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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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No.54
양현종 (梁玹種 / Hyeon-Jong Yang)
생년월일1988년 3월 1일
국적대한민국
출신지광주광역시 남구
학력학강초-광주동성중-광주동성고-광주대[1][2]
포지션투수
투타좌투좌타
체격183cm, 85kg
프로입단2007년 2차지명 1라운드(전체 1번, KIA)
소속팀KIA 타이거즈 (2007~)
등장곡승리 'Strong Baby'
응원가노브레인(feat.킹스턴 루디스카) '연'[3][4]
군 복무병역특례
2010년 한국프로야구 페어플레이상
강봉규(삼성 라이온즈)양현종(KIA 타이거즈)김선우(두산 베어스)
2014년 최동원 상 수상자
최동원상 제정양현종(KIA 타이거즈)유희관(두산 베어스)
2015년 한국프로야구 최우수 평균 자책점
릭 밴덴헐크(삼성 라이온즈)양현종(KIA 타이거즈)더스틴 니퍼트(두산 베어스)
KIA 타이거즈 등번호 37번
조경환(2006)양현종(2007~2008)전태현(2009~2010)
KIA 타이거즈 등번호 54번
이준수(2007~2008)[5]양현종(2009~)현역
일찍이 양현종이 기억하고자 한 사람들은 양현종의 공을 통해 우리의 기억에서도 되살아난다.

양현종의 특별한 날은 우리의 특별한 날이 된다.

그러므로
그러므로 내 기억 속에서, 그러한 일을 가능케한 양현종은 언제나 대투수일 것이다.

언제까지나 자랑스러운
그런 모지리 막내딸일 것이다.
출처.[6]

이닝은 선발투수의 훈장이다.

출처.[7]

1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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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태-KIA 타이거즈 역사상 최고의 좌완투수
김광현과 함께 현 KBO 리그를 대표하는 좌완 에이스
무등 야구장의 끝과 광주-KIA 챔피언스 필드의 시작을 함께한 투수

KBO 리그 KIA 타이거즈의 좌완 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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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포수라 카더라 좌투 포수

2 플레이 스타일

기본적으로 뛰어난 구속의 패스트볼[8]로 타자를 압박한 후 변화구로 탈삼진이나 범타를 유도하는 전형적인 파워피쳐이다. 패스트볼에 힘이 있고 제구가 잘 될 때는 패스트볼만으로도 삼진을 뽑아낼 정도의 파워가 있다. 다만 변화구의 구위나 제구력은 속구에 비해 확실히 떨어진다. 주력 변화구는 슬라이더로, 카운트를 잡는 용도와 결정구 모두로 사용할 수 있다. 우타자를 상대할 때는 서클 체인지업을 섞는데, 그의 체인지업은 15년엔 매우 뛰어난 성과를 거뒀으나, 16년도엔 제구의 불안함을 보이면서 장타를 많이 허용하고 있다. 간혹 커브를 섞어서 카운트를 잡는데, 무브먼트와 제구 모두 위력적이지 않다. 가끔 허를 찌르거나 카운트를 잡을 속구가 통타될 것이 우려될 때 사용한다. 전반적인 제구력이 좋은 편이라곤 할 수 없으나, KBO리그의 평균보다는 확실히 괜찮다. 좌완 선발의 필수품인 디셉션이 상당히 강력한 투수이다. 또한, 본인의 수비능력 역시 매우 뛰어난 편이다.

아직 젊지만 구속은 조금씩 떨어지고 있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그의 어깨 회전근 상태가 좋지 않은 것에서 기인한다. 16년도 들어서는 구속을 어느 정도 회복했지만 앞으로의 부상을 우려해 완급 조절을 하고 있다.

몇 년 째 전반기는 리그 최강이다가 후반기에 부진한 패턴을 반복하고 있는데, 이는 우연이 아닌 구위 저하와 제구 난조가 동시에 후반기에 나타나기 때문으로 타고난 내구성이 안습임을 알 수 있다. 강속구 투수임에도 키가 작고, 딜리버리 자체는 부드럽지만 높은 팔각도를 가진 그의 투구폼 자체는 어깨에 무리가 많이 간다. 거기에 어깨 회전근이 타고날때부터 튼튼하지가 못하다. 따라서 후반기만 되면 어깨 통증이 찾아오고.. 자연스럽게 후반기 부진 및 로테이션 이탈을 겪게 된다. 그럼에도 타이거즈로서는 최근 몇 년 간 가장 믿을만한 선발이라 등판간격이 길어지면 길어지지 로테이션에서 완전히 이탈하는 일은 드물다. 사실 선발등판 횟수나 이닝으로 보면 최근 3년 토종선발 중 세 손가락에 들어가는 투수이다. KIA가 투수용병을 지난 몇 년 간 하도 못뽑아서 선발로테 맨 앞에 설 일이 많아서 후반기만 되면 로테를 거르게 되는 일이 많아졌지만 결과적으로는 자기 자리 잘 지켜온 투수이다. 갸런트 진짜 찢어버리고 싶다. 전반기에 너무 잘해서 후반기에 적당히 잘하면 못해 보이는 효과와 리그가 심하게 타고였던 것도 한 원인이 될 수 있다. 2015 시즌 후반기 양현종의 평균자책점은 3.48로 해커에 이은 2위이다.

