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평가

1 플레이 스타일

KBO 역대 최고의 장타자
NPB에서는 뛰어난 장타력과 수비력[1]을 가졌지만 컨택과 선구안에 약점을 노출한 공갈포형 타자

1.1 타격

상대가 어떤 공을 던질지 미리 예상하고 해당 코스로 휘두르는 게스 히터. 다른 거포 스타일의 타자들에 비해 덩치가 작고 스윙도 간결하지만, 일단 배트에 맞은 공은 확실히 멀리 보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승엽의 타격기술에 대해 분석한 기사도 많은데, 공통적인 내용이라면 힘보다는 기술로 넘긴다는 것이다. 즉 배팅 포인트시 공의 중간에서 약간 아랫부분을 쳐서 멀리 넘기는 데 천부적인 자질을 타고 났다는 것이다. 또한 유연성이 좋아서 컨디션이 좋을때는 어떤 자세에서도 거의 교과서 적인 스윙으로 배트를 컨트롤한다.

노리고 치는 스타일이지만 한국 프로야구 통산 타율이 3할을 넘는다. 통산 홈런 10위권 중에 타율이 3할을 넘는 것은 이승엽, 양준혁, 김동주 뿐. 양준혁과 김동주는 홈런타자보단 교타자로 분류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승엽의 3할은 대단한 성적이다. 힘으로 넘기는 타자들이 빗맞춰도 넘겨버리는 능력이 있다면 이승엽은 공의 중심을 때리는 능력 자체가 좋기 때문에 안타나 2루타도 많이 양산을 해낸다. 이에 관해서 정리해놓은 글이 있다.

그러나 자신의 예상과 완전히 다른 공이 왔을 경우 대처력이 떨어진다는 단점도 있다. 때문에 변화구 대응력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고, 정말 어이없게 벗어나는 공을 스윙하여 스트라이크 판정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직구에 대한 대응력이 낮아지자 일본프로야구에서 분석된 뒤로는 별로 활약을 하지 못했다. 특히 종변화구에 약한 모습을 보이며, 이따금씩 몸쪽공을 잡아당겨서 큰 타구를 만들어내서 많이 가려지는 사실이지만, 기본적으로는 몸쪽 공에 약하다. 때문에 대 이승엽 투구패턴은 몸쪽 몇개 보여주고 바깥쪽 변화구, 혹은 종변화구로 승부가 거의 정석. 그래서 이승엽의 약점을 나타내는 말은 떨공삼(떨어지는 공에 삼진)이다. 이 떨공삼은 신인 때부터 21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온전히 극복해내지 못했다.

일본 언사이클로피디아에서는 이승엽을 타석에서 춤추는 선수(...)로 묘사하고 있다. 그만큼 삼진이 많은 선수. 다만 이는 KBO보다 수준이 높은 NPB에서의 부진이 심화되면서 나오는 이야기로, 한국에서의 이승엽은 삼진이 많을지언정 그 못지않게 볼넷을 많이 얻어내는 타자이다. 한국프로야구 1기 9년 동안 0.306의 통산타율에 0.409의 출루율을 유지했으며, 노쇠화된 현재까지의 통산 출루율은 0.392이다.

물론 4할에 근접한 출루율이 순전히 선구안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승엽 정도의 홈런 타자라면 투수들이 가급적이면 '헛스윙 해주면 좋고 아니면 볼' 식의 승부를 하게 되기 마련인데, 상술한 대로 게스 히터인 이승엽은 그런 공에도 스윙을 해서 삼진을 당하는 경우가 꽤 있기 때문이다. 허나 거기에 당하기만 했다면 공갈포로 전락했을 것이고,[2] 그 정도의 타자였다면 지금과 같은 위상을 가질 수도 없었다. 이승엽은 KBO 통산 16년 동안 볼삼비가 1:0.8 정도를 유지하는 타자다. 공격적인 성향 때문에 삼진당하는 모습을 많이 목격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KBO리그에서 선구안이 나쁜 편에 속하지는 않고, 거포형 타자 중에서는 상위권에 든다고 볼 수 있겠다.

삼진이 많은 것과 함께 거론되는 단점으로는 기복이 심하다. 이것은 일본프로야구는 물론 한국프로야구에 있었을 때도 언급되었던 문제점. 즉 타격 감각이 올라왔을 때는 한 경기 2~3개 홈런을 연달아 치면서 홈런 개수를 급격히 늘리는 재주가 뛰어나나, 부진할 때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삼진머신으로 돌변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월별 성적 뽑아보면 한 시즌내에서 좋을때와 안좋을때의 월별 성적이 3할 가까운 차이를 보이는 등 컨디션과 멘탈에 좀 지나치게 영향을 많이 받는 경향이 있다.

2006년까지만 해도 직구에 대한 대응력이 매우 뛰어났으나 이후 지속적으로 변화구는 괜찮으나 빠른공 상대타율이 점점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 노쇠화가 진행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일각에서는 요미우리로 옮겨 온 이후 근력 향상을 위해 근육질로 몸을 키우고 유연성을 외면한 것[3]이 역으로 배트스피드 저하와 부상이라는 부작용을 가져왔다는 분석도 있다.

이렇듯 생각보다 약점이 많은 선수. 이 때문에 일본프로야구에선 분석 + 노쇠화 + 멘탈 문제가 겹쳐 한국프로야구에 비해 많은 활약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당장 그렇게 좋지 않다는 일본프로야구 성적을 합쳐 계산해본다면 타율, 출루율, 볼넷을 제외한 스탯에서 양준혁을 가볍게 뛰어넘는다.

또한 외국에서 통하지 않는 타자라고 폄하하기에는 국제대회 성적도 좋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부터 시작해 국가대표에 꾸준히 뽑혔고, 현재까지 국제대회 통산 홈런 1위는 그의 몫이다.

다만 일본에서는 가장 좋았던 06년을 제외하고는 소속리그에서 타격 스탯이 비율, 누적 공히 홈런을 제외하고는 순위권에 들어간 적이 별로 없다. 그 홈런 수도 8년간 159개로 연평균 20개에 가깝지만, 홈런 숫자만 많을 뿐 나머지 스텟은 장타 부문(2루타, 타점, 장타율 등)을 제외하고는 10위권 안에 들어간 적이 없는 공갈포 스타일이었다. 사실 위에 나온 몸쪽공과 바깥쪽 변화구, 횡변화구에 약점이 있다는 내용은 일본 리그에 간 바로 다음해인 05년에 일반인 대상으로 발행하는 스카우팅 리포트에 들어있는 내용으로 구단 스코어러가 분석한 내용도 아니고 일반인들에게 공개 되는 서적에 실릴 정도로 약점이 명백하였으나 결국 이를 일본 생활 8년내내 극복하지 못했다.

게다가 요미우리 시절 이승엽은 단 한번도 팀내 최고연봉자 자리에서 내려온적이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질적으로 돈값 한 시즌은 06년뿐이다. 홈런 잘 나오기로 유명한 도쿄돔을 홈구장으로 쓴 것을 감안할 때 요미우리 시절의 활약은 홈런 숫자만으로 가늠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환경이었다.

06년 시즌만큼은 역대 NPB 진출 선수 중 최고의 활약을 보였으나, 이대호라는 일본 프로야구에서도 부상이 없는한 풀타임 4번타자로 꾸준한 활약이 보증된 타자가 등장하면서 지금까지 1년이라도 잘한 타자가 없었다는 논리는 성립될 수 없게 되었다.

일반적인 거포 이미지(힘은 좋지만 발은 느린 근육돼지똥차라든지)와는 달리 주루능력도 있다. 컨디션 관리와 부상 방지 등의 이유로라기보단 그냥 넘겨버리면 되니까 도루 횟수 자체는 많지 않지만, 주루사가 적고 허를 찌르는 도루도 한 번씩 하는 편.[4]

발이 느리지 않다는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수치가 병살타 갯수. 2015년 기준으로 7천타석을 넘게 들어섰는데 100개를 갓 넘는 수준이다. [5]
일본에서도 3000타석 가까이 들어섰지만 병살 갯수는 40개로 대략 75타석에 1번꼴. 이는 좌타자인 것을 감안해도 손꼽히는 수준이며 이승엽보다 타석에 많이 들어선 선수중에 이승엽보다 병살 비율이 낮은 타자는 KBO내에 오직 전준호 한 명 뿐이다.

장타/안타 비율이 엄청나서(45%대) KBO에서 2024안타를(일본 기록 제외) 친 2016시즌 종료 시점에서 장타만 900개에 달한다.

1.2 수비

타격이 주목받기 쉬운 능력이라서 상대적으로 잘 언급이 안 되는 부분이긴 하나 수비 실력도 역대 최고를 논할 수준이다. KBO는 말할 것도 없고 NPB에서도 센트럴리그 연속 무실책 기록(1,225이닝)을 가지고 있다. 1루 수비의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라고 볼 수 있는 포구나 번트 수비시 숏 바운드 처리 능력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1루 선상수비도 아주 좋다. 다만 왼손잡이 1루수답게 1루선상 강습타구 수비는 가끔씩 약점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 때문에 한창 요미우리에서 삽 푸고 있을 때 이승엽이 나오면 '오늘은 수비 위주 라인업'이라고 우스갯소리로 얘기할 정도.

