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황실 복원

1 개요

대한민국 내에 있는, 구 대한제국 황실을 복원하려는 움직임으로 현행 대한민국 체제를 공화국에서 옛 대한제국 황실 구성원이 다스리는 군주국, 주로 입헌군주국으로 만들자는 주장. 다만 정치권에선 농담으로조차 나온 적이 없으며 왕정복고를 주장하는 정당이나 무게있는 정치인이 나온 적도 없다. 여론도 이 무슨 개소리는 것이 대다수.

뭐 당연한 것이겠지만 일단 왕정복고 떡밥이 나오면 100%라 해도 좋을 정도로 조선 왕실의 부활을 의미하며 과거에 망한 고려, 고구려, 백제, 신라 등등의 왕실은 언급되지 않는다.

2 왕정복고파의 역사

대한제국이 망한 직후까진 상당수 지식인들이나 대중들이나 구 대한제국 체제의 복원을 원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실제로 1910년대까진 왕정복고를 주장하는 독립운동 단체들도 제법 활동했으며 고종이나 의친왕같은 황실 인사들을 해외로 망명시켜 구심점으로 삼으려는 시도도 있었다. 하지만 1919년 황실 인사들 중에선 그나마 구심점 역할을 하던 고종이 죽은 이후, 1919년 대동단의 의친왕 망명 시도를 제외하고는 한국의 왕당파 계열 독립운동가들은 사실상 일소되고 만다.[1] 이후론 독립운동 단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공화정 계열로 대동단결하였고 복벽파 최대의 단체인 대동단이 대한의군부도 각각 1920년대에 접어들면서 사회주의, 공화주의의 대동으로 내부에서 복벽파가 일소되었다. 대표적 근왕파인 유림은 이미 고종 치세 중반기에 개화파들에게 퇴물 취급 당하면서 권력에서 밀려난 후였고 더 이상의 영향력이 없었다. 게다가 간재 전우같은 꼬장꼬장한 유림들은 일본이나 '머리 깎은 자'들이나 똑같은 놈들로 보아서 그들과 손을 잡기를 거부했다. 결국 유림 계열은 김창숙을 마지막으로 한국 사회에 더 이상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었다.

대한제국은 일단 멸망했지만 일본 제국은 성공적인 통치를 홍보하기 위한 간판으로 삼기 위해 구황실을 상당히 우대했다. 일제강점기 내내 구황실은 생활에 불편함이 없을 정도의 큰 돈과 재물을 받고 부족하지 않게 살았고 적극적으로[2] 해외 독립운동을 도우려는 움직임은 별로 보이지 않았고 이런 점이 민중들에게는 차츰 실망감을 안겨 주었다. 고종 사후 순종은 김홍륙 독다 사건으로 바보가 되었단 소문도 많았는데다가 재위 기간도 짧았고 너무 유약한 이미지라서 구심점이 되질 못했고 결국 한국의 왕당파들은 1920년대에 접어들면서 사라졌다. 그나마 해방 이후까지만 해도 왕조에 익숙하여 근왕의식이 남아있던 노인들은 "영친왕 전하를 그 일본인 여자와 이혼시키고 참한 조선 각시를 하나 들이면, 다시 조선 왕조를 여는 것도 괜찮을 텐데…"라고 했다지만, 그런 노인들이 조직적인 왕당파를 구성한 것도 아니었고 그냥 넋두리에 가까운 구시대의 소리에 불과했다. 일본인 여자가 인격적으로 꽤 괜찮았다는 점이 함정. 민중 차원에선 의친왕의 인기가 높았다는 점 등을 고려해서 군주정에 대한 선호가 꽤 남아있었다 할 수 있었겠지만 민중과는 달리 지식인 계층에선 왕정 지지자들이 그야말로 누가 일부러 없앤 것처럼 사라졌고 가장 전통적 지식인이자 근왕파여야 할 유림조차도 조긍섭 등은 고종이 사망했을 때 고종을 일본 이태왕이 된 배신자라고 디스를 했다. 유림조차도 이 모양인데 아예 개화파 지식인들은 말할 거나 있을까. 어쨌거나 해방 직후가 한반도에 다시 왕정이 들어설 수 있는 그나마 마지막 기회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한국을 이끌어 갈 지식인 계층 중에 왕정 지지파는 없었으며 미국이 조선 왕실이 뭐가 예쁘다고 왕정을 밀어줄 리도 없었다. 게다가 한국 역사상 최초로 국민투표를 통해 집권한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대한제국 황가에 대하여 지독할 정도로 혐오감을 보였다. 대한 제국이 망한 후에 이승만은 "나라가 망한건 슬픈데 , 양반, 상투 없어진 것은 속이 다 시원하다"라고 했고 본인도 가문에서 과거 급제자를 낸 지 오래되어 사실상 평민 신세였으니... 군주정을 혐오했다고 하는 주장도 있으나 실은 이승만 자신이 정작 조선 왕가의 후예라는 점을 어필하며 과인이라고 칭하던 적도 있기에 사실상 군주정이라는 시스템을 혐오했다기보다는 조선 왕족만을 혐오했다고 보는 관점도 있다.열폭이거나 비난하는 시각에서는 이승만이야말로 자신이 왕이 되고 싶어했다든지 대통령이 되자 북쪽 혹부리 대왕보다 더 큰 동상을 세우고 생일 때 안익태와 마요르카 교향악단을 불러와 연주회를 가지게 하는 점으로 이승만이야말로 스스로 자신을 통해 왕실 복원을 꾀했다고 비난한다. 물론 이승만도 그 비난을 염두하여 서울시의 새로운 이름을 우남이라는 이승만의 호로 짓자던 부하들 아첨에 격분하여 때려치라고 했다든지 신경을 쓰긴 했다. 왕가의 후예라는 것을 독립운동 때 좀 써먹은 적은 있으나(미국에서 거주할때 스스로를 프린스 리라고 부를 정도였다) 공화국의 수장인 대통령이 되었을 때는 칭왕시 정통성을 스스로 부정하게 되는 격이라 권위주의적 태도를 보이면서도 왕을 공공연히 칭하진 않았으나 과인이라고 칭했으니 뭐 모순이다.조지 워싱턴? 게다가 이승만은 이구같은 대한제국 황가 후예들을 양자로 받아들이려다가 거부당하여 까임을 많이 당했는데 황실 방계인 그가 신분에 컴플렉스를 가져 직계 후예들을 양자로 받아들이려는 거 아니냐는 비난을 당하기도 했다. 어쨌든 로마의 아우구스투스가 프린켑스를 자처했던것 처럼 공화제 시스템을 이용한 군주정을 만들 속셈이었는지도 모르지만 이후 역사는 다들 아시는대로(...)

여하튼 이승만은 대한 제국 황족들의 재산을 빼앗고 순정효황후, 의친왕을 비롯한 황족들을 홀대하여 인민군 손에 죽을 뻔하게 만들었으며, 영친왕을 비롯한 황족들의 귀국조차 허락해주지 않았다. 이랬으니 황실이 다시 들어서려는 시도를 하려고 해도 할 수도 없었다. 박정희가 집권한 이후에는 구황족에 대해 귀국을 허락하는 등 약간 유화적으로 돌아섰지만 까라면 까는 권위주의적인 군사정권 하에서 구황족들이 감히 입장을 어필하기는 어려웠다.

1990년대에 이석을 중심으로 이런 모임이 있었으나, 당시에 전주 이씨 내부에서도 시대착오적인 주장으로 어그로를 끈다고 이를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다고 한다. 그래서 이석을 중심으로 한 이러한 운동은 전혀 영향력이 없었다.

그래서 이전까지 우리황실사랑회#[3]와 황실문화재단[4] 등이 이런 움직임을 보이긴 했어도 사회적인 영향력이나 인지도는 거의 미미했으나, 2000년대 중반 들어 온라인 상에서 황실복원에 찬성하는 카페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다. 이는 황실 복원을 소재로 내세워 그 장및빛 면모를 부각시킨 드라마 마이 프린세스의 영향이 매우 크다. 즉 원래 황실 복원 시도는 왕족과 관계가 있는 사람들이 주장했을 뿐이었지만, 드라마 궁 이후로는 "황실? 간지 나잖아요~>,<"라며 인터넷 상의 활동을 통해 여기에 합류하게 된 것.

