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불자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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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예수불자라고 말하는 설. 이 설에 따르자면 예수가 10대부터 30대까지 알려지지 않은 시기에 불교의 도를 배워 제자들에게 부처의 가르침을 설파하다 죽었고, 그것이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에서는 당연히 이 설을 부정하고 있다.

미리 말하자면 헛소리다. 어디까지나 떡밥거리에 불과하지, 진지하게 이 설을 주장한다면 정신병자 취급 받기 딱 좋다. 걸어온 생애부터가 다르다 부처가 은둔자라면 예수는 바바리안

안티기독교들의 병크 중 대표적인 하나.그리고 유사과학 측면에서 극과 극이 통하는 사례 현재도 많은 안티기독교들이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떡밥이다. # #

사실 이 설은 1980년대 환빠 양성소인 정신세계사나 기타 비슷한 부류의 출판사의 책들을 통해서 한국에 퍼지기 시작했고, 나름 "신기한" 이론이기 때문에 잠시 인기를 끌었다. 오죽하면 아침 뉴스에 잠시 출판계 소식으로 언급되기도 했고, 베른 조약 이전이라서 여러 출판사에서 중복으로 판본을 내기도 했다. 가야물고기 문양설까지 연결한 환빠 이론까지 갈 정도였다. 그리스도교계에서는 공식적으로 "근거 없음"을 내세웠고 밑에 설명할 여러 이론을 통한 논쟁부터 "사실 그건 성도들을 혼란시키려는 사탄의 음모"라는 입장도 밝혔다.

이러한 예수 불자설을 다루고 있는 영화로는 대표적으로 맨 프롬 어스(Man From Earth)가 있다. 꽤나 그럴 듯한 설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가 진짜 부처 제자라면서요?" 하면서 낚이고 말았다. 지못미.

이와 별개로 그리스의 미술이 고대 불교에 영향을 미쳤다는 설이 있는데, 대체로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기원전 1세기까지는 불상이 아닌 다른 형상(보리수, 법륜 등)을 쓰다가 현 파키스탄에 있는 간다라(Gandhara)지방에서 그리스 미술의 영향을 받은 최초의 불상이 만들어지게 된다.

2 법화경과 신약성경의 경우

민희식 박사라는 사람이 그의 저서 《법화경과 신약성경》에서 그리스도교의 창시자인 예수의 생애와 성립과정에 대한 의문점에 대해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에서의 논의를 소개하였다. 금강신문의 책 광고내용 무슨 광고 문구에 "불교계의 저명한 석학" 어쩌고 하는데, 정작 불교계에서는 그저 그런 학자 1인 정도로 알려져 있다. 실제 그의 책을 보면, 이게 정말 오랜 연구 끝에 나온 건지 의심스러운 부분이 상당수 보인다. 특히 후기 대승 불교에서 성립된 밀교라든가. 왜 연구성과가 그런가 하면, 민희식 교수는 불어 전공이지 역사신학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 때문에 그의 연구(?) 내용의 대부분이 사실 자신이 무언가 발굴이나 자료를 찾아 생각해내서 쓴 게 아니라, 서양(특히 프랑스)에서 떠돌던 잡설들을 취합해 번역해 내놓은 것들이라 그렇다. 참고로 이 사람이 퍼뜨린 건 예수 불자설뿐만 아니라 십계명의 원조라는 아케나톤 18계명도 있는데 이건 20세기 뉴에이지 단체에서 내놓은 문건을 번역해놓고는 이집트 고대기록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서는 참고

신약 외경 중 하나인 토마스 복음서예수의 말씀을 114개 항목으로 기록하였다. 그런데 신약성경의 내용 중 많은 부분이 불교법화경 등의 경전내용과 유사점이 많은 점이, 예수가 인도에 유학하여 불경 공부를 함으로써 젊은 시절의 활동에 대한 공백 기간과 성경불경의 일부 유사점 및 그리스도교 사랑의 정신이 나오게 된 배경 등을 설명한다고 책 스스로는 적고 있는데, 실상 본문 내용은 대부분 이런 식이다.

