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포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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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l Popper
1902년 7월 28일 ~ 1994년 9월 17일 (향년 92세)[1]

1 개요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겠다는 시도가 늘 지옥을 만들어낸다.

the attempt to make heaven on earth invariably produces hell[2][3]

오스트리아 출생의 영국 철학자.

토마스 쿤과 더불어 과학철학을 세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사람

2 생애

오스트리아 에서 태어났으나 유대인이었던 관계로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질 즈음에는 아돌프 히틀러 나치스의 박해를 피해 뉴질랜드, 그리고 2차대전이 끝난 후에는 영국에서 교수 생활을 하게 된다. 나치의 잔혹한 인종차별 행위가 미친 영향은 당대 지식인들에게는 누구에게나 엄청난 충격이였으며, 포퍼는 자신도 유대인이었기에 충격을 많이 받아 그 유명한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이라는 책을 집필하게 된다.

3 사상

포퍼는 이성을 중시했으나 개인 이성의 불완전함을 인정했다. 따라서 그의 사상은 논박가능한 이성, 그 이성을 보완하기 위한 대화,반증을 강조했다. 반대로 이를 차단하는 사상은 싫어했다.

3.1 열린사회론

포퍼의 열린 사회론은 쉽게 말해 전체주의를 무자비하게 비판하고 민주주의 사회를 옹호한 내용이다. 사람들의 이성은 불완전하므로 아무리 훌륭하고 똑똑한 사람의 주장이라도 틀릴 수 있다. 또한 이렇게 목표가 명확하고 불변할 경우 목표달성은 급진적이고 맹목적으로 변하여, 목표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과 목표달성과정에서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배제되고 심하면 숙청당할 수 있다고 포퍼는 경고한다. 따라서 내.외부와 끊임없는 이성적 대화와 토론을 통해서 사회의 목표를 계속 점검하는 동시에 점진적으로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가능한 사회가 열린사회다.

반면 절대적인 가치를 제시하고 지배계층만의 의사결정을 강조한 플라톤, 히틀러, 그외 독재자나 독재를 옹호한 자들에 대해 가차없이 비판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공산주의는 필연적으로 닫힌 사회로 갈 수밖에 없다는 시각을 가지고 있어서 마르크스에게도 매우 부정적이였다. 그의 1994년 에스파냐 세비야 엑스포에서 한 연설에서 이것이 잘 드러나는데 그는 그 강연에서 막시즘은 본질적으로 광기,폭력으로 이어지며 논리적 오류가 빈번하다고 말했다. 공산주의는 반증이나 비판을 수용안하고 자신의 주장을 도그마처럼 유지한다는 것이다.

3.2 과학철학

포퍼는 과학철학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데[4] 가장 대표적인 이론이 바로 반증주의. 즉 모든 과학적 주장은 반증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반증 불가능한 이론은 과학적인 주장이 아니라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5] 또한 반증 가능한 이론 중에서도 반증 가능성이 높은 이론(일반적으로 보다 보편적인 이론)이 반증 가능성이 낮은 이론(일반적으로 보다 특수한 이론)보다 좋다고 보았다. 사실 이는 과거 데이비드 흄의 회의주의에 많은 유사점을 볼 수 있다.

이 포퍼의 통칭 '반증 원리'는 과학과 비과학을 '검증 원리'라는 단 하나의 기준으로 구분하려 한 논리실증주의의 몰락 이후 대안으로 새롭게 제시된 구분 기준 이론이다.

검증 원리란, 모든 명제를 분석하여 나눠 쪼개진 요소 명제들이 모두 물리적으로 의미 있는 것(지칭 대상이 있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어야만 과학이라 할 수 있다는 이론으로, 이들의 이론은 당시 전 유럽을 휩쓸며 모든 학문에 죽창질을 가했으나 그 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했고, 전기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적 원자론에 기대고 있었지만 그 비트겐슈타인이 후기 철학을 통해 스스로 논리적 원자론을 공격하는 바람에 개털 신세가 되어(....) 몰락하고 말았다.

포퍼가 제시한 반증 원리는 검증 원리에 비해 느슨하고 보다 관용적이었기에 과학-비과학 구분의 새 기준으로 주목을 받았으나, 포스트모던 철학의 흐름 속에서 쏟아지는 반례의 폭풍을 맞다 결국 뒤엠-콰인 명제(Duhem-Quine thesis)[6]의 제시로 주류 과학철학 이론의 자리에서 완전히 물러나게 된다. [7]

포퍼가 반증 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로 진화론을 거부했다는 주장이 있는데, 정확히는 한 때 진화론에 대해 그러한 견해를 가졌던 적이 있으나 자신의 저서 <객관적 지식>에서 그 견해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그 이후로 포퍼는 자신의 과학철학을 설명할때 줄곧 진화론을 비유로써 써먹었으며 진화론을 바탕으로 자신의 지식론을 확장시키기도 했다.