기본은 1루수지만 커리어동안 딱 2년간 좌익수를 본 적이 있다.

한국 시절에는 1996시즌으로, 당시 전 해의 신인왕 이동수가 부상 이후 복귀하였는데, 원래 3루수였지만 수비가 불안하였다. 고로 1루로 전향을 꾀하였고 이승엽은 1루에서 밀려나 좌익수비를 보았다.[6] 이 때 양준혁도 이승엽과 이동수 때문에 우익수로 밀려났던 적이 있었다.

일본에서는 치바 롯데 소속이었던 2005시즌에 좌익수로 기용된 적이 있다. 당시 치바 롯데의 1루수는 1루 전문 스페셜리스트이자 팀의 최고 인기선수였던 후쿠우라 카즈야였는데,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기도 힘든 게 1년차 이승엽이 워낙 성적이 안 좋았던 반면 후쿠우라는 워낙 수비가 좋은 선수였던데다 그 시점에서 4년 연속 3할 타율을 기록할 정도로 타격도 빼어난 선수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승엽은 입단 첫 해부터 주로 지명타자로 나왔는데, 지명타자도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좌익수 경험을 살려 이듬해인 2005시즌에는 좌익수로 출장하게 되었다.

다시 한국에 돌아온 2012년 이후로는 나이 때문에 지명타자로 많이 나오고 있다. 1루수로도 나오지만 지명타자 빈도가 더 많다. 그러나 2012년에는 웬 모험꾼이 최악의 부진을 겪는 바람에 시즌 중반에 1루수를 본의 아니게 다시 봤지만...[7] 2013년에는 그 모험꾼이 각성한 덕분에 지명타자 출장 빈도가 압도적으로 높다. 덕분에 골든글러브는 많이 탔다.

1.3 라이언 사도스키리포트

한국의 전설적인 타자지만 기량이 쇠퇴했다. 모든 타석에서 ‘테드 윌리엄스 시프트’를 사용할 것. 땅볼의 95%가 오른쪽을 향한다. 외야수들은 정위치를 지킬 것. 몸쪽 직구에 약하다. 쳐도 파울이 된다. 몸쪽 공에 손이 일찍 덮이고, 그래서 실망하고 나면 더 일찍 치러 나온다. 이때쯤에도 아직 아웃되지 않았다면 바깥쪽 낮은 직구가 효과적이다. 오른손투수들은 커브나 슬라이더를 던지면 안 된다. 체인지업은 통하겠지만 직구가 더 나은 해결책이다. 좌투수는 몸쪽 직구를 보여주고 나면 슬라이더로 헛스윙을 유도할 수 있다. 주력은 평균 정도지만 상황 판단이 좋다. 세 명의 1루수 중에 수비력이 가장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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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꿈보다 돈을 사랑하는 남자?

이승엽은 2004년과 2007년 자유계약신분으로 미국에 진출 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으나, 각각 지바 롯데와 2년 5억엔,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4년 30억엔의 계약을 맺으며 미국 진출을 포기한다. 그의 이러한 선택을 두고 일각에서는 돈을 위해 꿈을 포기한 것으로 해석한다. 2004년 그가 다저스로부터 제시 받은 계약규모는 100만 달러 정도의 마이너계약[8]이었으며, 2007년에는 구체적인 협상 내용이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요미우리에서 당시 일본프로야구 외국인 최고 수준의 연봉을 받았으니 금전적으로 미국행보다 NPB에 남는 것이 이득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또한 팀을 정상으로 올려놓기 위해서라는건 FA선수들이 밥먹듯이 하는 말이다. 류중일도 말했는데 야구는 1명이 잘한다고 이기는 스포츠가 아니다.이승엽이 요미우리에 잔류하지않고 메이저리그에 갔다고 요미우리가 우승을 못한다고 생각 자체가 틀렸다는 것이다. 실제로 2006,2007 이승엽이 그나마 일본에서 평타이상칠때는 팀은 우승하지못했다. 그리고 먹튀가 된 2009년에 요미우리가 우승한다. 팀을 정상으로 올리겠다는건 형식적인 말이라는것이다. 솔직한 이유는 우승을 하고싶어서[9]가 맞다. 팀이 잘나가는 팀이여야 분위기도 있고 신나는법이다. 비밀번호를 찍는 팀보다는 훨씬 팀 분위기가 좋기떄문에다. 다른 솔직한 이유로는 당시 메이저리그에 가서 성공할수있을지는 미지수였다.[10]KBO에서 슈퍼스타였는데 일본에 와서는 타이틀1개도 수상못했으니 메이저리그에 가서 데뷔시즌을 2004년처럼 망할경우 몸값은 4년30억엔만큼 파격적인 금액에서 반토막 났을것이다.실제로 갔다면 그랫을것이다. 2007~2011년 성적을본다면 그래서 도박보단 안전하게 30억엔을 받은것이다. 이승엽을 아는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이승엽은 도박같은걸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다. 또한 2009년 요미우리가 우승했는데 이대호,오승환처럼최향남도 갑툭튀 메이저도전을 했는데 메이저리그 도전이 아닌 7억5천엔이라도 먹튀한것은 위 내용을 뒷받침해준다. 2010년 부활을 노렸다고 반론할수 있는데 2010년 이승엽 성적을 본다면 그런말을 할 수 없을것이다.

반론
프로가 돈을 거부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 더구나 그가 해외로 진출한 2004년 당시에는 KBO에서 메이저리그로 직행한 선수가 단 한명도 없었을 뿐 아니라, 리그의 수준차와 위상을 감안할 때 일본프로야구로 진출하는 것 역시 충분한 도전의 가치가 있었음이 사실이다. 2007년 다시 한 번 메이저리그 진출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가 이를 포기하고 요미우리에 잔류한 이유는 팀을 일본 정상으로 올려놓기 위해서였다[11]. 이는 그가 요미우리에 잔류한 직후부터 본인이 누누히 밝혀온 내용이고, 이는 실제 계약 조건에 요미우리가 일본시리즈에서 우승할 경우 메이저리그 진출을 보장한다는 옵션을 건 것으로도 충분히 증명된다. 더군다나 당시 그는 메이저리그의 모구단으로부터 상당히 좋은 조건의 계약을 제시받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2003년 양키스와 계약한 마쓰이의 경우를 참고하면 WBC와 NPB에서 대활약한 이승엽이 메이저리그에 갔다면 이대호처럼 1년간 리그적응 검증후에 대박계약을 노려볼수있었을수도 있었다.

3 일본시절 먹튀. 국내용? 국제용?

주장
이승엽은 2004~2011년까지 일본프로야구에서 총 8시즌을 뛰었는데, 05~07 3시즌은 꽤 준수한 활약을 펼쳤으나 그 외의 기간은 부진했고, 결국 2012년 한국으로 복귀한다. 그가 먹튀라는 오명을 얻게 된 이유는 이러한 기나긴 부진에 요인하는 것으로 특히 요미우리와 초대형 계약을 맺은 이후 3시즌 동안 극도로 부진하여 제대로 된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그는 04~05시즌 지바롯데와 2년 5억엔, 06시즌 요미우리와 1년 2억 1000만엔, 07~10시즌 요미우리와 4년 30억엔, 11시즌 오릭스와 1+1년 연봉 1억 5000만엔 수준의 계약을 맺었는데, 연봉으로만 따지면 04~06시즌이 대략 20위권, 07~10시즌이 일본 최고 수준, 11시즌이 40~50위권 정도로 리그 탑이었던 07~10 이외의 시즌에서도 얼추 상위에 속하는 연봉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일본시절 커리어를 보면, 2루타, 홈런, 장타율, 타점, OPS 등의 주요 공격지표에서 10위권 안팎의 성적을 찍으며 그럭저럭 돈 값을 한 05시즌이나 연봉 대비 몇 배의 활약을 펼친 06시즌을 제외하고는 30억엔 계약후 07은 어느정도 면죄부가 된다해도 수준 이하의 성적을 찍은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먹튀라는 오명을 씻기는 어려우며, 논쟁의 여지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보면 그가 소위 말하는 국내용 타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 수 밖에 없는데, 국내복귀 직후 시즌은 2012년과 일본에서 부진했던 시즌인 2008~2011년을 본다면 마치 다른 사람같은 성적을 내고있다. 더구나 2014년엔 3할30홈런100타점을 할 정도로 기량은 죽지않았다물론 이승엽이 2013년 극도로 부진했던 이유는 순간적으로 KBO리그의 수준이 NPB수준으로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런건 불리하니까 언급하지 말자.이승엽의 나이를 고려한다면 일본 성적과 매우 매치가 되지않는다. 일본가기전인 1997~2003년까진 역대급타자였지만 2004~2011년에는 2할5푼에 평균 20홈런의 선풍기가 되버렸고 국내 돌아오자마자 30대 후반나이에 다시 활약한다는것 자체가 국내용타자라는것을 뒷받침해준다. 이런 국내용선수로는 윤석민, 이병규, 김태균, 이범호 등등 의외로 많다. 이승엽이 오승환, 이대호처럼 해외에서도 최정상급 활약할 수 있는 선수가 아니였을뿐이지 KBO에서만 뛰었다면 양준혁을 압도할만한 통산성적을 만들었을 것이다.MVP5번=>MVP8번은 받았을 지도 모른다.

