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대한민국의 전 · 현직 정치인을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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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允鎔
1914년 00월 00일 ~ 1985년 03월 17일
1914년 경기도 평택군 송탄면 서정리(현 평택시 서정동)에서 태어났다. 중앙농민학교(이후 국민대학교에 흡수) 농업경영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합명회사인 평택운수사 사장, 대한통운 외하주식회사 대표이사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이승만 정권 때와 장면 내각 때에 걸쳐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의회 의원 선거에 두 번 당선되었고, 경기도의회 부의장도 역임하였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경기도 평택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정당 유치송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인 신민당 유치송 후보에 설욕하고 당선되었다[1]. 그러나 부정선거 논란이 커지자 민주공화당에서 제명되었고, 같이 제명된 양찬우 등과 정우회라는 교섭단체를 만들어 활동하였다. 1971년 초에야 정우회를 해체하고 민주공화당에 복당하였다. 그러나 같은 해 치러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육군참모총장을 역임한 최영희에 밀려 민주공화당 공천에서 탈락하였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기도 평택군-안성군-용인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민당 유치송 후보와 민주공화당 서상린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