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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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안익수 (安益秀 / An Ik-Soo)
생년월일1965년 5월 6일
국적대한민국
출신지경기도 안산시
포지션수비수
신체조건183cm / 80kg
프로입단1989년 일화 천마
소속팀일화 천마(1989~1995)
포항 스틸러스(1996~1998)
국가대표5경기
코치천안 일화 천마(1999)
성남 일화 천마(2000~2005)
고양 대교 캥거루스(2006~2006)
FC 서울(2010~2010)
감독고양 대교 캥거루스(2007~2007)
대한민국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2008~2009)
부산 아이파크(2011~2012)
성남 일화 천마(2013)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U-18 (2014~2016 )
성남 FC 역대 감독
신태용
(2009~2012)
안익수
(2013)
박종환
(2014)
1994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윤상철
FW
라데
FW
김경래
MF
신태용
MF
고정운
MF
황보관
DF
안익수
DF
유상철
DF
홍명보
DF
허기태
GK
사리체프
1997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마니치
FW
스카첸코
MF
김현석
MF
신진원
MF
김인완
MF
이진행
MF
정재권
DF
김주성
DF
마시엘
DF
안익수
GK
신범철
1998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김현석
FW
샤샤
MF
고종수
MF
유상철
MF
백승철
MF
안정환
MF
정정수
DF
안익수
DF
마시엘
DF
이임생
GK
김병지

대한민국의 전직 축구선수. 축구 지도자.

1 선수 데뷔 전

특이하게도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축구를 시작했다. 중학교 시절부터 축구에 관심이 있었지만 학업 때문에 축구를 하고 있지 못하던 와중 고등학교 3학년 때 더이상 못참겠다고 생각해 축구를 시작했다. 축구부에 가입해 남들보다 몇 배 노력을 더했지만 당시 고교축구계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던 문일고에서 주전 자리를 잡지 못해 선수층이 얇은 숭실고로 전학을 갔다.

고등학교 졸업 후 축구로 대학교에 진학할 수가 없었고, 축구를 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다시 공부를 시작해 중앙대학교 체육학과에 진학한다. 하지만 일반학생으로서 축구부에 들어가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으며 결국 인천전문대에 입학하여 축구생활을 이어나간다. 이후 전국대회 4강에 진출하면서 당시 울산 감독이었던 김호 감독의 주목을 받기도 했으나 군문제를 우선 해결하기 위해 상무에 입단한다. 상무를 거쳐 국민은행에서 뛰던 안익수는 1989년 그당시 새롭게 창단한 일화에 입단하게 된다.

2 선수 데뷔 후

2.1 일화 천마 시절

하지만 프로의 벽은 높았고 안익수도 입단 초반에는 계속해서 후보를 전전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축구를 처음 시작할 때처럼 하루에 4번씩 연습을 하면서 박종환 감독의 눈에 들었고, 결국 주전자리를 꿰차게 되었다.

1990년 시즌에 29경기를 뛰며 주전 수비수로 자리잡았으나, 1991년 현대와 경기 중 송주석과 충돌로 부상을 입게 된다. 꾸준한 재활에 임한 결과 1992년도부터 다시 주전 수비수로 자리잡으며 일화의 리그 3연패(1993년~95년)의 영광의 시절을 함께한다. 그 당시 안익수, 발레리 샤리체프(신의손), 겐나디 등이 버티던 일화의 수비는 리그 최강으로 손꼽히기도 했다. 이러한 활약상에 힘입어 1994년 김호 감독이 이끄는 국가대표팀에 뽑혀 미국 월드컵에 나가기도 했다.

지금도, 안익수는 성남 일화 천마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레전드로 인정을 받고 있다.

