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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경기도 남양주시 도농동, 지금동[1] 일대에 있었던 원진레이온이라는 회사의 합성섬유 공장에서 일어났던 사고다. 대한민국 사상 최악의 산업재해로 여겨지는 꽤나 중요한 사건.
1964년 화신백화점으로 유명한 친일파 박흥식이 일본 도레이사에서 노후된 비스코스 인견을 제조하는 설비를 들여와 2년 뒤인 1966년 공장을 세워 운영한 것이 이 회사의 시초이다. 광복 이후에까지 아주 천하의 개쌍놈 짓 친일파는 3대가 떵떵
2 문제 및 피해
문제는 설립 초기부터 마지막까지 기기에서 발생한 불순물인 이황화탄소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여 직원 대부분이 황화수소 가스에 중독되는 사태가 발생했고 직업병으로 인한 사망자 8명에 장애판정 637명이 발생했다. 실제 사망자와 재해자는 이보다 더 많다.[2] 몸이 아프고 죽을 것 같아서 퇴사하는 사람들을 두고 회사는 약간의 보상금으로 입막음을 시도했다. 당시 구리, 도농주민 상당수가 이 회사의 일자리에 의존했기에 회사의 은폐가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것이다. 개발독재시대 정부의 방조도 한 몫 했다. 이 회사에서는 1981년 첫 이황화탄소 중독 환자가 나왔으나 오히려 노동부는 1986년 25,000시간 무재해 달성으로 원진레이온을 표창했다(...). 사지 마비, 정신 이상, 기억력 감퇴, 콩팥 손상 등의 이황화탄소 중독 증상이 십수 년 동안 여러 명에게서 나타났고 그 중의 몇 명이 1987년 정부에 진정함으로써 원진레이온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진다. 노동부는 조사에 나서 원진레이온의 위법 사실을 파악, 발표하지만 산업재해의 인정과 보상에는 지극히 인색했다. 피해 노동자들은 1개월간의 요양치료를 받고 산재등급에 따라 장애보상금을 받았지만, 이황화탄소 중독이 장기간의 치료를 요한다는 사실은 몰랐다. 이후 병세가 악화되어 재요양신청을 했지만 노동부는 이미 끝난 일이라며 재요양신청을 거부해 버린다.[3] 결국 회사는 1993년 6월 8일 폐쇄되었고 근로자의 대부분이 이 사건으로 인해 큰 고통을 받아야만 했다.
3 사태 이후
20년도 더 지난 지금도 이로 인한 토양 오염 및 정신적, 신체적 후유증이 심각한 상태라는 통계가 있다. [4] 여기서 직업병을 얻어 고통받는 근로자들과 가족들을 위해 설립된 비영리법인인 원진재단이 만든 병원이 있는데 그게 바로 이웃한 구리시 인창동에 위치한 원진녹색병원이다.
4 부지
현재 해당 공장 부지는 1990년대 중반 부영건설에서 매입해 동파이프를 까는 등의 정화 작업을 거쳐 아파트를 올렸다. 1998~1999년에 입주를 시작했는데 과거의 악명이 지역 주민들에게 잘 가시지 않다 보니[5] 입주를 꺼리는 편이었으나 중앙선 전철 개통 1~2년 전부터는 제법 자리를 잡아갔고(큰길 건너편 동화고등학교의 입지도 한몫했다.) 이후 남양주의 대표적인 중산층 거주지로 남게 된다. 남양주시/행정 참고.
5 그 외
레이온에 대해 부가적으로 설명하자면, 현재는 국내에서는 유지중인 공장은 없고 원사는 대부분 외국에서 수입하고 있으며 특히 중국산 원사가 많이 수입되고 있다.[6] 국내산 인견이라고 해도 실 자체는 대부분 중국산이고, 그 원사로 천을 만들고 염색을 한 후 옷이나 원단을 만드는 공정이 국내에서 이루어지는지라 국내산이라고 표기하는 것이다.
불만제로에서 설명한 바에 따르면, 이 레이온 사건으로 인해 국내의 레이온 공장이 전부 문을 닫고 레이온 생산기계들은 중국으로 팔려갔다고. 당연히 거기서도 한국보다 몇 배나 더한 온갖 질병이 터져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이후 2000년대 후반 한국 사회단체가 그 중국업체를 방문했는데, 북한으로 기기가 흘러들어갔다는 말이 나왔다.- ↑ 당시 양주군 미금면 도농리, 지금리였으며 폐쇄 당시에는 미금시 도농동, 지금동.
- ↑ 김봉환씨는 직업병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1991년 숨졌고, 같은해 권경용씨는 방에 연탄불을 피워놓은 채 극약을 먹고 자살했다. 1992년 고정자씨는 정밀검진을 받고 검사결과를 기다리다가 목욕탕 수도꼭지에 스카프로 목을 맨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 http://news.zum.com/articles/7619586
- ↑ http://nasanha.egloos.com/10749813
- ↑ 해당 페이지의 안전보건 연구동향 '10년 4월호-Vol.32'의 PDF 파일을 참조.
- ↑ 시내버스를 타고 양정초등학교 - 도농역 - 도농동사무소 정류장을 지날 때마다 창문을 열지 못했을 정도였다!
- ↑ 공정에 염산 등 유독물질을 쓰지 않는 대체공정으로 생산하는 '라이오셀'과 같은 원사를 만드는 공장은 아직 남아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