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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ελωι ελωι λαμα σαβαχθανι
Eloi Eloi Lama Sabachtani

파일:Attachment/jesus.jpg

3시쯤 되어 예수께서 큰소리로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 하고 부르짖으셨다. 이 말씀은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뜻이다. (공동번역성서)

해당 구문은 마태오 복음서 27장 46절로, 예수죽기 전에 남긴 말 중 잘 알려진 어구. 그 밖에 4대 복음서마다 다른 말이 기록되어 있지만 일단 이게 가장 논쟁이 많이 된다. 사이비 종교를 포함한 몇몇 종교에서 예수의 대속 실패설을 근거할 때 자주 내세우는 문장이기도 하다.

예수가 부처의 가르침을 이어 받았다는 증거티베트 불교의 진언(眞言)인 '엘리 엘리 라마 삼약 삼 보리 다라니(Eli Eli Lama Sammach Sam Bori Daranii, 성자의 위대한 바른 지혜의 총지)'의 변형이라는 설도 있다. 물론 예수 불자설 자체가 종교끼리 싸우다 생긴 거니 믿으면 곤란한 상황이 올 수 있다.

마태오 복음서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는 히브리어 음역이고, 마르코 복음서의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다니'는 아람어라는 주장이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두 표기 모두 하느님 혹은 신이라는 의미인 단어 "엘"에 1인칭 소유격 접미사 -이를 붙여 "엘리"로 발음되었을 것인데, 마르코에서 "엘로이"라고 음차된 것 역시 실제로는 "엘리"로 발음되었던 것의 다른 표기법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스어는 기원전/후 1세기 무렵에 모음추이(vowel shift)를 겪었고, 이 당시 -i가 포함된 이중모음들이 /i/ 발음으로 퉁쳐지는 현상이 발생했으며, 이를 iotacism이라 부른다. 즉 eli라고 쓰든 eloi라고 썼든 실제 발음은 /eli/였을 것.

또한 '사박다니'는 히브리어일 수가 없다. '(שבק)šbq' 어근은 히브리어에 존재하지 않는 아람어의 어근으로, 히브리어라면 '(עזב)'zb' 어근이 사용되어 '아자브타니(עֲזַבְתָּנִי)'가 되어야 할 것이다. šabaqta는 2인칭 단수 남성 완료형으로 "(네가) 저버렸다", 그 뒤의 -ni는 1인칭 단수 목적어 "나를"이 된다.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 살려달라 울부짖는 소리 들리지도 않사옵니까? (공동번역성서)

 
원래는 위의 시편 22장 1절에 기록된 다윗의 탄식을 예수가 인용한 것. 여기서는 '버리셨나이까'가 '사박다니'가 아니라 '아자브타니'로 기록되어 있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게 히브리어니까.

'하느님과 예수는 실제로는 같은 것이나 모습만 다른 것'이라는 양태론을 반박하는 근거로 쓰이기도 하며, 삼위일체 교리 또한 이 구절로 인해 한동안 논쟁을 겪어야 했다. 해당 항목 참조.

개신교에서는, 예수가 본디 하느님의 아들로 태어나 항상 하느님의 총애를 받으며 존재했으나 땅에 내려온 뒤 인간의 죄를 대신 받는, 죽는 순간 그 원죄로 인해 하느님의 은총을 잃어버렸기에[1] 외친 좌절의 목소리라고 해석한다. 죄성 있는 죽음을 그리스도교적으로 표현하자면 하느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것을 말하는데, 십자가에 예수가 못 박힌 이유 자체가 인류의 죄를 모두 뒤집어써 원죄 없이 태어난 자신이 대신 희생제사를 치르는[2], 즉 여지껏의 희생제사의 확대판이자 희생제사의 종결의 목적인데, 이때 자신이 그 죄를 모두 뒤집어 썼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교감하던 하느님과의 관계가 일시적으로 단절되면서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

그렇기에 믿으면 무조건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구원 받았다는 것을 믿고 납득하는 것만이 그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개신교의 가장 기본적인 교리 중 하나이다.

가톨릭에서는 해당 시편 구절의 성격을 비탄과 절망이 아닌, 하느님에 대한 감사, 특히 박해받는 올바른 이의 고통에 대한 호소와 밑바닥에 깔린 하느님에 대한 신뢰에 관한 것으로 해석한다.자세한 내용은 이 링크를 참고.
링크를 보면 알겠지만, 개신교 측의 해석과는 달리, 가톨릭 교회 측에선 예수가 사람들을 위해 시편 기도를 드린 것으로 받아들인다.

역사적 예수에 대해 연구하는 종교학자들은 이 외침에 대해 '자신이 죽기 전에 하느님 나라가 도래할 줄 알았다가 그 소망이 물거품이 되자 토로한 인간적인 절망의 표현' 이라고 해석하는 학자도 있고, '예수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예언자들처럼 자신이 결국 세속 권력의 손에 죽임당할 줄을 알고 있었고, 원문인 시편 구절의 의미처럼 지금 내 몸은 죽어도 하느님께서 결국 나를 신원하시리라는 희망의 표현'으로 해석하는 학자도 있다.참조

"버리다"는 동사의 어감이 너무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인지 기독교 신자가 아니거나 기독교 신자라 해도 시편을 세세하게 기억하지 못 하는 경우, 신학적 독해를 하기에 앞서 "예수님이 죽음 앞에 실패하셨다ㅠㅠㅠ" 정도로 곧장 받아들이는 일이 많아 대중적으로 오해가 상당히 짙다.

어떤 마술의 금서목록에서는 요한의 펜상태의 인덱스이노켄티우스를 파훼하는데 사용한 주문으로 나온다.

이 말에서 따온 동명의 일본 영화가 있다. 자살병으로 절멸 위기에 놓인 전염병 아포칼립스 영화로 아사노 타다노부미야자키 아오이가 나온다.
  1. 물론 그 뒤에 곧바로 되찾기는 하지만.
  2. 그리스도교적인 관점에서, 일반 생식, 즉 검열삭제로 태어난 사람은 모두 아담에서 내려오는 원죄에 속박되어 있다. 그리고 자신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구약시대에는 자기 대신 이나 같은 짐승을 대신 도축하여 희생 제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