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孫周恒
1934년 02월 25일 ~
1 개요
2 상세
1934년 전라북도 임실군 신평면에서 태어났다. 전주고등학교, 중앙대학교 법정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하였다
1960년 12월 민주당 후보로 전라북도 도의원에 당선되었다. 5.16 군사정변 이후에는 민중당, 신한당, 신민당 등 야당에 속하였다. 신민당이 창당하자 신민당 당 기관지인 민주전선 편집인이 되었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반 유진산계라는 이유로 양해준에게 밀려 신민당 공천을 받지 못하자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전라북도 남원군-순창군-임실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양해준과 동반 당선되었다. 1974년 신민당 김영삼 총재 체제가 출범하자 진의종, 김재광, 한병채, 김인기, 이용희, 한영수 등 친야 무소속 국회의원들이 신민당에 복당하였으나 그는 홍창섭과 함께 무소속에 잔류하였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다.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구속되었으나 민주공화당 설인수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79년 6월 신민당 김영삼 총재 체제가 출범하자 이번에는 이상민, 박찬, 한병채, 오세응, 예춘호, 김현규 등 친야 무소속 국회의원과 신민당에 복당하였다. 1979년 12월 석방되었다.
1980년 5.17 내란 직후 신군부에 의해 모처로 끌려가 심한 고문을 당하고 정치규제를 당하였다. 정치규제 기간에는 삼성그룹 계열사인 제일기획의 상임고문으로 활동하였다. 1984년 정치규제에서는 해금되었으나 복권되지 않아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출마하지 못하였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평화민주당 후보로 전라북도 전주시 을(현재의 완산구 일대) 선거구에 출마하여 신한민주당 이철승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같은 해 평화민주당 부총재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이후 김대중 총재 노선을 비판하다가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공천에서 탈락되어 무소속으로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장영달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