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 맥켈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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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r Ian McKellen, CH C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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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안 맥켈런 (Patrick Stewart)
본명이언 머리 맥켈런 (Ian Murray McKellen)
국적영국
출생1939년 5월 25일, 잉글랜드 랭커셔 번리
직업배우
활동1959년 – 현재
신장173cm
가족브라이언 테일러(1964~1972)
숀 머사이어스(1978~1988)
링크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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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국의 유명한 배우이며, 또한 커밍아웃동성애자이자 인권운동가로도 유명한 사람이다. 1979년 무대 예술에 대한 공헌을 인정받아 대영제국 훈장 3등급(CBE)을 받고, 1991년 기사작위(Knight Bachelor)에 서임되었다. 뿐만 아니라 2008년에는 극작과 평등(인권단체 스톤월 설립을 비롯한 왕성한 동성애 인권운동)에 대한 공헌을 인정받아 컴패니언 오브 아너(Companion of Honour, CH)도 받았다.[1] 이름 앞에 Sir가 붙는 것도 1991년 기사작위를 받았기 때문이다.

2 성장과 연극 배우로서의 삶

영국의 노장 배우로, 그 나이대 사람답게 연극으로 기본기를 탄탄이 닦고 영화의 세계로 뛰어들었다.(사실은 커밍아웃을 했을 때 영국 연극계의 반발로 인한 어쩔 수 없는 강제 헐리우드 진출이었다. 하지만 신의 한수가 되어 이미지가 압도적으로 좋아지는 바람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복귀한 케이스) 엄밀히 말하면 연극 무대를 떠나본 적이 없으며, 영화 《X-MEN 실사영화 시리즈》와 《반지의 제왕 실사영화 시리즈》 출연으로 한참 바빴던 200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매년 무대에 올랐다. 그야말로 영원한 현역.[2]

셰익스피어 전문배우로 평가받고 있는데, 셰익스피어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평생을 아마추어 연극배우로, 연출가로, 제작자로 활동했던 누나 진의 영향이었다고 한다. 여덟 살 때 선물받은 장난감 극장 세트에 직접 종이로 오려 만든 인형을 등장시켜 《햄릿》을 연출하며 놀았다고 한다. 그 어린 나이에 참고한 원작은 로렌스 올리비에의 영화판 《햄릿》.

공식 연극 데뷔는 1952년 13살의 나이로 무대에 오른 《십이야》라고 알려져 있으나, 홈페이지 상으로는 1950년, 11세의 나이로 무대에 선 비라 알렛(Vera I. Arlett)의 《어린이날(Children's day)》이라는 학교 연극이 첫 작품이었다고 한다. 처음 팸플릿에 자신의 이름이 적힌 작품으로, 아직도 그 팜플렛을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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팸플릿. 등장인물 중 두 번째로 적힌 Father - I. McKELLEN

맥켈런 경의 자양분이 되었던 것 중 하나는 《십이야》 출연 이후, 매년 여름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본(셰익스피어의 출생지)에서 있었던 여름학교였다. 여름학교가 열리던 곳에서 30분이면 로열 셰익스피어 극장에 갈 수 있었는데, 거기서 어린 맥켈런 경은 놀랍게도 로렌스 올리비에, 비비언 리, 이디스 에번스, 페기 애시크로프트 같은 어마어마한 대배우들이 출연하는 셰익스피어극을 볼 수 있었다. 훗날 이 때를 회상하며 맥켈런 경은 “페기 애시크로프트의 연기는 인간 이상의 것이었다. 나같은 아마추어가 그런 경지에 이를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십대의 나는 요리사나 기자가 될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라고 말했고 대학에서도 문학 전공을 선택했다.

하지만 케임브리지 대학의 유서깊은 연극 클럽 말로우 소사이어티(Marlowe Society)에 가입하며 결국 배우의 길을 걷게 된다. '뉴 올리비에'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맥켈런은 올리비에의 눈에 띄어[3] 스물 아홉에는 영국 국립연극컴퍼니에 스카우트 되고, 서른 다섯에는 동경하던 로열 셰익스피어 극단에 들어가 전성기에 올랐다. 묵묵히 자신의 일에 매진해 꿈을 이룬 모범적인 케이스.

