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학영

성남 FC No.33
장학영 (張學榮 / Jang Hak-young)
생년월일1981년 8월 24일
출생지서울특별시
국적대한민국
포지션왼쪽 풀백
신체조건170cm / 63kg
등번호33번
프로입단2004년 성남 일화 천마
소속팀성남 일화 천마(2004~2010)
서울 유나이티드 FC(2010~2012)(임대)[1]
부산 아이파크(2012~2014)
성남 FC(2015~)
국가대표5경기 0골
2006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우성용
FW
김은중
MF
김두현
MF
백지훈
MF
이관우
MF
뽀뽀
DF
장학영
DF
마토
DF
최진철
DF
김영철
GK
박호진
2007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이근호
FW
까보레
MF
따바레즈
MF
이관우
MF
김기동
MF
김두현
DF
아디
DF
마토
DF
황재원
DF
장학영
GK
김병지
유일한 성남 FC의 레전드.[2]

1 소개

성남 FC 소속의 축구 선수. 주 포지션은 왼쪽 풀백.

2 성남 일화 천마 시절(2004~2010)

경기대학교를 졸업했으나 K리그 팀들로부터 영입 제의를 받지 못했고, 결국 성남 일화 천마에서 연습생 신분으로 훈련에 참가해야 했다. 이 때 안익수 당시 성남 2군 코치로부터 성실성을 인정받아 2004 시즌 도중에 정식 계약을 맺게 되었고, 중앙 미드필더에서 현재의 포지션인 풀백으로 포지션을 변경한 것도 이 때이다. 처음에는 미숙한 경기력으로 왜 쓰는지 모르겠다는 불만과 함께 많은 팬들의 질타를 받았지만, 전북원정경기의 대승을 기점으로 본인이 가진 경기력을 온전히 보여주면서 차경복 성남 감독의 눈에도 띄어 데뷔시즌에 16경기나 출전하고, 이듬해에는 아예 주전자리를 꿰차기에 이른다. 어디선가 갑자기 갑툭튀한 무명 선수가 주전으로 대활약하는 것을 보고 성남 팬들은 복에 겨워하며 하악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이 때의 활약으로 딕 아드보카트 감독에 의해 A대표팀에도 소집되기까지 한다.

김학범 감독의 부임 이후에는 당시 김학범 감독이 구축한 박진섭, 조병국, 김영철로 이어지는 철의 포백의 한 축을 담당하며 성남일화의 마지막 K리그 우승,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4강 진출에 일익을 담당한다. 김학범 감독의 사임 이후 김학범 감독 아래에서 주축을 담당하던 선수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팀을 떠날때도 조병국, 정성룡등과 함께 그대로 잔류해 신태용 감독의 아챔 우승에도 한몫 기여한다. 그리고 2011년에 공익근무를 시작하면서 팀을 떠났다. 전성기에 왼쪽 풀백자원이 풍부해서 대표팀과 인연이 없었던게 아쉬울 따름. [3] 공익으로 병역을 이행하는 중에는 K3 챌린저스리그서울 유나이티드 FC에서 뛰면서 경기감각을 유지했다.[4]

3 부산 아이파크 시절(2012~2015.6)

그러나 복무를 마치고 복귀한 팀은 성남이 아닌 부산 아이파크였는데, 성남이 부산에서 한상운을 영입하면서 그 대가로 장학영의 소유권을 부산에 내주었기 때문.그 이후 한상운의 활약에 대해서는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는 소집 해제를 앞두고 일어났다. 장학영의 번호 33번을 쓰던 홍철에게 2012년에는 자신의 번호를 비워둘 것을 미리 이야기 했을만큼 팀에 대한 복귀를 당연시했고, 떠날때도 팬들을 따로 불러서 송별회를 치룰 만큼 팀과 팬에 대한 충성심이 컸던 장학영이지만, 당시 구단운영과 선수에 대해 아무런 철학도 없던 성남일화 프런트는 한상운 영입의 조건으로 장학영을 내걸었다.

