 컴페티션에 대한 갈증으로 인해 인공 고관절 교체수술을 감행, 티타늄제 고관절을 심고 터미네이터가 되어 돌아왔지만 아쉽게도 전과 같은 점프는 무리라서 현역 복귀에는 실패. 이후 부동산 사업을 경영하여 성공을 거두는 한 편으로 각종 아이스쇼에 꾸준히 참가하여 좋은 프로그램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에는 매년 현대카드 슈퍼매치를 비롯한 각종 아이스쇼를 통해 자주 방문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부카니스탄의 피겨 애호가이신 그분의 초청으로 납북 방북, 구글 어스를 보면 평양에서 찾을 수 있다고도 한다. 기사 참조.
부상의 결과 그의 시니어 컴페티션 기록은 다섯 시즌에 걸친 짧은 것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가 은퇴 이전까지 쌓아놓은 업적만으로도 야구딘은 보는 이로 하여금 '우리는 이날 이때까지 대체 무엇을 하며 살아왔던가!' 라는 자책을 하게 만드는 효과를 갖고 있다(...)
4 주요 프로그램
사실 야구딘의 프로그램, 특히 타라소바와 함께 한 프로그램들에 구구절절 많은 이야기는 필요 없다. 작품에 따라 몇 가지 짤막한 보조 설명도 있지만 일단 감상하면 누구든 느낄 수 있다. 왜 그가 전설이었는지.
4.1 컴페티션
4.1.1 미신 휘하(=흑역사)
- 1996 - 1997 시즌
쇼트 프로그램: Ruslan and Lyudmila
프리 프로그램: Carmen
갈라 프로그램: One Banana
한때 피겨갤 3대 금지 영상으로 꼽힌 프로그램이니 마음의 준비를 하고 보자. 미신 제작, 충격과 공포의 갈라 프로그램(...) 미신 코치가 야구딘에게 강요했다는 설이 있으나 사실은 본인이 좋아서 즐겁게 했다고 한다. 이런 프로그램을 소화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야구딘이 어리고 개구쟁이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 1997-1998 시즌
쇼트 프로그램: Ziganotchka
프리 프로그램: Snowstorm, Troika
갈라 프로그램: Mack the Knife
귀여운 코미디 타입인데 제냐의 섹밤도 그렇고 미신제 갈라들은 왜 하나같이 이 모양인 걸까(...)
4.1.2 타라소바 휘하
- 1998-1999 시즌
쇼트 프로그램: Circus
프리 프로그램: Lawrence of Arabia
트리플 악셀-트리플 토룹 컴비네이션, 쿼드 토룹. 본격적 전설의 시작. 타라소바와 함께 하는 프로그램들은 미신 시절의 프로그램과 많은 차이를 보인다.
갈라 프로그램: Here Comes The Big Parade,Circus,Rose
- 1999-2000 시즌
쇼트 프로그램: Nutrocker
프리 프로그램: Broken Arrow
프리 프로그램: Tosca
야구딘 프로그램 중 처음으로 쿼드러플 토룹-트리플 토룹 컴비네이션을 시전했다. 좀 흔들리지만...
갈라 프로그램: Tosca
위 프리용 토스카의 갈라 버전. 중간에 한참 감정이 차오르고 폼 잡아야 할 부분에서 토픽이 걸려 앞으로 꽈당 넘어지는 것을 안무인 척 속여넘기려 하지만(...) 여기서 파생된 별명이 일명 '꽈당구딘'.
갈라 프로그램: Come fly with me
갈라 프로그램: September Morning
- 2000-2001 시즌
쇼트 프로그램: The Revolutionary Etude
걷지 못할 부상 중에도 4-3 컴비네이션, 트리플 악셀을 랜딩하고 플라잉 싯스핀은 하늘을 뚫을 기세. 폭풍 같은 스피드, 힘, 그리고 투지.