3 쟁점

3.1 민주 공화국의 군주?

현재 시점은 조선의 멸망으로부터 이미 100년을 넘겼고, 한반도광복은 70주년을 넘었으며 대한민국 정부수립도 70주년에 근접해간다. 갓난아기 시절이나마 한반도의 군주정을 체험한 사람은 2016년 기준으로 아무리 어려도 만 105세로 아직까지 생존해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으며, 마지막 황제 순종이 경술국치창덕궁 이왕(李王)으로 강등되어 지내던 시절을 체험한 사람 또한 2016년 기준으로 최소 91세라 이쪽도 현재까지 생존해 있을 가능성의 희박하다. 하지만 사실상의 군주국 출신인 새터민이라면 어떨까?한마디로 현대의 대한민국 사람에게 한반도 최후의 군주국인 조선은 조선 이전의 고구려백제, 신라, 발해, 고려, 가야, 후백제, 후고구려(태봉), 부여 같은 나라들과 별다를 것 없이 책이나 인터넷, 드라마, 영화, 만화등과 그 시대의 유물과 유적 등지에서나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과거의 시대일 뿐이다. 현재 군주국인 영국, 스페인, 태국,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네덜란드, 모로코, 일본 등과는 역사적인 배경, 맥락이 다르며, 현대는 민주주의의 시대이기에 이 움직임을 지켜보는 한국인들은 입헌군주제를 도입한다고 해도 특정 가문이 군주 노릇을 하겠다는 것을 고운 시선으로 보지 않는 편이다.

애당초 헌법에 민주공화국을 제외한 그 어떤 체제(그것이 입헌군주제이건 간에)도 불가능하다고 못을 박아 놓았기 때문에, 국민투표를 거쳐서 헌법을 고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민주공화국을 규정하고 있는 헌법 1조의 경우 2공화국 헌법 당시에는 명시적으로 헌법 개정 불가능 규정이었고, 현재도 학설상 헌법 개정의 한계의 대표적인 규정으로 꼽히고 있다. 즉, 헌법 개정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쿠데타라도 일어나서 국가자체가 바뀌지 않는 이상 민주공화국을 명시한 1조가 바뀔 일은 없다고 봐야 한다. 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학설이 그렇다는 것이지 정말로 모든 개헌절차를 거쳐 개헌한다면 사실상 막을 방법은 없다. 특히 헌법개정에 있어 국민투표를 거치도록 되어 있으므로 주권적 의사의 개입을 통하여 헌법개정이 확정되면 이를 무효로 선언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성낙인,「헌법학」61p 참조) 물론 상황이 거기까지 간다면 왕 아니라 뭔들 못만들겠냐만은(...)

그러므로 현행 법률상으로는 소위 "황제위"을 복원한다고 해도, 원칙적으로 어떤 특권도 줄 수 없으며 단지 "황제"라는 칭호만을 가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무형문화재:대한제국황실 / 기능보유자:황제"같은 식으로 등록해두는 유명무실한 수단밖에 없다. 즉, 어떤 식으로 하더라도 부활한 황실의 구성원들은 헌법상으로는 평범한 시민일 뿐이며, 실질적인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없게 된다. 웃음거리나 안 되면 다행이다

실제 현대에선 조선 황실을 이어가는 곳이라고 주장하는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이라는, 전주 이씨 종친회에서 조선 황실과 관련된 무형문화재 행사를 황실의 후손들 중심으로 치루고 있다.[5] 예를 들어 종묘제례, 제례악 등 이다. 하지만 이뿐으로, 정작 "황제"라는 지위의 구체성이 희박하다는 점에서 "무형문화재:대한제국황실 / 기능보유자:황제"같은 식으로 해결하는 것도 사실은 좀 어렵다.

이러한 점을 인식했는지 황사손 이원은 조선 왕조의 유산을 제대로 알리고 청소년들에게 문화 교육도 시키는 '대한황실문화원'이란 사단법인을 만들었다.##

만약 '대한제국 황실의 복원과 구성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서 복원한다고 하더라도 헌법소원만 걸리면 "'대한제국 황실의 복원과 구성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은 헌법에 위반된다"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내려질 것이다. 아마 재판관 전원 위헌 판결할 듯

당장 헌법 제1조 제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6]헌법 제2장 제11조 2항에서 규정한 '사회적 특수계급 창설의 금지'에도 정면으로 위반된다.

이걸 고치려면 구 황실의 후손들이 그럴 힘이 있어도 국민들의 대대적인 반발로 인해 불가능할 지경인데 황실 후손들은 정치적, 사회적으로 아무런 영향력 없는 존재로 전락했고 경제적 특권 역시 해방 이후 국가가 모두 회수하였다. 지금와서 왕실의 후손이란건 그냥 조상님들이 그랬다더라 하는 수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대한민국은 조선이나 대한제국의 부활을 주장한 게 아니라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이었음을 표방하고 있지만,[7] 일단 역사적으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임시헌장에서 밝혔듯 역사적으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대한 제국의 역사를 계승했던걸 보면 대한민국은 제도적으로는 계승하지 않지만 역사로서는 공유하는 모습을 볼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도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이 대한제국을 망한 나라라고 생각하는데[8][9] 난데없이 대한민국이 대한제국 황실을 이어받는다고 해도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적을 듯 하다.

그 외에도 의친왕의 5녀인 이해경 여사 또한 황실복원을 시대적 착오라며, 둘째 언니인 이해원 옹주 옹립에 대해 불편한 기색을 보인 바가 있다.[10] 매우 부정적인 입장으로 시대착오적인 행동이라 비판하였다.# 참고로 본문에 적혀있듯 이 이해경 여사께서 황실 역사와 문화 복원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도리어 적극 지지한다. 하지만 조선 황실 관련 무형문화재 행사의 연장선 정도이다.

하다못해, 북한에서도 자국을 공화국이라고 부르면서 대외적으로 "우리나라는 왕이 없다."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아이고 의미없다나 다름없는 셈이다.

4 관련 사건들

4.1 마지막 황실의 적장자 이구의 사망

2005년 이구가 사망했다. 이구에겐 자식이 없었기에,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은 의친왕의 손자 이원을 양자로 지명해 이구의 뒤를 잇도록 했다.

조선 황실의 제사라고 할 수 있는 종묘제례 등을 봉행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대한제국의 황태자였던 영친왕의 적통이 필요한데, 영친왕의 아들 이구에게 자식이 없으니 적통을 이을 양자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 후로 이원은 '황실의 적통을 이은 자손'이란 뜻의 황사손(皇嗣孫)으로서 종묘제례 같은 행사에서 제주(祭主)가 되어 봉행한다.

이 사건 자체는 조선황실복원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으며, 심지어 이원은 이 사건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한다.

4.2 이해원 옹주 옹립 사건

2006년, 일부 대한제국의 황실 후손들이 모여 만든 대한제국 황족회라는 단체에서 십자가 새겨진 교회 의자 빌려와서 대한제국 황실 복원을 선언 한 사건. 뉴스기사

힐튼 호텔에서 대관식을 갖고, 이해원 옹주를 황위에 옹립하였다. 이유인 즉슨 영친왕의 아들 이구가 2005년도 의문사로 타계한 이후 그 혈통이 끊어졌기에, 의친왕의 차녀인 이해원을 추대한 것. 이 대관식에서 황족회는 총리 대신으로 선교청대학교(당시 성민대학교) 총장 이강무(효령대군 후손), 비서실장에 이성주(남연군 후손)를 추대했는데…

정부로부터 아무런 인정도, 지원도 받지 못하고 끝난 그야말로 흑역사. 국가보안법 위반이나 내란죄로도 규정하지 않고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지 않은 헛짓거리였다. 정부가 이미 있는 상태에서 헌법에 반하는 이 일을 인정한다는 건 모순으로, 전주이씨대동종약원만이 아니라 황실과 관련된 다른 민간 단체들도 인정하지 않는다. 이석이 뒤를 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단체의 일원 중 일부는 이원이 이구의 양자가 된 것은 현행법으로는 성립할 수 없기 때문에,[11] 살아있는 의친왕의 자녀들 중 최연장자인 이해원이 이구의 뒤를 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해원은 여성이기에 유교를 중시한 조선의 문화를 생각해봤을 때 정통성이 없다고 할 수 있으므로, 현재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이원이든 이해원이든 다 논란이 있으며 어차피 황실의 직계손이라는 건 현재의 대한민국에선 상징적인 것에 불과(일단 위의 옹립 사건과는 별개로)하므로, 어느 쪽이든 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그리고 총리대신에 추대된 이강무의 경우 자신이 세운 선교청대학교가 2010~11년에 2년 연속으로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에 선정되는 등 온갖 비리 혐의가 드러나, 결국 폐교되고 2013년 1월 대전지방검찰청 천안지청에 불구속 기소되어 '대학 하나 제대로 운영 못하는 인물이 무슨 조선 황실 총리대신인가'는 비아냥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5 부정적인 견해

5.1 애초에 공화국 체제로 전환된 국가에서 황실이 필요한가?