3 유소년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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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강초등학교 시절 양현종

학강초등학교때 처음으로 야구를 시작한 양현종은 광주동성고 재학 당시 김광현의 뒤를 잇는 당해 랭킹 2위의 좌완 투수로 기대를 모았다. 이러한 기대치에 힘입어 청소년 대표팀에 뽑혔고, 2006년에 IBAF 세계야구청소년대회에서 맹활약하며 팀의 우승에 일조했다.[9]

당시 고교야구 공식 최고 구속은 140km 초중반대였지만, 프로에서 메카니즘을 좀 더 다듬고 근력을 끌어 올린다면 더 빠른 구속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다. 그래서 KIA 타이거즈가 사상 최초로 꼴등(...)을 하면서 얻은 2차 지명 전체 1번으로 입단하였다. 2016년 현재로 봤을땐 유남호의 재평가? 정영일 ㅅㅂㄻ 하지만 동성고의 에이스이자 양현종의 1년 선배로, 계약금 10억을 받으며 기대를 모았었던 한기주(...)만큼 기대치가 높았던 것은 아니었다.

4 프로 데뷔 후

4.1 2007 ~ 2008 시즌

입단 첫 해엔 1승 2패 방어율 4.17을 기록하였고, 다음 해인 2008 시즌 시범경기에서 매우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10] 기대를 품게 했지만 시즌이 시작되고 중간계투로 뛰면서 무승 5패 방어율 5.83을 기록하며 그야말로 불쇼를 선보여 KIA팬들에게 불현종이라고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기대를 모았던 좌완 강속구 투수였지만 제구가 안 되어 볼넷이 폭주하였다. 덤으로, 양현종을 끝까지 1군에 데리고 다녔던 조범현 감독도 함께 까였고 더불어 팬들에게 조범현 감독의 양아들이라는 의미로 조현종이라고 불렸다

이 당시에는 마인드 컨트롤도 잘 안 되었던 모양. 김태균에게 홈런을 맞고 강판당한 후, 덕아웃에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중계 카메라에 찍히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2009년 스토브 리그에서 안습이었던 KIA 내야진[11] 보충을 위해 트레이드 카드로 이름이 올랐지만, 구단과 감독이 양현종은 죽어도 못 내준다는 입장을 보이며 트레이드는 성사되지 않았다. 두산팬들은 그 때 배짱을 튕긴 프런트를 원망하였다.(...)[12]

4.2 2009 시즌

하지만 2009년 스프링캠프에서 양현종을 주목하라는 이야기가 나오더니 포텐셜을 터트리는데 성공하였다!

선발 투수로 출장, 2009년 6월 6일 기준으로 10경기 5승 2패 방어율 2.23(1위)을 기록하며 KIA 타이거즈의 좌완 에이스로 부상했다. 특히, 윤석민이 작년같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상황에서 양현종-구톰슨 원투펀치는 KIA의 강력한 상승 동력 중 하나로, 좌완 에이스 보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던 해태 타이거즈-KIA 타이거즈의 계보에서 간만에 좌완 에이스 투수가 나오면서 KIA팬들을 설레게 했다. 하지만 2009년이 풀타임 선발투수로는 첫 해였기 때문인지, 6월 중반 이후로 급격히 체력이 달리는 모습을 보여 몇 차례 난타당했고 결국 중간계투로 잠시 보직을 변경했다. 물론, 완전히 중계투수로 돌아선 건 아니었고 장마와 올스타 브레이크로 투수진이 남아돌자 경기감각 유지도 하고 겸사겸사 체력도 쌓기 위해 임시로 돌린 것. 타팀팬들은 부러울 지경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 선발로 복귀해 후반기 첫 등판이었던 롯데전에서는 부진했지만, 스스로 반성하고 각성한 끝에 다음 등판이었던 2009년 8월 4일 LG전에는 8이닝 2실점으로 호투하였고, 8월 11일 롯데전에서는 7⅓이닝동안 무실점 10삼진으로 호투하여 8승째를 올리며 10승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8월 16일 삼성전에서는 5이닝동안 언터쳐블이었다가 6회에 갑자기 무너지면서 4실점을 허용하여 816 대첩의 서막을 올렸지만 9승을 챙겼다. 그리고 8월 26일 한화전에서 7이닝 1실점으로 호투하며, 드디어 10승 투수가 되었다! 불펜에서 불을 질러대었던 2008 시즌의 모습과 비교해보면 어마어마한 발전이 아닐 수 없다.