  1. 법화경 내용과 복음서 중 비슷한 부분을 각각 인용했다.
2. 둘이 내용이 비슷한데, 법화경복음서보다 더 오래되었다.
3. 이건 틀림없이 Q사본(마태오 복음서루카 복음서의 자료로 추정하는 가상문서)이 법화경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저 논리를 보면 왜 신약성경학계에서 별 논쟁의 대상이 되지 않는지는 쉽게 알 수 있다. 애당초 Q사본 가설로 설명되지 않는 이문현상이 있어 복음서의 편집사적 측면에서 이론이 나오는 판에, Q사본을 사실로 간주하며, 다른 근거도 제대로 대지 않고 그저 '비슷하니까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라는 말만 하니 다른 학자들에게 먹힐 리가 없다. 한마디로, '피자빈대떡의 영향을 받은 음식이다. 왜냐하면 피자빈대떡과 비슷한 음식이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하는 꼴이다. 비슷하니까 영향을 받았음이 틀림없다라는 논리는 환빠에게서도 종종 볼 수 있다.

진위에 대해서는 링크1링크2에서 참고.

아무튼, 책이 주장하는 전체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예수의 젊은 시절 당시의 시대적 배경은 기원전 2세기에 그리스인들이 서북 인도를 침략하여 약 200년간 지배하였으며, 기원전 2세기 후반에 활약한 메난드로스왕의 시대에는 샤카라(현재 시아르코트)를 중심으로 동서 간에 문화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졌고, 불교에도 관심이 많아 메난드로스왕과 승려 나가세나(那先)의 문답집인 《밀린다왕문경》이 전해지고 있으며, 당시 많은 그리스인들이 이주하여 도시를 건설하는 등 그리스 문화가 크게 번성하여 간다라 문화를 이룩한 시기이다.

예수는 서방의 지혜를 구하러 왔다가 유대의 제사에 참석하였는데, 예수의 총명함에 반한 남인도 오릿사 주의 왕족 '라반나'가 예수에게 인도 유학을 권유한다. 그래서 예수는 인도의 '쟈간나스' 사원에서 4년간(20~30세) 승려 생활을 한다. 그러던 중 인두교와 바라문교를 연구 중 브라만의 계급제도의 부당함을 비판하다가 목숨의 위협을 받고 티베트로 도피한다. 그곳에서 성인 '맹그스테'(Meng-ste, 맹자)의 지도하에 불경, 요가, 영계의 빛을 받아 병자를 치료하는 심령술에 관한 비법, 예배 양식을 배워(23~24세) 기적을 행하게 된다!!! (기원 후의 예수를 기원전의 유자인 맹자가!!) 그 후 페르시아의 도읍지 페르세폴리스로 가서 24년 전 자신이 태어났을 때 방문한 바 있는 3명의 동방박사를 만나 이들의 조로아스터교의 선악 이원론을 불교에서 깨달은 진리를 바탕으로 하여 비판하고 토론하면서, 자신의 사상을 확고히 하는 시기가 되었다고 하고 있다.

조로아스터교의 철저한 이원론은 불교 철학의 관점에서는 타파 대상 제1순위를 오르내린다. 말이 좋아 저 둘을 비판하고 토론했다고 표현하지, 실제로 그렇게 되기는 어렵다.

사실 이 설은 비판의 여지가 너무 많다. 애당초 예수의 기본성격은 '학자'나 '구도자'가 아니라 사회비판적인 목청을 높이는 카리스마 넘치는 예언자이다. 논리와 사상으로 접근하는 것은 바오로의 스타일이지 예수의 스타일이 아니다. 그런 예수를 학자/구도자와 같은 개념으로 잡음 자체가 초점이 어긋난다.