대한민국 자체가 민주 공화국 체제의 국가로 탄생되었는데, 구태여 대한제국 황실을 복원시킬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심지어 조선 왕조 후손이었던 이승만조차도 대한제국 황실 복원은 거론도 하지 못하게 하였다. 심지어 그의 심복들이 서울시 이름을 대신할 이름으로 이승만의 호인 우남으로 정하자고 아부할 때 좀 그럴까 했으나 서울 이름을 바꾸자고 주장하던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가 분노하고 여론도 부정적이라 그냥 없던 일로 해버렸다.

애초에 역사적으로 전제군주정, 입헌군주정이 끊겼다가 민주공화정으로 새로 태어난 상황에서 그것을 다시 회귀해야 하는 명백한 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 민주공화국에서의 민주주의는 치자와 피치자의 동일성을 추구하는데, 여기에는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라는 평등사상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입헌군주정으로의 회귀는 이것에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다. 물론 오랫동안 왕실이 유지되고 있는 영국이나 덴마크, 일본, 스페인, 태국 등 군주국들의 국민들이 자랑스러워하고 당연히 여길 수 있으나, 이미 왕실이 없어진 지 오래인 대한민국에서 그것을 다시 부활시켜야 할 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

5.2 황실 복원 자체의 현실적 어려움

실제로 폐지된 왕조나 군주제가 복원된 국가들은 정말 드물다. 굳이 꼽자면 올리버 크롬웰의 청교도 혁명으로 왕정이 폐지되고 공화국[12]이 되었다가 크롬웰이 죽고 왕정 복고가 이루어진 영국, 1931년 왕정 폐지 이후 내전과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의 우익 군사 독재를 거치면서 1975년 프랑코 사망 후 왕정 복고[13]가 이루어진 스페인, 1970년 군부 쿠데타로 왕정 폐지 후 내전과 폴 포트 독재 정치, 킬링필드 대학살, 베트남군 침공 등 온갖 국가 막장 테크들은 다 겪다 1993년 유엔이 사태에 개입하여 다시 왕국으로 되돌아 간 캄보디아같은 경우가 있긴 하지만...

그러나 이러한 경우는 왕정 폐지 후 들어선 공화정의 기반 약화나 왕정이라는 강력한 구심점의 상실로 나라가 내부분열, 독재, 내전, 학살 등으로 나라가 손쓸 수 없을 정도로 난장판이 되어 그 대안으로 옛날 왕정으로 돌아간 케이스고, 왕정이 무너지고 공화정으로 전환된 뒤에도 공화정이 별 문제 없이 멀쩡하게 돌아가는 국가가 왕정복고를 한 사례는 사실상 없다. 사실 한국 국민들 상당수가 한국 정치판이 개판이라고 다들 욕들을 하는데 그래도 과거 왕정이었다가 왕정 폐지 이후 국가 막장 테크에 빠진 캄보디아나 이라크와 달리 대한민국은 공화정이 멀쩡하게 돌아가는 나라다.

사실 이 부분은 한국에서 왕정 복고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낭만적이고 비현실적인 사회적 인식에 기대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에 가깝다. 한국은 그럭저럭 살만한 나라지만 (당연히) 이상적인 국가는 아니고, 사실 현실에 이상적인 국가란 것이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다. 그런데 현실 인식이 몽상적인 사람들의 경우 사회적 문제라는 것이 '완전히 해결할 수는 없지만 가능한 만큼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야 하는 문제'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이상적인 국가가 '특정한 계기만 갖춰지면 당장이라도 실현될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경우가 많고, 또 그중 일부는 '황실 복원'이 그 계기가 될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 이런 특징은 실제로 황실 복원주의자들을 접해보면 쉽게 알아볼 수 있는데[14] 대부분의 경우 지극히 선량하고 도덕적인 사회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기는 하지만, 어째서 황실 복원이 한국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회피하거나 거부감을 드러낸다. 그들에게는 그것이 그냥 '당연한' 것이기 때문. 아래에 나온 오류 투성이의 옹호론들 역시 복원주의자의 내부 커뮤니티에서는 당연한 사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아무도 그것을 검증하려고 하지 않는다. 심지어 자신들이 소수이고, 자신들의 주장을 실현하고 싶으면 다른 사람들을 설득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들에게 있어서 그 주장은 당연히 옳은 것들이니까. 심한 경우 국제 스포츠 행사등에 타국의 왕족이 참가했다는 기사를 보고 '아직도 왕이 남아있는 나라가 상당하다는 것을 신기해하는 젊은이들의 반응을 '부러워한다'고 착각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을 정도.

제정이 폐지된 이후 혼란을 겪은 브라질에서도 제정 복고 움직임이 있었으나 실패로 돌아갔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군사 쿠데타, 공산화로 왕정이 폐지되고 공화정으로 정치체제가 바뀐 그리스,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 동유럽 발칸반도 나라들[15] 역시 쫓겨났던 전 국왕이나 몆몆 왕족들이 군주제 복고를 외치고 있으나 정작 왕정 시절, 왕정 복고에 대한 이들 나라들의 국민 여론 역시 대단히 부정적이며, 1979년 이란 혁명으로 왕정이 폐지되고 이슬람 신정주의 공화정 체제로 바뀐 이란도 혁명으로 쫓겨났던 망명 팔레비 왕가 인사들이 이란 현 정권을 몰아내고 다시 왕정으로 되돌아가자고 왕정복고를 주장하고 있지만 과거 팔레비 왕조 시절 이란과 동맹관계였던 미국 등 서방 주요 강대국들은 물론 국제사회의 여러 나라들로부터 지지는 커녕 무시당하는 상황이다. 또한 왕정 폐지 이후 내부 분열과 쿠데타 등 정변, 독재, 전쟁, 내전, 학살, 알 카에다, IS 등 외국 테러조직들의 소굴들로 전락하는 등 나라 꼴 자체가 말이 아닐 정도로 심각하거나 어려운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 리비아,[16] 세르비아[17] 같은 나라들도 폐지된 군주제 복원이 논의만 되고 실현되지 못한 예가 있음을 감안하면 폐지된 왕조나 군주제의 복원이 이뤄진 나라는 별로 없다.

5.3 대한제국과 구 황실 자체에 대한 국민들의 높은 반감

조선/평가#s-6에서 자세히 언급되어 있듯 일반 국민들의 옛 조선 내지는 대한제국에 대한 이미지는 21세기 현재 별로 좋지 않은 정도를 넘어선 상태라 일반인들에게 조선에 대한 이미지를 물었을 때 변기, 악몽 같은 키워드가 나오는 것이 현실이다.[18]

위 사례들은 비교적 극단적인 주장들이지만, 저 정도가 아니라도 옛 조선 왕실이 선조, 병자호란, 세도정치, 구한말의 모습 등으로 인해 총체적으로 외세, 신권 아래 무능했다는 정도의 인식은 사회 전반에 깔려 있다. 설령 어떠한 장점으로 입헌군주제를 도입할 필요성이 어떻게 생긴다 하더라도 그 옹립해야 할 대상이 일제강점기를 자초한 무능한 전주 이씨 가문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남아있는 왕실들은 영국, 일본, 네덜란드, 태국, 모로코 등에서와 같이 국가를 일으켜 열강이 되거나 최소 식민지로 전락하지 않게 만들거나 식민지로 전락한 조국을 식민지배에서 독립시킨 공로가 있다. 그러나 대한제국 황실은 갖은 병크를 점철해가다가 결국 나라를 식민지로 만들고 그 자신도 몰락한 죄과가 더없이 크다.

