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열

胡烈
(?~270년)

1 개요

삼국시대위나라, 서진의 장수. 자(字)는 현무(玄武).

안정 사람으로 위의 거기장군 호준의 셋째 아들이자 호분의 동생이다.

삼국지 시리즈의 영향으로 뭔가 평범한 느낌이 드는 인물이지만 정사에서 나오는 커리어만 고려하면 상당히 뛰어난 전공을 연달아 올렸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진건이 말한대로 명장까지는 무리일지 몰라도 위와 서진의 숙장이라 충분히 평할 수 있는 장군. 다만 개인 열전이 없다보니 일생을 짜맞추려면 다른 인물의 열전에 크게 의존해야 한다. 덕분에 초기 생애 등 호열 개인에 대한 자료가 매우 부족한 편이다. 말 그대로 기록상 전공과 최후만 남은 셈.

삼국지연의에서는 정사와의 행보와 매우 비슷한데, 독발수기능의 난이 짤려서 그의 최후가 나오지 않게 되었다.

2 생애

2.1 제갈탄의 난

위나라 태산태수(太山太守) 호열(胡烈)은 기병 5천 명으로써 은밀한 길로부터 도육을 습격하여 주이의 물자와 식량을 전부 불태웠다. -오서 <손침전>

태산태수(泰山太守) 호열(胡烈)이 도육을 기습하여 양초와 수레를 불태웠다. -진서 <문제본기>

위의 태산태수로 제갈탄의 난을 집압하기 위해 참전했다. 호열은 기병 5천 명을 지휘해서 도육(都陸)에 위치했던 의 유망주이자 진남장군 주이(朱異)의 물자와 식량을 은밀한 길을 이용해 습격하는 전공을 세웠다. 호열의 기습으로 주이의 물자와 식량은 모두 태워졌으며, 이 패배로 인해 손침과 주이 사이에 불화가 일어나면서 손침은 홧김에 유망주 주이의 목을 베었다. 진서 <문제본기>에 따르면 이 때 감군 석포(石苞)와 연주자사 주태(州泰)와 함께 행동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주태와 석포가 호열이 도육을 습격한 후 주이의 본대를 격파했을 때 함께 행한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2.2 촉나라 정벌

263년에는 위나라의 촉나라 정벌에 호군[1]으로서 진서장군 종회를 따라서 참전했다. 옹주자사 제갈서가 기산에서 무위를 공격해 강유의 퇴로를 끊자 호열은 종회를 따라서 낙곡으로부터 전장군 이보와 함께 한중을 습격했다. 끝내 종회가 양안(陽安-양평관이 이 지역에 위치함)에 도달하자 호열은 관성을 공격해 함락시켜서 많은 식량을 얻었다. 삼국지연의에서도 나오는 내용이지만 <한진춘추>에 의하면 부첨과 함께 양평관의 방어를 맡은 촉한의 장군 장서가 배신해서 호열과 합류했다. 호열은 부첨이 방심한 틈을 타서 부첨을 죽이고 양평관을 함락시켰다고 한다.

등애가 음평을 뚫어서 성도를 향하는 동안, 호열은 종회와 함께 검각에 농성하는 강유를 상대로 싸웠던 것으로 보인다.

등애가 음평 돌파를 성공해 면죽관에서 제갈첨을 대파하는 데 성공하자 강유는 군사를 돌려 파(巴)로 후퇴했는데, 종회는 이를 알고 부까지 진격해 전속, 방회, 호열을 파견해 강유를 추격하도록 했다. 그러던 중에 촉한의 황제 유선이 등애에게 항복하자 강유는 호열에게 부절과 전거를 보내 종회에게 항복했다.