프리 프로그램: Gladiator
부상 투혼 속에서의 연기와 슬라이딩 퍼포먼스, 혼신의 마지막 스트레이트라인 스텝 시퀀스 등 비록 클린하지 못했음에도 많은 이들에게서 가장 사랑받는 야구딘의 베스트 프로그램 중 하나.
갈라 프로그램: Gladiator
LP 글래디에이터의 갈라 버전.
갈라 프로그램: We Are the Champions
갈라 프로그램: My Baby You
갈라 프로그램: Stand by Me
- 2001-2002 시즌
쇼트 프로그램: Winter
스텝을 보라 스텝을!
프리 프로그램: The Man in the Iron Mask
피겨 스케이팅 최초로 '마임' 이 도입된... 건 아니지만(서커스에서도 마임이 들어간다) 관중들이 숨죽여 보게 했던 마임 오프닝으로 시작하는 예술성과 기술성 모두 절정에 달한 프로그램. 베스트 오브 베스트.
갈라 프로그램: Overcome
부상과 슬럼프, 각종 고난에서부터 재기한 야구딘 스스로의 삶을 그려낸 프로그램. 야구딘의 프로그램에 사용된 각종 안무가 망라된 종합 선물 세트이며 심지어 포스와 광선을 뿌리는 제다이 버전으로 만들어진 영상도 존재한다. 이른바 제다이 구딘.
- 2002-2003 시즌
쇼트 프로그램: Racing
카레이스가 잘 표현된 경쾌한 프로그램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음은 물론 그의 컴페티션 마지막 프로그램이기에 더욱 아쉬움을 남긴다. 영상으로 선택한 Sears open 버전은 어느 여성 팬의 '알렉세이 유아 핫~!' 이라는 샤우팅으로 더욱 유명하다. 이것이 그의 마지막 쇼트프로그램이라는 것이 팬들에게도, 피겨 스케이팅의 역사에도 너무 안타깝고 아쉬울 따름.
4.2 은퇴 후 프로페셔널
은퇴 후 야구딘의 프로페셔널 프로그램들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여기서는 그 중의 대표적인 것들을 소개한다.
- Memorial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야구딘의 은퇴식 연기...
- Moon Over Burbon Street
- Legenda
- Sway
- Blues for Klook
- Boxing
5 그 밖의 사항
5.1 각종 이슈들
- 좋아하는 스케이터
야구딘은 그의 자서전에서 어린 시절 좋아하는 스케이터는 브라이언 오서(과거 김연아의 코치로도 유명한 그분이다), 커트 브라우닝, 엘비스 스토이코였다고 했다. 야구딘은 오서와 브라우닝에게서 예술성과 풋워크를, 스토이코에게서 힘을 강점으로 꼽았다. 그리고 훗날 야구딘은 이 모든 것을 갖게 되었다. 야구딘 스스로는 스케이팅 스킬을 더욱 연마해야 한다고 밝혔는데 야구딘이 스케이팅 스킬을 갈고 닦아야 한다고 말할 정도면...
- 김연아의 금메달 예상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한 인터뷰에서 여자 싱글 부문의 우승후보로 김연아를 지목. 다른 부문에 대한 예상이 모두 빗나가서 야펠레가 될 뻔했는데 다행히 이건 맞았다. 아무튼 김연아에 대한 우수한 평가로 인해 김연아 팬들에게서 이모저모 호감도 수직상승 중.
- 멸치 사건=멸구딘 사건
그가 한국에서 멸구딘이란 별명을 얻은 건 아래와 같은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2006년 현대카드 슈퍼매치 때 김연아가 팬이 선물로 보낸 멸치 상자를 출연자 대기실에 놔두고 인터뷰를 하러 나갔는데 이런 사정을 몰랐던 야구딘은 멸치가 요기잉눼? 이 상자를 열어 다른 선수들과 나눠먹었다. 후에 이 사건이 알려지면서 '야구딘 멸치 사건' 이라 불렸다.