2009 시즌 최종 성적은 29경기 출장(148⅔이닝), 12승 5패 1홀드, 평균자책 3.15, 삼진 139개. 지난 시즌과 대비하면 정말 놀라운 성적이기는 하지만 호투하는 상황에서도 매 경기 5회나 6회 이후에 교체되는 등의 지속적인 관리를 받은 덕분에 기록한 성적이기도 했다. 그럼 궈낵처럼 굴리냐? 하지만 이런 관리에 보답하여 최소 4선발 이상의 기량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조범현 감독의 양현종 사랑은 계속될 듯 하다.

한국시리즈에서는 4, 6, 7차전에 나왔다. 4차전에서는 선발로 나와 초반에는 잘 던지다가 박재홍에게 투런 홈런을 맞았다. 이 날 성적은 5⅔이닝 3실점, 패전. 6차전에서는 원 포인트로, 7차전에서는 2-0으로 팀이 뒤지고 있던 상황에서 장작을 쌓은 선배 한기주가 풀 죽어 들어오자 선배를 위로하며 다음 투수로 당당하게 마운드로 나갔으나 한기주의 주자를 분식회계하는 것도 모자라 나주환, 정상호에게 연속 안타를 쳐맞았다. 야이 새....
최정이 번트를 댄 후 1사 2, 3루 상황에서 조동화의 대타로 들어온 김강민에게 성급하게 승부를 걸다가 우익수 앞 플라이를 주며 4-1을 만들었고 다음 타자인 박재상에게 2루타를 내주며 5-1까지 만들었다. 선배를 위로하며 갔다가 오히려 자신이 뽜이야.[13] 만약 KIA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지 못했다면 이용규와 함께 미친 듯이 까일 뻔 했다. 역시 불펜으로 쓰면 안 된다는 걸 보여줬던 케이스.

2009 시즌이 끝난 후, 경기장에서 쓰던 개그포텐을 마구 분출하였다. 우승 후 KBS에서 방영한 우승 기념 다큐멘터리에서 윤석민을 두고 '얼굴도 웃기게 생겼..푸푸풉!'이라는 인터뷰를 했다. 이에 윤석민은 후배가 선배를 까고 세상 참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11월 14일 한일 클럽 챔피언십에서는 신종플루 확진을 받은 상황에서 출전, 5⅔이닝동안 최고 151km에 달하는 위력적인 직구와 체인지업으로 6삼진 3안타 1실점의 호투를 선보이며 요미우리 타선을 완벽히 틀어막았다. 불펜이 퐈이야(...)하는 바람에 호투가 빛이 바랬지만 김광현에 이은 또 한 명의 일본 킬러로서의 가능성을 보였다.

4.3 2010 시즌

양현종/2010년 문서 참고.

4.4 2011 시즌

본격 양붕개 시즌
작년에 금메달도 땄고, 병역 혜택도 받았으므로 기분좋게 2011 시즌을 맞이할 수 있었어야 했는데, 지금까지 활약했던 양현종은 어디가고 밸런스가 망가진 모습을 보이며 팬들을 매우 실망시켰다. 또한, 새로운 좌완 영건 심동섭이 등장하면서 양현종의 입지는 더 좁아졌다.
양현종/2011년 참고.

4.5 2012 시즌

올해도 망했어요.

양현종/2012년 문서 참조.

4.6 2013 시즌

전반기에는 2009~2010 모드, 후반기에는 2011~2012 모드 대투수와 붕개 사이

양현종/2013년 문서를 참고.

4.7 2014 시즌

국내투수 중 다승 1위, 탈삼진 1위, FIP 1위, FWAR 1위, 초대 최동원 상 수상자.
하지만 후반기 징크스를 직격타로 맞고, 해외의 냉혹한 평가를 받다.

양현종/2014년 문서를 참조.