2.2 포항 스틸러스 시절

1996년 포항 스틸러스에 1억원에 트레이드 되었다. 안익수의 플레이를 눈여겨본 박성화 당시 포항 스틸러스 감독이 영입해온 것. 여담이지만 이 트레이드는 구단 수뇌부 차원에서 진행된 것이라 이에 분노한 박종환 감독은 결국 감독직을 사퇴했다고 한다. 역시 개처럼 써먹다가 헌신짝처럼 내팽개치는 박규남 클라스 보소ㅉㅉ

포항에 이적해서도 초창기에는 여러차례 고전했었다. 강력한 맨마킹을 기반으로 하던 일화의 3백에 익숙해져 있던 그에게 지역방어를 기본으로 삼는 포항의 4백수비는 그에게 낯선 것이었다. 그래서 시즌 초반에는 4백에 적응하지 못해 2군으로 내려가기도 했으나, 4백 시스템에 적응하면서 후반기에는 다시 1부리그로 올라올 수 있었다.

이후 FA컵 우승,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 우승 등을 일궈내며 터미네이터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이후 1998년도에 은퇴, 은퇴 이후 포항의 코치직 및 해외연수 제안을 받기도 했으나 이전에 제안왔던 천안 일화 천마와의 약속을 거절하지 못해 천안 일화의 코치로 부임하게 된다.

3 코치시절

천안 일화 천마-성남 일화 천마의 코치를 맡으며 쓸만한 2군 선수들을 여럿 발굴했는데, 대표적인 선수들이 바로 김철호, 장학영, 박우현. 2군을 전전하며 축구에 대한 의지를 잃어가던 김철호와 장학영을 발굴하여 리그의 주전으로 자리잡게 한 것이 안익수 감독의 공이었다. 여담이지만 이때부터 자료를 통한 분석을 시작했다고 하는데 현재까지도 리그에서 감독이 직접 분석하는 경우는 안익수 감독이 유일하다고 한다.

2005년 성남과의 코치계약 종료 후 영국으로 유학을 가려고 했으나 당시 WK리그 고양 대교의 감독을 맡고 있던 故 최추경 감독의 제안을 받고 고양 대교 코치에 취임했다. 그런데 최추경 감독의 죽음으로 본의 아니게 감독직을 맡게 된다. 이후 고양 대교의 토대를 다지는데 주력하였으며, 여러가지 인프라 구축에도 많은 영향을 발휘하였다.

이러한 능력을 인정 받아 2008년부터 2009년까지 여자축구 대표팀 감독에 부임하게 된다. 이후 2010년도에는 FC 서울의 수석코치를 맡아 넬루 빙가다 감독을 도와 리그를 제패하는데 일조하게 된다. 젊은 선수들로 이뤄진 탓에 07~09시즌 내내 부실한 멘탈로 결정적인 순간 떨어졌던 서울은 이해 베테랑들의 대거 영입과 단결력을 중시한 감독, 코치의 지도 아래 강력한 조직력을 자랑하는 팀으로 재탄생했다.[1]

4 감독 시절

4.1 부산 아이파크 시절

2010년 FC 서울의 우승을 맡본 후, 정몽규 부산 아이파크 구단주의 제안을 받고 황선홍 감독이 포항으로 옮기면서 공석이 된 부산 아이파크의 감독을 맡게 된다. 감독 초반에는 아스날과 같은 유려한 패스축구를 구사하겠다고 했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강력한 수비를 바탕으로 하는 긴 역습축구를 구사하는 팀 컬러를 구축했다.

이는 팀에 맞춰 전술을 짜는 안 감독의 성향 때문이다. 안익수 감독의 이상은 4-4-2를 바탕으로 한 전진패스로 이어가는 공격축구이다. 하지만 부산에선 팀 사정에 맞춰 쓰리백과 4-1-4-1을 사용하였다. 특히 리그 수위급 미드필더였으나 소속팀과 재계약이 실패로 끝나면서 선수 생활을 접으려던 김한윤을 데려오면서 안익수식 4-1-4-1은 빠르게 자리를 잡는다. 시즌 초반에는 수비축구라는 비난도 많이 받았지만 이후 강력한 수비력을 기반으로 상대팀을 옥죄면서 질식축구라는 질시 섞인 찬사를 들었다. 결국 2011년 리그 6위 및 리그컵 준우승을 달성한다.

