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찬

이 문서는 이학준(으)로 검색해도 들어올 수 있습니다.


파일:Attachment/dy3c4734.jpg
LG 트윈스 시절. 박종훈 감독의 4번째 양아들

201307061849776773_51d7e8455eaef.jpg

한화 이글스 No.53
이시찬(李禔澯 / Shi-Chan Lee)[1]
생년월일1985년 2월 25일
출신지서울특별시
학력고명초 - 건대부중 - 휘문고 - 방송통신대
체격182cm, 84kg
포지션3루수
투타우투우타[2]
프로입단2004년 신인드래프트 2차 4라운드 (LG 트윈스)
소속팀LG 트윈스 (2004~2007)
경찰 야구단 (2008~2009) (군복무)
LG 트윈스 (2010~2011)
한화 이글스 (2012~현재)
등장곡싸이 - 솔직히 까고말해[3]
응원가One Direction - Live While We're Young[4]
한화 이글스 등번호 59번
최진호(2011)이학준(2012)양성우(2013)
한화 이글스 등번호 33번
김재우(2011~2012)이학준(2013~2014)나이저 모건(2015)
한화 이글스 등번호 66번
임익준(2013~2014)이시찬(2015)주현상(2016~ )
한화 이글스 등번호 53번
박한결(2015)이시찬(2016~ )현재

1 소개

한화 이글스의 야구선수. 개명 이전에는 이름 때문에 이학주와 헷갈릴 수 있었다.

발은 상당히 빠르고 수비실력도 먹어주는 편이다. 그러나 타격이 거의 절망적인 수준으로, 최악의 물방망이를 가지고 있어 간간히 1군에 올라와서 대주자나 대수비로 나서는 수준이다.

사실 나이(1985년생)와 잠재력에 비해서는 지나치게 기회를 많이 준다는 비판도 있다. 더군다나 갑상선 항진증 때문에 주전으로 나설경우 100경기도 출장 못 할 정도로 건강에 문제가 있기도 하다. 그런데도 기회를 주는 코칭스텝은 도대체 뭔지...

2 선수 경력

2.1 LG 트윈스 시절

2010시즌에도 후반에 출장기회를 많이 얻었다. 2011시즌에도 1군에서 기회를 맞았다. 그러나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플레이가 서툰 건 둘째치고, 평소 눈빛과 표정이 흐리멍덩하고 생각이 없는 듯한 모습을 할 때가 많다. 이런 유형의 선수는 실수를 하면 연달아서 하는 경향이 있다. 근성없어 보이는 모습과 비전 없어 보이는 포텐셜에도 불구하고 기회를 주는 것에 대해 LG팬들의 불만이 상당했다.

2.1.1 2011 시즌

경기때마다 주자로 나서서는 매번 오바질하다 주루사를 밥먹듯이 당하고, 수비 때도 사고를 빈번히 치며, 타석에서는 그냥 허수아비 세워 놓은 수준이었다. 김주찬처럼 뇌를 갈아 끼운다는 소리도 있는데, 숫제 이건 뇌를 아예 빼놓고 플레이하는 수준.

6월 29일 백창수가 2군으로 내려가고 다시 1군에 콜업되었다. 아 앙대

그리고 7월 5일 한화 이글스 전에서 12회 타석에 들어섰지만 삼진. 그리고 연장 12회 1루수로 나서서 견제구를 빠뜨리는 초대형사고를 쳤다. 그리고 이학준의 이 사고는 연장 12회 끝내기안타 역전패, 그것도 팀의 6연패로 이어지고 만다. 어떤 분이 이걸 보셨다면 "마 니 그래가지고 다른 팀가면 2군에라도 받아줄 거 같나!"

다음 소셜웹 검색으로 '이학준' 을 검색하면 거의 대부분 욕설이 포함된 트윗글들만 쏟아졌다. 더불어 윤진호와 함께 탈쥐해도 안 터질 2인 중 한명으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조인성의 2군행으로 다시 1군에 올라왔다. 나 청심환좀 줘

그리고 8월 28일 대전 한화전에서 7회초 2사 상황에서 3루로 도루하다 폭풍 도루 실패, 여러 LG팬들의 뒷목을 잡게 했다(…).

