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가와 게이

(이가와 케이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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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와 게이 (井川慶)
생년월일1979년 7월 13일
국적일본
출신지이바라키
출신고교미토 상고 (이바라키)
포지션투수
투타좌투좌타
소속팀한신 타이거즈 (1998~2006)
뉴욕 양키스 (2007~2008)
오릭스 버팔로즈 (2012~2015))
2003년 일본프로야구 사와무라상
우에하라 고지
(요미우리 자이언츠)
이가와 게이
(한신 타이거스)

사이토 가즈미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가와카미 겐신
(주니치 드래곤즈)
2003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 MVP
마쓰이 히데키
(요미우리 자이언츠)
이가와 게이
(한신 타이거스)
가와카미 겐신
(주니치 드래곤즈)

1 소개

과거 일본 프로야구 한신 타이거즈 소속이며 스크랜턴 양키스[1]뉴욕 양키스를 거쳐 2012년에 다시 일본으로 복귀한 야구선수.

2002년 209⅔이닝을 던져 삼진 206개를 뽑아내면서 14승9패, 방어율 2.49를 기록한 것을 시작으로 2003년 20승5패, 방어율 2.80으로 일본의 사이영상인 사와무라상을 받았다. 2004년 200⅓이닝을 던져 탈삼진 228개, 14승11패, 방어율 3.73을 기록했고, 2005년에는 13승9패, 방어율 3.86, 2006년은 방어율 2.97을 기록하고 센트럴리그 탈삼진왕을 차지했다.

애초에 이가와는 속구가 142~4km의 평속에 최고 구속은 140km 후반 정도였다. 여기에 제구까지 좋지 않았음에도 일본에서 에이스로 군림할 수 있었던 것은 속구의 수직 무브먼트[2]가 빼어났기 때문. 메이저리그 평균 속구 수직 무브먼트가 25cm 정도 되는 것에 비해 이가와는 거의 30cm에 달했다. 여기에 속구와 거의 똑같은 궤도로 들어오다가 홈플레이트 앞에서 가라앉는, 속구와 약 20km/h 가량의 속도 차이가 나는 체인지업이 주무기였다. 이 체인지업과 거의 똑같은 구속을 지녔으나 변화 방향이 정 반대인 슬라이더 역시 매서웠다. 따라서 상대가 속구를 기다리고 있을 때 체인지업을 던지고, 체인지업을 기다릴 때 슬라이더를 던지는 식으로 삼진을 많이 잡는 피칭을 할 수 있었다.

다만 이승엽에게 홈런을 헌납하고, 커리어 내내 용병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였는데 자신의 속구에 대한 과도한 프라이드가 있었다. 어쨌든 2007년 일본 리그에서의 성공을 뒤로 하고 5년 2,000만 달러와 포스팅 2,600만 달러, 도합 4,600만 달러/연평균 960만 달러의 거액의 계약을 성사하고 메이저 리그로 진출 했지만 그야말로 망했다. 그 이유는 전체적인 그의 투구 스타일에 의한 것이라는 진단이 지배적이다.

애초에 이가와는 속구의 구속이 아닌 무브먼트에 의존하는 파이어볼러 스타일이였다. 하지만 NPB 와 MLB 의 타자들의 레벨은 현격히 차이가 났다. 속구가 밀리면 다른 구종을 무기로 삼을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럴 마음도 없었고 또 설령 그럴 마음을 먹었다 하더라도 제구가 안 되니 과연 그 구종들을 효과적으로 써먹을 수 있었을 지는 의문.