특히 조선 왕조 말기의 대표격 인물인 고종명성황후는 드라마나 뮤지컬 속 모습처럼 단순히 비극의 주인공이 아니다. 적어도 즉위 및 개항 초기에는 나라에는 관심 없고 자신들의 사치에만 눈이 멀어 있었으며 그나마 고종은 을사늑약 등으로 나라가 망한 뒤에는 정신을 차려 독립운동에 나서게 되지만 그 이전의 과오가 큰지라 그에 대한 평가는 지금도 대단히 엇갈린다.[19] 그런데 고종을 재평가 해봐야 소용이 없는게, 고종의 재평가는 대상자들에 한정되지 이후 인사들에게는 면벌부가 될 수 없다. 애초에 친일파로 나간 흥친왕이나 영선군은 흥선대원군과 함께 고종을 퇴위시키고 자기들이 왕위에 오르려다가 실패했던 전력이 있다. 그것도 일본이나 청나라의 힘을 빌려서. 현실적으로 대한제국 황실에서 고종이나 의친왕 만큼이라도 뭔가를 해보려고 했던 인물들이 남아있다면 모를까, 지금 주류세력은 그쪽이 아니다. 오죽하면 복원드립을 치면서 옹주를 얼굴마담으로 내세울까. 나라가 혼란해서 왕가를 다시 들여야 하는 것도 아니고 선진국 반열에 드는 대한민국에서 이미 병크를 저질러 망해버린 황실이 무슨 부활시킬 공적이 있고 가치가 있을까?
당장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다

5.4 일부 황족들은 기본적인 노블레스 오블리주조차 지키지 않았다

결정적인 이유

왕정국가의 경우 왕가부터 솔선수범해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지켜야 한다. 그래야 왕위에 대한 정통성이 지켜진다. 일례로 영국 왕실은 1965년에 영국에서 징병제가 폐지된 후에도 지금까지 자원해서 군복무를 하고 있다. 남자들 뿐 아니라 현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조차 공주 시절 보급장교(중위)의 신분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까지 했다[20]. 그리고 찰스 필립 아서 조지 역시 군필자이다.

한국이 거의 모든 남성이 군복무를 하는 징병제 국가라서 잘 느껴지지 않는 부분이지만 모병제 국가에서 스스로 나서서 군복무를 하는 게 영국 왕실이다. 영국 왕실은 이정도로 철저하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다. 하지만 조선 왕조의 구성원들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지 않았다. 조선 말기에 이들 왕가의 사람들이 했던 친일파에 가까운 여러가지 잘못들이 존재한다.

실제로 황실(고종의 형 이재면, 이준용, 황실 친족 이지용, 이재극, 이해승 등)을 비롯해서 척족 세도가문(여흥 민씨, 해평 윤씨)은 경술국치 이후, 총독부로부터 주는 귀족작위 받아가며 평생을 떵떵거리고 살았다. 오늘날 현재에도, 황실 친족(이해승, 이재극 등), 척족 세도가문(대표적으로 여흥민씨 집안) 후손들은 선조들의 이런 매국행위에 대해 반성하지 않았다.

오히려 선조들 재산 되찾겠다면서 소송을 거는 중.(2010년 12월에 황실 친족 친일매국 이해승의 재산을 되찾겠다는 후손의 소송이 승소해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단, 영친왕, 이우는 일본에 의해 볼모로 정치적인 의도로 억지로 끌려간 측면이 있기에 '친일파'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런 친일파에 가까운 행적과, 최소한의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구태여 황실을 복원하자는 것이 이상할 것이다. 이런기사도 있다.

또한 다른 입헌 군주제 국가들의 왕실들의 경우, 영국만 하더라도 엘리자베스 2세를 필두로 최소한의 왕족으로서의 예절, 국가를 위하는 기본자세(전쟁시 자원 입대 등)를 지키는 모습에서 비교할 때, 조선 황실을 부활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궁(드라마)의 경우도 황실 복원은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던 황족이 국민적인 지지를 얻어 추대되었기에 가능한 일로 설정되어 있고(대충 의친왕이나 고종의 망명시도가 성공해서 독립운동에 투신해 살아남았다고 하면 비슷할 것이다), 마이 프린세스에서는 비밀리에 독립운동의 스폰서를 하려다가 중간에 먹튀한 인간이 있었다는 설정으로 변호을 해줬다.

항일 투쟁을 적극적으로 벌이던 보수 유림이 고종의 승하를 계기로 항일 투쟁을 포기해나갔던것도 이와 연관이 있다. 유교적 신분질서와 군신대의와 같은 유교적 명분으로 투쟁에 임했던 보수 유림 앞엔 유교적 가치의 핵심이자 명분으로 삼아야할 왕족들이 일본 귀족에 흡수되어 떵떵거리고 살았던것. 사회주의계, 민족주의계, 공화주의계 독립 운동가들과 달리 이념적 좌표가 희미해질 수밖에 없었고 이후 일제의 친일 유림 정책과 맞물려 사실상 소멸한다.

그 밖에 이들 황실 후손들은 '선친의 땅을 되찾겠다'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벌였던적이 있었다.#[21]

물론 예외도 있다. 의친왕은 그래도 조국을 되찾겠다며 황족으로의 예우를 포기하고 한국의 서민의 삶을 각오하고 임시정부로 건너가려고 한적이 있다. 비록 실패했지만

5.5 복원의 가장 근본적 문제- 정통성 결여

왕실이나 황실의 복원을 운운하려면 제1 조건으로 바로 혈통적 정통성이나 계통적 정통성을 갖춘 왕위 계승자가 있어야 한다. 계승자가 없다면 당연히 복원도 불가능하니까. 그런데 현재 대한제국 왕실 복원을 주장하는 자들에게는 혈통적 정통성은 커녕 계통적 정통성마저 결여되어 황실복원이란 말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다른 군주제국가였다가 공화국체제로 바뀐 국가 중 입헌군주제 가능 국가로 거론되는 국가들은 실제 제위했다가 폐위했거나 제위계승자로 공식 선언되어 정통성을 획득한 후계자가 있고, 그 외에도 계승의 정통성을 가진 후손들이 손으로 꼽기 어려울 만큼 많은 경우에 해당한다.

5.6 황실 구성원에게 황족으로서의 삶이 행복한가?

우린 그냥 마네킹일 뿐이라고!

- MBC 드라마 더킹 투하츠의 등장인물 이재하의 대사 중에서

우리나라의 유교 문화는, 개인주의와 자유주의가 발달한 서구보다는 일본의 경우와 비슷하게 지배자에게 상당한 도덕적 모범이 될 것을 요구한다. 황실을 복원하게 된다면 황제 가족은 물론, 그 주변 황족들 역시 철저하게 유교 도덕적 규범에 맞춰서 살아야 할 것이다. 게다가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라 황실이 복원되더라도 결국 국민들의 동의와 통제 하에서만 가능할 것이며 지속적인 감시에 시달리게 될텐데, 경제적 문제를 제외한다면 이러한 인생이 상식적으로 행복할 리가 없다.무한도전의 출연진들을 들 수 있다. 물론 노숙자 및 빈곤층 vs 황실 구성원이라면 후자를 택할 지도 모르겠지만 이건 너무 극단적이다.

5.7 민주주의와 언론 자유에 해를 끼친다

황실이 어떤 식으로든 공식적으로 인정되고 특별 대우를 받게 되면, 민주주의와 언론 자유가 인정됨에도 황실의 권위를 근거로 '불경함'을 주장하는 사람이 반드시 나오게 될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존재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 창작물에 타격을 입힐 것이다. 예를 들어, 기묘사화를 다루면서 중종에 대해서, 임진왜란을 다루면서 선조에 대해서, 병자호란을 다루면서 인조에게, 구한말을 다루면서 고종, 명성황후에게 부정적인 묘사를 한다면 불경한 짓으로 여겨져 비난을 하게 될 것이며, 심하면 조선 시대를 다루는 거의 모든 창작물이 조선 왕실에 대한 묘사를 하기 어렵게 된다. 왕가보다 아래인 양반가만 하더라도 부정적인 묘사는 물론이고 사실을 묘사해도 조상의 명예에 흠집을 냈다며 문중에서 항의가 들어오는 판국이다.