- 천재 혹은 잔머리 대왕
프로그램 중 점프 랜딩 실수로 발생한 스텝아웃을 교묘하게 하프룹인 척 속이면서 시퀀스 연결 점프를 붙여 랜딩에 성공한다거나 안무 도중 꽈당 넘어져놓고서는 마치 안무의 부분인 척 능청스레 넘어간다거나 하는 걸 보면 잔머리가 비상함에 분명하다.
- 자서전 출간
러시아에서는 '나프롤롬', 일본에서는 'Overcome' 이라는 제목으로 자서전을 출간한 바 있음.
- 차량 도난 사건
2008년 6월 2일, 야구딘의 포르쉐가 도난당했다. 그의 세계선수권 챔피언 메달 중 하나도 차와 함께 도난당해서 현재까지 행방불명이라고. ㅎㄷㄷ.
- 아빠 되다!
2009년 11월 20일 토리노 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페어 종목 금메달리스트인 타티아나 토트미아니나와의 사이에서 딸을 얻었다. 이름은 리자(Liza). 야구딘은 타티아나와 결혼할 예정으로 알려져 있다.
5.2 국내 팬 모임
5.2.1 알렉세이 야구딘 한국 포럼
알렉세이 야구딘의 팬들이 모인 포럼으로 여성 유저가 다수. 야구딘에 대한 최근 소식들을 접할 수 있으며 비정기적으로 오프모임 및 상영회를 갖는다.
링크: 알렉세이 야구딘 포럼
5.2.2 바나나즈
DCinside 피겨 스케이팅 갤러리에 기반을 둔 야구딘 팬 집단. 스스로를 야신교의 신도 '바나나' 라 칭하며 야구딘은 그들의 신이자 교주(...) 이름이 '바나나즈' 가 된 까닭은 충공깽의 갈라 프로그램 '원바나나' 에 있다. 그러나 DC갤러리의 특성상 딱히 고정된 인원은 없고 따라서 스스로 바나나즈라고 칭하는 이들이 존재할 뿐 기실 유령집단에 가깝다는 견해도 있다.
주로 하는 일은 야구딘 찬양(본래 매주 수요일이 집회일이나 요새는 비정기적), 야구딘 짤(야짤) 탐색 및 생산, 장판에서 피겨 연습 등등(...)
- 야구딘 찬양가
(현재 링크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상태)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을 느낀다면 당신은 이미 바나나.
- 야구딘과 함께 하는 깡깡총 체조
바나나즈의 일원인 ㅅㅇ이 만든 개그 동영상. 야구딘의 스텝과 각종 액션을 모아서 만든 체조(...) 프로그램으로 바나나즈들은 매일 아침 깡깡총 체조를 하면서 건강을 유지한다고 하지만 일반인들은 흉내내는 것만으로 무릎관절이 걸레가 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 ↑ 심지어는 다음과 같은 일화도 있다. 2000년 세계선수권 전에 야구딘은 하느님에게 "이 시합에 우승시켜 주시옵소서" 라고 빌고는 그 날은 맑아서 "만약 기도가 들리시면 계시를 내려주소서. 비를 내려주시옵소서" 라고 빌었다. 그랬더니 5분도 지나지 않아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큰 비가 내렸다고... ㅎㄷㄷ.
- ↑ 료샤, 알료샤는 알렉세이의 러시아식 애칭.
- ↑ 어머니가 교육에 힘쓴 까닭은 부상으로 인해 스케이터의 생명이 끝날 경우를 대비해서였다고 한다.
- ↑ 이 시기 이후 러시아의 스포츠 국가지원 시스템이 붕괴되면서 피겨 스케이팅은 더 이상 모두가 저렴하게 배울 수 있는 운동이 아니게 되었다. 야구딘-플루셴코 이후 러시아에서 이렇다 할 월드 클래스의 남자 싱글 선수가 등장하지 못하는 까닭은 이와 같은 저변축소에 있다.