거기에 거듭된 부진으로 멘탈적인 측면에까지 영향을 미쳐서 차후의 전망도 어두웠다. 본인은 메이저로 가면서 그 좋아하는 명탐정 코난을 필두로 한 여타 취미생활을 모두 끊겠다면서 배수의 진을 치고 미국으로 갔지만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양키스로 간 이후에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타자'들만 있다는 메이저리그에서 그야말로 멘탈붕괴. 워낙 희한한 정신세계를 보여준 인간이라 구위가 안 통할지는 몰라도 최소한 쫄지는 않을거라는게 세간의 예상이었으나... 선발 데뷔전을 보면 불쌍할 정도로 쫄았다. 결정구를 직구로 택했을때 주로 선택하는 코스가 몸쪽 높은 공이었는데, 일본에선 그래도 먹혔지만 힘좋은 미국 타자들에겐 그저 배팅볼. 정말 정신못차리고 던지는 족족 높은공에 연달아 장타가 터지는 진풍경을 보여줬다.

이런 선수를 마쓰자카 반값에 잡았다고 양키스는 좋아했으니... 물론 마쓰자카도 돈값은 못 했지만 이가와는 아예 급이 달랐으니.

NPB에서는 위력적일지라도 메이저에서는 그런 게 아니기 때문에 난타당했다. 마이너 AAA리그에서는 또 그럭저럭 잘 통하기는 하는데 메이저로 콜업되기만 하면 주구장창 난타당하는 수준. 그래서 그를 AAAA급 선수라고 평하기도 한다. 혹자는 그의 양키스 이적을 마쓰자카 다이스케보스턴 레드삭스 이적에 편승한 효과라고 하기도. 이가와 게이의 부진은 멘탈적인 요소가 큰 영향을 끼친것으로 보인다. 이게 다 미국에서 명탐정 코난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유명하던 이가와 게이가 트리플 A의 제왕 소리를 들으면서 양키스 팬들의 비웃음 거리로 전락했으니[3] 정말 안습하다고 할 수 있다. 아니, 어쩌면 차라리 비웃음당하던 때가 나을 수도 있다. 후에는 오프시즌에 페이롤 체크하다 "어라? 왜 이만큼이 차 있지?" 의아해하다 "아, 이가와가 있었구나 ㅇㅇ" 하는 정도로 전락(...)

조 토리감독이 자서전에서 그를 엄청나게 혹평했다. 수년간 이어진 좌절에도 불구하고 그의 괴짜스러운 모습은 여전했으며 2010 시즌에는 남아공 월드컵을 보기 위해서 메이저 리그에 꼭 올라가겠다는 이가와다운(...) 다짐을 했다. 사실상 당시 양키스 불펜에서 믿을만한 좌완 투수가 다마소 마르테밖에 없었으므로 2010 시즌에는 빅리그에서 여러방면으로 활약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2010년은 스프링캠프에 참가해서 중간계투로 나왔으나.. 2⅔이닝동안 5실점한 후에 마이너리그로 강등... 결국 2010년도에도 메이저 등판은 없었다. 오히려 트리플A에서도 4.32의 방어율과 1이닝당 한 개 이상의 안타를 맞으면서, 중간계투로 전략.

2011시즌엔 트리플A가 아닌 더블A에서 시즌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것도 선발 투수가 아닌 중간계투로 던지고 있으니 여러모로 안습. 명탐정 코난을 끊지말지

2012년에 결국 오릭스 버팔로스주워먹기에 입단, 일본무대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미 속구 구속이 140 Km 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전성기가 지나간 상태였기에 2012년의 성적은 처참하다. 거기에 팔꿈치부상에 시달리며 등판 자체를 많이 하지 못했다. 2012년 최종 성적은 2승 7패 4.65. 2013년에는 고작 9경기 선발등판에, 3승 3패 방어율 2.59를 기록했다.

2014년, 2013시즌의 부진한 성적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2군으로 강등되었다. 다만 2군 경기가 끝난 뒤에도 마지막까지 경기장에 남아서 연습을 하고있는걸 봤다는 목격정보가 속출하는걸로 봐선 노력하는 걸 포기하진 않은듯.

2015년 1군에 콜업되지 못했고 2군리그인 웨스턴리그에서 0승 4패 ERA 14.40이라는 최악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15년 10월 2일 전력 외 통보를 받아 방출된 상태. 몸 관리를 소홀히 하지 않고, 연습 또한 열심히 임했는데도 30대 초중반이라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노쇠화가 찾아와 기량이 급락해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이가와 본인은 현역 연장을 원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해외 리그 진출도 불사하겠다는 입장. 근 몇 년간 성적을 볼 때 해외라도 한국프로야구는 힘들고, 간다면 대만이나 호주 리그가 되지 않겠냐는 예측이 많다.