반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고려해야 할 것은 있다. 선동열 이후 국내리그를 평정하고 일본으로 진출하는 한국선수들이 받는 연봉은 외국인 선수 최고수준이다. 마이너리그에서 NPB로 진출하는 외국인 선수들이 처음에는 적은 금액으로 시작해서 그 활약 여부에 따라 대박 계약을 맺는 경우가 많은 것을 감안하면, 한국선수들은 상당히 특별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알고 보면 단순한데, 한국선수들의 경우 구단에서 중계권을 팔아 연봉 이상의 금액을 보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요미우리가 일본 최고연봉을 받는 이승엽을 마음대로 2군에 짱박아놓고 굴릴 수 있었던 것도, 이대호가 오릭스와의 재계약 과정에서 감정이 상해 소프트뱅크로 이적한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를 먹튀라 비난하는 것이 섬나라 구단의 재정을 걱정하는 오지랖에서 비롯된 것은 알겠지만, 걔네들은 손해보는 장사를 한 적이 없으니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12]

결론
이승엽의 5년은 분명히 NPB 상위권 타자라고 볼 수 없었지만, 2년은 NPB에서도 손꼽히는 슬러거였고 1년은 MVP(혹은 베스트나인)에 버금가는 시즌을 보냈다.
이대호와 비교했을 때 일본 커리어가 초라해질 뿐 주장에서 언급한 이병규, 이범호, 김태균과는 같은 선상에서 논의될 수 없으며, 오히려 진출 당시에는 보잘것없는 성적을 남겼지만 독한 노력을 통해 짧은 시간의 전성기를 보내고 노쇠화된 선동열에 비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KBO 출신 선수들이 일본에 많이 진출했지만 2년 이상 성공적인 시즌을 보낸 인물이 이대호, 오승환, 선동열, 이승엽 정도임을 생각해보자. 이승엽이 먹튀라는 건 사실이지만 최소한 전성기 시절은 국내용 타자라고 볼 수 없다.

4 탁구장+타고투저로 고평가된 타자?

단일 시즌 WAR로 볼 때 이승엽은 역대 타자 중 5위입니다.[13]
WAR로 보는 이승엽 커리어하이는 99년 9.72다.02년은 9.7로 역대 5위에 랭크되어있다. 그만큼 이승엽 홈런수가 많지만 타고투저현상이 심해서 낮은 점수를 받은 것이다. 물론 역대 타자5위라는 것도 대단한 것이다. 단 수치에 비해 팀 기여도는 떨어졌다는 얘기다. 03심정수가 WAR이 12점대다. 실제 기록으로 봐도 이승엽이 타이틀은 많이 가져갔지만 심정수가 MVP를 받아도 이상할게 없을정도로 전체적인 성적은 심정수도 잘했다.타자의 공격력을 객관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수치인 WRC+의 역대 단일시즌 순위를 보면 이승엽이 최고도 아니다[14]. 이승엽은 97·99·01~03시즌 총 5회의 홈런왕을 수상했으며, 특히 03시즌에는 56개의 홈런을 때려 프로야구 단일시즌 최다홈런 기록을 수립했으나, 당시 이승엽이 사용하던 구장의 규모와 리그의 분위기를 거론하며 그의 홈런 기록을 평가절하 하는 주장이 있다. 즉 당시 삼성의 홈구장이었던 대구시민야구장이 리그에서 가장 작은 규모였기 때문에 이승엽이 홈런에서 상당한 이득을 보았다는 주장과 그가 활약한 시즌은 대부분 타고투저 시즌이기 때문에 그의 홈런 개수에는 거품이 끼어 있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실제로 그가 03시즌에 기록한 56홈런 중, 홈 홈런의 비율은 62.5%로서 원정보다 월등히 높았으며, 그의 전성기인 97~03 7시즌 중 5시즌이 타고투저 시즌이었다.
이러한 논란은 그의 일본시절 커리어로까지 확대된다. 그의 커리어하이인 06시즌 41홈런은 홈런이 잘 나오는 도쿄돔에서 기록된 것이며, 당시 일본리그 또한 타고투저 시즌이었기 때문에 이 역시 거품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당시는 리그 총 홈런이 지금보다 1.5~2배는 더 많이 나오던 시절이었고, 도쿄톰의 홈런 파크팩터 또한 센트럴리그 최고 수준이었기 때문에 이 또한 나름대로 타당한 주장으로 보인다.

반론
2007년 넓이가 확장되기 이전 대구구장의 크기에 대한 오해가 있으므로 이에 대해 반드시 정리 해 둘 필요가 있다. 대구구장은 이승엽이 54홈런을 기록한 1999년에는 좌우거리 95m, 중앙거리 117m의 규모로서 당시 프로야구 홈구장으로 사용되던 11개 구장 중 중앙거리 5위, 좌우거리 7위 정도의 위치였다[15]. 나아가 이승엽이 56홈런을 기록한 2003년을 살펴보면, 7개 구장 중 중앙거리 5위, 좌우거리 4위 정도로 대체로 리그에서 중간정도의 크기로 볼 수 있다[16]. 더구나 사실상 가장 큰 잠실과 담장이 높은 사직구장을 제외한 나머지 5개 구장들은 대체로 비슷한 규모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유독 대구구장만이 특출나게 작은 구장으로 인식되어 탁구장이란 조롱을 받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즉, 대구구장은 옛날에도 평균정도의 규모를 가지는 구장이었으며, 확장을 하면서 국내에서 2~3번째로 큰 구장이 되었다고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다음으로 1999년 이승엽이 친 54개의 홈런을 분석해 보겠다. 그는 54개 중 중앙으로 22개, 우중간으로 15개, 우측으로 7개, 좌중간으로 9개, 좌측으로 1개의 홈런을 날렸다. 각 방면 홈런의 평균비거리는 중앙 123m, 우중간 120m, 우측 108.5m, 좌중간 110.5m이고, 좌측으로 넘긴 1개 홈런의 비거리는 125m이다. 전체 평균비거리는 118.5m이다. 홈런비거리는 기록원의 주관이 개입되기 때문에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기록원도 나름의 기준에 따라 최대한 근사치에 가깝게 기록할 것이며, 110m의 담장을 겨우 넘기는 홈런이 130m로 기록되지는 않을 것이므로 적어도 본 주제에 한해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홈런에 대한 특정 구장의 유·불리 여부를 따지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홈런 파크팩터가 활용되지만, 이는 팀의 구성원 등 여러 요인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2013년 잠실구장의 홈런 파크팩터는 두산일때 0.804, LG일때 0.699로 상당한 차이가 난다. 2003년의 대구구장 홈런 파크팩터는 1.274였지만 이듬해인 2004년에는 1.059로 급락한다. 파크팩터의 이러한 들쑥날쑥함을 보완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최소 3년 이상의 누적자료를 활용하지만, 그것마저도 부정확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수치들은 그저 대략적인 경향성만을 확인하기 위한 참고자료일 뿐 절대적 보정 수치로 활용할 수는 없다. 당시 프로야구 구장의 평균 크기는 96-116-96이고, 좌중간과 우중간은 중앙거리를 기준으로 4~5m짧은 것이 일반적이니까 대략 112m로 잡아도 무리가 없다. 이 정도 크기의 가상구장을 기준으로 하고 각 방면의 개별 홈런을 비교했을 경우 115m의 비거리를 기록한 중앙 3개의 홈런과 100~110m의 비거리를 기록한 좌·우중간 9개 홈런이 넘어가지 않은 것이 된다. 그러나 여기서 좌·우중간 7개 홈런이 생산된 대구구장의 좌·우중간 거리는 적어도 112~3m였을 것이므로 이 타구들은 실제로는 좌·우측에 가까운 위치에 떨어진 것들로 보아야 하며, 나머지 2개의 홈런들도 같은 사례들이기 때문에 좌·우중간 9개의 홈런은 어느 구장에서든 당연히 홈런이 되는 타구들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중앙으로 날아간 3개의 타구가 모두 홈런이 되지 않았다 치더라도, 50개 이상의 홈런을 쳤을 것으로 보아야 한다. 즉, 대구구장이 그 당시 특출나게 작은 구장은 아니었고, 따라서 그의 홈런 기록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승엽이 잠실을 홈으로 사용했더라면 홈런수가 급락했을 것이라는 주장을 하는 이들도 있지만, 잠실구장에서만 132경기를 치렀을 경우를 가정하여 적용하더라도 30+홈런은 거뜬했을 것으로 판단할 수 있고, 이미 다른 선수들과 크게 다를 것 없는 조건에서 훨씬 많은 수의 홈런을 쳐냈던 이승엽에게만 이런 극악의 가정을 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이승엽의 30+홈런 시즌인 97~03년에 기록된 총 홈런의 수는 302개이고 이 중 대구구장에서 친 홈런이 182개니까 60%로 평균보다 10% 높은 수치이다[17]. 참고로 2015시즌 KBO리그에서 각 팀별 홈런 TOP3에 랭크된 선수들의 홈런 홈/원정 비율을 살펴보면[18], 분명히 동일한 조건에서 활약한 선수들임에도 불구하고 비율 수치가 제각각으로 나타남을 알 수 있다. 삼성의 경우 박석민이나 최형우처럼 홈에서 더 많은 홈런을 친 선수들이 있는가 하면, 이승엽·나바로와 같이 원정에서 더 좋은 활약을 한 선수들도 있다. 롯데의 경우도 강민호는 홈에서 62.8%의 홈런을 기록했지만, 최준석은 홈에서 고작 35.4%의 홈런밖에 치지 못했다. 다른 구단에 속한 선수들 역시 잠실을 홈으로 사용하는 팀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구장에 따른 홈런수의 경감에서 특별한 연관성을 찾기 어렵다. 더불어 이승엽이 각각 54·56홈런을 기록한 1999·2003시즌 삼성 라이온즈 홈런 TOP3에 랭크된 선수들의 홈경기 홈런비율을 살펴보면, 이승엽보다 훨씬 높은 수치를 보이는 선수도 있고, 평균에 수렴하는 선수도 있는 것을 알 수 있다[19]. 구장의 크기가 이들의 홈런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면, 김기태, 마해영이 타석에 들어서면 구장의 크기가 극도로 줄어들었다가, 스미스, 양준혁이 들어서면 다시 고무줄처럼 쭉쭉 늘어났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이러한 사례에서도 확인 할 수 있듯 동일한 홈구장을 사용하는 선수들끼리도 홈런의 홈/원정 비율이 천차만별이다. 그 이유는 선수에 따라 홈에서 더 심리적인 안정감을 느끼기 때문일 수도 있고, 원정경기가 더 체질에 맞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냥 단순한 우연일 수도 있다. 물론 구장환경의 차이도 일정한 영향을 미칠 것이며, 이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다음으로 이승엽이 활약한 시기가 우연히 타고시즌과 겹치는 점을 들어 그의 홈런 기록을 폄하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의 전성기 시즌을 살펴보면 97·98년은 투고시즌, 99·00·01·02·03년은 타고시즌이라 할 수 있는데, 02·03년은 지표상 99·00·01년보다 타고가 상당히 완화된 시즌이었다[20]. 이 기간 그의 홈런 기록을 보면 32·38·54·36·39·47·56개로 투고시즌인 97·98년에도 30홈런 이상을 기록하고 있으며, 타고가 심했던 99·00·01년는 각각 54·36·39홈런을 때려 99년을 제외하면 투고 시즌과 홈런 생산력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이후 타고가 상당히 완화된 02·03년에는 오히려 47·56홈런을 때려 타고가 심했던 시절보다 더 많은 홈런을 치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승엽은 홈런수가 타고나 투고와 같은 시즌의 분위기에 따라 격동의 차이가 발생하는 유형의 타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또다른 프로야구 스타의 기록을 살펴보자. 이대호는 전성기라 할 수 있는 04~11년에 각각 20·21·26·29·18·28·44·27홈런을 기록했다. 이 중 04~05년은 타고시즌, 06~08년은 투고시즌, 09~10년은 타고시즌, 11년은 평균적인 시즌이었다[21]. 타고시즌과 투고시즌에 따른 홈런수의 경감에서 별다른 연관성을 찾을 수 없다. 이 선수는 연평균 23~4개 정도의 홈런을 치다가 10년에 갑자기 44개의 홈런을 때려 홈런왕에 올랐다. 이 기록은 거품이 한가득 낀 타고시즌의 유산으로 마땅히 까내려야 할 기록일까?