4.8 2015 시즌

타고투저 현상에도 활약하고 훌륭한 모습을 보였던 해, 그러나 3년 연속 후반기 징크스를 맞다.
그럼에도 자신 스스로 팀의 에이스임을 증명했던 한 해

2010년 류현진 이후 21세기에 들어서 조정방어율 200을 돌파한 선수[14]

양현종/2015년 문서를 참고.

4.9 2016 시즌

언제나 꾸준한 명불허전 기아의 ACE
2007년 류현진 이후 9년만에 토종 200이닝 달성
올해는 비껴간 후반기 징크스

고생끝에는 10승이 있었다 12패도 있었다는게 함정...

양현종/2016년 을 참조.

5 여담

  • 안경쪼다같은냉철해보이는 인상과는 달리 애교도 많고 장난도 많은 편이라고 한다. 외국인 선수들 괴롭히는건 일상
  • 양현종은 2008~2009시즌동안 간베 도시오 코치의 가르침을 받았는데 2년 가까운 시간동안 원정경기 호텔에서 까지도 경기가 끝난 후 옥상으로 올라가 훈련을 했다는 사실을 인터뷰했다. 그 후로도 간베 도시오 코치와 인연은 이어져 현재까지도 자주 연락하는 사이로 알려져있다. (간베 코치는 아직도 호사방등의 가아 커뮤니티의 팬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데 이 시기에 꽃을 피웠던 투수진이 가히 엄청나다. 유동훈 곽정철 손영민 이범석 등등 흠좀무... ) 추가로 요즘 어린선수들은 간절함이나 노력이 부족하다는 말도 같이했다.
  • 2008년 용병 호세 리마가 방출되었을 때 매우 아쉬워하며 울기도 하였으며 2010년 5월 23일 호세 리마가 사망하자 미니홈피에 호세 리마와 같이 찍었던 사진을 올리며 그를 애도했다. 지금 쓰는 등번호 54번도 원래 입단 동기였던 친구 이준수의 번호였는데, 2008 시즌이 끝나고 이준수가 방출당하자 친구를 위해서 달았다고 한다. 2012 시즌 후, 이두환이 KIA에서 뛰어보지도 못하고 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모자에 이두환의 이니셜인 DH를 써넣으며 그를 기억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1년 선배인 박경태가 장난치자 정색하는 장면에 로페즈에게 반말[15]하는 것 때문에 까이기도 했다.
  • 로만 콜론이 큰 손을 이용해서 공을 한 손으로 다루는 묘기를 해보면서 양현종에게 해보라고 했는데, 전혀 하질 못하자 로만 콜론이 때리려고 했다기 보단 "이것도 못해?" 하면서 갈궜다. 물론, 양현종은 정말 쫄았다.[16]
  • 온라인게임 마구마구에 나오는 자신의 투구폼이 실제와 다르다는 이유로 개발진에 직접 수정을 요구해 2009년 10월 28일 업데이트 때 반영되었다.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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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년 광주MBC의 캠페인인 "무등산을 사랑하자"에 출연했다. 마운드에서 혼신을 다할 수 있었던 것은 제 뒤에 무등산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대사 때문에 KIA 타이거즈 갤러리에서는 무등산에나 가라고 비아냥거렸다. 산악인 형저뫼는 어디에?
  • KIA 타이거즈가 센터 내야수를 보강하려고 이리뛰고 저리뛰고 할 때 두산 베어스에서 이대수를 제시하면서 양현종을 내놓으라고 한 적이 있었다. 당연히 KIA 타이거즈는 거절하였다. 물론, 두산이 꼭 이걸 성사시키려고 했다기보단 혹시나 해서 찔러본 거겠지만.. 그리고 결국 이대수는 한화
  • 한때 양현종이 삽질했을때(11~12 시즌) KIA 타이거즈 갤러리에서 양현종의 사진은 혐짤다. 일단 올리면 달리는 게 욕설. 예를 들면, 이런 짤. 기아루상이무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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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상 생활을 할 때에는 뿔테 안경을 쓰고 경기할 때는 무테 안경을 쓴다. 조성환의 말을 빌리면, 무테 안경을 착용하면 시야에 방해를 받지 않아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 때 안경이 떨어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 끈으로 머리에 고정시키는데, 뒤통수에서 삐져나온 끈이 마치 꽁지머리같이 보이기도 한다. 색깔도 딱 검은색이라...
  • 그리고 라디오볼에서 언급된 바로는 안경과 썬크림을 과도하게 바르는 이유가 "스타성"때문이라고 한다. 프로야구에서 선수를 상징하는 무언가가 필요한데 자신은 썬크림과 안경이 그 상징성이라고. 그 외에도 프로야구선수로써 팬들에게 어필할수 있는 스타성에 대해 항상 진지하게 생각하는 선수중 한명이라고 극찬했다. 그덕에 묘하게 진종오를 닮았다.
  • 2014년 시즌이 끝난 후 친누나와 함께 배구장에 관중으로 온 모습이 포착되었다. # 누나 예쁘다
  • 2015 시즌이 끝나고 품절남 대열에 합류할 예정이다. 여자친구와 식만 올리지 않았을 뿐 이미 예비신부와 신접살림을 차렸고 9월 15일에 득녀를 했다. 이름은 '양지온'.