결국 해외리그 진출은 이뤄지지 않았고 2016시즌이 시작되고도 소속팀을 구하지 못해 일본 국내에 남아 개인훈련을 하고 있는 상태로 사실상 은퇴나 다름없는 상황이지만 9월 15일 자신의 블로그에 고베현 효고 블루 썬더스라는 독립리그 팀에서 몸을 꾸준히 만들고 있다고 근황을 알렸다.

그리고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이름과 성적 지향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 만약 '이가와 케이'로 등록했다면 이런 오해는 없었겠지

2 과대 평가와 류현진과의 비교

그가 가진 구종들이 류현진과 동일한 덕분에 류현진의 MLB 진출 이전에는 가끔 비교되기도 했다. 류현진의 MLB 진출 떡밥을 논했던 이들은 천웨이인부터 다르빗슈 유까지 갖가지 비교대상을 들먹이면서도 이상하리만치 이가와와의 비교만은 꺼렸다. (...) 아무리 까고 싶어도 이건 좀 심했다 싶었던 게지

하지만 MLB 진출 후 첫 해의 모습을 보면 류현진과 이가와의 선수로써의 역량은 아예 급이 달랐다는 게 증명되고 있다. 속구의 평속도 최대 구속도 모두 류현진이 빠르며, 제구력은 비교하는 게 류현진에게 미안할 정도로 류현진이 뛰어나고, 변화구의 무브먼트도 뛰어나며, 선수로써의 마인드도 류현진이 훨씬 전략적이고 현명하다. 도대체 나은 게 뭐야 속구의 수직 무브먼트[4]만은 이가와가 좀 더 좋다. 약 1인치 정도.(...) 수평 무브먼트는 메이저 타자들에게 커터를 던진다는 말이 나오는 류현진 쪽이 훨씬 좋다.

어쨌든 류현진은 MLB 진출 첫 해 신인왕 후보 중 한 명으로 거론되고 다승왕 경쟁에도 슬며시 끼어들려는 등 이가와와는 완전히 극과 극으로 갈리는 커리어를 쌓으며 둘이 전혀 다른 역량과 타입의 선수였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는 여기를 참조하는 게 좋을 듯. 보면 볼수록 류현진과 이가와를 비교했다는 게 류현진에게 미안해지는 내용들로 가득 차 있다. (...)

일본 팬들에게는 안쓰러운 존재여서 어떻게든 변호를 해 주고 싶은 모양인지 위키피디아나 일본인들은 그에 대해 생각보다 후하게 평가를 해 주고 지나치게 그의 역량을 포장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몇몇 한국의 일본 야구에 흥미있는 사람들은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게 문제. 당장 이가와의 한국 위키피디아 내용은 일본 위키피디아의 복붙 수준인데, 지나치게 이가와에게만 좋은 말이 많다. 위의 블로그에도 나와 있듯이 이가와의 MLB 실패는 별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역량 부족이다.

3 이모저모

  • 이승엽 선수의 한일 통산 400홈런 허용투수 같은 경기에서 한일 통산 401호 허용

4 이가와 게이의 기행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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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 리모콘 헬기, 축구 비디오 1000여개, 이누야샤, 명탐정코난, 컴퓨터게임, DVD감상, 청소