게다가 시골 깡촌인 나자렛에서 목수, 정확히는 건축 관련 잡다한 일을 두루 하는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예수가 해외를 두루 다니며 갖가지 사상을 배우고 돌아왔다는 것도 이상하다. 그 시절에 여행이란 극히 위험하여, 돈이며 그 밖에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다. 그렇다고 요셉이 돈이 많거나 권력 좀 있는 제사장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깡촌의 목수 아들이 페르시아 건너 인도까지 유학한다는건 말도 안된다.[1] 또한 동네 사람들이 "우리가 밥그릇 숫자까지 아는 요셉 아저씨, 마리아 아줌마네 아들이잖아?"라는 식으로 대했다는 점도, 예수가 나자렛에서 태어나 오랫동안 살았음을 알게 한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학계의 이론을 너무 무시한 주장이다.

구약시대 때 호전적이었던 하느님이 신약시대에 와서 '사랑과 구원의 신'으로 변하는 성격변화도 생각할 가치가 있다. 구약성경은 오랜 시간에 걸쳐 쓰였는데, 구약 중 후기시대에 속하는 문서에서는 이미 유대인들의 민족신/국가신의 성격이 많이 흐려지고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요나서. 하느님유대인들의 원수인 아시리아인의 생명 또한 귀하게 여긴다는 내용이다.[2]

또한 유대교에서는 랍비들이 쓴 성경 주해서(미드라쉬), 주해서의 주해서, 성경의 모음을 일부러 다르게 읽은 신비주의적 해석, 묵시록 등 여러 종교문서의 성격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는데, 이는 초기 그리스도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위대한 랍비로 칭송받는 힐렐이 그리스 논리학을 들여왔을 정도로 헬레니즘의 세례를 잔뜩 받아, 지식인들이 히브리어로 글을 쓰기보다 그리스어로 글을 쓰기 편안해 할 정도여서, 단지 민족/국가의 수호신이란 성격이 더욱 흐려진다. 예수가 주요 거점으로 삼았던 갈릴래아는 유대왕국 내에서 반골 기질이 심하다는 평을 듣는 곳이었고, 종교적인 열정이 강하며, 촌구석이란 평가를 받았다. 사회개혁적인 예수의 외침이 왜 갈릴래아에서 나왔는지 알 수 있다.

토마스 복음서 자체가 영지주의적 관점이 많이 드러난 문서이고, 그 외 주장도 아직까지도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할 확연한 근거가 없다. 아직까지 신학계에서는 논란의 대상조차 되지 못하는 설임을 명심하자.

또한 애초에 신약성경 자체가 반박의 증거로 충분하다. 신약은 종교적인 내용은 있을지언정, 예수의 사후 비교적 빠른 시기안에 문서가 집필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신약 어디를 찾아봐도 예수의 경력으로 해외 유학 같은건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상식적으로 생각만 해봐도 예수가 당시 로마의 주적인 페르시아를 거쳐 인도까지 갔다온 경력은, 안그래도 예수를 죽이려고 이를 갈던 바리사이들과 사두가이들에게 더없이 좋은 먹이감이다. 종교적으로 반박하는 것도 쉬워질 뿐더러, 정치적으로 누명 씌우기도 좋다. 하지만 예수의 처형을 주장할때도 "이놈이 민중 선동하고 있어요" 정도만 언급될 뿐이다. '선동'이라고 누명을 씌웠으면서, 그 사람이 적국에 갔다온 사실을 언급하지 않는다는게 말이나 될까?

이 주장에 대한 가장 확실한 논박점은, 법화경의 성립이 결코 신약성경보다 빠르지 않다는 것. 법화경은 서기 50년경부터 성립되기 시작해서 현재의 모습이 될 때까지 거의 100여년의 시기를 거쳤다. 반면 신약성경은 서기 100년 전후로 대부분의 책들이 완성되었다. 가장 빠른 것은 바오로 서간인데 '테살로니카서'가 서기 51년경에 쓰였으며, 복음서 중에 마르코 복음서는 서기 70년경 성립된 것이 정설이다. 만약 Q사본이 있다면 마르코 복음서보다 더 먼저일 것이다. Q사본의 존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성립 시기를 서기 50~60년경으로 보기때문. 또 토마스 복음서를 중시하는 사람들에 의하면 토마스 복음서Q사본보다 더 먼저 성립되었는데, 그렇다면 당연히 Q사본이나 토마스 복음서법화경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3 이사전의 경우