여기까지만 보면 그냥 단순히 KIA 타이거즈의 왼손 투수일뿐이다. 그렇다. 지금까지의 설명은 야구선수 양현종의 이야기이다.

이 아래에는 인간 양현종에 대한 설명이 시작된다.

6 자네 지금 뭐하는 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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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민을 노리는 날카로운 눈빛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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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홍은 내꺼 우유빛깔 양현종 그와중에 연적이...[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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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페즈를 괴롭히는 양현종[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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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피 관리인 양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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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희섭 혼삿길 막는 양현종(최희섭 옆에 있는 선수가 안치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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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범 앞에서 대놓고 이종범의 아들 정후 군에게까지.. 니가 바람의 손자라며?

심지어 김원섭의 딸까지 노리고 있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이 짤들은 그의 행각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귀엽다고 생각하면 지는 거 이로 인해 어장관리가 쩌는 남자, 마성의 후로게이로 낙인 찍혀버렸다. 지못미

파일:/image/311/2010/11/21/1290332811662.jpg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참가한 강정호에게까지 손을 뻗는 무서운 후로게이. 후로게이는 후로게이를 알아본다고..

물론 위에도 언급했듯이 지금은 애아빠다(...) 그렇지만 중계화면마다 보이는 남정네들에게 페로몬을 발산한 듯한 장면들이 카메라에 포착되는데 부인이 그거 보고 대체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부인이 부녀자라면 다행..일까?

브렛 필에게 야구할 힘을 주고 함께 석양을 봤다고 한다. March.... 링크

해맑은 현종이

7 별명

한창 방화를 해대던 시절에는 숨만 쉬어도 별명이 양산되는 수준이였다. 이 당시 양산된 별명으로는 운현종[20], 햄종이[21], 막내딸, 양소퀴[22], 퀄뭐[23], 2011 시즌과 2012 시즌에 자주 사용되었던 별명은 안경쪼다[24][25], 양모지리, 양시구, 양삼밀, 볼넷쓰리런[26], 양붕괴[27], 양붕개[28], 양볼넷, 내이투[29], 어둠의 피쳐[30], 붕개나이트, 양민폐, 양멸망, 선크림귀신, 가부키 배우, 임동귀신, 양 폭탄. 에이스로 거듭난 지금은 쓰기 쉬운(...) 양붕개나 안쪼나 변형형태인 양쪼가 가끔 나오는것 빼고는 거의 사장되었고 KIA갤에서는 2013년 시범경기 직후부터 한 야갤러가 꾸준글을 도배한 대투수님이란 별명을 미는 중.물론 어디까지나 잘 던질 때 한정.

8 소덕

2009 시즌 두산 베어스와의 개막전에서 공연하는 소녀시대태연을 보고 침을 질질 흘리는 모습이 카메라에 찍혔고, 그 이후 기자를 통해 싸인을 받아달라고 요청했다. 여자친구는 이걸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적어도 게이소리 듣는 것보다는 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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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연은 양현종에게 사인 외에 10승 달성~! 좋은 소식 기다릴게요^^ 파이팅!!이라는 문구를 써 주었는데, 이 사건이 기사로 나가자 이강철 코치에게 엄청나게 털렸다는 뒷이야기가 있다. 팀 선배들도 엄청나게 놀려댔다고.

그리고 진짜로 10승을 달성했다. 무려 12승을 기록 그해 다승왕이 14승인 로페즈였으니..3승만 더했으면 다음 시즌에는 20승 달성해달라고 써줘야 하나?

게다가 KBS N 스포츠 야구 프로그램인 야생야사에서는 '자신의 10승 달성과 팀 우승은 태연 덕분'이라고 발언하기까지 했다. 제대로 소덕 인증한 셈.