실제 일본의 경우 사실상 메이지 덴노 이후의 덴노들은 일본에서 거의 '신성불가침'의 존재로 남아있다. 이전 시기의 덴노들이야 그렇다 쳐도 히로히토 덴노는 비판할 게 상당히 많음에도 불구하고[22] 쇼와를 비판하는 주장은 외국에서나 볼 수 있지 일본 내에서는 찾기 어렵다. 한 예로 1988년 나가사키의 시장 모토지마는 "외국의 여러 가지 책이나 일본의 역사책, 그리고 본인의 군대생활 경험을 통해서 보건대 (쇼와)덴노에게 2차대전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발언했는데 전방위적으로 압박을 받았고 1990년에는 암살범한테 총까지 맞았다.(물론 기적적으로 목숨은 건지면서 사망하진 않았다..)

5.8 국민의 용서는 황실을 복원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실제 국민들이 황실을 받아줬다고 생각해서 복원해도 괜찮다고 착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사실 조선 황실에 대한 분노는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많이 희석됐다. 1960년대 시점에 박정희가 황실의 귀국을 허용할 수 있었던 것도 이미 황실이 국민들의 용서를 받았기 때문이고, 아무리 박정희라도 황실에 대한 분노가 여전했으면 주저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었다.

그러나 이건 청 황실에 대한 중국인들의 분노가 씻겨나간 것과 비슷하다. 군벌들의 막장 통치 시대와 국부천대 이전 국민당의 전횡. 일제의 침략 등으로 인해 문자 그대로 허리가 붙었다 떨어졌다를 반복하던 중국인들은 청 황실에 신경쓸 여력이 없었고, 이 과정에서 황실에 대한 분노가 희석되면서 선통제는 공산당 하에서 나름 우대받으며 여생을 보내는 등 망한 황실 치고는 행복한 결말을 맞을 수 있었던 것이다.

즉 국민들이 황실을 용서하고, 그 구성원들이 대한민국에서 대한제국의 후손으로 살아가도록 받아준 것은 사실이지만, 황실을 복원해도 된다고 허락한 건 아니라는 뜻이다. 황실의 후손들은 언제까지나 대한제국 황실의 후손이라는 배경을 가진 평범한 대한민국 국민 개개인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5.9 만들어 줬다 치자. 그런데 유지는 할 수 있나?

앞의 황실 구성원에게 황족으로서의 삶이 행복한가? 섹션에도 나온 문제지만, 굳이 유교문화 때문이 아니더라도 황실이 복원되면 황족들은 항상 황족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황실 복원 전까지 그저 '과거에 황족이었던 일반인'이라서 영위할 수 있었던 자유로운 삶을 상당부분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된다.

안그래도 지금 가장 권위있는 왕실이라는 영국 왕실조차 찰스 필립 아서 조지에 대한 평판이 그리 좋지는 않아 왕실을 폐지하고 공화제로 가자는 여론이 생기고 있다.(물론 왕정을 유지하되 엘리자베스 2세의 뒤를 이어 찰스 왕세자 대신 윌리엄 왕세손이 왕위에 올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정말 좋게 백번, 천번을 양보해서 대한제국 황실을 복원시켜줬다고 치자. 그걸 유지하는 게 쉬울것 같은가? 절대로 아니다. 그리고 이건 국왕 한 명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게 더 큰 문제다. 과거 왕실이 일반 백성과 분리된 시절이라면 대외적으로 존재가 드러나는 왕과 태자만 처신을 잘하면 크게 문제가 될 건 없었지만 지금은 일가친척까지도 다 공개가 되는 세상이다.

즉 대한제국 황실이 복원되면 대한제국 내의 유수 언론들의 스포트라이트가 100% 황실에 집중된다. 때문에 외식에 여행가는 일까지 일일이 뉴스에 오르며 당사자는 정말 숨막힌다. 당장에 다이애나 스펜서가 왜 비명에 갔는지 생각해보자. 파파라치를 피해 도망가다가 교통사고로 참변을 당한 것이다. 게다가 사고 당시에도 기자들이 피를 흘려 죽어가는 다이애나 스펜서를 구조할 생각은 아예 안하고 죄다 카메라 플래쉬만 터뜨려대다가 오히려 살인자라는 욕만 신나게 먹었다. 이런 꼴을 당하고 싶은가?

게다가 조금만 잘못해도 설령 그것이 일반인 같으면 '뭘 그 정도 갖고 그러냐?' 소리가 나올 정도로 사소한 것일지라도 엄청난 구설수에 오르는게 군주제 국가에서의 왕실인데 그 정도로 평생을 걸쳐 기자들에게 트집잡히지 않고 어마어마한 처신을 할 자신이 있는가? 이런 철저한 자기관리와 더불어 타국의 대통령에 준하는 뛰어난 능력을 겸비하는 것이 요구되는게 군주제 국가에서의 왕실이다. 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영국이나 일본이 왕정제 국가라고 해서 부러워 보이는가? 그들이 어떤 고충에 시달리는지 대한제국 황실 구성원들은 알고 있는가? 엘리자베스 2세와 그 자손들이 어떤 고충에 시달리고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면서 평생을 살아온 사람인지는 아는가? 일본 덴노 가문이 언론 보도가 잘 되지 않고 있지만 극악의 군기를 시전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 정도는 다르지만 군주국들은 하나같이 왕실에서 일반인들에게 약점잡히지 않으려고 정말 눈물겨운 발악을 하고 있다. 그런데 대한제국 황실을 복원해주면 그 구성원들이 이 정도의 피를 토하는 노력을 바로 할 수 있을 것 같은가? 그들도 사람이기에 절대 불가능하다. 길거리에서 코딱지조차 함부로 후비지 못하는 게 왕족들이다. 아니 길거리에서 코딱지 파는 사람들도 있나 쪽팔리게 행여 노상방뇨라도 하는 날이면 그 사건이 신문 1면에 실리고 전국적인 웃음거리가 된다. 왕실의 구성원이란 이런 존재다. 언론통제를 해보자고? 하지만 외신은 통제가 안된다.

또한 황실을 폐지하자는 여론이 들끓게 되면 어떻게 무마시킬 것인가? 대책은 있는가? 그냥 폐지함 되지 아니 애초에 하지말자

타인에게 존경이라는 것을 받아내는 것이 대인관계에서 할 수 있는 모든 행위들 중 가장 어려운 행위이다. 존경을 받아내는 것은 성공하는 것보다 실패하는 것이 넘사벽으로 높은 행동이다. 황실 구성원이라는 감투 이전에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아내는 그 정도의 인망을 쌓아올려야 하는 게 왕실이다. 아무리 입헌군주제가 되어 반쯤 연예인으로 전락한 게 세계 왕정제 국가의 현실이라지만 일반인과 뭐가 다른지를 확실히 어필해야만 하는게 왕가의 구성원이다. 일반인과 다를 바 없는 행동을 한다면 사람들은 왕실 따위 필요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대한제국 황실을 복원시켜 주면 그 황실이 과연 전국민 모두에게 존경을 받아낼 자신이 있는가? 왕실이 국민 모두에게 존경을 받아야만 유지가 가능한게 왕정제다.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아야 한다. 그 때문에 윌리엄 아서 필립 루이스 영국 왕세손 역시 영국 내에서 왕실에게만 주어진 의무인 병역의 의무 기간을 다 채우고도 한번 더 병역의 의무를 채우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물론 군에 자원입대하는 것도 아니고 징병이니만큼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그런 의지만이라도 보였다는 것은 분명 대단한 것이다. 왕실 구성원이면 일반인의 몇배에 달하는 희생정신과 애국심이 요구되는 신분이다. 애국심이야 그렇다 치고 남을 위해 자발적으로 희생할 자신 있나? 그것도 일반 서민들만이 아니라 모든 국민보다 앞서서 말이다.

