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구군의 읍면 | ||||
읍 | 양구읍 | |||
면 | 남면 | 동면 | 방산면 | 해안면 |
1 개관
양구군은 1읍 4면(미수복 1면 제외)으로 구성되어 있다.
2 각 읍면 소개
2.1 양구읍
읍소재지는 중리이다.[1] 화천댐 건설로 수몰된 북면을 편입하였다. 원래 양구면이었으나, 1979년 5월 1일에 읍으로 승격하였다. 수인터널을 통해 춘천시 북산면과 접한다. 파로호에 한반도 모양의 인공섬이 조성되어 있다. 양구향교, 이해인문학관, 양구선사박물관, 박수근미술관[2][3], 비봉전망타워가 있다. 석현리의 양구선착장에서는 춘천으로 가는 배를 탈 수 있다.
2.2 남면
면소재지는 용하리이다. 국토정중앙천문대, 광치계곡이 있다. 46번 국도를 따라 내려가면 인제군 남면과, 광치터널을 넘으면 인제군 인제읍과 접한다.
2.3 동면
면소재지는 임당리이다. 후곡약수, 팔랑폭포, 양구식물원, 양구팔랑민속관 등이 있다.
~동면부터 포켓몬 GO에서 포켓몬 사냥 가능 시점 시작이다.~
2.4 방산면
면소재지는 현리이다. 양구백자박물관, 직연폭포, 천미계곡, 두타연폭포가 있다. 두타연 폭포는 민통선 안쪽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출입하기 위해서는 군청의 허가를 받을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 20대 남자 인구 비중이 가장 높은 읍, 면, 동 중 하나. 공장도시와 쌍벽을 이루는 남초동네 강제로 BOQ에 전입 온 초급 장교, 부사관(소중위, 중하사)들의 영향으로 보인다.
2.5 해안면
면소재지는 현리인데 방산면 현리와는 다르다. 면 일원이 사발 모양의 침식분지 지형으로 되어 있어 펀치 볼(punch bowl[4])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으며, 한국전쟁 때 격전지 중 하나였다. 수능에서 한국지리를 선택한 사람이라면 침식분지란 말을 들으면 자동으로 여기가 떠오른다. 교통편이 정말 열악하니[5], 자가용 끌고가지 않는다면 각오하고 가자. 원래부터 양구군 땅이었으나 1954년~1973년까지는 인제군 관할이었던 적도 있다.[6] 지금은 해제되었지만 한때 민통선 이북 지역이기도 했다. 여담으로 양구군의 다른 읍면과 달리 북한강 본류 유역이 아닌 소양강 유역이다.
이름만 보아서는 바닷가(海岸)를 뜻한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한자가 다를뿐만 아니라 양구는 내륙지역이다. 과거 뱀이 너무 많아 뱀의 천적인 돼지를 집집마다 풀어놓고 뱀을 쫓아내서 돼지 해(亥)자에 편안할 안(安)자를 지역 이름에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 몇몇 언론에서 해안읍으로 잘못 쓰는 경우가 많다. 설마 태안읍이랑 헷갈린건가 정작 인구는 1300명 내외로 읍이 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인구이다. 그래도 영월군 상동읍보단 많다
한 때 '해안 분지는 운석이 충돌해서 생긴 크레이터 지형이다'라는 주장이 등장해서 화제가 되었으나, 다른 학자들의 반론에 묻혔다.
한반도 중부지역에서 지리한 공방전이 계속된 한국전 특성상 해안면의 원주민은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고 대부분은 경상북도 울진 등에서 들어온 이주민 출신이 많다. 1960년대 태풍이나 자연재해 등으로 인한 흉년과 인구의 폭발적 증가가 계속되자 정부가 철원, 김화, 양구 등 전쟁으로 비어버린 전방지역으로 이주사업을 벌인 것이다. 일종의 사민정책이라 할 수 있는데, 특히 경상도 지역이 많았다고 한다. 원주민들이 죽거나 떠나간 지역을 경상도 출신 이주민들이 접수한 것인데, 사실 정부는 그냥 이주만 시켰지 그 이후에 대해서는 별다른 사후지원이 없었다. 대부분 행정관서보다는 인근 군부대에서 이주민들을 조금씩 도와줬는데, 병사들을 상대로 술을 팔게 해주거나(물론 불법이었고 술을 마시다 걸린 병력은 어김없이 처벌을 받았다. 그런데도 술장사에 대한 단속은 안하는 식) 개간과정에서 나온 고철(한국전에서 버려진 군수물자 등)을 캐어다 화천이나 춘천 등지로 나가서 판매할 때도 군 검문소에서 단속을 무마해주는 방식이 동원되었다. 고철판매는 주로 아낙네들이 했는데 보자기에 둘둘말아 아이를 엎고 고철을 지고서 검문소를 통과한 것이다. 헌병이나 경계병력들도 아낙네들이 고철을 무단으로 반출하는 것을 알았으나 그네들의 사정을 알고 눈감아 주었다고 한다. 당시 이주민들이 처음 왔을 때 주어진 것이 개인별로 분배된 담요와 군용천막이 전부였고, 지뢰와 불발탄이 가득한 땅을 다시 농토로 재생하는 개간작업은 목숨 건 행위였다. 당시 이주민들은 농사철에는 지뢰나 불발탄에 부상당한 이웃을 업고 병원으로 달려가는게 일이라고 증언했다.