다음으로 그의 일본시절 구장환경과 홈런의 관계에 대해서도 정리해 보겠다.

도쿄돔의 구장형태와 정체불명의 상승기류[22]등 애매모호한 근거를 주워듣고는 막연히 이승엽이 홈런에서 엄청난 이득을 본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06~10년에 이승엽이 홈구장으로 사용한 도쿄돔의 홈런 파크팩터는 센트럴리그 최고 수준이지만, 1988년 도쿄돔 개장이후 요미우리의 클린업으로 활약한 파워히터들 중 이적한 선수들의 홈런수 증감 수치를 보면 특별히 구장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는 느낌이 없다[23]. 더불어 이승엽의 일본 시절 홈경기 홈런 비율을 살펴보면, 홈런 파크팩터가 퍼시픽리그 최악 수준이었던 지바마린스타디움에서조차 원정과 동일한 수의 홈런을 기록하고 있으며, 도쿄돔을 홈으로 사용하면서 이 비율이 7% 증가하지만, 이정도면 한 시즌 20홈런 기준[24]으로 불과 1.4개의 이득을 보고있는 것이 되므로 특별히 큰 수혜를 받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25]. 다시 말해 도쿄돔이 비교적 홈런이 나오기 쉬운 구장인 것은 사실이지만, 기본적으로 비거리가 긴 파워히터 유형의 타자인 이승엽에게 이러한 구장 환경은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그가 06시즌 기록한 41개 홈런의 개별 비거리 수치 분석으로도 충분히 증명된다[26]. 도쿄돔은 좌·우중간 길이가 110m로 짧기 때문에 홈런이 나오기 쉬운 구장으로 알려졌는데, 이승엽은 홈런 41개 중 14개를 도쿄돔의 좌·우중간으로 날렸다. 여기에 당시 센트럴리그 구장의 평균 좌·우중간 길이인 112.9m[27]를 기준으로 하면 넘어가지 않았을 홈런은 도쿄돔의 좌중간 담장을 살짝 넘어가 110m의 비거리를 기록한 19호 홈런 단 1개 뿐이다하필이면 지바마린스타디움에서 루공과 오심으로 취소된 홈런도 19호였다는 아이러니. 즉 나머지 40개의 홈런은 비거리상 리그 평균급 구장에서도 방향을 가리지 않고 모두 넘어가는 타구들이므로 이승엽이 도쿄돔을 홈으로 사용함으로써 얻은 이득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06년 이승엽의 성적에 대하여 단지 해당 시즌이 타고시즌이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평가절하되는 문제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있다. 사실 이런 식의 방법은 타고시즌에 타율 0.312을 기록하여 리그 18위에 오른 A선수와 투고시즌에 타율 0.276를 기록하여 리그 7위에 오른 B선수를 비교하여 B선수가 더 낫다는 주장을 하는 것에나 유용한 것이지 한 선수의 절대적인 성적을 파악하는 데는 당연히 적합한 방법이 아니다. 당시 이승엽이 거둔 성적의 가치는 그 기록의 리그내 위상에서 명백하게 보여지고 있다. 06시즌 이승엽은 센트럴리그 타율 2위, 홈런 2위, 안타 7위, 타점 4위, 득점 4위, ops 3위를 기록하여 거의 타격 전부문에 걸쳐 탑5 이상의 성적을 거두었으며, 우즈와 함께 일본프로야구 12개 구단 통틀어 40+홈런을 기록한 유이한 타자였다. 다시 말해 동시기에 경쟁한 선수들을 기준으로 그의 위상이 이 정도라는 것인데, 이러한 성적이 리그를 지배한 것이 아닌 별 볼일 없는 기록이라면, 도데체 어떤 성적이 리그를 지배한 것이 되는지 기가 막힐 노릇이다.

5 이승엽 vs 타이론 우즈

우즈가 훌륭하다
승까라면 꼭 나오는 이야기다. 우즈는 한국에 와서 98년 MVP를 차지한다. 여기에는 40홈런+잠실구장이라는 점에서 외국인차별을 이기고 수상했다 잠실홈런왕 김상호를 생각하면 쉽다.98년 기록으로만 본다면 이승엽이 받아도 이상할게 없었다. 그 이후 우즈는 KBO에서 이승엽에게 기록으로 사실상 이기지 못한다. 그러나 우즈는 이승엽보다 먼저 일본으로 가서 2004년 똑같은 용병신분으로 재대결을 하게되지만 우즈는 30대 중반이었고 이승엽은 20대 후반이었다는 점에서 이승엽이 더 유리했다.우즈와 7살 차이난다그러나 이승엽은 2004~2008년 우즈와 일본야구에서 1번도 이기지 못했다. 이승엽 팬들이 일본시절 밥값했다는 2005~2007년에도 우즈를 못 이겼다. 심지어는 40살인 우즈에게 일본에서 졌으니 말 다했다.

