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진(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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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김영진(金榮振)
생년월일1972년 4월 9일
국적대한민국
출신지서울특별시
학력동대문상고 - 동국대
포지션포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1995년 2차 지명 1라운드(전체 5순위)
소속팀삼성 라이온즈(1995~2001)
한화 이글스(2001)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20번
이용철(1993~1994)김영진(1995~1997)강동우(1998~1999)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2번
이태일(1990~1997)김영진(1998~2001)카를로스 바에르가(2001)

1 소개

삼성 라이온즈, 한화 이글스 소속의 야구 선수. 삼성 라이온즈의 암흑기를 상징할 만한(...) 포수. 동대문상고[1]동국대학교를 졸업했다.

2 선수 경력

1990년대 중반의 삼성 라이온즈는 호쾌한 타격에 비해 상대적으로 빈약했던 마운드가 문제였는데, 김상엽, 박충식, 김태한 정도가 간신히 지탱하는 상황이라 1994년 이후에는 계속 가을에 경산 볼파크에서 마무리 훈련만 하는 실정이었다.

마운드 외에 포수진 또한 문제였다. 원년부터 함께 해온 이만수가 체력 등의 문제로 주전 포수로 출전하기 힘들게 되자, 1988년 최동원김시진 트레이드 때 같이 온 김성현이나 1993년 시즌 중 빙그레 이글스이상목을 주고 데려온 박선일 등이 포수로 돌아가면서 출전하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남아 있던 박선일김성현마저 각각 방출과 트레이드1996년을 마지막으로 팀을 떠났다.

덕분에 1997년부터 김영진이 주전으로 포수 마스크를 쓰게 되었는데, 정말 안습 크리의 연속이었다. 어깨나 블로킹은 쓸 만했지만, 단 한 번도 타율이 1할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통산 타율 1할 5푼[2][3]에 극악의 투수 리드 등으로 상대 팀 팬들마저 측은지심을 들게 할 정도였다.

통산 WAR이 -2.97로 KBO에서 꼴찌이다.[4]

2.1 1997년 8월 23일 안습의 절정, 낫아웃 사건

무엇보다 김영진이라는 이름이 야구 팬들의 기억 속에 깊이 남게 한 사건은, 1997년 8월 23일, 김성근 감독이 이끄는 쌍방울 레이더스와의 대구 DH 1차전에서 일어났다.

4:1로 삼성이 이기고 있던 9회초 쌍방울의 공격 2사 주자 1, 2루 상황에서 대타로 타석에 들어온 장재중이 볼 카운트 2-1[5]에서 원 바운드 볼을 헛스윙했다. 투수가 던진 원 바운드 볼을 타자가 힘차게(?) 휘둘렀지만 맞지 않고 그대로 포수 미트로 들어가서 김동앙 주심은 삼진을 선언했고, 동시에 김영진은 관중석으로 공을 던져 버렸다.

야구 규정상, 2아웃 일때 2S에서 원 바운드 볼을 헛쳤을 때는 타자한테 스트라이크가 주어져서 삼진 처리되지만, 아웃되지 않는다. 병살 유도를 방지하기 위해 1루에 주자가 있을 경우 낫 아웃 조건이 되더라도 낫 아웃이 적용되지 않지만, 2아웃일 때는 병살이 필요없기 때문에 1루에 주자가 있어도 낫 아웃이 될 수 있다. 그래서 포수가 타자 주자를 태그하거나 공을 1루로 보내야 아웃 처리되는데….

당시 삼성의 사령탑이던 백인천 감독이 덕아웃을 뛰쳐나오며 1루로 공을 던지라는 제스쳐를 취했지만, 이미 공은 관중석으로…. 셀프 포일 그리고 덕아웃으로 들어오던 장재중은 쌍방울 주루코치와 선수단의 외침에 황급히 1루로 달려갔다.

심판진은 경기 종료를 선언한 후 3루측 본부석까지 이동했고 당시 중계 방송사인 SBS는 엔딩 자막을 냈으며 KBO 홈페이지에는 승패 투수까지 띄워둔 상황이었다.

김성근 감독은 본부석으로 들어가는 심판진 앞을 막아서서 강력히 항의했고 일단 주심은 김성근 감독을 퇴장 조치했다. 4심 합의 후 오심을 인정하고, 야구 규칙에 의거하여 김영진이 장재중을 아웃시키지 않고 그냥 관중석으로 공을 던져서 볼데드를 만들어 버렸기 때문에 2루타를 친 것으로 간주해[6] 타자와 주자를 모두 2루씩 진루시킨 후 경기를 재개했다(4:2 2사 2, 3루). 이후 최태원의 2타점 동점 적시타 등에 힘입어 쌍방울은 4:1로 진 경기를 4:6으로 역전승했다.

물론 백인천 감독도 김영진에게 1루로 공을 던지라고 덕아웃에서 소리를 질렀지만 경기가 끝났다는 안도감에 도취된 김영진은 감독의 지시를 듣지 못하고 이런 일을 저질렀다. 백인천 감독의 혈압을 왕창 올리는데 일조한 셈.