- ↑ 마이오로프가 미신에게 야구딘을 맡긴 것은 스케이터로서의 뛰어난 자질을 보이던 야구딘에 대한 개인 지도가 필요했기 때문인데 막상 돌아온 것은 학원 수업이니 흠좀무. 참고로 트리플 악셀은 이 시기에 습득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 ↑ 플루셴코가 미신의 코치를 받던 어린 시절 선배 스케이터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야구딘도 그 선배 중 하나(...)
- ↑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프에 있어서 지도 능력만큼은 탁월하다고. 하기사 점프로서 역대 최강이라고 할 수 있는 야구딘과 플루셴코 모두 그의 휘하에서 고난이도 점프를 습득했으니. 참고로 점프의 안정성에 대한 그의 '필요할 때 한 번의 점프를 정확하게 하는' 이라고 하는 미신에게 받은 모토는 전성기 내내 야구딘이 몸으로 보여주었다.
- ↑ 자서전에 따르면 미신은 플루셴코가 우승하기를 원하고 있었다고!!
- ↑ 전부터 사이는 좋지 않았지만 야구딘의 첫번째 올림픽인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 감기로 인한 컨디션 난조로 성적이 저조했던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 ↑ 야구딘에 따르면 타라소바 코치는 그에게 어미새 같았다고. 그리고 자유분방한 성격 자체는 어쩔 수 없었겠지만 그래도 야구딘은 타라소바의 말을 잘 따랐다. 어느 정도냐 하면 얼마 전 타라소바의 언니가 죽었을 때 장례식에 온 제자는 야구딘이 유일했다고 한다.
- ↑ 한편 야구딘이 미신 휘하에 있던 17세까지는 타라소바 휘하에 있던 3살 위의 일리야 쿨릭을 이기지 못했는데 실력면에서 볼 때 이는 전성기의 쿨릭신이 시니어에 들어서서 점프가 완성되어버린 반면 어린 야구딘은 점프가 불안정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튼 이쯤 되면 어느 나라의 스포츠 파벌 싸움을 능가함과 동시에 역시 어느 나라의 빙상연맹과 맞먹는 수준의 충공깽이다. 게다가 러시아 연맹은 선수들의 상금에서 10%를 떼어갔는데 어느 나라 연맹은 무려 30%를 떼어간다...
- ↑ 올림픽 챔피언은 보통 그 시즌 월드를 스킵하는 것이 관례였으나 야구딘은 혼다 다케시의 권유로 참가하였다.
- ↑ 야구딘 주장에 따라 미신 파벌에 대한 러시아 연맹의 편파판정이었다는 러시아 내셔널을 제외하고 플루셴코의 15살 때의 승부를 포함하여 국제대회인 유러피언, 세계선수권, 동계올림픽에서의 전적을 비교하면 8승 3패로 야구딘이 우위에 있다.
- ↑ 야구딘이 타국 심판에게 들은 거에 의하면 야구딘이 유럽선수권을 탈환하자 러시아 연맹 사람들이 실망스럽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연맹의 특기는 팀킬?
- ↑ 일본 빙상연맹이 옆집 애를 위시한 주요 선수들의 코치로 당시 야구딘의 제 1 코치인 타라소바와 제 2코치인 알렉세이 모로조프를 전격 발탁, 러시아 배우기에 나선 것도 이때의 야구딘 빠순질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 ↑ 치료 약물계의 최종장이라 할 수 있는 코티졸=부신피질호르몬 주사가 전혀 듣지 않는 상태에 이르렀다고. 평소에 트리플 악셀과 4-3-2 컴비네이션 같은 슈퍼 테크닉을 구사하는 주제에 쿼드 악셀, 4-3-3 따위의 인간학대적 기술들을 연습하고 있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