여기서 상당한 승까들에게 상당한 떡밥이 존재한다. 우즈와 이승엽 누가 더 대단한 타자인가? 일부 사람들은 KBO에선 이승엽 일본에선 우즈가 이겼다고 말하지만 그러면 이승엽<<<<<우즈 공식이 성립되는거다. 트리플AAA에서 이승엽이 이겨도 메이저에선 우즈가 이겼다면 당연히 우즈가 더 대단한 타자 아니겠는가? 상위리그에서 5년연속 이겼으면 부상핑계도 무의미하다. 또한 이승엽은 일본에서는 1번도 홈런왕을 못한다. 그런데 우즈는 홈런왕을 해봤다. 여기서 왜 KBO에선 이승엽이 이겼을까? 라는 의문이 존재하는데 이는 KBO외국인 차별이다.만약 동등하게 같은구장에서 승부했다면 이승엽은 심정수가 되지 않았을까?

이승엽이 훌륭하다
많은 사람들이 이승엽과 우즈를 비교하는 이유는 두 선수가 한때 KBO리그에서 라이벌관계를 형성하여 뜨거운 홈런레이스를 펼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리그의 역사를 반추해보면 사실 두 선수가 함께 활약한 5시즌 동안 그들이 독보적인 라이벌관계를 형성하여 홈런경쟁을 펼친 시기는 98 단 한 시즌뿐임을 알 수 있다[28]. 나머지 시즌은 로마이어·호세·스미스·마해영·박경완·심정수·페르난데스 등 이들에 못지않은 슬러거들이 대거 출현하여 춘추전국의 경쟁을 벌인 시기이다. 그런데 유독 이승엽과 우즈만이 비교대상이 되어 아직까지도 누가 더 뛰어난 타자인지를 따지는 소리가 끊이질 않는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두 선수 모두 나중에 NPB에 진출하여 활약했다지만, 02시즌 이승엽·심정수와 트로이카를 형성하여 98년보다 더 굉장한 홈런레이스를 펼쳤던 페르난데스 역시 비슷한 시기 NPB에 진출하여 다년간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언급되지 않는 것을 보면 꼭 그런 이유 때문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우즈와 이승엽이 비교되는 이유는 딱 두 가지로 정리 할 수 있다. 첫째, 상위리그인 NPB에 진출하여 성공한 우즈와 달리 이승엽은 실패했기 때문이다. 둘째 이렇게 뛰어난 우즈가 한국시절 이승엽에 뒤진 이유는 결국 홈구장 때문이었다는 논리를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29]. 더불어 페르난데스는 한국시절 이승엽과 그다지 차이가 없는 구장환경에서 활약하였기 때문에 입맛에 맞는 소재가 될 수 없었음을 추론 할 수 있다. 여기서 이승엽과 우즈를 끊임없이 비교하는 무리들의 성격과 목적을 어렵지 않게 짐작 할 수 있다. 그들은 그냥 이승엽을 까는데 있어 우즈를 가장 적절한 재료로 ‘선택’하였던 것이다.

한편 한국시절 우즈의 재평가와 관련하여 잠실과 함께 절대적으로 이용되는 것이 소위 ‘우즈존[30]’인데, 용병 차별이야 정도의 차이일 뿐 예나 지금이나 있어왔던 것이니 충분히 수긍 할 수 있는 문제지만 이것을 유독 이승엽과 결부시켜 마치 심판들이 이승엽을 밀어주기 위해 우즈를 견제한 결과라는 말도 안되는 억지의 근거로 활용하는 무리들이 문제다. 앞서 언급 했듯 이승엽과 우즈가 독보적으로 홈런경쟁을 펼친 시기는 98시즌뿐이고 그 외의 시기는 시즌마다 이승엽 외에도 국적을 불문하고 우즈와 경쟁관계를 형성했던 선수들이 많았다. 이승엽이 매년 우즈와 쫒고 쫒기는 홈런레이스를 펼친 것도 아닌데, 무슨 심판들이 단합하여 특정 선수를 위해 유독 우즈에게만 편파판정을 일삼는다는 것인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

다음 구장 문제에 대해서, 대구구장의 크기가 당시 KBO리그의 구장들 중 중간급에 해당하는 규모였음과 이승엽 역시 구장환경에 큰 영향을 받는 선수로 볼 수 없음은 앞서 충분히 설명 되었기에 상술하지 않는다.[31] 잠실이 대구구장보다 규모가 큰 것은 확실하지만, 이것이 홈런수의 증감에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치는지는 증명하기 어려운 영역이다[32]. 이승엽과 우즈가 5년 동안 생산한 홈런은 각각 215/174개로서 이승엽이 41개를 앞서는데 대략 한 시즌 분량의 홈런을 더 친 셈이다. 정확한 수치가 될 수는 없겠지만, 두 선수가 구장 크기와 관련이 떨어지는 홈런 이외의 지표에서 어느 정도의 차이를 보이는지 확인하기 위해 동일한 수의 홈런을 친 것으로 가정[33]하여 장타율과 OPS의 평균을 구해보았다. 그 결과, 장타율은 우즈가 0.592, 이승엽이 0.634로 0.042를 이승엽이 앞서고, OPS는 우즈가 0.985, 이승엽이 1.057로 0.072를 이승엽이 앞선다. 이 정도의 차이라면 리그 순위로는 장타율이 2~3위, OPS가 3~4위 이상 벌어지는 수준인데, 극악의 경우를 가정하여 우즈가 이승엽 보다 많은 홈런을 친 것으로 보더라도, 전체적으로 그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활약을 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정리하자면 두 선수가 같은 수의 홈런을 생산했을 것으로 가정하더라도 이 정도의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실제 홈런 격차를 그대로 반영할 경우 차이는 격단의 영역으로 벌어지게 된다. 이와 더불어 우즈가 174개의 홈런 중 47%의 홈런을 홈에서 기록한 사실 역시 주목된다. 앞서 홈런의 홈/원정 비율은 선수마다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이를 따지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잠실은 워낙 급이 다른 규모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유의미한 수치를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잠실을 홈으로 사용한 선수들 중 홈런 20개 이상을 기록한 타자들의 홈/원정 홈런 비율을 살펴보면, 홈에서 원정보다 많은 홈런을 친 타자도 전무할뿐더러 일관적으로 홈 홈런의 비율이 40%이하로 떨어지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우즈에게는 예외다. 우즈 역시 홈 홈런의 비율이 원정보다 다소 떨어지지만 그 차이는 미미하여 거의 평균에 수렴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우즈는 구장 환경을 별로 타는 타입의 선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그의 일본시절 기록을 통해서도 증명이 되는데, 센트럴리그에서 평균 이상으로 많은 홈런이 나오던 요코하마구장 시절의 2년과 최악의 홈런 파크팩터를 보여주던 나고야돔 시절 2년의 홈런 수를 비교해보아도 40-45-38-47홈런으로 별로 구장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는 느낌이 없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우즈가 잠실을 홈으로 사용함으로써 홈런 수에서 큰 손해를 본 것으로 보려면, 최소한 다른 선수들과 같이 규모가 작은 원정 구장에서 6~70%이상의 홈런을 기록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우즈가 잠실이 아닌 다른 구장을 홈으로 사용했다면 홈런 50개를 쳤을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지만, 위의 사실을 고려한다면 다른 구장을 사용했다고 해도 그 차이는 많아야 3~4개일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렇듯 한국시절 이승엽은 우즈보다 명백히 한 단계 위의 선수였다. 일반적으로 하위리그에서 똑같이 S급의 성적을 찍은 선수들이라도 상위리그로 가면 변별력이 높아지기 때문에 수준차가 확인된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지만[34], 이 논리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한국에서의 우즈는 이승엽과 비슷하기는커녕 최소 한 단계 이상 떨어지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이를 곧이곧대로 적용 할 수는 없다. 이승엽이 일본에서 부진한 원인을 누군가는 약점을 간파당해 집요하게 공략당한 것에서 찾기도 하지만 투수가 타자의 약점을 공략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일본리그 진출 4년차에야 약점이 간파되었다고 믿는 사람들은 야구를 모르는 것으로 밖에 해석할 수 없다. 이승엽의 약점은 이미 그가 1년차일 때부터 간파되었다. [35]
그 상황에서 폼이 떨어지고 타석에서의 인내심이 줄어들며[36] 08년 이후로는 공갈포로 전락하게 되었다.

원인은 본인에게서 찾아야하는데, 왜 08~11년까지 4년동안 부진했던것인가? 그리고 KBO에서 MVP만 5번 받은 KBO의 슈퍼스타인데[37] 일본가서 한 차례도 타이틀을 수상해보지 못했는데 왜일까?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2004년같은경우엔 문화가 다른 해외 리그에 대한 적응문제 및 부상후유증으로 인한 멘탈 붕괴가 주요한 원인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론이 성립된다.한국으로 오는 외국인 선수들은 KBO리그보다 수준이 높은 AAA에서 준수한 성적을 기록한 선수들이 많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들이 한국에서 성공을 거둘 확률은 절반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일례로 2011년 삼성에서 활약한 라이언 가코(Ryan Garko)는 거의 현역 메이저리거로 볼 수 있는 선수였는데, 커리어상 3할 30홈런을 충분히 기대 할 수 있는 실력이었으나 리그 적응에 실패하며 0.248 1홈런 28타점의 초라한 성적을 남기고 퇴출되었다. 이와 더불어 KBO리그에서 가장 성공한 용병으로 꼽히는 우즈 역시 메이저리그라고는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선수였다는 것을 감안한다면[38] 선수의 적응력이나 멘탈이 해외 리그에서의 성공과 실패 여부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인 것만은 부정 할 수 없다. 이승엽은 일본 커리어 내내 우즈를 앞서지 못했지만, 우즈는 이미 한국에서 해외 리그에 대한 적응 경험을 마친 선수였고, 이승엽은 그렇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미 큰 차이가 있다. 특히 이승엽의 후반 4년은 손가락 수술 이후의 부진으로 멘탈이 깨진 상태에서 빨리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조급하게 폼 교정을 시도하다 좋았던 시절의 타격 매커니즘까지 완전히 무너진 상태였다는 것을 감안할 필요도 있다.

