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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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錫
1941년 8월 30일~

1 기본 정보

본명이해석(李海錫)
출생1941년 8월 30일, 서울특별시
본관전주 이씨
학력한국외국어대학교 서반아어학과 졸업
종교천주교(세례명 : 바오로)
가족아버지 이강, 어머니 홍정순, 슬하 1남 2녀

2 트리비아

의친왕의 10남. 이석은 족보 상 이름이고, 본명은 이해석. 아명은 이영길이다.

현재, 생존해 있는 고종황제의 손자 중에 유일하게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인물이다. 이게 잘못 알려진 건지 언론에서는 그를 "마지막 황손"으로 칭하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에 입학했다. 스페인어과에 입학한 이유는 왕실이 존재하는 스페인 공주와 결혼하기 위함이라고 언론 인터뷰에서 밝혔다.

황족이라고 하지만, 이미 황실의 모든 재산은 이승만 정권 아래 대한민국 정부의 소유로 몰수가 되었고, 그나마 남은 재산도 순종황제 사후에 왕실의 적통이라고 할 수 있는 영친왕과 그 부인 이방자 여사, 그리고 고종의 딸인 덕혜옹주에게 돌아갔다.[1]

생활고로 인해 대학 재학 중에도 DJ일을 보았고, 가수의 길을 걷게 되는데, 미8군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고 워커힐 호텔에서도 밤무대 가수를 했다. 이후 방송 MC와 건전가요 가수로서 계속 활동했다. 이때 왕족이 광대를 해서 돈을 번다고 집안 어른들에게 매우 혼이 났다고 한다.특히 당시 살아있던 순정효황후에게도 크게 혼났다고 한다. 19세기 말에 태어나서 시아버지인 고종황제와는 다르게 사진찍는 것까지 싫어했던 순정효황후 입장에선, 망한 왕족이라지만 가수 노릇을 한다는 게 곱게 보이지 않았을 듯. 참고로 아버지인 의친왕은 1955년에 사망해서 아들이 가수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고, "비둘기집"이라는 건전가요를 불러 유명해졌다. 이후 1979년 공부를 하기 위해 미국에 이민을 갔다가 살아남기위해 갖은 고생을 하다 공부의 꿈을 포기하고 결국 1989년 다시 돌아왔다. 결혼한 첫째부인 독고정희와의 사이에서 탤런트 이홍(71년생)을, 이혼 후 둘째부인 김진옥과의 사이에서 이진(76년생) 이렇게 실제 두 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큰 딸 이홍은 연예인으로서 대뷔했으며, 둘째 딸 이진은 도예가의 길을 걷고 있다. 현재 이홍은 한국에 거주하며, 이진은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5년부터 전주대 사학과강사로 일하고, "황실문화재단" 총재로 전주에서 일하고 있다. 전주시 시청 소유의 승광재(전주이씨의 조선왕조 설립이전의 사저, 전주 한옥마을에 위치)에서 가이드를 해주고 받는 얼마간의 사례비를 받고 있다고한다. 현재 전국으로 돌아다니면서 역사 강의를 하고 있다.
한편, 이석의 일대기를 다룬 KBS 1TV <인간극장> '왕자의 노래'가 95년 방영됐는데 뮤지컬배우 박철호가 주인공 이석 역을 맡았다.

2013년 12월 2일 KB국민카드 CF에서. 세종대왕 역할을 했다. 기사
전국에 의병학교를 추진 중이다.

3 평가

방송인이자, 미국에서 돌아온 1990년대 이후부터 주구장창 대한제국 황실 복원을 부르짖었기 때문에, 왕족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래서 언론에서 자주 인터뷰를 했고, 그래서 심지어는 이 사람을 왕위계승권자로 아는 사람들도 많다.[2] 그러나 만일 황실이 복원되더라도 이 양반의 왕위계승권 순위가 높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황실복원을 주장할만한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회의적 시선이 많았다. [3] 시대가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황실복원의 주장을 계속해서 활발히 해오고 있는 인물이다. 비운의 조선왕조에 대한 동정심인지, 공화국 시대에 왕조의 부활을 주장하는 것에 대해 언론에서 그다지 디스하진 않으나, 전주 이씨 내부에서도 대부분 이런 부류를 "정신나간 사람들", "시대착오적 사람들"이라고 보기도 한다. [4][5][6]

이석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크게 이석의 황실문화보존회[7]와 갈등 가능성이 있는 구 왕실 단체로는 대동종약원[8], 전주이씨 종친회, 대한제국 황족회 등이 있다.