2.2 한화 이글스 시절

2011년 11월 22일 KBO 리그 2차 드래프트 3라운드에서 한화 이글스에 간택(...)되어 한화로 이적하였다. LG 팬들의 반응은 "존나좋군?" 한화 팬들의 반응은 "아 ㅅㅂ 할말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2주 후 나성용 거르고 이학준

2.2.1 2012 시즌

2.2.1.1 필패의 아이콘?

한대화 감독의 양아들 소리를 들으며 자주 출전했다. 현실은 LG 때의 모습과 다르지 않... 아니, 더 심해졌다.

접전 상황에서 뇌수비로 인해 팀이 역전당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잡을 수 있는 타구마저 놓치고 태그를 제대로 안해서 세잎판정이 나오도록 만들던가. 게다가 이게 한두번도 아니고 7~8번정도 된다.

2012년 6월 15일까지의 모습은 두 말이 필요없고 아래의 짤방으로 설명이 된다.

파일:Attachment/lhj 13535yh 00000 2.jpg[5]

꼬박꼬박 출장했고, 출장하는 게임은 한경기를 제외하고 모두 졌다.#

이 정도면 정말 개그소재로도 못 써 먹을 필패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2.2.1.2 양아버지 한대화 경질, 그리고...

8월 한대화 감독이 경질된 이후, 대주자로 간간히 기용되었다. 그리고 이 때부터 경기 중후반에 기용되는 1점 짜내기 전문 대주자 요원으로 준수한 활약을 보이며 남은 시즌 한화의 알짜배기 대주자 요원으로서 확실하게 자리매김하였다. 감독이 한 명 바뀌었을 뿐인데 말 그대로 환골탈태

8월 31일 KIA전에서 8회초 상대의 허를 찌르는 3루 도루를 성공. 뒤이어 이대수의 희생플라이로 결승타점을 올리며 '자신이 출장한 게임에서 전패하는 징크스'를 깨뜨렸다. 이학준을 까던 팬들은 그의 플레이에 매우 놀라며 시즌 1호 칭찬(…)을 해 주었다. 이 경기 이후에도 한대화 시절과 달리 확실하게 이쪽으로 자리를 잡은 듯.

9월 12일 류현진이 등판한 삼성전에서 6회말 대주자로 투입되어 2루 도루 -> 하주석의 희생번트로 3루 진루 -> 오선진의 희생플라이로 팀의 3번째 득점에 성공하며 다시 한 번 칰빠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이승엽이 8회초 2타점 2루타를 기록했기 때문에 이 득점이 없었다면 류현진의 8승이 물건너갈 뻔 했다. 이러한 이유때문인지 이날 경기가 끝나고 야수MVP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9월 14일 넥센 히어로즈 전에서도 대주자로 나와 도루를 성공하고 장성호의 그다지 깊숙하지 않은 안타 때 빠른 발로 홈에 들어왔다. 이 경기는 1점 차로 끝났기 때문에, 김혁민의 시즌 8승을 챙김과 동시에 한화 이글스에 승리를 가져다준 귀중한 점수였다.

10월 2일 SK 와이번스 전에서는 최고의 플레이를 선보였다. 바로 시간차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으로, 한 시즌에 몇 번 보기 힘들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로 멋진 장면이었다. 백문이 불여일견! 9회말 3:4, 1사 1루 상태에서 대주자로 출장하여 2루 도루를 시도하였는데, 포수의 송구가 워낙 좋아 타이밍상으로는 100% 아웃이었다. 그러나 베이스 모서리를 쓸고 지나가면서 태그를 피하는 기막힌 주루센스를 보이며 세잎. 이 플레이는 SK의 구원투수 엄정욱을 흔들었고, 결국 이어진 1사 1, 2루에서 터진 김태균의 적시타 때 홈으로 들어오며 역전승의 발판이 됐다.

참고로 이 승리가 2012년 한화 이글스의 마지막 승리. 마지막 여성팬의 눈물에 모든 한화팬이 울었다(…). 2013시즌부터는 잘 좀 하자 제발...