11월 9일에 열린 우승 축하행사에 소녀시대가 초대가수로 왔으나 막상 양현종이 감기 몸살을 앓는 바람에 병원에서 뒤늦게 와 선수들이 앉은 앞자리도 아닌 먼 발치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한국시리즈 우승 후 출연했던 출발 드림팀에서 "좋아하는 연예인이 누구에요?" 라는 질문이 나오자 태연을 언급한 후 태연에게 "언제 한번 밥이나 먹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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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시인사이드 태연 갤러리야구 갤러리에 태연이 출연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열성적으로 시청하는 흡사 모니터에 빨려 들어가는 모습이 올라와 진성 탱빠 인증에 성공, 뭇 갤러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선사하였다.

이런 건들로 인해 그에게 붙은 별명이 소퀴.

그런데 이상형이 이 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양아섭

2014년 6월 19일 태연과 EXO 백현의 열애설이 터졌다(...)그리고 SM이 인정했다(...)분노의 완봉승?

9 윤석민과 반비례?

상당히 재미있는 부분은 기아팬들이 가장 바라는 부분인 우완 에이스 윤석민-좌완 에이스 양현종의 공동 대폭발이 한 번도 이뤄진 적이 없다라는 부분이 아이러니컬하다. (하지만 2015년 윤석민이 마무리로 보직 변경 후 공동 대폭발이 진행 중이다. 타자 라인이 안습인데도 5위를 찍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양현종의 포텐이 터진 2009년부터 살펴보면 양현종이 10승 투수를 하며 잘 나갈 때 윤석민은 정작 2009년에 초반 부진했다가 후반부에 호투를 이어나갔다. 실상 이 시즌은 구톰슨-로페즈의 용병선발 듀오가 더 대활약해서 기아를 우승까지 이끌고 갔으니...

2010년에는 양현종이 나올 때마다 팀의 연패를 끊고 승리를 챙기면서 다승그룹에 이름을 올리는(!) 무려 16승이였다. Sk김광현이 17승을 기록해 다승왕은 놓쳤다. 기아의 에이스 역할물론 완벽한 에이스라기엔 좀 운빨도 따르긴 했다. 게다가 방어율도 4.25로 높은 편 이였던 반면에 윤석민은 SK전에서 승리가 날아가며 락커룸에서 자해(...) 부상을 입어 2군행, 이후 복귀 후에는 롯데전에서 연속 사구 사건을 일으키며 바람잘날 없는 시즌을 보냈다. 결국 그 해 아시안게임에서 국가대표에 뽑힌 양현종은 금메달로 병역면제를 받고 다음 시즌 기분 좋게 시작하나 했는데...

2011년, 둘의 처지는 정반대가 되는데 윤석민이 무려 17승을 기록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며 완벽하게 부활한 반면에 전해 다승그룹에 있던 양현종은 관 속으로 드러누웠다(...). 아시안게임 이후 몸 관리를 제대로 못해서 투구 밸런스가 가출 실종된 게 가장 큰 이유였다고 한다.

2012년에는 윤석민은 전년도의 특급 투수같은 면모는 보여주지 못했고 불운도 겹치긴 했으나 일반적인 A급 투수의 모습은 보여주었고, 양현종은 계속 관 속에 누워있었다(...)

2013년에는 양현종은 겨우내 단내나는 훈련으로 좌완 에이스의 면모를 회복하는 듯했으나 결국 후반기를 말아먹으면서 추락. 양현종은 부상 후 선동열의 무리한 복귀 앞당기기로 말아먹었다고 평가 된다. 그리고 윤석민은 타이중 참사에 어깨 문제 등으로 최악의 한 해를 보내고 말았다. 특히 후반기에 윤석민은 사실상 강제로 마무리로 전환하지만 마지막 경기까지 별 재미를 못보았다. 결국 둘 다 사이좋게 안 좋은 한 해를 보내버려 반비례 징크스는 깨진 셈. 무엇보다 2014년부터 윤석민은 미국으로 건너가서 이 반비례 관계는 따지기도 애매해졌다. 근데 결국 양현종 9승 윤석민 3승

2014년 윤석민미국의 AAA에서 10경기 연속 홈런 기록을 세우는 동안, 양현종은 기아의 토종 에이스로서 위엄을 보였다.

2015년 윤석민기아로 리턴한 후, 마무리를 하게 되며 두 투수가 함께 선발로 터지는 모습은 보기 힘들 전망이다. 사실상 둘 다 잘 해주는 시즌이라고 할 수 있다. 양현종, 윤석민 둘 이 각각 WAR 1, 2위다. FIP은 중간에 합류해서 표본이 적은 에반을 제외하고, 윤석민이 팀내에서 1위고 양현종은 선발 에이스로써 잘 해주고 있다.

