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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張永達
1948년 8월 24일 ~

대한민국정치인이다. 호는 남송(南松)이다. 종교개신교이다.

1948년 전라북도 남원군에서 태어났다. 전주고등학교, 국민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하였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되어 7년 동안 복역하였다. 이후로도 민주화운동에 참여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무소속 손주항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1995년 김대중이 정계복귀하여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자 참여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8년 새정치국민회의 수석부총무,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을 역임하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국방위원장을 역임하였다. 한편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치러진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 선출 전당대회에서 노무현을 지지하였다. 2003년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하여 열린우리당에 입당하였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7년 초 해체되기 직전의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에 선출되었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이무영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자신을 고소한 사람에게 맞고소하여서 항소심에서 무고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여담으로 2005년부터 2008년까지 대한배구협회 회장을 지냈다. V리그가 한창 출범하는 김에 지원을 늘려볼려는 배구협회가 축구협회 부회장을 지낸 경력이 있고 배구에도 어느정도 관심이 있던 장영달을 회장으로 초대한 셈인데, 정작 장연달이 회장이 된 이후로는 법인화 문제로 집행부 내부의 갈등이 극단적으로 표출되는 상황이 펼쳐지는 가운데서 제대로 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고 법인화는 어찌어찌 이루워지기는 했지만 권위가 실추되어버리는 바람에 후의 대한배구협회 막장화의 시발점이 되었다는 평이 많다. 이런점을 보았을때 배구협회 회장으로 지냈을때 배구협회를 휘어잡는 수완은 확실히 부족했던듯 하다. 결국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프로구단과의 갈등으로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올림픽 선수차출이 이루워졌고 남녀 모두 예선탈락하는 일이 벌어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며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다만 후임인 임태희협회를 하우스 푸어로 만들고 선수들을 푸대접 하는 등 막장운영을 선사하면서 그래도 구관이 명관이지라는 평을 듣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