어느 창작물 같은 행동은 곤란하다.[23]

이런 것을 감당할 자신이 있는가? 자신들이 왕실의 구성원이기 때문에 하는 게 없어도 중산층 생활은 확실하게 보장되는 대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전원 지금과 같은 자유를 반납하고 각자의 행동 일거수 일투족이 시종일관 뉴스거리가 되는 것을 견딜 자신이 있는가? 이것을 대한제국 황실 복원을 추진하는 대한제국 황실 계승자들에게 물어봐야 한다.

6 긍정적인 견해와 그에 대한 반론

6.1 전 국민이 하나될 수 있는 정신적인 구심점이 될 수 있다

일본과 영국의 왕실이 실제로 국민들에게 정신적인 구심점이 되고 있다는 점을 본다면, 국민들간의 화합이 안 돼서 국론이 자주 분열되는 한국의 현 상황을 생각해본다면 황실복원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이것이 될 것이다.(여기에도 먼나라 이웃나라의 폐해가(..))

  • 반론 : 영국에서도 적지만 왕실 폐지 여론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영국 가쉽거리에 관심을 좀만 기울여보면 영국 왕실이 국민들의 정신적인 구심점이 되고 있다는 주장을 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만큼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충실히 실천해온 영국에서조차 왕족의 생활과 평민과의 신분차에 대한 구설수는 끊임없이 오르내린다.좋은(?) 예시 게다가 찰스 필립 아서 조지가 왕족으로서 부적절한 처신을 하다가 걸린 사례가 있어서 영국 내부에서조차도 이를 근거로 국왕 자리를 줘서는 안된다는 논지로 왕실을 폐지하자는 주장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 또한 일본과 스웨덴, 덴마크, 영국, 노르웨이, 스페인등의 경우에는 왕실이 근대화를 이끌거나 입헌군주제에 적응하였거나, 민주화를 이끈 역사적 공로에 의해서 왕실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형성된 것이지, 황실의 존재 자체가 신뢰를 만들지는 않았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즉 왕국인 국가는 왜 왕정을 하고 있으며 공화국인 국가는 왜 공화정를 하고 있는지를 말이다.이것을 간과하니까 대한제국의 황실을 복원하자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애초에 황실이라는 대상을 중심으로 국민 통합을 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시대에 뒤떨어진 발상이다.
그리고 스페인의 경우 2015년 현재 공화국으로 돌아가자는 여론이 더 많아졌다. 이전까지 여론 조사 내용을 비교해 봐도 사실 스페인 국민이 왕실 자체를 지지했다기 보다 후안 카를로스라는 개인을 지지했던 것에 가깝다. 유로존 위기 이후로 스페인의 경우, 왕실은 확실하게 이제 국가 통합의 상징이 아니라 오히려 분열의 상징이 되었다. 이러한 점을 간과한 채로 "국민통합의 구심점이 될 수 있게 황실을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말 앞에 마차를 놓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황실복원론자들은 일본은 천양무궁(天壤無窮)의 신칙(神勅)(일본서기 신대(神代) 2편)이 있어서 국민통합이 잘 된다고도 주장하는데 현실은 막대한 행정력과 자금을 투입한 국민개조 작업의 결과물이다. 즉, 황실이 생겼다고 자동으로 구심점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 만일 황실이나 왕실의 존재만으로 국민의 구심점이 생긴다면, 프랑스 혁명은 도대체 왜 일어났겠는가? 사회과학의 기본인 비교조차 망각한, 일고의 가치도 없는 헛소리다.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국민들이 서로 다른 의견을 가졌더라도 합의와 공론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옳지, 특정한 구심점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6.2 전통문화 복원의 상징이 될 것이다.

오랜 기간의 일제의 식민통치로 인하여 한국의 수많은 전통문화들이 사라진 것이 현실이다. 조선황실은 이러한 전통문화 복원의 중심이 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 반론 : 황실과 전통문화는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지 않다. 왕실제사 외에 황실 사람들이 '황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전통문화 복원에 도움을 줄만한 게 있다면 외국 관광객을 위한 공연배우 비슷한 구경거리 정도로나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시시한 황실을 그 나라의 국민이 바랄까? 위에서 말했다시피 전주이씨대동종약원에서 종묘제례 등 황실과 관련이 있는 행사는 이미 거행하고 있기에 굳이 복원한다고 해도 그 이상 나아질 것은 없다. 게다가 옳건 그르건 간에, 유교적 제례문화에 거부감을 갖는 종교인(개신교)이 상당수 존재하는 게 현실이라, 이러한 제례의식을 현재와 같이 상징적인 전통문화 보존 차원에서 거행한다면 몰라도, 국가의 공식 의전행사로 격상시키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자칫 종교 갈등의 원인이 될 수도 있고, 정교분리 원칙 위반이 될 소지도 있다. 또한 다카시 후지타니의 『화려한 군주』나 에릭 홉스봄의 『만들어진 전통』을 보면 알 수 있다시피 황실을 통해 복원할 수 있는 전통문화라는게 있는지조차 의문이다. 모든 국가들, 심지어 영국에서마저 소위 전통으로 간주되는 황실의례는 빅토리아 여왕 시대 이후에나 만들어진 근대적 장식이라는 점을 떠올린다면 황실을 통한 전통문화 복원 운운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소리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한제국 황실은 일제강점기에 잘먹고 잘살았으며 일본 황실과 문화적, 혈연적 교류를 가졌다. 현재 남아있는 황실의 전통이 있다면 바로 이 시기, 그러니까 일본 황실 문화의 영향을 상당수 받은, 전통이라는 이름의 관습이 남아있을수는 있겠다. 하지만 국민들이 과연 이런 '전통'을 원할까?

6.3 외교전략의 하나로 사용도 할 수 있다.

예를 든다면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우호국이나 동맹국 방문을 들 수 있다. 즉 다른 나라의 정상을 만나 국가간 커다란 협상이나 문제가 생겼을 때 황실이 나서서 미리 도움을 줄수 있다는 것이다.

  • 반론 : 왕실이 나서나 외무부가 나서나 근본적으로 다를 게 없고, 인재 면에서는 외교부가 더 낫다. 황실은 그저 얼굴마담에 불과하다. 영국 왕실의 경우는 국왕이 영연방이라는 일종의 영국 중심 클럽에서 상징적 국가원수를 맡고 있기 때문에 그런 효과가 있을 뿐이고, 그나마도 의례적인 것에 불과하다. 한 사람으로서 정치적인 의견이야 있을 수 있겠지만 그것은 총리를 제외한 타인과 논의하거나 대중에게 알려지는 것이 매우 금기시되어 있다[24]. 하물며 한국은 과거 대영 제국과 같은 '식민제국이 아니라는 점'을 망각한 채 영국의 국왕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야말로 뇌내망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올리버 크롬웰의 400년 전 일시적인 공화정 독재를 제외하고는 한번도 제위가 끊긴 적이 없는 영국이나, 다른 역사적으로 계속 왕실을 유지했던 유럽, 중동, 아시아의 다른 왕실들이 저렇게 허술하고 단기간에 대충 새워진 대한 왕실을 동급으로 취급하고 존중해 줄 것 같은가? 당장 그리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 비교적 근현대에 들어 공화정으로 전환한 나라들도 그 왕실은 따로 나머지 유럽의 왕가들과 꾸준히 지속적으로 교류(혈연으로 얽힌 혼인교류 포함)하며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왕정이란 게 애초에 근대 민주주의의 논리를 초월한 물건인 만큼, 적어도 역사적 뿌리와 전통이라도 있어야 그 존재를 정당화할 수 있는데, 조선 왕실의 후손들이 어디 태국 왕이나 네덜란드 여왕의 공식 행사에 참가했다는 얘기 들어본 적 있는 사람? 어설프게 뿌리도 없는 왕실을 왕실이라 떡 복원해 놓고, 전통과 사회적 영향력이 단절되지 않은 채 지속된 해외 유수의 왕가와 대면시켰다간 오히려 온갖 굴욕과 멸시는 다 먹고 국제사회의 놀림감이 될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 반론2 : 민주주의를 하다가 전제군주제로 전환하자는 사람은 해당 군주 후보 외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입헌군주제의 경우에는 황실이 오히려 반쯤 연예인인 상태인데 대한제국 황실을 복원하자는 논지를 가진 사람들은 이를 모른다. 그렇다면 상품성인데, 대한제국 황실계승자는 이 분야에서 상품성이 전혀 없다. 이석의 직업이 가수라지만 무명가수이고 같은 전주 이씨를 보더라도 왕실 직계보다 오히려 한참 떨어진 방계인 이승기, 이정재, 이경규훨씬 더 잘 나간다. 영국의 국왕 엘리자베스 2세가 전세계적으로 존경받는 사람이라 생각하는가? 절대 아니다! 캐나다와 미국을 제외한 미주 전지역에서 존경받지 못하는 인물이며 특히 그 정도는 아르헨티나에서 제일 심하다. 게다가 엘리자베스 2세를 전세계적으로 존경하는 정도 역시 테레사 수녀만 못할 뿐더러 요한 바오로 2세, 베네딕토 16세, 프란치스코 교황 등 전현직 교황들에게조차 한참이나 밀린다. 오늘날 가장 대표적인 군주라고 할 수 있는 엘리자베스 2세마저 이렇다. 엔터테인먼트적 상품가치가 매우 높은 엘리자베스 2세도 상대하는 국가에 따라서는 이렇게 처참할 수도 있는데 엔터테인먼트적 상품성도 별로 없는 이석을 외교 전략으로 쓰자는 논지는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차라리 유명 연예인을 외교 전략의 하나로 쓰는 게 훨씬 효율성이 높다. 예를 들면 배용준일본과의 외교 전략에 사용하는 게 백배 낫다.