당연하겠지만 다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 실황 파워풀 프로야구에 나가고 싶어서 프로야구를 지망. 목표가 달성되었지만 동생 친구에게 「마쓰자카가 능력치가 높아서 쓰기 편해. 형은 못 쓰겠어」라는 소리를 듣고 격분, 게임상 능력치를 올리기 위해 열심히 훈련(...) → 한신의 에이스급으로 성장.
  • 프로 입단시 동정. 당시 한신 감독을 맡고 있던 노무라 카츠야돈을 주며 동정을 떼고 오라고 명령받음.[5]
  • 연봉은 1억이지만 훈련시에는 3만 엔밖에 가지고 가지 않음. 그리고 이동은 전철로 하고, 결국 캠프 오프 날에 버스로 옆 동네까지 가서 시디 한 장(약 3천엔) 밖에 사지 않았다.
→ 「소풍 갈때도 1만 엔 정도밖에 안 가져가요. 돈 모아서 차나 리모콘 헬기를 사거든요
  • 편의점에서 차(茶) 하나를 사고 천엔을 낸 다음, 거스름돈은 모두 모금함에 넣음.
  • 쉬는 날에는 리모콘 헬기를 가지고 논다.
→ 야구잡지의 선수 선물 코너에 부러진 헬기의 날개를 제공.
  • 노무라 카츠야 감독 앞에서도 천천히 밥을 먹는 마이페이스.[6]
  • 신인시절엔 아침밥을 만들어 먹었다.
  • 의외로 몸관리가 철저하다. 프로 입단 당시 주변 선수들이 술이나 담배를 하는 것을 보고 환멸을 느꼈다고 한다. 이가와 본인은 탄산음료를 입에 안대고 등판 2일 전부터 고기도 안먹는다고.
  • 신죠 츠요시에게 초밥을 사달라고 졸라서 100접시를 먹는다.
  • 도쿄돔의 선수용 식당에는 '이가와 스페셜'이라는 라면이 있다.
→ 된장+간장의 라면. 이가와 이외에는 아무도 안 먹는다.
→ 다른 선수가 말하길 "싱거운 미소라면"
→ 이가와 선수의 반론 "감칠맛 있는 간장라면"
  • 오사카돔 살롱에 있는 아주머니께 이길 수 있는 면류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
  • 이가와의 어머니 왈 어린 시절에는 누나와 함께 소꿉놀이를 하고 놀았다고.
  • 쾌적하다는 이유로 기숙사 생활을 오래 했다. 방세는 약 4만. 진득하게 붙어있다가 결국 나가라는 소리를 듣고 2003년 오프시즌에 눈물을 머금고 결국 퇴소.
구단 숙소 퇴소가 결정되었을 때 한신 고시엔 구장 주차장 구석에 텐트를 설치해 달라[7]고 구단에 빌었다가 혼났다.
  • 오카다 아키노부 2군 감독(당시) 왈 우메다에서 기숙사까지 혼자선 못 가는 듯.
  • PS2를 인터넷 예약해서 발매일에 구입.
  • PS3도 마찬가지로 발매일에 구입.
  • 사인볼이 굉장하다. 박해일 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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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년 인터뷰 당시 올해의 목표: "호나우딩요"
  • 한신의 에이스지만 「이누야샤」와「명탐정 코난」은 빼먹지 않고 본다.
  • 우승 축하 기념식을 조퇴하고 다음날 등판에 대비. 다음날 히로시마전에서 9회 1실점 완투승. 경기시간 2시간 12분
  • 게임오타쿠. 우승 후의 쉬는 날에 닛폰바시에서 중고 게임을 뒤지고 있는 모습이 발견되었다. 노부나가의 야망 파워업키트를 산 다음날 요미우리 자이언츠전에서 완봉승.
  • 우승 여행 희망 앙케이트 용지에 "두바이." 이유는 "석유를 캐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8]
  • 우승 기념 상품으로 구단에서 접시를 준비하여 선수들의 메시지를 적는데, 다른 선수들은 "응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라고 적은데 반해 이가와는 "메리 크리스마스." 참고로 상품은 해가 바뀌어서 발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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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딩때부터 왼손보호에 힘씀.
  • 고등학교 시절엔 부기와 정보처리 자격증을 땄다. 이유는 야구에서 성공 못했을 때를 대비해서.
  • 고등학교 시절 수십킬로미터를 자전거로 등교. 하지만 늦잠을 많이 자서 항상 필사적으로 자전거를 탔다고 한다. (덕분에 아침부터 훈련이 되고, 강한 하체를 가지게 되었다고...)
  • 스프링캠프에서 팬의 자전거를 빌려서 10km 떨어진 연습장에 갔다고.