한편 포퍼는 자신의 과학철학 이론을 바탕으로 마르크스의 이론들을 비판하였는데, 포퍼에 의하면 마르크스의 이론은 그 예측의 언명이 모호하며[8], 때문에 이론에 반하는 현상에 유연하게 대처 할 수 있기에 반증의 기회를 효과적으로 회피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실제로 마르크스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본주의가 위기에 벗어나거나, 공산주의 운동이 실패 할 때마다 혹은 현황이 바뀔 때마다 그러한 유연성에 기반하여 각종 보조가설이나 Ad Hoc 등으로 이론의 수명을 연장시켰으며 여전히 그렇게 할 수 있다. 포퍼에 의하면 이와같이 마르크스의 이론은 옳은지 그른지 판단하기 힘든(반증 가능하지 아니한) 이론이고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 이론의 한계인 것이다. 앞 문단에서처럼 포퍼는 반증가능한 이론(옳은지 그른지 판단할 수 있는)이야말로 좋은 이론으로 보았으며 이러한 포퍼식 관점에 의하면 마르크스의 이론은 나쁘거나 비과학적인 이론이다.

4 일화

열린사회론과 반증주의는 큰 영향을 끼쳤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많았고 포퍼 자신도 키보드워리어 논쟁을 피하지 않는 편이라 수많은 학자들과 키배 토론과 대결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4.1 부지깽이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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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토론 중 포퍼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 중 하나가 1946년에 비트겐슈타인과 벌였던 이른바 '부지깽이 논쟁'. 포퍼는 당시 최고의 석학 중 하나로 평가받던 비트겐슈타인을 자신의 적수로 여겨 오래 전부터 그와 대결하기를 꿈꾸었다고 하는데, 1946년 10월 비트겐슈타인이 회장으로 있던 케임브리지 대학 도덕 과학 클럽에 포퍼가 세미나 발표자로 초청이 되어 실현할 기회가 생겼다. 포퍼의 진술에 따르면 '철학적 문제가 실재한다'는 포퍼와 '철학적 문제란 언어적 유희에 불과하다'는 비트겐슈타인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오갔으며, 도중 비트겐슈타인이 분에 못이겨 시뻘건 부지깽이를 들어 포퍼에게 위협을 가했다고 한다. 그러다 버트런드 러셀의 제지를 받은 비트겐슈타인이 도망치듯 강연장을 빠져나갔다고 한다.[9][10][11]

논쟁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스캔들에 가까운 모양새인데, 정작 당시의 정황에 대해 확실하게 알려진 것은 많지 않다. 포퍼와 비트겐슈타인을 포함한 당시 참석자들의 진술들이 워낙 엇갈리기 때문. 또한 이때의 '승리'를 자랑으로 여겨 자신의 저작에서 여러 차례 이 사건을 언급했던 포퍼와는 달리 비트겐슈타인은 포퍼에 대한 언급 자체를 거의 남기지 않았다. 당시 인지도가 좀 떨어지던 포퍼를 비트겐슈타인이 듣보잡 취급했다는 것이 정설이다.[12] 우리나라에선 비트겐슈타인이 화가나서 지팡이로 포퍼를 때렸다고 표현해 놓은 매체가 많다.

4.2 명언 진실 여부

마르크스 비판과 관련해서 만약 누군가가 20대에 공산주의자가 아니라면 그는 심장이 없는 자다. 만약 누군가가 20대가 지나서도 공산주의자라면 그는 뇌가 없는 자다. 라고 말했다는 소문이 있지만, 그가 그런 말을 했는지는 불분명하다. 확실한 것은, 먼나라 이웃나라이원복 교수가 송병락 교수와 공동저술한 '자본주의 공산주의'라는 80년대 후반 베스트셀러 서적에 그가 한 말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 책에는 젊어서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어보지 않은 자는 바보요, 나이가 들어서도 마르크스주의자로 남아있는 자는 더 바보다.라고 나와 있다. 이 말은 1870년대 프랑스에 이미 존재한것으로, 원문은 "나이 20에 공화주의자가 아닌 사람은 심장이 없는 사람이고, 30에는 머리가 없는 자이다." 이다. 50년대 미국의 각종 언론에서 사용되면서 유명해지고, 이후 윈스턴 처칠 같은 보수주의자 중에 이런저런 유명인들이 했던 말로 치장되었다. 그러나 영어 웹에서 해당 문구를 원문으로 검색하거나 Karl Popper Quote 등으로 검색해봐도 포퍼가 그런 말을 했다는 언급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쯤되면 유언비어가 아닌지 의심해야 할 정도. 그런 말을 했다는 소문 때문인지 한국에서는 우익 쪽이 포퍼를 참 좋아한다. 그런데 과거에 포퍼의 대표적 저서 "열린 사회와 그 적들" 같은 경우에는 오히려 정부에 의해 금서로 지정되기까지 했다. 극과 극은 통한다.[13]