《이사전》에 따르자면, 소년 예수가 삼촌을 따라 인도로 건너가서 이사라는 법명을 얻고, 불자(佛者)가 되는 모습이 나온다. 몇몇 학자들이나 작가들은 이 책이 예수의 12세부터 30세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은 '이사'라는 수도승이 불도를 닦다가 득도하여 팔레스타인에 가서 불법을 전파했다는 내용인데, 이 이사가 예수라는 것이다. 이사전에 대해 최초로 기록한 작가가 교황청에서 그것을 보관하고 있다고 하나, 교황청에서는 이를 인정하고 있지 않아 진위 여부가 불분명하다.

1887년 러시아의 종군기자였던 니콜라스 노토비치(Nicolas Notovitch)는 인도티베트를 여행하다가 한 사원에서 "사람의 아들 중 최고, 성(聖) 이사의 거룩한 생애"라는 책을 봤다고 한다. 그는 이를 번역하여 1894년 프랑스에서 불어로 출판하였고, 이것은 다른 나라 언어로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문제는 티베트 문자가 등장한 시기는 서기 7세기 경, 현재 남아있는 티베트 문자로 적힌 가장 오래된 문서가 서기 9세기의 물건이다. 즉 티베트어로 쓰인 《이사전》이라면 적어도 7세기 이후에 작성된 문서가 된다. 《이사전》의 경우 노도비치가 원본이라고 주장한 티베트어 문서 이외에는 발견된 적이 없다. 7세기 이전에 사용되었던 팔리어나 산스크리트어 문서는 물론 그 이후에 전해진 어떤 문서로도 발견이 되고 있지 않다. 더욱이 노토비치는 죽을 때까지 티베트어 원본 이사전을 공개하지 않았다. 티베트 불교가 지금처럼 전세계로 확장되지 않고 미지로 남았던 시절, 티베트에 대한 사람들의 환상과 무지를 악용해 만들어진 무수히 많은 뉴에이지 불쏘시개 중 하나일 뿐이다.

당시 저명한 동양학자이자 옥스퍼드 대학의 불교철학 교수였던 독일계 영국인 막스 뮐러(Max Mueller)(독일인의 사랑의 저자)는 이 책을 위서라고 단정했다. 또한 다른 학자들도 노토비치가 방문에서 찾았다는 그 사원을 방문했는데, 그런 책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대부분의 학자들은 노토비치의 책을 위서라고 단정했다. 말하자면, 《이사전》 그 자체가 실존하는 물건인지 의심가는 물건이다. 현재도 이 이사전은 노토비치의 조작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야소전(爺蘇傳)이라고도 한데, 그것은 1935년 중화민국 학자인 조자신(趙紫辰)이 지은 예수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이사전》의 진위에 대한 자세한 논쟁은 링크에서 참고.

4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3시쯤 되어 예수께서 큰소리로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 하고 부르짖으셨다. 이 말씀은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뜻이다. (마태오 복음서 27장 46절, 공동번역성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는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해석되기도 하지만, 티베트 불교의 진언(眞言)인 엘리엘리 라마 삼약 삼보리 다라니에 유래되었다고 말하는 설이 있다. 뜻은, 성자시여 위대한 바른 지혜로 드러내주소서.

다만 이것은 낭설에 지나지 않는다. 예수 시대에 팔레스타인 지역의 공용어는 아람어다. 예수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아람어로 부른 것이 히브리어로 '엘리 엘리 라마 아잡타니'로 들린 것이다. 다윗은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 살려 달라 울부짖는 소리 들리지도 않사옵니까??'(시편 22장 1절, 공동번역성서)라고 노래를 불렀는데, 이를 예수가 인용한 것이다. 거기에서 '사박다니'는 아람어의 말이고, 히브리어 성경에는 본래 '아잡타니'이다. 상식적으로 예수가 익숙한 시편의 구절을 외쳤다고 봐야 타당하고, 티베트 불교의 진언에 갖다 붙이는 건 억지스럽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티베트에 불교가 전파된 때는 서기 7세기. 1세기 사람인 예수가 티베트 불교의 진언을 낭송하려야 할 수가 없다.