2.3 강유와 종회의 난

264년에 촉한 정벌에 큰 공을 세운 종회가 강유와 손을 잡아 독립을 꾀했다. 종회는 강유의 책략을 따라 호열 등 제장들을 죽이려 했지만 미적미적대서 감금하는 데 그쳤다. 호열의 옛 부하였던 구건은 종회의 신뢰를 꿰차고 있었다. 구건은 호열이 홀로 감금되어 있는 것이 안쓰러워 친병들 한명씩 방문해서 음식을 나르도록 요청했는데 종회가 이를 허락했다. 그러나 이 조치가 화근이 되어 호열은 밖에 있는 아들 호연에게 친필 편지를 전하는 것을 성공했다.

"구건이 몰래 소식을 전해 주었다. 종회는 이미 큰 굴을 뚫고, 백봉[2] 수천개를 준비해, 외부의 병사들을 다 불러 들여오게 하여, 사람들에게 하얀 두건을 주어 산장으로 삼아, 이로서 차례대로 때려죽여 굴 속에 넣으려 한다.

덕분에 하룻밤 사이에 병사들 사이에서 종회가 병사들을 모두 죽인다는 소문이 밖에도 퍼졌다. 어떤 이가 종회에게 아룄다.

"아문기독 이상을 전부 죽여야 합니다." -위서 <종회전>

하지만 종회는 여전히 미적이며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다.

호연이 아버지의 병사들과 함께 북을 울리며 성도를 향해 진격했다. 각 진영의 병사들은 아무런 약속, 지휘가 없었음에도 모두 북을 울리며 호연을 따라서 앞다투어 성도를 향해 달려나갔다.[3] 계속해서 미적이던 종회는 사건의 심각성을 이제야 알게 되어 아문에 갇혀있는 자들을 뒤늦게 죽이려고 했지만 모두 책상으로 문을 막아서 방어를 성공했다. 강유는 종회의 병사를 좌우로 인솔하여 5, 6명을 손수 죽이는 분전을 펼쳤으나 결국 진압되고 종회도 주살당했다.

2.4 영안수성전

같은 해에 촉한의 파동태수 나헌이 영안에서 2천 명으로 의 마지막 명장으로 불리는 진군장군 육항의 3만 대군을 6개월간 방어했지만 성의 병력 중 반이 질병에 걸려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일찍히 파견한 참군 양종이 안동장군 진건(陳騫)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진건이 사마소에게 이에 대해 고하자 호열[4]에게 2만의 기병과 보병과 함께 출격시켜 서릉(이릉)을 침공하게 하였으며, 육항은 포위를 풀고 호열에게 격퇴당했다.

2.5 독발수기능의 난과 최후

269년에 관농 지방에 진주가 새로 설치되었는데, 일찍이 등애가 선비족 사람들과 옹주와 양주의 주민들끼리 섞여 살도록 하면서 조정에서는 이가 너무 오래 되면 우려가 될까봐 여러 논의가 있었으나 호열이 그 쪽 지방에 밝기에 안심하고 그를 진주자사로 부임시켰다.[5] 그러나 이게 화근이 돼서 270년에 만곡퇴에서 일어난 독발수기능의 난을 호열이 토벌하다가 전사하면서 10년간의 반란이 관농 지방에 벌어지게 되었고, 사마준마륭의 분전으로 겨우 진압되었다.

근데 호열의 전사에 꽤나 큰 병크가 연관되어 있는데, 도독옹양주제군사[6] 사마량유기를 파견해서 그를 구원하게 했다. 그러나 유기는 그저 관망할 뿐 구원하지 않았으며, 그래서 유기는 참형을 당할 뻔 하지만 사마량은 자신이 책임을 질 것이니 제발 유기를 죽이지 말라고 해서 그 결과 애꿎은 사마량만 면직되어 유기는 살아났다.