드라마 궁궁S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때 쯤 여론의 관심에 자극받아서인지 2006년 9월 25일에 대한제국 황족회잉여회대한제국 존속 당시 작위를 받았으며 현존하는 의친왕가에서 가장 서열이 높은 이해원 옹주를 88세의 나이로 30대 황제에 추대해버렸다. 관련 기사 - 한겨레 : 대한제국 황위 이해원 옹주 승계…‘여황’ 대관식 거행 물론 이것은 정식 승계가 아닌 일종의 쇼에 불과했고, 이를 통해 여론의 지원을 얻어보려는 시도에 불과했다.

당시 소식을 들은 대동종약원, 전주이씨 종친회, 황실문화보존회는 '반대등의 논평을 냈다. 어찌보면 오히려 '궁'의 출현이 대다수의 스토리 팬들에게 실상을 파헤치게 하면서 애매모호했던 것을 확실하게 드러낸 것이 아닌가 한다.

네티즌들의 반응이 참으로 웃긴데 "이야~ 전주 이씨라는 성씨는 종친회장을 참 요란하게 뽑는구나." 라든가 "요즘은 저런 방식의 신종 구걸도 있구나" 등의 반응이다.

2013년 10월 9일. 채널A쾌도난마에 출연해서 자신만이 황위 계승권이 있는 정통 황손이라느니, 광화문에 있는 세종대왕 동상을 제작할 당시에 모델이 필요하자, 현존하는 왕족인 이석을 모델로 삼았다는 언급을 했다. [9] 일본 천황(아키히토)이나 아베 신조 총리가 자기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를 해야(...) 역사가 바로 선다고 하면서, 일본 때문에 사라진 우리나라 황실을 복원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10] 여기까지면 노인네 망령인가보다 하고 넘어갈 텐데... 명성황후 시간을 사실인양 방송에서 주장해 버렸다. 정작 본인은 그 당시 태어나지도 않았을 텐데 말이다. 그밖에도 자신의 초등학교 운동회 때 사동궁 상궁과 나인들이 잔치상을 줄줄이 내왔다고도 회고하는데, 1941년생인 그가 초등학교(국민학교)를 다녔던 시절이 미군정~정부 수립(1948년)~한국전쟁 기간인 점을 감안하면 얼마나 신빙성이 있을지... 찾아보면 아침방송 등에서 풀어대는 이러한 썰(?)이 한둘이 아니다. 다른 황손들이 이석 황손을 대놓고 비판하지 못 하는 이유는 생존한 황실 일가 중에 이석 황손이 그나마 제일 웃어른인 탓도 크다.

물론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이 일본이나 영국같이 입헌군주국 혹은 절대왕정으로 변하는 가능성은 희박하다 절대왕정의 경우는 말할 필요도 없고, 입헌군주국의 경우에도 현재 대한민국을 민주공화국으로 규정하고 있는 헌법 1조 1항부터 고쳐야하는데, 대다수의 헌법학자들은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라는 것은 헌법 개정을 통해서도 바꿀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대한민국이 입헌군주국이 되기 위해서는 Republic of Korea라는 국명도 바꿔야 하고 나라를 통째로 뒤엎어야 한다.[11]