2016년에는 양현종은 불운의 에이스가 되었는데 선발투수로 복귀한 이분은 90억 드르렁....

10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연도소속팀경기수이닝승률ERA피안타피홈런4사구탈삼진실점자책점WHIP
2007KIA 타이거즈3149⅔12000.3334.17397344824231.41
20084875⅔05050.0005.83774495649491.65
200929148⅔12
(9위)
5010.706
(6위)
3.15
(5위)
1331460139
(4위)
55521.29
(7위)
201030169⅓
(5위)
16
(2위)
8000.667
(8위)
4.25
(10위)
1699104145
(3위)
84801.58
201128106⅓79000.4386.181169737474731.74
2012284112020.3335.05513362625232.00
201319104⅔93000.7503.109910499538361.36
201429171⅓
(7위)
16
(2위)
8000.667
(6위)
4.251621282165
(3위)
85811.40
(10위)
201532184⅓
(8위)
15
(4위)
6010.714
(4위)
2.44
(1위)
1501885157
(8위)
52501.24
(6위)
201631200⅓
(2위)
1012000.4553.68
(4위)
1911979146
(5위)
96821.34
(6위)
KBO 통산(10시즌)3051251⅓8760090.6163.95118710565110515825491.44
완투, 완봉기록
연도완투완봉
20070완투0완봉
20080완투0완봉
20090완투0완봉
20101완투
(6위)
1완봉
(3위)
20111완투
(6위)
0완봉
20120완투0완봉
20131완투
(6위)
0완봉
20140완투0완봉
20151완투
(6위)
1완봉
(2위)
20163완투
(1위)
0완봉
KBO 통산(10시즌)7완투2완봉
  1. 정 못 믿겠다면, 링크로 참조하면 된다.놀랍게도 한기주와 같이 학사수여받으니 경사났네 경사났어
  2. 사실은 고졸 선수들이 군입대를 미루기 위해 대학에 이름만 올려두는 것. 물론 일종의 편법이긴 하나, 양현종만 이런 것이 아니고 프로 운동 선수나 연예인들이 널리 애용하는 수단이다. 덕분에 김별명은 대전대를 나왔고, 하하는 석사 출신이다. 특히 운동 선수들 사이에선 워낙 널리 퍼져 있는 군 입대 연기 방법이기 때문에, 운동선수들, 특히 프로 야구, 축구 선수들의 공식 프로필에선 이런 종류의 학사 경력을 아예 빼버린다. 하지만 봉중근(병역특례를 받은 것은 2008년. 성균관대 입학은 2010년)과 같이 그렇지 않은 케이스도 있다. 상식적으로 정말 학교에 출석 열심히 해서 졸업장 받았을 것 같냐? 그런데 그렇게 따지면 고등학교도 매한가지
  3. 양현종 힘차게 오! 워~ 양현종 힘차게 오! 워~ 양현종 힘차게 오! 워 ~ 타~이~거~즈 양현종 (x2)
  4. 원곡인 라이너스의 연을 노브레인이 당시 불후의 명곡에서 편곡한 버전의 도입부를 응원가로 사용한다.
  5. 양현종의 동기로 방출되자 친구 몫까지 열심히 한다는 이유로 등번호를 물려받았다. 후에 군복무를 마치고 한화에 신고선수로 입단하여 정식선수로 임명됐다.
  6. 호세리마의 기일을 맞아 한 유저가 작성한 글인데,참 짠하다.한번 보시길.
  7. 뭔가 비장하고 멋있게 말한 것 같지만 사실 기자가 '이닝 많이 소화한다고 상도 안 주는데 괜찮냐'고 물어보니 '뭐 훈장 같은거죠' 식으로 쿨내 나는 대답이었다. 초월번역
  8. 평균 140km 초반, 커리어 최고 구속은 152km
  9. 좌완 투수부분 올스타전과 대회 평균자책점 1위.