2012년에는 리그 7위의 순위를 달성하며 부산축구의 부활을 예고하였으나...여기까지가 그의 지도자 경력의 커리어 하이였다.

4.2 성남 일화 시절

2012년 말 갑자기 성남행 루머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안익수 감독은 헛소리하지 마라는 식으로 대응하였으나 결국 2012년 말 뜬금없이 성남행이 확정되었다. 문선명 총재 사후 팀 해체 위기를 맞은 성남 일화의 프런트는 최악의 시즌을 보낸 신태용 감독을 선수 때와 마찬가지로[2] 헌신짝처럼 내쳐버리고 확실한 성과를 내줄 감독을 찾던 중 예전에 내팽개친 안익수 감독이 성과를 내는 것을 보고 정몽규 구단주에게 리그 발전을 위한 대승적 차원에서 허용해 줄 것을 여러차례 부탁했다. 하다 못해 같은 모기업 계열사 자매구단도 아니고 리그 경쟁팀에 유망한 감독을 내주는, 죽 쒀서 개 주는 꼴을 승낙할 사람이 어디있나 싶겠지만...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정몽규 구단주가 흔쾌히 동의했다! 부산을 안정적으로 이끄는 상황이었으나, 2년차에 접어들었을 때 안익수 감독과 정몽규 구단주의 사이는 틀어질 대로 틀어졌으며, 때마침 성남에서 제의가 들어왔기 때문에 얼씨구나 하고 제의에 응했다는[3] 소문이 있다. 그리고 후임 부산 감독은 깨알같은 세제믿윤 선임

비상하는 천마를 도화지에 그려내겠다는 포부로 시작한 안익수 감독은 이후 성남 일화에 피바람을 몰고 온다. 내보낸 선수만 해도 한상운, 윤빛가람[4], 홍철, 김성환, 남궁웅, 임종은, 전현철 등 지난 시즌의 주전 혹은 준 주전급 선수만 해도 7명을 내쫓고 대신 다른 선수들로 리그를 대체한다.

하지만 시즌이 시작될 때까지 영입을 다 끝마치지 못해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며 결국 3월 말이 되어서야 리그 영입을 마무리 하였다. 시즌 초반에는 병신공의 재림을 보여주는것과 같은 경기 내용을 보여 한때 리그 꼴찌의 자리에 오르기도 했으나 이후 전북을 시작으로 서울, 울산 등 강호와의 경기를 쓸어담는 위엄을 보이며 스플릿 전 시즌 전반기를 5승 3무 5패로 마감하였다.

후반기에도 약간의 호성적을 거두며 드디어 신태용의 원쑤상위 스플릿에 드나 했더니 전남과 대구 같은 약체에 밀리더니 마지막 경남전에서 한 골밖에 못 넣는 동안 선두 포항이 부산에 패하며 득점 1 차이로 8위, 다시 하위 스플릿으로 들어갔다. 하위 스플릿에서 제주와 우승수위를 놓고 다투며 강등권과 격차를 벌리고는 최종 8위를 기록했다.

2013 시즌 후 일화가 지원을 포기하여 성남 일화 축구단이 시민구단으로 전환되어 성남 FC로 개편되는 과정에서 옛 스승인 박종환 감독의 선임 발표와 함께 감독직에서 물러났다.[5] 박 감독이 물러난 다음에 다시 선임하자는 의견이 있으나, 스승과 자리를 뒤바꾸는 일을 고작 넉 달만에 할 리도 없거니와, 무엇보다도 성남에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4.3 청소년 국가대표팀 시절

김상호 시즌2
김상호 감독의 후임으로 U-18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국내 개최가 확정된 2017년 FIFA U-20월드컵에 참가할 연령대의 선수들을 지도하게 된다.#

2015 발렌틴 그라나트킨 국제 유소년 축구대회에 출전[6]하여 1라운드에서 핀란드와 모스크바 선발팀을 상대로 1승 1무, 2라운드에서 아제르바이잔과 상트페테르부르크 선발팀에 2승을 거두어 결승에 올랐다. 결승 상대는 러시아로, 선제골을 넣었지만, 후반에 역전을 허용하면서 아쉽게 준우승으로 마무리 지었다.