영국 배우들의 영원한 꿈의 극단인 로열 셰익스피어 극단에 들어갔지만 '부자들만 보러오는 무대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이 어울리는 무대'를 추구했던 맥켈런은 뜻이 맞는 사람들을 모아 돌격대(Commando Unit)를 조직한다. 이 돌격대는 수십 개의 마을을 돌며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포함해 다양한 연극을 공연했고 이안 맥켈런 역시 이 시기를 "가장 즐겁게 연극을 했던 시기"라고 회상하기도 한다.

3 할리우드 진출, 활동가로서의 삶

첫 영화 출연은 1969년작 《사랑의 손길(A Touch of Love)》이었지만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90년대부터이다. 최근의 대표작으로 《반지의 제왕》의 간달프와 《X-MEN》의 영화판 시리즈의 매그니토가 있으며 노익장을 과시하였다.

상당히 붙임성 좋고 장난기 많은 성격이라 《X-MEN》 촬영당시 동료 배우들을 상대로 장난(!)을 많이 쳤다고 한다. 또한 X-MEN 시리즈에서 계속 붙어다니는 동료 미스틱(리베카 로민)이 촬영 내내 거의 알몸이나 다름없는 분장을 하고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내 털 한가닥도 세우지 못했다. 나는 주로 휴(휴 잭맨, 울버린 역) 와 어울려 다녔을 뿐이다" 라는, 참으로 굉장한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매그니토는 동성애자에 대한 탄압에 맞서는 영웅 같았다' 라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수정바람) 그 외에 미스틱이 쓰러진 울버린 위에 타고 다른 여자들로 변하면서 유혹하는 장면이 있는데 "거기에 나도 끼워주면 안 되나?"하고 농담했다가 거절당하기도 했다.[4] 참으로 재밌는 어르신.[5]

한편 《X-MEN 2》에서 아이스맨이 자신이 뮤턴트라는 사실을 가족에게 고백하는 대목은 맥켈런 경이 각본가와 함께 작업한 장면으로, 아이스맨의 고백이 좀 더 게이 소년의 커밍아웃처럼 보이게 만들도록 도왔다고 한다. 아이스맨이 부모님과 나누는 대화 중 '뮤턴트가 되는 걸 고치려고 노력은 해봤니?'라는 부모님의 말에서 뮤턴트라는 단어만 게이로 고치면 영락없는 커밍아웃 장면이다. 실제로 이것은 감독 브라이언 싱어가 의도한 바로, 싱어 역시 공식적으로 커밍아웃한 양성애자로 유명하다. 자신에게 연기와 동성애 인권운동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맥켈런 경의 신조가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한번도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숨기거나 거짓말을 한 적이 없지만 공식적으로 커밍아웃하지는 않은 채 살다가, 마거릿 대처 정부가‘섹션 28’ 입법으로 동성애의 공론화를 범죄로 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1988년 1월 27일 BBC 라디오를 통해서 커밍아웃했다.[6] 이후 게이 인권운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인권단체 스톤월을 공동 설립했고, 아직까지도 활발한 인권운동가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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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맥켈런 경의 일정 메모. 제일 아래 '27 Wednesday'에 7:00 - Radio Interview라고 적혀있는 것이 바로 '섹션 28' 법안에 대한 BBC 인터뷰.

1988년 맨체스터에서 열린 마가렛 대처의 '섹션 28' 법안 반대 집회에서의 이안 경의 사진. 옆에 서있는 사람은 마이클 캐슈먼으로, BBC 드라마 최초로 동성애자 사이의 키스를 촬영했던 배우이자, 스톤월의 공동 창립자이다. 현재는 유럽연합 국회의원.

《반지의 제왕》 촬영시에는 프로도역의 일라이저 우드, 피핀역의 빌리 보이드와 같은 캠핑카에서 생활했는데, 우드와 보이드가 시끄러운 노래를 틀어놓으면 신경질적인 '우어어어어' 소리를 내면서 싫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반지의 제왕 확장판 DVD 중 >

얼핏 안성기랑 상당히 비슷하게 생겼다.

국내 대중들에게는 반지의 제왕에서 유일하게 모든 시리즈에서 비중 있는 인물엑스맨에서 매그니토 역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를 보면서 괜한 상상을 하며 혼자 키득거리거나, 뒤늦게 놀라는 관객들이 꽤 늘어가는 상황. 특히 2014년 작품을 비교하면 두 캐릭터의 싱크로율이 높다.[7]

2012년 런던 장애인 올림픽 개막식에서 열연했다.