이 낭설의 전파과정에 대해서는 링크를 참고.

5 보병궁복음서의 경우

리바이 도우링(Levi H.Dowling 1844-1911)이라는 미국인 목사가 천상 영계의 기록(아카샤)를 보고 《The Aquarian Gospel of Jesus the Christ》를 썼다는데, 이게 한국에서 1970년대에 《보병궁복음서》라고 소개되었다. 과거에는 성약성경이라는 이름으로도 번역되었으나 지금은 그 이름이 묻힌 지 오래. 통일교의 교리서 중에서도 같은 이름의 것이 있지만 본 책과는 별로 상관이 없다고 한다.

이 책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 삼위일체 교리는 로마 제국 황제의 권위를 위해 아타나시오의 주장을 지지하게 되면서 생겨난 거짓.
  • 예수가 12세 때, 남부 인도 오릿사 주의 왕족인 라반나가 유대의 제례에 참석차 왔다가 예수의 총명함에 반하여 예수를 찾아가 그에게 동양의 지혜를 배우도록 인도 유학을 청원한다. 그리하여 예수는 남부 인도 오릿사 지방의 쟈간나스의 절에 들어가 4년간 수행하면서 베다 성전과 마니 법전을 배우고 승려 라마스와 깊은 우정을 나눈다. 예수는 인도의 의술을 배우기 위해 당시 인도 최고의 의원이었던 우도라카의 제자로 입문한다. 그러다 절대 평등을 주장하던 예수는 인도의 신분제도(카스트)를 파괴한다는 명목으로 자신을 정죄하려는 승려들을 피해 네팔로 피신을 가게 된다. 그 뒤 티베트의 사원에서 성현 멘구스테를 만나 고전을 공부하고, ‘광명의 부처’ ‘살아있는 신탁(神託)’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24세 되던 해에 고향에 들렀다가 다시 그리스를 거쳐 이집트에서, 성자들의 모임인 형제단 입회를 허락받고 성실, 공정, 박애, 신앙, 의열, 성애의 6단계의 시험을 진실과 용기로써 극복하고, 이집트 밀교의 비밀과 생사의 문제, 그리고 태양계 밖의 세계의 비밀을 배우고 보랏빛의 방에서 마지막 7번째의 시험을 마치고 마침내, 그리스도(하느님의 사랑)라는 최고의 법명(法名)을 받는다. 그렇게 오랜 수도생활을 한 뒤 티베트를 마지막으로 29세에 귀국하였다.

현재 몇몇 불교인들과 안티기독교들이 제3의 성경이라며 진리로 받아들이고 있는 책이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한 미국인 목사가 멋대로 소설을 쓴 것에 불과하다. 책의 진실성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는 식으로 물타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지만, 애당초 새로 발견된 고대문서라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19세기에 오컬트적인 능력으로 과거 역사를 보고 썼다며 나온 책이니 검증하고 말고 할 여지도 없다. 책 내용 자체에서도 여러 가지 오류가 많아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 우선 맨 처음의 '《법화경과 신약성경》의 경우'에서 반박한 내용에도 알 수 있듯이, 이스라엘에서 인도로 가는 데는 당시 유대인의 능력으로는 무리다.
  • 미트라와 마이트레야가 같은 어원에서 나왔다는 주장도 있지만, 정설 수준은 아니다. 이 부분은 이론이 분분하다. 수로만 따지면 관계없다는 이론이 더 많다. 또 미트라는 태양신일 뿐 구세주가 아니다.
  • 보병궁복음서에 대해서는 링크를 참고하면 된다.
  1. 그마저도 요셉은 전승에 의하면 예수의 어린 시절에 사망했다.
  2. 오늘날의 유대교 역시도 '유대교 믿으면 유대인'이라는 논리라서, 막연히 혈통에 의한 구원만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