멘탈도 실력이라는 말이 본인들의 사례에 대입해 보면 무책임한 말일 수는 있다. 다만 프로 선수를 판단하는 기본적인 기준은 그 선수가 리그에서 쌓은 스텟이 기초가 되어야 하므로 멘탈과 적응에 대한 문제가 일본 후반기의 실패를 분석하는 원인이 될 수는 있겠지만 '이승엽이 적응력이 더 좋았다면 우즈를 이길(혹은 그에 버금갈) 수 있었다' 라고는 보는 것은 사실 증명 할 수 없는 영역이다. 모든 스포츠에 만약이란 없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한국에서는 이승엽이 우즈를 압도했으나, 상위리그인 일본에서는 우즈가 이승엽을 압도했다.[39] 그러나 한국보다 수준 높은 리그에서 준수한 성적을 거둔 용병들도 한국에서 평균 이하의 활약으로 퇴출된 사례들이 무수히 많다. 이들의 사례는 적응력 문제로 보는 사람들이 유독 이승엽과 우즈의 사례는 실력차로 보려고 한다. 본인이 정말 객관적인 시각으로 이 문제를 보고 있는지 그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기 선수를 까기 위한 천박한 의도를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 곰곰이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다음으로 정말 뭐만하면 이승엽이 잠실에서 뛰었으면 김동주급이니 심정수급[40]이니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하는 무리들이 있다. 그들이 이승엽과 이들을 비교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우즈가 이승엽보다 뛰어나야하는데, 가만히 찾아보니 잠실에서 우즈 다음의 거포라고 할 만한 이들이 김동주나 심정수였다[41]. 위에서 우즈와 이승엽을 비교한 것과 마찬가지로 이들의 스탯을 정리해봤자 우즈보다도 떨어질 것이므로 의미가 없다[42]. 여기서 김동주는 선수시절 내내 두산에서 활약하여 검증이 어려운 편이지만, 심정수는 전성기에 현대로 이적하였기 때문에 이를 참고 할 수 있다[43]. 심정수는 두산시절인 99·00년에 각각 31·29홈런을 기록하고 다음해 현대로 이적하여 18홈런을 기록했는데, 오히려 현대로 이적한 당해년도에는 직전 시즌보다 홈런수가 크게 준 것을 알 수 있다[44]. 뭐 야구선수가 언제나 일관된 활약을 할 수 는 없으므로 별 문제가 아닐 수는 있는데, 결정적으로 그가 두산에서 가장 많은 홈런을 쳤던 99시즌과 현대에서 가장 많은 홈런을 쳤던 03시즌 홈런의 홈/원정 비율를 보면, 각각 45.2%와 43.4%를 보여 전혀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45]. 일반적으로 심정수는 ‘탈잠실 효과[46]'의 대표적인 선수로 거론되지만 이렇게 보면 그는 우즈와 마찬가지로 구장 환경에 관계없이 홈런을 날리던 타자였음을 알 수 있다. 즉, 그가 잠실을 벗어났기 때문에 이승엽과 비견되는 홈런타자가 된 것이 아니라 그냥 02~03년도에 기량이 절정에 달했던 것이다. 전성기에 47~56홈런을 치던 이승엽이 잠실에 가면 30홈런이 간당간당한 타자가 된다? 억지만 부리지 말고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지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6 서승화와 난투극

주장
국민타자의 흑역사중 가장 지우고싶은 탑3

2003년 아시아 홈런 신기록을 쓰고있던 도중 평범한?벤치 클리어링아닌 주먹다짐 난투극+출장정지로 이승엽하면 떠오르는 겸손, 매너, 인성과 매우 괴리감이 느껴지는 사건이다. 펠릭스 호세가 2001년 배영수에게 참교육과 비슷한데 호세는 이 참교육으로 출장정지와 2001년 성적만 보았을 때 MVP는 역대 단일시즌 OPS 3위, 출루율 1위 기록으로 호세가 1순위엿는데 참교육1방으로 골든글러브까지 날라갔다는 점에서 이승엽이 2003년 난투극을 하고도 호세처럼 MVP, 골글 수상 못한것도 아니라서 승까들은 2001년 호세가 MVP 못 받았으니까 2003년 MVP도 이승엽이 받지 말았어야 했다고 주장한다. 또한 벤치클리어링에서 주먹이 오고간 사건은 거의 드물며호세:??? 이승엽이 그 중 1명인데 그의 인성에 대한 평가는 서승화와의 난투극을 보았을 때 전혀 합당해 보이지 않는다.

승빠들은 서승화같은 쓰레기 투수에게 국민타자가 참교육으로 응징해 준거고 서승화같은 2승 23패 투수를 언급하지 말라고 말한다.빠가 까를 만든다ㄷㄷ 아무리 승빠들이 옹호를 해도 이승엽이 벤치클리어링에서 폭력을 휘두른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며 그 당시 이승엽 나이는 28세라는 점에서 어렸을 때라고 변명도 힘들다. 시즌 후 일본으로 가지만... 2004년은 시원하게 망했다.

이승엽도 "모범이 되어야할 프로선수가 이런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면서 잘못된 모습을 보인 것을 후회한다고 언급했다.

반론
여기서 문제는 이승엽의 난투가 올바른 행실이니 아니니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경기중 난투는 분명히 잘못된 행동임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이 사건을 가지고 그의 겸손이거랑은 무슨 상관이지? 그냥 아는 단어 막 갖다 붙인건가, 매너, 인성과 관련지어 억지로 그를 까내리려고 하는 무리들이 문제다. 여기서 해당 사건을 제시하는 무리들의 목적이 이승엽에 관한 사건을 정리하는 차원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당시 삼성과 LG의 경기는 경기 초부터 벌어진 사구 등의 문제로 인해 두 팀 간의 감정이 극에 달한 상황이었고, 이승엽 또한 이미 당일 경기에서 고의성 사구를 맞은 상태였다. 그리고 9회 벤치클리어링이 발생하고 이승엽과 서승화의 난투가 벌어졌다. 비록 이승엽이 사구를 맞기는 하였으나 엄밀히 말하면 서승화가 가해자는 아니었다. 더구나 서승화는 그 당시 거의 주목받지 못한 어린 선수였기 때문에 프로야구 최고의 스타였던 이승엽에게 여론이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갔다는 일말의 변명이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서승화는 이 사건 이후 그가 은퇴할 때 까지 끊임없이 벌어진 일련의 팩트[47]로 인해 동료의식이라고는 눈을 씻고도 찾을 수 없는 인성 쓰레기의 깡패였음이 명백하게 밝혀졌기에 그를 감싸는 여론 역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이런 일련의 상황을 보면 당시 이승엽이 왜 그에게 화가 났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이승엽은 이후 평소 서승화의 행실에 문제가 있어 감정이 상한 상태[48]였다는 요지의 인터뷰를 했다. KBO에서는 이 사건이 우발적으로 벌어진 것으로 판단하여 비교적 가벼운 징계를 내리는 것으로 마무리하였다. 이승엽은 이후 인터뷰에서 직접 당사자들이 만나 화해했으며, 본인도 그때의 일을 후회한다고 자신이 잘못한 부분을 인정하고 반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무리들은 이 사건을 끌어다 그의 인성을 폄훼하는 하나의 소재로 이용함을 주저하지 않는다. 이 사건의 이승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사람마다 다른데 프로야구 역사상 몇 안되는 경기장 선수 폭력사건이자 어린 아이들에게는 문화 충격이기 떄문이다.호세님 참교육말고 또 있었냐? 이승엽의 실수라 보고 10년이 넘은 이야기+추가 사건 없음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저런 어린이들 앞에서 싸움질이나 하는게 레전드냐? 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이 관점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이승엽의 경기장 선수 폭력사건가지고 서로 거친 논쟁을 할 필요는 없다. 대통령이 모든 국민에게 지지받을 수 없듯이 그냥 아직도 과거를 가지고 물고 늘어지는 저런 사람도 있구나 하고 넘어가면 된다.

7 아쉬운 팬 서비스

기부 등의 봉사활동은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으며, 여러 미담들이 있지만 야구장에서의 팬 서비스에 대해서는 인색하다. 말을 걸어도 무시하기는 기본이고 팬 사인도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 본인 말로는 여태까지 많이 해줘서 희소가치가 떨어지는 걸 막기 위해서라고 하며, 또 다른 이유로는 자기가 해준 사인볼이 중고나라같은 중고 사이트에 올려진걸 보고 꺼려한다고 한다.