해안의 이주민들이 목숨걸고 옥토로 바꾼 해안면은 그러나 90년대 이후 타지로 떠났던 원주민들이 나타나 토지소유확인소송을 거는 등 시끄러워 졌고 이주민들이 패소하는 등 우여곡절이 발생했다. 그럼에도 해안면은 현재 국내에서 제일가는 고랭지 농업지역으로 거듭났으며 인간의 노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주는 현장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양구 해안면의 이주사는 양구군지와 강원도민일보 함광복 기자의 저서 '할아버지 연어를 따라오면 한국입니다'에 잘 적혀있다.
강원도 전방 지역이라 '전형적인 보수적인 동네 1'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젊은 군 간부들의 표심이 있었는지, 주민들의 표심도 있었는지 의외로 비새누리당 야권에 표를 많이 주는 동네다. 17대 대선 당시 전국에서 처참히 발린 정동영 후보가 1위를 차지한 강원도 유일한 지역이 바로 여기.[7]
~동면과 마찬가지로 포켓몬 GO 플레이 가능 지역이다.~
2.6 수입면
미수복지역이다. 면소재지는 점방리이며, 문등리, 백현리, 수청리, 청송리, 두포리, 송거리, 분지수리, 인패리, 오천리, 지경리, 대정리, 천리, 근동, 지혜동, 암동 등을 관할하였다. 휴전 이후에도 북한 치하에 남았고 강원도(북한)의 창도군에 편입되었다가 현재는 금강군에 편입된 상태이다. 그런데 김화군 쪽과 통하는 금강천 유역 지역(점방리 포함)이 금강산댐으로 수몰되어버렸다.- ↑ 상리와 하리 사이에 끼어있는 아주 좁은 곳이다.
지못미 - ↑ 박완서작가의 그 남자네 집이라는 단편 소설 모음집 내용중에 박수근미술관에 대한 언급이 있다. 자연히 양구지역에 대한 설명도 곁들여져 있는데 6.25 전쟁 당시 미군들이 다른 지역들은 본래 이름을 그대로 썼지만(예를들자면 철원을 그냥 철원이라 하고 원주를 그냥 원주라 하고) 유독 양구만은 갓뎀양구(...)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양구지역이 기후로 보나 지형으로 보나 누구에게나 끔찍한 곳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만국 공통으로 짜증나는 지역이로군마경이 될 뻔한 곳들 - ↑ 박수근미술관은 외관상 괜찮아 보이지만 전시되어있는 작품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스케일이 큰 유화작품들을 기대하고 갔다면 실망이 크겠지만 의외로 일반에 공개가 잘 되지 않은 스케치라든지 습작 등을 구경할 수 있으니 방문 계획이 있다면 참고바람
- ↑ 음료의 일종인 '펀치'를 담는 사발이라는 뜻. 보통은 현지화해서 '화채그릇'이라고 해석하곤 한다. 6.25때 미군들이 붙인 별명인데 아직도 지뢰들이 많이 묻혀 있어서 함부로 들어가면 안된다.
- ↑ 농어촌버스는 양구읍에서 하루 4번(이마저도 돌산령터널이 개통하기 전에는 하루 3번이었다!), 원통에서 하루 1번 다니고, 시외버스는 동서울에서 하루 1번 다닌다.
- ↑ 양구가 21사단 관할인데 여기만 12사단 관할인 게 한 몫 한 듯. 또한 물길도 인제군 쪽으로 흐른다.
- ↑ 물론 2007년 정동영 후보가 대선 출마 전 DMZ 일대를 돌아보기 위해 해안면을 방문한 영향도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