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ent Express
유럽에서 운행되었던 유명한 열차. 벨기에 회사인(지금은 프랑스 회사이다) 국제 침대차 회사가 운영했다. 일반적으로 파리와 이스탄불 간을 운행한 열차였는데, 시대의 흐름에 따라 노선 조정이 많았고, 이 이름을 사용하는 노선도 몇 가지가 있었다.
1882년 조르주 나켈마케르가 파리 동역 - 빈 간 호화 열차 여행인 '빛나는 호화 기차(Train Eclair de luxe)'에 손님들을 초청한 것이 시초로 꼽힌다. 그 해 10월 딱 한 번 운행된 이 열차는 그 자신의 회사에서 운행할 열차의 전신격이었다.
이후 1883년 6월 5일, 파리 - 빈 간의 정기 운행이 시작되었다. 그 해 10월, 노선이 연장되어 부다페스트와 부쿠레슈티를 경유하여 루마니아의 지우르지우까지 노선이 연장되었다. 여기서 열차를 갈아타고 불가리아의 바르나에 도착하면, 배로 갈아타고 이스탄불까지 이동하는 구조였다. 1885년에는 부다페스트를 출발해 이스탄불까지 직행하는 노선이 개업했다. 이후 1889년 노선 조정이 이루어져 6월 1일부터 파리에서 스트라스부르, 뮌헨, 비엔나, 부다페스트와 부쿠레슈티를 거쳐 이스탄불까지 직행하는 노선이 완성되었다.
벨 에포크가 끝나고, 제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자 물론 이 열차도 멀쩡하진 못했다. 그야말로 1차대전의 주요 격전지를 꿰고 다니는 노선 구성 탓에 운행할 생각도 못 했고, 덕분에 1918년까지 운행이 중지되었다. 전쟁 이후 열차 운행이 재개되었고, 1919년 파리에서 출발하여 이탈리아 - 스위스 국경의 심플론 터널[1]을 경유하여 밀라노, 베네치아, 베오그라드를 거쳐 이스탄불로 향하는 심플론 오리엔트 급행이 추가로 개업했다. 1930년 아를베르크 터널을 거쳐 취리히, 인스부르크를 경유하는 아를베르크 오리엔트 급행이 개업하였다. 아를베르크 오리엔트 급행의 경우는 이스탄불 뿐만이 아니라 아테네로 향하는 노선도 있었고, 서쪽으로는 칼레를 거쳐 런던까지 연계되었다. 이 시기가 오리엔트 급행의 리즈시절.
제2차 세계대전은 사실상 오리엔트 급행을 몰락으로 밀어넣었다. 전쟁통에 호화 침대열차가 굴러다닐 여념이 없었음은 물론이고, 전후 철의 장막이 유럽에 드리워져 국제열차 운행이 곤란해진 것이다. 1962년 오리지널 오리엔트 급행과 아를베르크 오리엔트 급행이 운행을 중지했고, 심플론 오리엔트 특급만 남아서 직행 오리엔트 특급으로 이름을 바꾸고 파리 - 베오그라드 노선이 매일 운행되었고 이스탄불 및 아테네 노선의 운행 빈도는 떨어졌다. 1977년 직행 오리엔트 특급이 운행을 중지함으로서 전설의 동방행 침대열차는 막을 내렸다.
사실 이후에도 오리엔트 급행이라는 이름은 남아있었다. 2001년까지 유로나이트 오리엔트 급행은 파리 - 부다페스트 간을 운행했고, 이후에는 파리 - 빈으로 축소되었다. 공교롭게도 1882년의 첫 열차와 같은 노선이었다. 이후 2007년 파리 - 스트라스부르 간 고속선의 개업으로 EN468-469이라는 편명을 달고 스트라스부르 - 빈으로 축소되었다가 2009년 10월 운행을 중지했다.
오리엔트 급행이 등장하는 작품은 많은데, 의외로 알려진 중 가장 일찍 오리엔트 급행의 이름이 언급된 것은 브람 스토커의 1897년작 소설 드라큘라. 드라큘라 백작이 루마니아로 도망치기 위해 배를 탈 동안 주인공 일행은 한 발 앞서 도착해서 기다리기 위해 오리엔트 급행을 탔다는 언급이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오리엔트 급행을 무대로 한 작품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오리엔트 특급살인일 것이다. 다만 원제는 오리엔트 급행에서의 살인(Murder on the Orient Express)인데 이걸 오리엔트 특급살인이라고 번역을 해 버리는 바람에, 어감은 좋지만 졸지에 급행(Express)이 특급(Limited Express)으로 격상되는 일이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