3 미디어 믹스

3.1 삼국지 시리즈

458-Hu-Lie.jpg
삼국지 9,10,11
삼국지 13

삼국지 후반부를 풍미하는 인물인만큼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에 등장한다. 일러스트가 그냥 전령처럼 생겼다. 그나마 호준 삼부자 중에 제일 잘생기긴 했다 진건이 무식하다고 깐 것치곤 의외로 지력은 괜찮게 나온 편인데 종회의 난 때 나름 대처를 잘해서 목숨을 건지게 된 것이 반영된 걸지도 모른다.정작 본인을 무식하다고 깠던 그 진건보다 지력이 10정도 더 높다. 능력치는 대체로 통솔력과 지력은 70대 중초반에 머물고 나머지는 60대 후반에 머무는 전투에 이용하기도, 내정에 활용하기도 애매한 능력치를 지녔다. 삼부자 중엔 능력치가 가장 낫다는 것이 함정 행적을 보면 정치랑 지력은 높을 이유가 없지만 왜인지 아빠랑 형보다 월등하다.

삼국지 5에서의 능력치는 67/41/39/56로 무력이 아버지보다 조금 높은 걸 빼면 아버지와 형보다도 떨어진다. 그런데, 호준과 부자관계가 설정되어 있지도 않고 호분의 동생인데 오히려 나이가 호분보다 많은 걸로 설정이 되어 먼저 등장하는 등 제작진이 이 부자들의 관계를 몰랐던 것 같다. 연의에서 짤막하게 다루어지는 탓인 듯.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77/66/79/69. 형보다 훨씬 낮다. 안습. 돌진, 제사, 분전, 파괴, 덫을 가지고 있어 병법은 3부자 중 제일 낫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77/69/76/66/68로 호준 삼부자들 중에 능력치는 제일 높다! 그러나 특기는 4개로 제일 적으니 안습.(보수, 돌격, 은밀, 저지) 전투에서는 돌격, 일제가 다 있는 호분만은 못하지만 돌격하나 달랑있는 호준보단 낫다.

삼국지 11에선 칼질을 당해 73/67/72/65/69. 그래도 호준 삼부자들이 다같이 칼질당한지라 총 능력치 합은 여전히 삼부자 중 1위.

삼국지 12에서는 아버지와 형은 나오는데 삭제.

3.2 진삼국무쌍 시리즈

그런데 진삼국무쌍 블라스트에서 아버지와 형를 제치고 등장하게 되었다!

3.3 삼국전투기

삼국전투기에서는 제갈탄의 난 때 주이의 보급선을 끊는 모습으로 첫 등장. 아버지와 똑같은 이호준 선수로 나왔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젊은 시절의 이호준 선수를 그린것 같다.그러나 정작 대충 보면 오히려 같은 작가의 가 생각난다

은근히 여러 곳에서 맹활약한 메이저 4번 타자임에도 불구하고, 독발수기능한테 크게 털려서인지 뭔가 와닿지 않는 인물이라고 한다. 또한 그가 진주에 파견되었을 때의 통치는 어떻게 다스렸는지 알 수가 없지만 가혹한 통치로 말년를 망쳤다고 한다. 처음부터 진주로 파견될 때 교도소 소장 운운하면서 갔는데다 파견된 지 1년도 채 안 되어 닭발수제비라 우습게 봤던 독발수기능이 반란을 일으켰을 정도니 이 정도면 안 봐도 비디오.. 호열이나 견홍이나 독발수기능과 싸우기 전 인간흉기 정봉을 무찔러서 자만했던 것이라 카더라.

전 창작물 중에서 정사에 가까운 호열라고 볼 수 있다.
  1. 진서 <문제본기>를 보면 정촉호군 또한 겸했던 것으로 보인다.
  2. 타격무기 을 뜻한다.
  3. 이 난리가 바로 후주 유선의 황태자 유선, 좌거기장군 장익등 수백명의 장수가 죽고, 촉한 관련 사료들이 소실된 이유라고 추측되기도 하는 성도대학살이다.
  4. 이때 형주자사로 봉해진 것으로 보인다.
  5. 근데 이때 대마사 진건호열견홍은 그냥 용감하기만한 무식쟁이라서 부임하면 화근이 된다고 반대했는데, 무시당해서 결과적으로는 화근이 되었다.
  6. 쉽게 말해서 옹양주의 군사를 총감독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