  10. 2008년 3월 21일 히어로즈전에서 5이닝 노히트노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11. 조범현 감독이 이종범을 내야수로 쓸 생각까지 했을 정도. 2009년 주전 유격수는 이현곤이었으나, 이현곤은 갑상선 질환 때문에 스태미너가 떨어졌다. 남은 카드는 김종국 뿐이었는데, 그러면 2루수가 비는 상황이었다. 이 문제는 2009년 2차 1순위 지명자 안치홍을 2루수로 보냄으로써 해결되었다. 그리고 구멍이었던 3루는 시즌 중에 트레이드로 김상현을 받아 오면서 해결. 게다가 이 때 내야 대수비 요원 박기남까지 함께 오면서 때아닌 내야수 풍년이 들었다. 사랑해요 LG 이후 차기 주전 유격수로 꼽혔던 김선빈이 포텐을 터뜨렸고, 2011년에는 3루수 이범호를 영입하면서 당분간 내야 걱정은 없게 되었다...였는데 2014년에 안치홍이 아시안게임에 승선하지 못해 김선빈이랑 같이 군대로 가버렸다!가라는 나지완은 안가고 아아 각동님 현재 강한울최용규, 김민우가 각각 유격수,2루수를 보고 있다.확실히 내야 주전이 절실한 상황. 그리고 넥센에서 돌아온 서동욱이 2016년 8월 현재까지 맹활약 하며 한숨 돌리고 있다. 또 16년 9월달에 각각 전역하는 김선빈과 안치홍이 돌아오기때문에 8월3일 현재 4위를 잘 유지한다면 가을아구에서 홍현우 이종범이후 최고의 사랑을 받았던 김선빈과 안치홍의 키스톤 플레이를 다시 볼 수있을 것 같다.
  12. 물론, 이대수가 나쁜 선수는 아니었으나, 이미 1군에서 계속 써먹으려고 끌고 다니는 좌완 파이어볼러와 팀 내에서도 사실상 잉여 전력이 되어 1군에도 붙박이가 못 되는 유격수 사이의 가치 차이는 상당히 컸다.
  13. 사실 박재상의 2루타의 경우엔 홈으로 쇄도했던 정상호가 이미 김상훈의 태그에 걸려 아웃이 되어야 했을 상황이었는데, 어째서인지 임채섭 주심은 세이프를 선언했다. 더 웃긴 건 당시 해설을 하던 SBS 박노준 해설위원은 김상훈이 공을 놓쳤다고 했는데, 실제로 김상훈은 정상호와의 홈 접전에서 끝까지 공을 놓지 않고 있었다!
  14. 정확하게는 조정방어율이 221.5가 나왔다. 2010년 류현진은 253.6이다. 참고로 2010년 김광현의 조정방어율은 191.9이다.
  15. 로페즈는 KIA 투수진에서 이대진 다음으로 나이가 많았다.
  16. 로만 콜론은 KIA에 오기 전에 마이너리그에서 백인 투수 한 명을 골로 보내서 당시에 뉴스에까지 나올 정도로 큰 폭력사건을 일으킨 경험이 있다. 양현종이 위축되는 것도 당연하다.
  17. 3분 10초쯤에 나온다
  18. 임태훈과는 벨트를 빌려주는 등(!) 상당히 막역한 사이다. 하지만 이젠 가까이해서 좋을 거 없다.
  19. 참고로 당시 로페즈의 나이는 이대진 다음으로 나이가 많았다
  20. 2010 시즌의 폭발적인 타선 지원과 기록되지 않은 각종 행운으로 16승을 달성하며 붙은 별명이다.
  21. 햄스터+현종이. 움짤로도 만들어졌다. 양현종 햄스터 드립이라 불린다.
  22. 소덕 항목을 참조
  23. 조범현 감독이 질책하자 그래도 퀄리티 스타트했다며 개드립 시전. 이에 열받은 조 감독이 '퀄뭐?'라고 답해 그대로 양현종의 별명이 되고 말았다.
  24. 13 이후로는 주로 분탕종자들이 쓰는 별명. 갸갤러들은 잘하면 대투수, 못하면 붕개라고 부른다
  25. 이걸 줄여 안쪼라고 하며 나중가선 양쪼로 변형되었다.
  26. 하지만 모 팀에서 이를 뛰어넘은 볼넷 그랜드슬램이 터졌다.
  27. 2011년 4월 3일 광주 삼성전에서 양현종이 볼넷쓰리런을 기록하자 다음 중계에 양현종 붕괴라고 떠서 생긴 별명이다.
  28. 양현종 붕괴 + X새끼. 사람으로 거듭난 13 이후로도 붕괴하는 기미가 보이면 갸갤은 양붕개로 뒤덮힌다.
  29. 2011년 7월 31일 광주 넥센전에서 4이닝 4실점하자 스포츠조선에서 내가 이런 투수란 말인가라는 타이틀의 기사가 뜨면서 생긴 별명이다.
  30. SK전 6이닝 2실점하자 어려운 팀을 구하는 어둠의 피쳐라는 기사가 뜨면서 생긴 별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