5 저서

  • 탐구의 논리
  • 열린 사회와 그 적들[14]
  • 추측과 논박
  • 역사주의의 빈곤
  • 현대과학철학 논쟁[15]
  • 더 나은 세상을 찾아서
  • 삶은 문제해결의 연속이다
  • 파르메니데스의 세계

6 관련 항목

  1. 이 분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국내에 알려지자 대부분의 반응은 "아직도 살아 있었나?"였다. 그래도 만 102살을 살다가 간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에 비하면야...
  2. <열린사회와 그 적들> 2권에서 나오는 말이다. 1권의 9장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Even with the best intentions of making heaven on earth it only succeeds in making it a hell—that hell which man alone prepares for his fellow-men 국내판의 번역은 다음과 같다.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고자 하는 최선의 의도가 있다 해도, 그것은 단지 하나의 지옥, 인간만이 그의 동포를 위해 준비하는 그런 지옥을 만들 뿐이다.
  3. 이것과 비슷한 의미로 Those who promise us paradise on earth never produced anything but a hell라고 했다고 한다. 번역하자면 지상낙원을 약속한 자들은 지옥밖에 만들지 못한다. 존 위노클이 쓴 In Passing: Condolences and Complaints on Death, Dying, and Related Disappointments의 144쪽에 나온다.
  4. 역사주의, 전체주의등을 불같이 공격했던 것이나 열린사회를 옹호할 때의 포스가 너무 강렬하기 때문에 과학철학자로서의 이미지가 흐릿해져서 그렇지 포퍼는 본래 과학철학을 본업으로 삼던 사람이다.
  5. 이에 대비되는 이론이 토머스 쿤의 패러다임 이론(과학혁명)이다. 새로운 과학 정신은 과거의 학설을 반증하거나 축적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학설과 단절된 상태에서 등장한다는 것.
  6. 한 과학적 가설은 그것 자체만으로 실험하여 반증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
  7. 현대 철학 및 과학계는 과학과 비과학을 구분할 수 있는 하나의 절대적 기준을 세우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8. 일례로 공산주의 혁명의 발생 시기를 보자.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붕괴-공산주의 혁명이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으로 인해 '언젠가' 일어난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 언제는 언제인가? 1년 후인가, 10년후 인가, 수 세기 후인가? 이러한 시기의 모호성은 마르크스이론이 가져야 할 반증의 시기를 끊임없이 유예시켜 줄 수 있다.
  9. 출처 : 비트겐슈타인 『철학적 탐구』(해제), 신상규, 2004
  10. 포퍼가 자서전에서 회상한 부지깽이 사건#.
  11. 이 사건을 아주 자세하게 다룬 책으로 <Wittgenstein's Poker>라는 책이 번역되어있다. 2001년에 <비트겐슈타인은 왜?>라는 제목으로 나왔는데 개정하면서 <비트겐슈타인과 포퍼의 기막힌 10분>이라는 제목으로 바뀌었다. 진중권의 서평 이송희일의 에세이
  12. 이때 비트겐슈타인은 이미 (다른 사람들 모르게) 자신의 후기 철학에 몰두해 있었다. 포퍼가 당시 표적으로 삼은 건 비트겐슈타인의 초기 철학이었다.
  13. 블라디미르 푸틴도 비슷한 말을 했다. 항목 참조. 또한 베르나르 베르베르개미 혁명에서는, 저 '공산주의자' 이야기가 '무정부주의자'로 바뀌어서 주인공 쥘리 팽송이 사랑(?)하던 철학 선생의 대사로 등장한다.
  14. 대다수의 한국어 번역판에는 열린 사회를 띄어쓰지 않고 열린사회로 붙여 쓴다. 아마도 열린사회가 책의 핵심 단어이기 때문에 일부러 붙여서 고유명사로 취급한 듯 하다.
  15. 토머스 쿤, 임레 라카토슈와의 공저. 쿤과 라카토슈, 포퍼가 나눈 논의를 3인이 책으로 재구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