전자는 일고의 말할 가치 없이 잘못된 생각이고, 후자의 경우 사인을 해 주는 입장에선 선의로 해 준 사인이 금전적 가치로 통용되는 것에 불쾌해 할 만은 하다. 일각에서는 사인에 받는 사람 이름을 같이 기재하거나 사실 상 사인을 뿌리는 식으로 해서 매물가를 엄청나게 떨어트려 결과적으로 사인의 중고거래를 억제하는 방법을 운운하기도 하지만 애당초 팬서비스라는 게 마냥 경제적이고 전략적인 논리로만 접근할 일은 아니라는 게 문제. 일단 사인을 잘 안 해준다는 것 하나만 가지고 팬들을 귀찮아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이승엽 정도의 스타에 대한 기대치를 생각하면 아쉬운 점일듯.

메이저리거들의 경우에도 판매용 싸인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이 상당히 많지만 그런 이유로 싸인을 거절해주지 않는다. 한 예로 페르난도 발렌수엘라의 경우에는 판매용으로 쓰지 못하게 야구공의 싸인 위치를 약간 틀어서 해줄지언정[49] 팬들의 싸인 요구를 거절한적은 없다.

Q. 이승엽 선수는 싸인 잘 해주는 편이신가요?

이승엽: 아뇨. 싸인 잘 안해줍니다.
Q. 이유가?
이승엽 : 제가 너무 많이 해 드렸던거 같습니다. 지금까지. 예전부터 너무나 많이 해드렸기 때문에 싸인에 대한 노이로제. 예전에 지인들, 팀에서 원하는 것, 팬들이 원하는 것들을 해드리다보니까 싸인에 대한 희소가치가 아무래도 좀 떨어지겠죠.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서 직거래가 되는 걸 봤을땐 '아 내가 해줘서는 안되는 거구나' 그래서 웬만하면 안해드리려고 하고 있어요. 그래서 어린이 팬들이나, 공에다 이름을 써달라고 하는 분들에게만 해드리고, WBC 기념볼 같은 공에 요구하면 제가 좀 의심...그래서 사실 좀 줄이고 있어요. 하지만 올해 다시 달리 마음을 먹어서 웬만하면 해드릴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승엽이 사인에 인색한 이유는?