물론 공화국이 다시 왕정이 된 나라도 없진 않긴 하다. 스페인이 그런 예인데 대한민국은 스페인이 아니다. 공화국이 왕정으로 바뀌려면 둘의 저울질은 필연적이다. 스페인의 경우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극에 달하는 개막장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인데 대한민국의 경우는 프랑코 수준의 막장이 대통령이 된 적이 아직까지 없다. 그 전두환 조차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부탁을 들어줘서 마지못해 들어줘야 해서 똥씹은 얼굴인 건 넘어가기로 하고 김대중의 형량을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낮추고 그나마도 석방을 조건으로 해서 국외추방했다. 되려 전주 이씨 황실 가문의 구성원들이 나라를 다스릴, 하다 못해 입헌군주국으로 만들기 위한 얼굴 마담으로서의 역할이 가능하냐가 문제인데 전혀 불가능하다. 그래서 대한민국에 국왕은 안되는 것이다.
  1. 이것 때문에 자신의 자서전에서 이방자 여사가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다른 황족을 도우라는 명목으로 받은 자금을 이방자 여사 자신의 자선활동에만 썼다고 비판한 적도 있다. 실제로 해당 자금의 목적이 그랬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2. 이건 언론 탓도 크다. 툭하면 "마지막 왕족 이석" 혹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후손"식으로 보도를 했으니...
  3. 만일 황실이 복원된다면, 논란이 있지만 일단 이구의 양자 이원이 1순위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의친왕계만 따진다고 해도 6남 이곤의 후손이 왕위계승권 상위를 차지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
  4. 특히 이석의 바로 위의 이복형인 이갑은 이석에게 황손이 스스로 이름을 파는 추태를 부리지 말고 정신차리라는 글을 기고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정작 본인 이갑 자신도 이구가 돌아가신 가운데, 왕위계승권 싸움에 참여해 자신이 1순위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
  5. 정작 이갑 황손은 장남 상협씨를 회은황태손에게 양자 입적시켜 대통을 잇게 했다.
  6. 황손 이갑은 이석의 발언이 논란이 된 시점(2002년 이후)에 생존한 황손 중 남자 최연장자였기에 가주 노릇을 위해 그 입장을 언론을 통해 인터뷰한 것이다. 이러한 인터뷰 내용조차도 이갑 황손 개인의 뜻이 아닌, 그의 누이 이해원 황손녀 등 다른 형제자매들의 의견을 취합한 것이다. 더욱이 이갑 황손은 이미 60년대에 한국외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도미하여 자수성가했으며 연례 제반, 행사 등을 제하면 줄곧 미국 롱아일랜드에서 거주했을 뿐 이석 황손처럼 국내에서 언론과 접촉하며 수면 위로 자신을 드러낸 바 없다. '이갑이 황위 계승 1순위는 나'라고 발언한 내용을 확인 부탁드린다. 회은황태손에게 장남 상협씨를 양자 입적시킨 것을 두고 이갑 황손을 야심가로 묘사한 각주도 사실과 다르다. 이갑 황손이 장남 상협씨를 양자 입적한 것은 종래에 회은황태손(대한민국 정부로부터 품위유지비를 지급받던 마지막 인물이다.)이 자녀를 보지 못했기에 사후 연간 50여 종류에 이르는 조선 왕실, 대한 황실의 제반(종묘대제, 사직대제부터 각 임금과 왕후, 추존왕의 제향을 일컬음)을 주관할 인물이 부재하게 될 까닭에 전주이씨종친회 대동종약원에서 먼저 황태손에게 양자 입적을 요구했고 이에 생전에 황태손이 상협씨(現 이원 황사손)로 정해 통보한 것이다. 다만, '사후 양자 입적 불가'라는 대한민국 민법 원칙상 실제로 법적 양자로는 인정되지 않는다. 이상의 반론 각주는 본 기여자가 이갑 황손, 이원 황사손에게 직접 들은 뒤 사료 및 증언으로 추가 검증한 내용들이다. 반론이 있을 경우, 토론 발제 바람.
  7. 과거 이 단체 이름은 황실재건XXX.
  8. 황세손 고 이구의 입양된 황사손 이원이 현재 존재하며 대한제국 황실의 직계는 서열상으로 바로 이 사람이다.
  9. 근데 이건 진행자가 은근 유도를 한 부분이며, "동상 제작자가 세종대왕 초상화에 나온 용안이 유약한 느낌이 들어 고민할 때 텔레비전에 나온 이씨를 보고 동상의 형상을 만들어 갔다"는 내용이다.
  10. 우리나라가 일본의 사죄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당연히 옳다. 그러나 사죄를 받는 주체가 '황제 자리에 복귀한 자신' 이어야 한다는 건 시대착오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거기다가 수요집회 위안부 할머니들까지 팔아댔으니 더 문제.
  11. 민주공화국이라는 국가형태를 변경하는 것은 헌법개정금지사항에 속하므로, 만일 헌법 제1조를 의회주의적 입헌군주제의 내용으로 바꾸는 경우 이는 헌법개정의 한계를 넘는 것으로서 헌법의 파괴(Verfassungsvernichtung) 내지 헌법의 폐지(Verfassungsbeseitigung)에 해당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