2015년 수원 JS컵에 개최국 한국을 비롯하여 우루과이, 벨기에, 프랑스와 참가하게되었다. 22인의 최종멤버에서 이승우와 백승호가 발탁이 된 것에 대해서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매 경기가 끝날 때마다 그 두 사람의 팬들에게 개까였다

4월 29일 JS컵 첫 경기 우루과이전에는 후반 임민혁의 스루패스를 받은 이동준이 1골을 넣어 1:0으로 짜릿하게 승리를 거두었다. 전반전에 거센 우루과이의 압박에 고전하는 듯 하였으나 교체멤버들의 맹활약으로 후반전에는 흐름을 바꾸어 좋은 경기를 펼쳤다는 것이 포인트. 이 날 특히 빛났던 것은 수비전술이였는데 뛰어난 공격수를 가지고 있는 우루과이를 상대로 박스 안에서의 위협적인 슈팅을 거의 허용하지 않았다는것이 고무적이다. 특히 이 날 주목을 받았던 선수는 임민혁인데 넓은 시야와 준수한 킥력을 통한 스루패스로 공격에 활기를 불어넣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5월 1일 벨기에전에서는 우리가 상대방을 압도하는 경기력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마무리 부족으로 0:0으로 끝마치게 되었다. 미드필더로 출전했던 박한빈과 한찬희가 중원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었던 것이 두드러진 점이었다. 또한 철벽수비로 이번 경기에도 무실점을 이어나갔던 것은 덤.

그리고 5월 3일 프랑스 전에서는 0:1로 패했다. 이 날 다른 경기와 크게 다른 점은 이승우와 백승호의 투톱을 가동헀다는 점인데, 프랑스의 강한 압박전술에 백승호-이승우의 투톱이 제대로 볼 배급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 컸다. 상대가 라인을 올리고 촘촘한 간격을 유지하여 강한 압박전술을 사용하는 것을 이용하여 효과적으로 빈 공간을 노리기 위해 강지훈과 임민혁 그리고 김대원을 투입하여 반격을 해보려고 하지만 오히려 1골을 실점하여 그대로 0:1 패배를 하였다. 이 날 패인 중에 하나는 한찬희와 박한빈 두 미드필더의 방전이었는데, 강한 압박을 풀어내고 백승호와 이승우에게 볼 배급을 해주기에는 턱 없이 부족했다는 점이 컸다. 이 날 투톱 자리에 하나를 맡은 백승호는 전반 45분동안 뛰었는데 투톱 자리에서의 전술적인 이해도 부재와 부족한 경기감각 때문인지 활동폭이 줄어들었고 한찬희와 박한빈의 고립이 심화되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날 안익수는 백승호와 이승우의 투톱을 이용하여 바르샤 듀오의 공격에서의 창의성과 파괴력이 돋보이는 움직임을 기대해보려고 하였으나 전술적으로 실패했다는 평이다.[7]

종합적으로 마지막 프랑스전에서의 전술적 실패로 숙제를 남기긴했지만, 강팀을 상대로 1승 1무 1패를 했다는 점에서는 고무적이라 볼 수 있다.

2016년 JS컵에서는 이승우와 백승호를 소집하지 않았는데 이제 경기력도 충분히 올라온 선수들을 왜 뽑지않았냐고 해축팬들의 분노를 샀다. 허나 사실은 바르셀로나에서 입지를 더 다지라고 일부러 제외한 것이다. 물론, 뽑고 싶지 않은 것에 대한 명분일수도 있긴 하나, 그저 이 두명을 뺐다고 컵을 안본다느니 기대도 안한다느니 하는건 해축팬들의 막되먹은 팬심으로 밖에 볼 수 없다. 그리고 브라질과 비기고 프랑스를 꺾는 등 2승 1무로 우승하면서 성적도 우수했고, 2살을 월반한 고교생 공격수 조영욱을 발굴하는 등[8] 실리도 챙겼다.