2013년에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리허설 도중 잠시 쉬러 나왔는데 지나가는 사람이 거지인 줄 알고 모자에 동전을 넣고 갔다고 한다. 본인도 꽤 좋아했다.

4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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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리어왕 간지.

리어왕을 열연하는 모습.

남자친구와 함께. 42년차라고 했으니 남자는 스물여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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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년차 따위는 이런 카리스마로 쉽게 깨부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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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품격은 쉽게 나오는 것이 아닌데...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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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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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죽음보다 무서운 비밀(Apt pupil)》에서 나치 전범으로 출연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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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처드 3세》에서 리처드 3세 역으로 출연한 모습. 이 영화는 시대 배경을 1930년대로 옮겨 각색한 것이라 영국 국왕이 나치 친위대 장군복을 입고 T-55 전차를 모는 엽기적인 모습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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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를 위한 인권운동가 맥켈런 경.

5 기타 활동

조지 이즈라의 Listen to the Man 뮤직비디오에 출연하여 흥에 겨워 나대는 노인 기믹을 완벽히 소화하며 귀요미적인 면모를 마음껏 뽐내셨다.

레딧과의 AMA(Ask Me Anything)에서 자신의 연기, 인생 철학 등에 대해 질의응답한 적이 있다.

6 이안 맥켈런의 주요 출연 작품들

  1. 1.5등급에 해당하는 상위 훈장. 대영제국 훈장과는 별도의 훈장이다. 대부분의 예능인이 3등급 이하의 훈장, 세계적으로 아주 잘 되면 기사작위까지 받는 것을 생각하면 이도 뛰어넘어 1.5등급에 해당하는 훈장을 또 받은 것은 확실히 대단한 점. 일반적으로 얘기하는 기사작위인 Knight Bachelor가 2.5등급에 해당한다. 1이면 1이고 2면 2지 1.5와 2.5가 따로 있는 것은, 1등급과 2등급 훈장의 정원이 너무 적은 것이 주요한 이유.
  2. 1969년 처음 영화를 출연할 때부터 이미 목표가 “연극 무대를 떠나지 않고 영화에서 성공을 거두는 것”이었다고 한다.
  3. 이 때 맥켈런의 연기를 보고 감탄해 올리비에에게 맥켈런을 추천한 이가 바로 훗날 해리 포터 시리즈 영화판에서 미네르바 맥고나걸 역할을 맡게 되는 매기 스미스다.
  4. 이해가 안 되는 사람을 위해 첨언하자면 "그때 나도 유혹해주면 안돼?"가 아니라 "그때 나로도 변해주면 안돼?", 즉 "나도 휴 잭맨 위에 올라타보면 안돼?"라는 의미의 조크다
  5. 물론 촬영 때 동료배우들과 친하게 지냈기 때문에 가능했던 농담이다. 친하지 않거나 게이가 아닌 사람에게 저런 농담은 함부로하면 안 된다.
  6. 커밍아웃 이후 한동안 맥켈런 경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성 정체성에 대한 문제에만 집중되었다고 한다. 맥켈런 경은 이런 호들갑스러운 반응에 대해 “내가 게이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었다. 내가 게이일 뿐 아니라 배우라는 사실을 신문에 투고해야 하는 건 아닐까 할 정도였다. 커밍아웃, 커밍아웃, 커밍아웃. 내가 한 건 그것뿐이다. 묘비에다가 써넣기라도 해야겠군.”이라 회고했다.
  7.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서는 중후한 캐릭터 연출을 위해 특수효과로 주름을 추가한 모습이었고, 2014년 엑스맨에 출연한 모습을 보면 자연스럽게 주름이 늘었다.
  8. 프랑켄슈타인,투명인간같이 1930년대 유니버설 픽쳐스 흑백 호러로 유명했던 감독 제임스 웨일 (1889~1957) 일생을 다룬 작품으로 웨일 역을 맡았다. 커밍아웃을 했다가 당시에는 동성애를 범죄로 봤던 터에 시달림을 받다 끝내 투신자살하고만 비운의 인물이었기에 맥켈런은 명연기를 보여주면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하지만 그 해의 남우주연상은 인생은 아름다워의 로베르토 베니니에게 돌아갔다. 동성애자 탄압에 대한 수상 소감을 준비했던 맥켈런은 상당히 아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