여담으로 이 해프닝은 2010년 이후로 나올 수가 없게 되었다. 2010년 KBO의 룰 개정에서 낫 아웃의 타자주자 아웃 시점을 기존 타자가 덕아웃으로 들어가는 시점에서 타자가 타석 주변 흙으로 이뤄진 서클을 벗어나는 시점으로 변경했기 때문. 이는 2009년 메이저리그의 룰 개정을 그대로 따른 것으로, 2010년 이후의 룰에 따른다면 타자 장재중은 타석 주변 서클을 벗어났기 때문에 자동으로 아웃 처리된다.

2.2 낫아웃 사건 후 여파

김영진의 낫 아웃 사건에 충격받은 삼성 라이온즈는 많은 돈을 들여 동시에 여기저기서 포수들을 수집했다. 1998년 해태의 정회열, 1999년 시즌 중에는 두산의 진갑용을 현금 트레이드까지 하면서 데려오는 데 이어 2000년에는 FA 시장에서 김동수를 질렀다. 하지만 김동수는 결국 진갑용에게 밀리고 조범현 코치에게 찍혀 팀을 떠난다. 결국 2000년에 김영진은 주전 자리를 뺏겨 그 해 1군에 올라오지 못했고, 2001년 4월 27일 내야수 김승권을 상대로 외야수 조정권과 함께 한화 이글스에 트레이드되었다. 그 해 1군 7경기에 그친 뒤 시즌을 마치고 소리 없이 은퇴했다.

결국 포수 이적생들 중 진갑용이 배터리코치 조범현의 손을 거쳐 성공하면서 포수에 대한 걱정을 덜며 삼성은 강팀이 되기 위한 조건 중 하나를 얻었다. 하지만 2010년 이후, 진갑용의 노쇠화가 오기 시작하면서 삼성은 또다시 포수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이지영으로 어떻게 안 될까이지영이 2015년 들어와서 '지영 더 베이스볼 이하생략 리'로 진화하였다!!

2.3 여담

사실 위의 모든 사실은 애교로 봐 줄 수 있는데, 바로 삼성 라이온즈가 1995 드래프트 때 투수 진필중을 대신해서 지명했던 선수가 김영진이었기 때문이었다. 진거김 그래도 변명거리가 있는 게, 대학 시절만 해도 김영진과 진필중은 넘사벽이었다. 김영진은 동국대 시절 4년 동안 줄곧 태릉선수촌 밥을 먹은 91학번 최고의 체고의 포수였지만, 진필중중앙대 4학년 당시 어깨 부상으로 인해 1승밖에 거두지 못했던 투수였다. 하지만 프로에 들어와서 위상이 완전히 바뀌고 말았다. 만약 진필중이 베어스에서만큼만 삼성에서 활약했다면 굳이 임창용을 큰 돈을 쓰며 데려오지 않아도 될 뻔했고,[7] 돈성이라는 이미지에 박히지 않을 뻔했다.

이문한 전 삼성 스카우트의 회고에 따르면, 자신은 진필중의 잠재력을 믿고서 2차지명 2라운드에서 뽑기로 진필중의 가족과 약속했는데, OB 측에서 이를 간파하고 2라운드에서 진필중을 뽑아서 허탈해했었다고 한다. 2004년 이후 먹튀의 상징으로 여겨지지만,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진필중임창용과 더불어 한국프로야구 최고의 마무리 투수로 군림했다. 더군다나 삼성이 두산에게 하극상을 당했던 2001년 한국시리즈에서 양 팀 투수들 중에서 유일하게 철벽으로 막았던 그를 생각하면, 안습의 결정판이다.

3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연도소속팀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
1995삼성 라이온즈3631.1615000340
199690149.13420400691
199776156.1672643314170
1998100178.180321000880
199997189.138264021380
20001군 기록 없음
연도소속팀경기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
2001삼성 / 한화711.1822000112
통산406714.155111223545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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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청원정보산업고로 되어 있었는데, 이거는 1998년에 바꾼 교명이다. 2000년에 야구부를 청원고에 이관한 후 2003년에 폐교.
  2. 못 치니까 9번 타순에 기용되는 건 둘째치고, 나중에는 아예 타격 폼을 번트를 대는 듯한 폼으로 바꿨다. 어차피 못 치는 건 매한가지니까 영 안되면 번트라도 대라는 뜻에서 그렇게 치게 했다고.
  3. 이 선수가 94경기만 더 나갔다면, 염경엽을 능가하는 통산타율 최하위가 되었을 것이다. 김영진 통산타율이 1할 5푼이고...염감은 그나마 나은 1할9푼5리
  4. -2보다도 못하는 선수는 김영진과 야수로 권두조,염경엽, 투수로는 해태출신 최상주가 있다. 이 투수는 85년 무려 선발투수로 12점대의 방어율을 기록하고도 5승을 챙겼다. 이런 인물보다 막장인게 김영진
  5. 그 당시에는 S-B-O 순서로 전광판에 표기했다. 2012년부터 미국처럼 B-S-O 순서로 표기한다.
  6. 다만, 기록상 2루타는 아니다. 장재중은 '낫아웃 상태에서 포수의 송구 실책으로 출루 후 진루'로, 2명의 선행주자는 '실책으로 진루'로 기록되었다.
  7. 진필중은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에 임창용과 쌍벽을 다투는 최고의 마무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