  • 야후 옥션에 나왔던 자신의 가짜 사인볼을 직접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
  • 야마구치 모에(일본 아이돌)에게서 전화가 걸려오자 "잘 모르겠는데요"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 SPA!(일본의 잡지)에서 축구(올림픽 대표)에 대해 뜨거운 토론을 했다.야구선수가 말이다. 근데 이건 김재박도 그러니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 4년연속개막투수의 감회를 묻는데 일본"축구"대표팀이 이겨서 다행이라고 대답.
  • 야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계기는 학교에 축구부가 없어서... [9]
  • 브릿츠 볼에 빠져 FF10의 스토리는 제대로 진행을 못했던 적도 있다.
  • FF7은 디스크 3에서 레벨 74. 거의 모든 캐릭터의 어빌리티 제패.
  • 요코하마의 기노쿠니야에서 게임공략본을 대량 구입.
  • '2003년 소화 시합에서 멋지게 완봉, 2004년 소화 시합에서 노히트 노런 달성.
코난 스페셜을 보지 못한 분노를 발산.
  • 이가와에게 게임보이에 사인을 해달라고 부탁하자 "이런 색깔도 있구나"라고 말하고 사인.
  • 받은 초콜릿은 전부 먹는다.
  • 도쿄 원정시 지갑 안엔 1,500 엔밖에 없었다고.
  • 중국 주식에 의외로 관심이 있다고.
  • 칸자키 카나리(에로게성우)에게서 18금 게임을 직접 선물받음.
  • 명탐정 코난을 보려고 구단 망년회를 빼먹었다.
  • 보도진의 질문에 "홈페이지를 보삼"이라고 답변.
  • 드래곤 퀘스트 8만렙을 채웠다. 게임개발사 홍보부 공식코멘트: 플레이 시간 100시간으로도 달성하기 힘든 기록. 에이스다운 끈질긴 모습을 보여주었다.
  • 타카야마 미나미(에도가와 코난 성우)가 결혼한 다음날 등판에서 처절하게 깨지고 2군으로 떨어졌다. 타카야마 미나미가 이혼을 했으니 이가와 게이에게 다시 희망이 생긴 건지도...
  • FF-XI의 발매일 당일 등판해서 엄청난 투구로 완봉승.
  • 벤치로 돌아갈 땐 반드시 카메라맨 앞을 지나서 간다
  • 연장 14회까지 하는 바람에 명탐정 코난을 못 본 복수를 하기 위해 순위와 관계없는 경기에서 완봉승.
  • 파이널 판타지 발매일이라 줄 서느라 연봉협상장에 매니저만 보냄.
  • 한신 타이거즈 유니폼의 세로줄무늬를 가로줄무늬로 바꾸자고 했다가 당연히 거절당함. 그리고 그 해 겨울 훈련에 혼자만 가로줄무늬 유니폼을 입고 등장.
  • 연승 중에 머리를 깎지 않겠다고 선언
12연승(약 3개월), 굉장한 헤어스타일이 되어버림
→ 감독이 머리 깎고 오라고 호통치자 1cm 깎고 옴.
→ 이 이야기를 들은 팬이 이발비를 보내줬다.
→ 2cm 깎고 옴. 감독<팬
  • 트랙터에게도 추월당할 정도의 마이페이스 운전. 덕분에 길은 대정체를 빚고 합동연습에도 30분 지각.
  • 입단 1, 2년차에는 코치에게 계속 혼이 났는데 "평생 이 사람과 함께 할 것도 아닌데..." 라고 모두 무시.
  • 태풍이 오는데도 자동차 타고 편의점에 감.
  • 비행기로 이동할 때 혼자만 수하물을 맡겨서 팀버스를 기다리게함.
  • 색지에 사자성어를 적어달라고 부탁받자 적은 사자성어: 어부지리
  • 포스팅시스템 입찰후 집에 가는 차를 타는 이가와 손에는 코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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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스팅시스템에서 양키스가 교섭권을 획득한 그 때 이가와는 자고 있었다.
  • 메이져진출이 결정된 후 첫 피안타 상대가 중학생.
  • 양키스 입단 확정 후 인터뷰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벨기에 국가대표 골키퍼라고 발언. # 인터뷰한 때보다 훗날인 2010년, 2011년에 국가대표에 발탁되던 시몽 미뇰레티보 쿠르투아는 당연히 아니고 인터뷰 당시인 2007년 벨기에 국가대표 암흑기 주전 골키퍼였던 스테인 스테이넌(Stijn Stijnen)이라는 선수도 아니고 바로 미셸 프뢰돔이다. # 프뢰돔은 월드컵에서 최초로 야신상을 수상한 골키퍼였는데 그 상을 수상했던 1994 미국 월드컵에서의 프뢰돔의 선방을 어린 시절의 이가와가 인상 깊게 본 듯하다.