물론 팬들은 레전드를 이렇게 내칠 수 없다며 거세게 항의했지만 당시 성남일화 프런트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그대로 장학영을 부산에 넘겨준다. 장학영을 발굴해 낸 안익수 당시 감독이 부산 사령탑이다 보니...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명언 그대로 소집 해제 후 부산 아이파크에 이적하자마자 주전으로 활약한다.인용 오류: <ref></code> 태그를 닫는 <code></ref> 태그가 없습니다이 왼쪽 풀백을 보며 선전했지만, 팀을 구원하진 못했다. 결국 팀이 존폐 위기를 맞은 연말에 신 감독은 계약기간을 2년 남겨놓고 사퇴.</ref>

2013 시즌에는 신인 박준강과 함께 좌우 측면 수비를 나눠맡아 책임지고 있다. 장학영과 박준강의 나이 차이는 딱 10살이 나는데, 이렇게 좌우가 균형잡힌 풀백라인을 갖춘 팀은 리그에서도 손꼽을 정도. 부산이 짠물 수비로 이름높은 것도 다 이유가 있다. 2014 시즌 33경기에 출장해 3개의 도움을 기록하였다.

4 성남 FC 시절 (2015.6 ~ )

2014 시즌 후 계약이 종료되어 자유계약 대상자가 되었다. 사실 그 해 겨울에도 자신을 키워준 김학범이 있는 성남 FC로 돌아오지 않겠냐는 관측이 지배적이었지만, 이적 계수가 발생하는 선수라 그런지 겨울을 넘기게 되었다. 하지만 결국 2015년 6월 25일에 성남 FC와 계약하며 친정에 복귀했다. 그 후 김학범 감독 아래에서 부진했던 김동섭이 부산으로 떠나고 박용지가 들어오면서 박용지+장학영과 김동섭을 트레이드 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리고 2015년 7월 8일 서울과의 홈경기에서 복귀전을 치뤘다. 김두현에게 주장 완장을 받는 모습이 매우 감동적이었고, 시즌 초부터 그를 기다렸던 성남 팬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그 후 박태민을 밀어내고 주전 레프트백 자리를 차지한다.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좋은 활약을 펼쳤고 시즌 중에 합류해 비교적 적은 17경기에 출장하며 1개의 도움(9월 23일 성남의 상암 원정 무승 기록을 멈추게 한, 부산 출신 박용지의 슈퍼 울트라 짱 골을 만들어냄)을 기록했다.
  1. 군복무 (공익근무요원)
  2. 성남의 레전드로 가장 흔히 거론되는 신태용은 동대문 일화 시절 데뷔해서 천안, 성남을 거친 선수다. 김상식은 천안 시절 데뷔했으며 세대교체 명분으로 안좋게 헤어져서 선수 본인이나 팬들이나 전북맨으로 친다. 김두현은 성남 레전드라기엔 수원에서 보낸 시간이 적지 않다. 순수하게 성남 시절 데뷔해 레전드 반열에 오른 선수는 아직까진 장학영 한명 뿐이다.
  3. 핌 베어벡 감독 시절 K리그 챔피언 결정전 직전에 대표팀 소집을 받았는데 부상을 이유로 차출을 거부해 놓고 며칠 후에 챔피언결정전에 출전한 일 때문에 안 좋게 찍혔다는 설이 있는데 그냥 설일 뿐이고 그걸로는 핌 베어벡 이후로도 국대와 인연이 없었던건 설명이 안된다. 이 시절엔 부동의 주전으로 이영표가 있었고 김동진, 김치우 등 국제무대 경험과 나름의 장점을 가진 선수들이 있었기에 경쟁에서 밀렸다고 보는게 타당하다. 왼쪽 풀백은 지금도 국대에서 가장 자원이 풍부한 포지션에 속한다.(박주호, 김진수, 윤석영, 홍철 등)
  4. 서울 유나이티드에 있을 때 장학영을 제대로 활용해보려고 여러 포지션에 걸친 실험이 있었다. 윙포워드 부터 중미, 수미, 심지어 센터백... 그냥 골키퍼 말고는 다 해봤다고 봐도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히 챌린저스리그에서 '이거다!' 싶은 활용법을 찾지 못했다. 근데 해트트릭 경험이 있는 건 함정 다만 이 경험이 이후 부산에서 공격적으로 올라가는 플레이에 영향을 준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 있긴 하다.나쁘지는 않았던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