일단 '은퇴 얼마 안 남았으니 팬 서비스 잘해주겠다'라는 말을 남겼는데 그대로 지켜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2016시즌 한 삼팬이 잠실야구장에서 본 모습으로는 여전히 싸인 안해주고 있다고. 싸인 잘해주는 놈들과 안해주는 놈들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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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후술하겠지만 이승엽의 1루 수비는 일본에서도 최정상급이었다.
  2. 일본에서 이승엽의 스탯은 장타율이 더 높다는 것을 제외하면 한국에서 김상현의 스탯과 매우 유사하다.
  3. 역시 FA로 거인으로 온 키요하라 카즈히로가 겪었던 테크트리이다.
  4. 통산 도루 성공률은 정확히 70%
  5. 이종범보다도 좋은 수치. 이종범은 우타자라 불리한 면이 있긴 하지만.
  6. 1995시즌만 놓고보면 이동수의 성적이 좋았기 때문인데, 95년 이동수는 22홈런을 기록했다. 참고로 이승엽은 13홈런.
  7. 이 상황에서 1루 백업으로 선택된 선수가 강봉규. 딱 기대치만큼의 1루 수비를 보여주긴 했다.
  8. 당시 한국야구를 평가하는 미국야구의 시각이 이 정도였기 때문에 국내 프로야구 선수가 메이저리그 계약을 맺기 위해서는 사실상 일본에서 실력을 검증받은 다음이 될 수밖에 없었고, 이는 류현진 이전의 일반적인 패턴이었다.
  9. 메이저리그에 하위권팀에 갈 바에는 강팀에 남고싶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승엽이 있던팀들은 모두 가을야구 갈수있는 강팀이였다 오릭스가 유일한 약팀인데 이때는 국내복귀를 하고싶었는데 선동열 덕분에 1년을 더 일본에 있어야해서 그랬다.
  10. KBO에서는 밥먹듯이 타이틀을 땃지만 일본와서 3시즌동안 타이틀갯수가 0이였다. 8시즌으로 봐도 타이틀은 0개다
  11. 물론 가족을 위해 보다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싶은 욕구도 있었을 것이다.
  12. 말을 상당히 함부로 적어놨는데 일본구단 걱정해서 이승엽을 먹튀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당시 이승엽의 대한 관심과 기대감이 대단했으므로 그의 대한 실망에서 비롯된 이야기다. 이딴 소리를 반론이라고 적어놓은게 우스울 따름
  13. 1위는 이종범, 2위는 심정수, 3위는 장종훈, 4위는 테임즈.
  14. 1위 82백인천 227.0 / 2위 15테임즈 222.4 / 3위 83장효조 215.4 / 4위 93양준혁 212.0 / 5위 03심정수 210.7
  15. 잠실:95-125-95(2.5) / 군산:98-122-98(2.3?) / 수원:95-120-95(2.5) / 사직:95-118-95(4.8) / 대구:95-117-95(3.0) / 마산:97-116-97(2.0) / 대전:99-115-99(2.5) / 광주:98-114-98(2.1?) / 청주:99-110-99(2.5?) / 전주:98-110-98(5.8) / 도원:91-110-91(4.8) --> 평균:96-116-96(3.2) 이었다.
  16. 잠실:100-125-100(2.6?) / 문학:95-120-95(2.8) / 수원:95-120-95(2.5) / 사직:95-118-95(4.8) / 대구:95-117-95(3.0) / 대전:97-114-97(2.5) / 광주:97-113-97(2.1?) --> 평균:96-118-96(2.9)
  17. ‘목동 홈런왕’이라는 누명을 쓴 박병호가 2014년 기록한 홈경기 홈런 비율은 67.3%다. 어떤 이는 이것이 이승엽의 홈경기 홈런수치와 비슷하기 때문에 그의 홈런이 구장빨이라고 주장한다. 참고로 박병호와 동일한 년도 동일한 팀에서 동일한 구장을 사용한 강정호가 홈경기에서 기록한 홈런의 비율은 52.5%로 평균에 수렴한다. 상식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18. ●SK ▫브라운14/28(50%) ▫박정권17/21(80.9%) ▫이재원6/17(35.3%) ▫최정5/17(29.4%) ●삼성 ▫나바로19/48(43.2%) ▫최형우19/33(57.5%) ▫이승엽9/26(34.6%) ▫박석민17/26(65.3%) ●두산 ▫김현수 11/28(39.3%) ▫양의지 6/20(30%) ▫오재일4/14(28.5%) ●롯데 ▫강민호22/35(62.8%) ▫최준석 11/31(35.4%) ▫아두치16/28(57.1%) ▫황재균19/26(73%) ●KIA ▫이범호12/28(42.8%) ▫필15/22(68.2%) ▫김주찬7/18(38.9%) ●LG ▫박용택4/18(22.2%) ▫오지환 2/11(18.2%) ▫히메네스2/11(18.2%) ▫이병규2/11(18.2%) ●넥센 ▫박병호28/53(52.8%) ▫스나이더16/26(61.5%) ▫유한준19/23(82.6%) ●한화 ▫김태균7/21(33.3%) ▫최진행7/18(38.8%) ▫김경언10/16(62.5%) ▫김회성8/16(50%) ●NC ▫테임즈24/47(51%) ▫나성범16/28(57.1%) ▫이호준 12/24(50%) ●kt ▫ 김상현12/27(44.4%) ▫박경수14/22(63.6%) ▫마르테10/20(50%)
  19. ●1999년 ▫이승엽32/54(59.2%) ▫스미스21/40(52.5%) ▫김기태 20/28(71.4%) ●2003년 ▫이승엽35/56(62.5%) ▫마해영26/38(68.4%) ▫양준혁17/33(51.5%)
  20. 경기당 득점 비율(100이상은 타고, 100이하는 투고) --> 97년:97 / 98년:97 / 99년:119 / 00년:111 / 01년:114 / 02년:102 / 03년:102 (출처:statiz)
  21. 경기당 득점 비율(100이상은 타고, 100이하는 투고) --> 04년:103 / 05년:101 / 06년:87 / 07년:94 / 08년:99 / 09년:114 / 10년:110 / 11년:100 (출처:statiz)
  22. 돔 내부의 온도차나 환기시설에 의한 상승기류는 도쿄돔뿐 아닌 어떤 돔구장에서든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특별히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볼 수는 없다. 다만 도쿄돔에서는 관중석 상단에 천장의 형태를 유지하기 위한 송풍기를 설치한 것이 문제가 된다. 즉 플라이볼이 될 타구가 일정 고도에 다다르면, 송풍기에서 주입되는 공기의 영향으로 비거리가 늘어나 홈런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이승엽과 같은 파워히터들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승엽이 05년 지바롯데에서 기록한 30개 홈런의 평균비거리는 120m이고, 06년 요미우리에서 기록한 41개 홈런의 평균비거리는 121.2m로서 불과 1m정도 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하물며 06시즌은 벌크업으로 인한 파워상승으로 홈런의 비거리가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질적으로 도쿄돔은 이승엽의 홈런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23. ● 落合 博満 (Ochiai Hiromitsu) : 17 -> 15 (1993~1994) (나고야구장 -> 도쿄돔) ● 広澤 克実 (Hirosawa Katsumi) : 26 -> 20 (1994~1995) (메이지진구구장 -> 도쿄돔) ● ジャック・ハウエル (Jack Howell) : 20 -> 14 (1994~1995) (메이지진구구장 -> 도쿄돔) ● 清原 和博 (Kiyohara Kazuhiro) : 31 -> 32 (1996~1997) (세이부프린스구장 -> 도쿄돔) ● ドミンゴ・マルティネス (Domingo Martinez) : 30 -> 16 (1998~1999) (세이부프린스구장 -> 도쿄돔) ● 江藤 智 (Eto Akira) : 27 -> 32 (1999~2000) (히로시마시민구장 -> 도쿄돔) ● 小久保 裕紀 (Kokubo Hroki) : 32 -> 41 (2002~2003) (후쿠오카돔 -> 도쿄돔) ● ロベルト・ペタジーニ (Roberto Petagine) : 41 -> 34 (2002~2003) (메이지진구구장 -> 도쿄돔) ● タフィ・ローズ (Tuffy Rhodes) : 51 -> 45 (2003~2004) (오사카돔 -> 도쿄돔) ● 李承燁 (Lee Seung-yeop) : 30 -> 41 (2005~2006) (지바마린스타디움 -> 도쿄돔) ● 小笠原 道大 (Ogasawara Michihiro) : 32 -> 31 (2006~2007) (삿포로돔 -> 도쿄돔) ● アレックス・ラミレス (Alex Ramírez) : 29 -> 45 (2007~2008) (메이지진구구장 -> 도쿄돔) ● 村田 修一 (Murata Shuichi) : 20 -> 12 (2011~2012) (요코하마스타디움 -> 도쿄돔) ● ホセ・ロペス (José López) : 22 -> 25 (2014~2015) (도쿄돔 -> 요코하마스타디움) 나고야구장·메이지진구구장·히로시마시민구장·요코하마스타디움은 도쿄돔보다 작은 구장, 세이부프린스구장은 비슷한 크기, 후쿠오카돔·오사카돔·지바마린스타디움·삿포로돔은 도쿄돔보다 큰 구장이라고 할 수 있다.
  24. 요미우리 시절 이승엽의 평균 홈런 수
  25. ● 지바롯데 마린즈 : 22/44 (50%) ● 요미우리 자이언츠 : 59(2)/100 (59%) ● 오릭스 버팔로스 : 9(3)/15 (60%) 요미우리 시절 홈경기 홈런 중 2개는 각각 삿포로돔과 오사카돔에서 기록한 것, 오릭스 시절의 홈경기 홈런 중 3개는 홋토못토필드고베에서 기록한 것
  26. 41개 중 35개는 미디어의 보도내용을 활용하였고, 기사를 찾지 못한 6개 홈런은 유튜브에 업로드되어 있는 영상자료를 참고하여 추정하였다. 추정한 홈런은 1호(우중간115m)·26호(좌중간115m)·27호(우중간115m)·29호(중월120m)·31호(중월125m)·41호(좌중간115m)임을 밝혀둔다.
  27. 고시엔구장:118m / 나고야돔:116m / 메이지진구구장:112.3m / 요코하마스타디움:111.4m / 도쿄돔:110m / 히로시마시민구장:109.7m --> 평균:112.9m
  28. 이승엽과 우즈의 홈런 순위 ●98년 1위 우즈 / 2위 이승엽 ●99년 1위 이승엽 / 7위 우즈 ●00년 2위 우즈 / 4위 이승엽 ●01년 1위 이승엽 / 3위 우즈 ●02년 1위 이승엽 / 7위 우즈
  29. 더구나 이 논리는 대구탁구장론과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에 정말 군침이 떨어지는 소재가 될 수밖에 없다.
  30. 실제 존에서 바깥쪽으로 공 두개가 빠지는 구역까지 스트라이크로 잡아주었다 하는데, 실체가 모호한 주관의 영역이지만 어느 정도 증언이 일관되므로 실재는 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모든 심판들이 한명의 선수에게 대놓고 이처럼 뚜렷한 편파판정을 한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데, 몇몇 사례가 마치 영웅전기와 같이 과장되어 확산된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31. 당연히 구장의 크기가 선수들의 홈런 생산력에 영향을 미치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32. 홈런 파크팩터의 들쑥날쑥함은 이미 위에서 언급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선수 개개인의 스타일에 따라 당연히 구장환경의 영향을 받는 정도도 다를 텐데, 모두에게 일관된 수치를 적용하여 홈런수의 증감을 추정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예를 들어 98시즌을 끝으로 쌍방울에서 삼성으로 이적한 김기태는 이적 전후의 홈런수가 31-28로 대체로 비슷하지만, 홈런 파크팩터를 적용할 경우 98시즌은 35홈런, 99시즌은 24홈런을 기록한 것이 되어 31.4%나 감소한 것이 된다. 하지만 김기태는 그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96~00년에 각각 26-31-28-26개의 일관된 홈런수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삼성으로 이적하면서 갑자기 홈런수가 폭락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33. 200개로 통일하였다. 우즈는 +26, 이승엽은 -15 변동
  34. 야구가 시험처럼 100점 만점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실력만 있으면 무한대로 좋은 성적을 찍을 수 있는 운동인데 변별력 운운하는 사람들의 수준도 알 만하다.
  35. 05년 시즌에 이승엽의 좌투수 타율이 2할 초반에 불과하는 등 약점을 극복해내지는 못했다. 떨어지는 공에 삼진이 지나치게 많았으며, 뛰어난 장타력이라는 강점을 통해 좌투수에 대한 약한 부분을 상쇄시켰을 뿐이다. 06시즌에 대해서는 BABIP이 0.351로 일본시즌 8년간의 평균인 0.288보다 한참 높은 것으로 볼 때, 이때의 활약이 타율 면에서는 플루크라 볼 수도 있다.
  36. 커리어의 하락 시발점인 07년 시즌120여개의 삼진을 당하는 동안 40여개의 볼넷밖에 얻지 못했다.
  37. 선동열도 3회에 불과하다.
  38. 타이론 우즈의 경우, 파워만큼은 마이너리그에서도 인정받고 있기는 했다. 물론 테임즈의 경우를 보아 AAAA급 선수였을 가능성은 있지만, 일단 그가 콜업되지 못한 까닭은 1루수라는 포지션과 부족한 주루 능력, 그리고 팀 내에 95시즌 아메리칸리그 MVP 모 본이라는 걸출한 선수가 있었기 때문임을 감안해야한다.
  39. 한국에서의 두 선수의 격차가 S급과 A급인 반면(S급이 이승엽), 일본에서는 S급과 B급(S급이 우즈)로 벌어졌음을 볼 때 같은 차이라고는 볼 수 없다.
  40. 02·03년의 심정수와 비교한다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여기에서의 비교대상은 99·00년의 심정수다.
  41. 우즈가 페르난데스를 제치고 그들의 ‘선택’을 받은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42. 우즈의 커리어하이는 42홈런, 김동주와 심정수의 커리어하이는 31홈런이다.
  43. 당시 현대가 사용하던 수원구장은 대구구장보다 조금 더 큰 수준이었다.
  44. 물론 부상으로 100타석 정도 덜 뛰었지만, 그런 것을 감안해도 그리 많은 홈런을 친 것이 아니다.
  45. 참고로 그의 02시즌 홈 홈런 비율은 36.9%다.
  46. 잠실을 벗어나면서 홈런수가 크게 늘어났다는 논리
  47. 경기중 빈볼투구는 기본이고 상대선수의 발을 걸어 부상시키는 등 더티 플레이를 상습적으로 일삼았는데다가 말년에 2군에서 후배의 머리를 야구방망이로 밀어어 상처를 내며 여러 기지 구설수를 일으켰다.
  48. 후배인 서승화가 데드볼을 던졌는데도 사과하지 않았고, 계속 위협적인 공을 던졌다. 사건 이후 9월 말 다시 LG와의 경기를 가졌는데 당시 홈런 신기록을 코앞에 두고 있던 이승엽을 다시 상대하게 되자 스트라이크 존에 대한 항의를 하고 시속 110km짜리 아리랑볼을 마치 장난치듯이 던졌고, 이승엽은 그런 공은 치지 않겠다고 하여 볼넷으로 걸어나간 바 있다.
  49. 미국은 싸인의 위치가 그 싸인볼의 가치를 평가한다. 최상품은 메이저리그 공인구에서 커미셔너 싸인이 적힌 자리가 S급으로 쳐준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이 자리에다 싸인 해주는 건 팔아도 된다는 뜻이고, 실제로 구장 판매용 싸인볼이나 이벤트 볼들은 대부분 그 자리에 싸인을 해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