2016년 10월에 열릴 AFC U-19 선수권을 한 달 남기고 준비차 참가한 카타르 4개국 친선대회에선 1승 2무 1패로 3위를 기록했다. 다만, 안익수 감독은 친선대회가 선수들의 경기력을 확인하기 위한 대회로 어디까지나 거쳐가는 과정이라고 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AFC U-19 대회에서 우승하겠다고 호언장담을 했으나.

2016년 AFC U-19 챔피언십 조별예선에서는 2승을 거두었으나 결국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사우디 아라비아에 1:2로 패하면서 2승을 거두었음에도 똑같이 2승1패를 기록한 바레인, 태국에 밀려 조별 광탈했다. 2승1패로 탈락했으니 다소 억울하다는 평도 있으나 2승을 거둔 상대가 바레인, 태국인지라...그리고 마지막 사우디 전을 무승부만 거두어도 되는데 패했다는 것은 결국 8강 토너먼트에서 사우디를 만났더라도 패했다는 것인지라(...) 별반 차이는 없다. 그리고 만약 2017년 FIFA U-20 월드컵이 대한민국에서 개최되지 않았으면 그대로 출전도 못하고 광탈했다는 것이기 때문에 국축팬들에게는 나노 단위로 까이고 있다.

그리고 결국 10월 24일,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었다. # 처음에는 경질 기사가 나왔다가, 나중에는 부랴부랴 하루 전에 자진 사퇴 의사를 밝혔다고 기사가 떴지만 정황상 짤린 게 맞다[9] 그럼에도 안익수는 마지막까지 "나에게 계속 맡겼으면 내년 U-20 대회에서 4강에 올랐을 거임"이라고 정신승리를 시전했다. 답이 없다.

5 지도 스타일

이론으로는 국내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감독이다. 2000년부터 과 비디오 자료를 활용하여 선수들의 전술훈련계획을 짜기도 했으며, 국내 감독 라이선스 중 최고인 P급 라이선스를 보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명지대학교 체육학과에서 "K리그와 EPL을 통한 실제 경기 시간과 경기 외 시간에 나타나는 축구 경기력 특성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기도 했다. 오오 박사 감독 오오오!

철저히 자신의 스타일에 맞는 선수 위주로 전술을 짜내는 편이다. 런던 올림픽에 출전했다 돌아온 박종우기성용 같은 플레이 스타일로 변신을 시도하려다 안익수 감독이 노발대발한 일화도 유명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를 두고 기성용이 트인낭을 해서 잘 알려졌지만

그만큼 선수들의 멘탈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감독으로 알려져 있다. 2013년 성남 부임 직후에도 야심차게 영입한 유지노가 팀 훈련에서 태만한 모습을 보이자 바로 계약해지하고 이요한과 트레이드 시킨 모습이나, 성남팬의 엄청난 지지를 받던 김성환을 전지훈련 집결지에 늦었다는 이유로 바로 전지훈련 명단에서 제외시키고 끝내 강진욱과 트레이드 시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놈들! 빠따 좀 맞자! 심지어 팬들은 멘탈갑인 선수들을 적합하게 다룰 수 있는 감독으로 안익수 감독뿐이라며 추앙한다 카더라

5.1 비판

팀 사정에 맞춰 전술을 짜는 감독이지만, 선수진 구성을 할 때 지나치게 엄격한 면이 있다. 자신의 스타일에 맞지 않거나, 자신의 눈 밖에 한번 난 선수는 그 선수가 뛰는 포지션에 가용자원이 부족할지라도 쓰지도 않고 보려고 하지도 않는다.