시야에 들어오기만 하면(…) 필패의 아이콘으로 가루가 되도록 까였던 과거에 비하면 이미지가 대단히 준수하게 개선되면서 2012 시즌을 마칠 수 있었다.

김별명이라는 출루율 높은 똥차(…)를 가진 한화 이글스에 있어서 이러한 발 빠르고 주루센스 좋은 전문 대주자 요원은 게임 후반부 1점차 승부에서 매우 큰 역할을 해줄 수 있다. 즉 툴 자체만 놓고 본다면 분명히 한화에 필요한 선수가 맞고, 2차 드래프트 3라운드를 통해 데려 온 것은 현명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동안 필패의 아이콘으로까지 취급당하며 그 숱한 욕을 먹었던 것은, 한대화 전 감독의 용병술이 얼마나 안습했는지를 가장 잘 보여 주는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만한 대주자 요원을 무리하게 공격/수비에 집어넣었으니 아무리 까여도 할 말이 없을 듯.

2.2.2 2013 시즌

시즌 초부터 주로 한상훈과 2루수 자리를 플래툰으로 맡으며, 예전보다 공격, 수비 모두 발전한 모습을 보였다.

2013년 4월 19일 두산 베어스전에서 프로 통산 20안타를 달성했다. 20홈런이 아니다

5월 26일 삼성 라이온즈전에서는 2사 3루 상황에서 2루타로 1타점을 얻은데 이어 박노민의 안타에 득점하는 활약을 했다.

주전 3루수를 맡던 오선진이 성적 부진으로 잠시 2군으로 내려갔을 때는 주로 3루수나 2루수로 출전했으며, 수비에서 간혹 실수를 저지르긴 하지만 나름 역할을 잘 소화해내고 공격면에서도 적시타를 종종 치는 활약을 보였다.

6월 22일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는 고의사구로 출루했다.

7월 6일 SK전에서 2회말 2사 1루에서 조조 레이예스를 상대로 프로 데뷔 첫 홈런을 때려냈다! 191경기만에 나온 자신의 커리어 첫 홈런을 대전구장에서 2점 홈런으로 장식했다. 팀도 9:3으로 기분 좋게 승리.

이후 주로 내야 백업의 뎁스가 얇은 팀 사정상 2루수 백업으로 출장하는데, 주루능력이 좋아 이용해 도루를 많이 하고 있지만 역시 타격능력이... 9월들어 체력에 부친건지 안타를 하나도 쳐내지 못해 2할이 간당간당하며, 이젠 수비에서도 그리 안정적이지 못한 수비를 보여주고 있다(...).

시즌 최종성적은 97경기 .200(...) 33안타 13타점 1홈런 16도루(팀내 1위) 9볼넷 29삼진 9실책 .250 .242 .492

2.2.3 2014 시즌

시범경기 때 타율 .545, 5타점으로 매우 좋은 활약을 했다. 시즌 때 대주자 또는 내야 백업의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정작 시즌 들어와서는 이용규정근우, 김회성 등이 들어오면서 타석은 물론이고 대주자로도 모습을 거의 보이질 못했다. 그러다 6월 21일 전현태가 등록되면서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팬들조차 쟤 있었냐는 식으로 몰랐던 팬들도 꽤 많았던듯. 일단 성적은 8타수 2안타 1득점 1삼진. 이후 7월 1일에 다시 등록되었다.

7월 10일 넥센전 경기에서 4:2로 이기고 있는 9회초 2사 2, 3루 상황에서 빠지면 장타가 될 가능성이 높았던 안타성 타구를 잡아내는 인생수비를 시전하여 팀의 7연패를 끊어냈다. 그것도 3루수를 맡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거다.[6]

7월 11일 두산전에서 희생플라이 타점을 포함해 3안타 2타점을 올리는 대활약을 했다.[7]

다음날인 7월 12일에는 멀티히트에 더블스틸로 도루까지 성공해 다시 한번 놀라게 했다.