6.4 정부가 무정부상태로 망했을 때를 대비할 수 있다

  • 반론 :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같은 방식으로 정부 요인들이 싹 쓸려서 무정부상태로 망한게 아닌 이상은 정부가 망했는데 왕실이 무사하기는 힘들며, 설령 무사한다고 하더라도 전제군주제라면 모를까 입헌군주제인 영국이나 일본 왕실이 실권이 없듯이 조선 왕실도 실권이 없을 것이므로, 그냥 존재감만 보일 뿐 왕실 자체에서 이에 대한 대책을 세우기는 힘들 것이다.
그리고 사실 이런상황에서는 오히려 공화주의가 훨씬 유리하다. 당장 같은 조직내에서 내부 승진이나, 여당내에서 재선출, 혹은 이도 부족하면 야당에서 뽑는등 인재풀은 공화주의가 훨씬 많다. 업무 미숙으로 인한 혼란도 가능성은 있지만 이는 입헌군주제에서도 동일한 특징이다.
그렇다면 교육이 아닌 경력으로 능력을 판단하는 시각으로 한 번 바라봐보자. 이는 일종의 대한제국 황실을 위한 변명으로 말해줄 수 있다. 왕족으로써 자신의 직무에 대한 아무런 교육을 받지 않았더라도 이 기준으로 보더라도 과연 현재의 대한제국 황실 수장이 국가를 경영할 능력은 있는가? 국회의원은 고사하고 구의원이라도 해본적이 있는가? 하다못해 연간 5000명이나 배출하는 그 흔하디 흔한 소대장을 해보기라도 했는가? 아무 교육도 못받았다면 그에 걸맞는 업적은 있는가? 교육못받은 걸 상쇄할 수 있는 이력이 있는가? 윤영하이희완은 죽거나 장애인이 될 정도로 심하게 다쳐가면서까지 뛰어난 군공을 세웠는데 이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비슷하게 흉내라도 낸 적이 있는가? 아무런 능력도 검증하지 못한 채 그저 대한제국 고종 황제의 후손으로 태어났으니까 왕시켜달라는 논지인데 21세기는 카스트보다는 스펙이 우선되는 세상이다. 하후돈의 아들로 태어나기만 했지 실상은 무능의 극치를 보여준 하후무보다 쫄병임에도 불구하고 굴하지 않고 적장 황조의 목을 베는 엄청난 군공을 세운 풍칙이 훨씬 높은 자리에 오르고 훨씬 출세하는 세상이다. 하지만 대한제국 황실 복원은 이를 거꾸로 가자는 논지인데 하후무가 무능한거 알면서도 하후돈의 아들이니까 중용하자는 논지와 동일하다.
  • 반론2: 이 글의 주장과는 다르게, 국민적으로 망국을 원하지 않는데도 왕실과 일부 지도층만 날려버리면 오히려 쉽게 나라가 망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멀리 갈 것도 없이 위 주장의 대상이 되는 조선 왕실이다. 국민적 반감과는 상관없이 지도층 포섭하고 왕실을 끌어들여 조약만으로 나라를 집어삼킨게 일본이다. 이런 과거가 불과 100여년 전의 일인데 무정부상태로 망할 떄를 대비하겠다고 왕정복고를 주장하는 건 그저 웃기는 소리다.

7 결론

황실 복원은 현실적으로 매우 힘들어 보이고,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하기도 어려우며 설령 복원한다 하더라도 득이 될 것이 없다. 시대착오적인 발상일 뿐이다.

8 바리에이션 - 황실 재산복구

바리에이션으로 국유화한 황실의 재산을 돌려주자는 의견도 있다. 이게 인정되면 친일파 재산도 전부 돌려줘야 하는 건 함정위의 터무니없기 그지없는 황실 복원 의견에 비하면 훨씬 양호한 수준이고 반응도 그나마 동정적이지만 그러나 그쪽의 경우에는 왕실이 가지고 있던 재산이나 권리를 차츰 이양한 것이지만, 현재의 대한민국은 왕실의 모든 재산을 일괄 국가가 소유하고 있어(정확히는 강제로 국가에서 빼앗았는데 구 황실 측에서 안 찾아간 채로 고정된 것이다.) 역시 재산권이 꼬여있어서 비현실적이다.

9 기타

  • 옹주 옹립이나 드라마 보고 달아오른 일부는 있었지만, 그게 어그로가 되었는지 나무위키의 시초라 할 엔하위키 시절부터 이 문서에 황실 복원을 긍정적으로 서술한 사례보다 부정적인 의견 위주로 되어 있다. 일방적인 난타 황실 종친회나 복원론자가 있다면 그쪽 입장도 추가바람. 젊은층의 인터넷 문화 자체가 다소 리버럴한 경향이 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황실 복원에 반대하는 여론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 이 문서에서 나오는 부정적 의견은 대한제국 고유의 사정 몇가지(일제 침략기에 룰루랄라 등)를 제외하면 일반적인 왕실 폐지론에도 해당되는게 많다("황실 따위는 장식입니다"등)

10 황실복원 혹은 황실이 등장하는 매체

→ 입헌군주제를 따른다. 실제 역사와는 달리 일제강점기에 만주에서 독립군 지도자로서 일본군에 맞서 싸웠던 적장자가 국민의 지지를 얻어 황실을 다시 세웠다는 설정이다. 뿐만 아니라 해방 이후 극심한 좌우대립으로 분열될 뻔한 나라를 안정시킨 공이 있어 황실이 이후에도 유지된 것이라고.현실의 황실과는 천지차이
→ 현대에 황실의 후손을 발굴하여[25] 국민투표를 통해 황실을 복원한다는 설정.
과 마찬가지로 해방 이후 조선 왕실 후손이 왕위를 다시 이었다는 설정, 단 여기서는 실제 역사와 달리 대한제국 선포가 없어 황실이 아닌 왕실, 황제가 아닌 국왕(때문에 폐하가 아닌 전하)이라는 칭호를 사용하고 있다. 등장인물인 이재하의 작중발언이 인상적이다.
"걔들(국민)이 원하는 건, 그냥 품위있고 우아하게 웃어주는 거야"
"지들 자주적 판타지 채워주는 거라고. 결국 우린 마네킹이야"[26]

11 해외의 사례

외국에도 폐지된 왕조의 계승자를 자처하는 사람(pretender)들이 꽤 있다. 예컨대 프랑스부르봉 가문의 루이 20세, 오를레앙 가문의 앙리 7세, 보나파르트 가문의 샤를 나폴레옹과 그의 아들 장 크리스토프가 왕위를 다투는(?) 상황. 그 외에도, 영국명예 혁명을 부정하고(자코바이트 항목 참조) 제임스 2세의 계승자를 자처하는 프랜시스 2세[27]라거나.