5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NPB/MLB)
년도소속팀경기수ERA피안타사사구탈삼진이닝
1999한신 타이거즈711006.4624141415⅓
2000913004.3536203739⅓
200129913002.6717498171192
200231149002.4916361206209⅔
200329205002.8018464179206
2004291411003.7319060228200⅓
200527139003.8619961145172⅓
200629149002.9718042194209
2007뉴욕 양키스1423006.2576425367⅔
20082010013.5013004
2012오릭스 버팔로즈1227004.6564333662
2013933002.5948174148⅔
2014822003.8237122833
역대기록(MiLB)
년도소속팀경기수ERA피안타사사구탈삼진이닝
2007탬파 양키스(싱글 A)211002.007369
2007스크랜턴 양키스(트리플 A)1154003.6917177168⅓
200826146003.4514149117156⅓
200926108004.1516547105145⅓
20102234004.3281246877
2011트렌톤 썬더(더블 A)1622004.3152274054⅓
2011스크랜턴 양키스(트리플 A)410002.7818151222⅔
  1. 뉴욕 양키스의 트리플A 팀으로, 이가와는 2010년까진 여기서 뛰고 있었으나, 2011년에는 더블A 트렌튼 썬더에서 시즌을 시작.
  2. 역회전이 강한 속구는 양력으로 원래 공이 지나가야 할 궤도보다 더 높은 궤도를 지나가게 되고 이 차이를 수직 무브먼트로 본다. 절대 공이 떠오르는 게 아니다.
  3. 심지어 양키스 마이너리그 소식을 전해주는 해외 사이트에서는 이가와가 등판할 경우 이가와 케이라는 표기 대신 The Ghost of Kei Igawa라 표기할 정도였다 (...)
  4. 속구가 수직으로 떨어지는 정도를 말하는 것이다. 이건 수치가 작을수록 속구가 덜 떨어지고 빠르게 느껴지게 된다. 수직 무브먼트가 특히나 좋은 속구에 대한 표현이 바로 '라이징 페스트볼(뜨는 직구)'이다.
  5. 사실 상당히 비윤리적인 행동이지만...
  6. 실감이 안 간다면, 군대에서 중령급과 식사를 해보면 알 수 있다.
  7. 한신 타이거즈는 구단 클럽하우스한신 고시엔 구장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쉽게말해 숙소 바로 옆에다 텐트 설치해서 살겠다고 주장한 것(...)
  8. 사실 두바이에선 석유가 거의 안 나온다(...).아부다비로 가야지
  9. 다만 이런 경우는 의외로 많다. 이종범의 경우 축구부였으나 축구부가 해체하는 바람에 야구를 선택한 케이스고, 최동원도 초등학교때까지는 축구부로 활약했다가 야구로 전환한 케이스. 박지성의 경우에는 리틀야구부에서 "넌 나이가 너무 어려서 못한다. 더 크면 와라."라고 쿠사리를 먹은 바람에 야구대신 축구에 집중한 케이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