한상훈, 송광민, 김회성이 부상으로 빠진 상태에서 내야 포지션 이곳저곳을 메꾸며 활약을 하고 있다. 특히 같이 수비 땜빵 역할을 하는 조정원이 경기 후반 대타로 빠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본의아니게 매경기 수비포지션 변경을 하고 있다. 타격면에서도 일취월장하여 거의 매경기 안타를 치면서 한화팬들이 송광민고양 원더스로 유학보내고 이시찬을 주전으로 기용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

7월24일에는 4경기 연속 멀티히트를 기록하며 타율을 0.333까지 끌어올렸으나 수비에서 결정적인 삽질을 하며 724 대첩의 대미를 장식하였다. 하지만 한화팬들은 이시찬을 탓하기보다는 유격수로 선발출장한 선수를 경기중 3루수, 2루수로 수비포지션을 마구잡이로 바꾼 킬끼리의 기용방식을 문제삼고 있다. 일부는 이시찬의 주포지션이 2루수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시찬의 문제도 있다곤 하지만, 수비포지션을 하루에 세번이나 옮겨다니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아무리 주포지션이라도 수비를 제대로 하기 어렵다.

2.2.4 2015 시즌

이름을 이학준에서 이시찬으로 개명했다고 한다.#

4월 7일 LG 트윈스와의 경기 중 3:2로 뒤지는 상황에서 동점을 만드는 적시타를 쳐냈으며, 1루에서 3루로 뛰어가다 이진영에게 저격당한 김태균은 넘어가자 연장 11회말 1사 1, 2루에서 1사 만루를 만드는 안타를 쳐내 연장 끝내기 승리의 주역이 되었다.

4월 14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는 4:3으로 이기고 있던 7회말 1사 3루에서 스퀴즈 번트를 대며 삼성의 수비와 류중일 감독을 당황시키며 도망가는 점수를 냈다.#

4월 22일 허벅지 통증으로 2군에 내려가게 되었다.# 이후 복귀한 정근우가 공수에서 미덥지 못한 모습을 보이면서 이시찬이 그립단 소리가 속출하고 있다.

6월 16일에 1군에 복귀하여 출전을 시작하였으나 6월 17일 경기에서 결정적인 실책을 범해 패배의 원인이 되었다. 단 이것은 이시찬 만의 문제라기 보다는 부상에서 복귀해서 경기감각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은 선수를 2군 경기를 거치지 않고 바로 1군에 올려 기용한 코칭 스태프의 문제이다.

이후 이 항목이 업데이트가 되질 않고 있다(...).

시즌 초 삼성전에서 기가막힌 스퀴즈 번트를 성공시킨 이후로부터 연속 멀티 히트를 치며 .360의 고타율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허벅지 통증으로 2군에 내려간 이후로 그 좋았던 타격감이 다 죽어서 올라오는 바람에 팬들은 이시찬이 이학준으로 변했다며 통곡 중.

올 시즌에는 드디어 포텐이 터지나... 싶었지만 이후 다시 이학준으로 돌아와 버리고 만 시즌이였다.

3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연도소속팀경기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4사구장타율출루율
2004LG 트윈스41.00000000000.000.000
2005133.00000000230.000.000
20061427.14840000410.148.148
20071군 기록 없음
2008경찰청 야구단에서 복무
2009
2010LG 트윈스1323.17442002353.261.269
20113319.10520102642.211.182
연도소속팀경기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4사구장타율출루율
2012한화 이글스6041.195810041693.220.244
201397165.2003340113201611.242.250
201445105.28630400914410.324.345
20153464.281181006715.297.324
20161군 기록 없음
KBO 통산(11시즌)313448.22199121136724334.259.273
  1. 이학준(李學俊)에서 개명
  2. 데뷔 초기에는 우투양타 였으나, 우타석에만 전념하고 우투우타로 전향
  3. 달려 오오오 오오오 이!학!준!x4
  4. 최강한화 이글스의 이시찬~ 최강한화 이글스의 이시찬~ 최강한화 이글스의 이시찬~ 최!강!한!화! 승리를 위해~x2
  5. 중간에 잘못된 표기가 있다 2012년 6월 10일 경기는 한화가 승리했다.
  6. 참고로 이시찬은 주로 2루수나 1루수를 뛰던 내야수다. 상황에 따라 유격수도 뛰지만 3루수로 뛰는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7. 참고로 데뷔 이래 첫 3안타 경기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