왕실 복원 가능성이 그나마 높은 곳이 유고슬라비아 왕가(세르비아 왕가)와 루마니아 왕가다. 유고슬라비아 왕가의 마지막 왕세자인 알렉산더 카라조르제비치는 1991년 유고슬라비아에 돌아온 이후 세르비아의 학살자이자 대통령인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에 반대하면서 자선활동 등 사회활동을 열심한 대가로 2001년 세르비아 시민권을 받았다. 2011년 세르비아 신문사의 조사의 의하면 64%, 과반수가 넘는 세르비아인들이 왕실 복원에 찬성한다고. 조지아는 대통령들이 잇달아 삽질을 하는 통에 시민들이 바그라티온 왕가의 부활을 지지하고 있다. 또 왕정의 지지가 높은 곳은 아프가니스탄. 카다피 사후 내전에 지친 리비아도 다시 왕정복고가 논의되고 있다.

이들 상당 수는 물려받는 재산도 꽤 있고 해서[28], 그럭저럭 유력인사로 살아가는 듯 하다. 어차피 진지하게 왕위가 자신에게 돌아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 물론 해외 망명생활을 전전하는 사람도 있고, 그냥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대한제국 황실의 재산은 대한민국 건국과 함께 대한민국 정부에게 전부 몰수되었기에 전주 이씨 직계 왕손들은 그다지 잘 살지 못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왕위 계승권자임을 자처하는지 궁금하면 영문 위키백과 참조.

자세한 것은 왕정복고 항목 참조.
  1. 그 이후로도 1920년대 후반까지 일부 복벽파 인사들의 활동이 포착되곤 하지만 대부분의 독립운동 단체들은 공화주의의 입장을 취했다.
  2. 소극적으로 도운 정황은 있다.
  3. 1990대 초기에 활동을 시작했으며, 황사손 이원을 적통으로 보고있다.
  4. 이석이 세운 단체. 이 쪽은 이석 자신을 새 황제로 보고 있는 듯한 의혹을 지울 수 없는 활동을 한다. 이쪽도 1990년대 이전에 활동을 시작했다.
  5. 실제로 이구의 양자 이원은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의 총재이다. 이구도 죽기 전에는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의 명예총재였다.
  6. 지금은 없어졌지만, 헌법 제1조 제1항을 비롯한 몇몇 중요한 조항은 우리 헌법에 개정할 수 없는 조항(개정금지조항)으로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었다.
  7.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후략)" 대한민국 헌법 서문 中
  8. 안그래도 젋은 세대로 갈수록 대한제국과 조선을 싫어하는 국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설령 조선에 대해서는 긍정하더라도, 대한제국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9. 꼭 꼬집어 망한 나라. 라는 인식이 없어도 대부분 그냥 조선 말기의 바뀐 국호라거나 대한민국이 되기 전의 이름 정도로 인식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10. 이해경은 "공주와 옹주는 어디까지나 왕(제후)의 딸을 가리키는 호칭인데, 나에게 이 호칭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매우 거북하다"는 입장을 밝힌 적도 있다.
  11. 사실 조선에선, 왕족의 일부 계보가 끊기면 아들이 많은 왕족의 아들 중 하나를 대가 끊어진 왕족의 사후 양자로 삼는 형태로 계보를 이어가게 했다. 남연군사도세자의 서자 은신군의 양자가 된 것도 이런 예 중 하나. 하지만 대한민국의 법은 사후 입양을 인정하지 않는다.
  12. 말이 좋아 공화국이었지 실상은 크롬웰의 1인 독재 체제였다. 게다가 권력세습까지 했다.
  13. 프랑코 역시 섭정을 자처했으므로 스페인은 "왕 없는 군주국"이었고, 후안 카를로스 1세는 당시 계승자의 지위에 있었다.
  14. 다만, 현재 해당 주의자들이 모인 인터넷 사이트들이 대부분 사라져서 만날 계기가 크게 줄어들기는 했다.
  15. 그리스의 경우 역사, 정치적인 이유로 발칸반도 국가들중에서 유일하게 남유럽 국가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지리, 지형적으로 가끔씩 동유럽으로 분류되기도 하며 불가리아와 루마니아는 동유럽보다 남유럽으로 분류되는 경향도 일부 있다.
  16. 오히려 이 열거된 이슬람권 3개국들에서는 제대로 국가조차 통제 못하고 테러,내전으로 사람들이 계속 죽어나가는 생지옥 같은 무능한 공화정이 계속 굴러갈 바엔 차라리 그나마 안정적이었던 예전 왕국 시절로 왕정복고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17. 예네는 그래도 아프간이나 이라크보다는 현재 상황은 낫지만..
  18. 물론 부당한 비판인 경우가 상당히 많기는 하다.
  19. 단적으로 고종의 죽음은 한국독립운동의 분기점이라 할 수 있는 3.1 운동의 계기가 되었다. 을미의병이 명성황후의 시해가 아닌 단발령이 직접적 계기로 작용한 것과는 대조적. 고종이나 명성황후 항목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이들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대단히 논란이 많다. 순종과 그 밑의 황족들은 독립운동에 기여한 바가 거의 없었고(의친왕 제외), 고종이 죽은 이후부터 황실이 독립운동은 물론이고 대외적으로 끼친 영향력도 대부분 소실되기 시작한다. 당장 이 무렵에 군소집단에서 특정 지역에서 단일화된 수많은 임시정부들의 정치 체제에 절대군주제나 입헌군주제는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물론 이건 3.1 운동 이전의 복벽주의의 한계도 이유가 되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순종에게는 고종만한 입지가 없었다는 이야기다.
  20. 실제 하는 일은 본토에서 복무하는 운전병이었으나 밀릴때는 영국 본토까지 공격받는 상황에서도 복무 했었고 부부가 폭격받은 도심을 끊임없이 돌아다니며 국민들을 위문했다.
  21. 웃긴 게, 그 근거로 내세우고 있는것이 구 일본제국 총독부의 기록을 근거로 들이내밀었다는 사실이다.#
  22. 미국은 단지 정치적 필요성 때문에 전재산 몰수, 실권 영구박탈을 조건으로 전범으로 몰지 않았을 뿐이고 그런 미국에서도 그가 죄가 없다고 하지 않았을 정도다. 이 때문에 일본 내에서는 미국의 추가 양보를 받아내기 위해 히로히토가 퇴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23. 다만 이는 파인, 레인 한정이며 미를로 같은 경우는 모범적인 왕족의 모습으로 볼수 있겠다.
  24. 포클랜드 전쟁 항목에도 나오지만, 엘리자베스 2세는 대처가 "제국의 역습"을 추진하는것에 대해 불만스러워하면서도 형식적 절차일지언정 아무 반대의견 제시 없이 승인했다. 애초에 입헌군주제 국가에서 왕은 통치자가 아니다! 설마 전제군주제로 가자는건 아니겠지
  25. 순종황제의 알려지지 않은 적손이라는 설정. 하지만 굳이 황실을 복원하려고 한다면 위에서도 언급한 황사손 이원만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극중에서는 정치적 뒷배경 때문에 국민에게 불쾌감을 일으킬 소지가 적으며, 대외 상징용으로 활용 가능한, 권력없는 상징적 존재인 공주라는 패를 꺼내 개연성을 만들기 위한 바가 더 큰 듯.
  26. 애당초 그들이 있는 이유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들이 있을 이유 따위는 없다.
  27. 근데 사실 이 사람은 독일인. 비텔스바흐 가문의 수장이고, 독일 내에서 가장 잘 나가는 바이에른 주에서 거의 큰어른 대접받고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본인은 인터뷰에서 스코틀랜드 왕가 타이틀은 관심이 없다고. 지금도 독일의 가장 큰 주인 바이에른에서 거의 왕이나 다름없는 대접 받고 사는데 뭐가 아쉽겠냐
  28. 대부분 선조 때 부터 물려 받은 부동산이다. 프로이센 왕가처럼 폴란드에 성, 영토 및 각종 부동산을 몰수당한 케이스 조차도 사촌들이랑 저 유명한 호엔촐레른 성을 소유하고 있으며 그것을 빼도 프로이센 수장의 총재산은 약 5천만 파운드 정도라고 한다. 그 외도 역사책에 들어봤을 법한 왕가나 귀족 가문 혹은 선제후 가문은 지금도 대부분 그럴저럭 잘먹고 잘 산다. 이래서 사람들이 금수저 금수저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