부산 아이파크 시절에 정성훈이승현을 판 탓에 정말 공격수가 없었지만, 에이스였던 박희도의 플레이 스타일이 개인적이란 이유로[10] 쓰지도 않고 2군에 박았던 적도 있는데, 부산은 시즌 끝까지 공격자원 부족으로 고전했다. 성남에서도 부임 직후에 김성환, 홍철 등 에이스급 선수들을 이적시키고 자신의 스타일에 맞는 선수들을 영입했는데, 2013 시즌 중반기가 넘어가면서 김성환의 대체자로 낙점했던 김철호의 부진이 겹쳐져 중원에서의 김성환의 존재감이 그리워지고 있다. 김성환, 홍철의 이적 후 활약상을 보는 팬들은 멘붕

멘탈을 중요하게 여겨서 코치 시절엔 여러 선수들의 멘탈을 고쳤지만, 감독이 되고 나선 걍 내팽겨쳐 버린다. 이미지와 다르게 멘탈을 고쳐주기 보단 걍 본인 말 잘 듣는 선수들만 쓰는 것으로까지 비춰질 수도 있다.

팀에 전술을 맞춘다는 장점도 성남에 온 이후 퇴색되었는데, 그 놈의 4-4-2를 못 버린다. 그리고 괜히 잠구다가 못 잠궈서 내줄 뻔하거나 내준 경기가 한두 경기가 아니다. 양학을 못 한다는 비판도 있는데 근본적인 이유는 팀 자체가 김태환김동섭을 중심으로 한 역습에 최적화되어 있고 미들진에서 전진패스해 줄 능력이 딱히 없어서 걸어잠구고 나면 답이 없다.

따라서 중위권 팀에는 적합한 지도자일지 몰라도, 상위권 팀을 이끌기에는 부족한 지도자라는 평가가 있기도 하다.

다만 최근 답 없는 냄비 해축빠들을 중심으로 단순히 이승우를 중심으로 팀을 짜지 않는다거나, 이승우 장결희를 투입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비판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분명히 잘못이다. 팀을 어떻게 짜고 누구를 쓰는가는 감독의 고유 권한이며 특히 이승우는 어디까지나 아직 성인무대를 제대로 밟아보지 못한 유소년 유망주일 뿐이다.

이승우가 앞으로 메시만큼 성장할지는 모르지만 당장은 나이가 더 많은 선수들보다 딱히 비교우위에 있지도 않다. 단순히 무턱대고 유명한 선수를 쓰지 않는다고 까는건 축구에서 연령대 팀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한 근시안적인 비난에 불과할 뿐이다. 비슷한 이유로 심지어 더 상급레벨의 올림픽대표팀 신태용 감독도 비난하는 경우가 많은데 지양해야 할 일이다.

다만 이 기사를 보면 여러모로 꼰대 마인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거 같다. 결국 협회에서도 이러한 부분을 넘기지 못하고 중도 경질이라는 초강수를 둔 듯 하다.#

6 기타

  1. 때문에 일부 축구팬들은 2013년 대표팀 내분 사태가 불거지자 안익수 감독이 대표팀 맡아서 뜯어고쳐야 한다고 탄식했다.
  2. 현역 시절 K리그와 성남의 레전드이자 프렌차이즈 스타인데도 은퇴식도 치뤄 주지 않고 유니폼을 벗겼다.
  3. 이 시기 대한축구협회 회장 선거를 앞두고 한창 허승표 후보와 접전을 벌인만큼 축구팬들 사이에선 모종의 딜이 있었으리란 설이 지배적이다.
  4. 이들은 마음도 없는 구단에 남아 있는 게 독이었다.
  5. 그때 마침 프로축구연맹에서 후원하는 지도자 연수차 영국에 가 있던 상태에서 해임되었다...
  6. 한국과 개최국 러시아를 비롯, 아제르바이잔, 벨라루스, 불가리아, 에스토니아, 핀란드, 그리스, 일본, 카자흐스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18팀이 참가했다.
  7. 안익수는 U-18 대표팀을 맡으면서 미드필더를 원톱이나 투톱자리에 자주 기용을 하는 편이다. 예를 들면 러시아에서 열린 유소년 축구 대회에서 한찬희를 주로 원톱으로 기용했다는 점이 대표적.
  8. 포텐으로 비교하면 황희찬에 비견되는 스트라이커로 2016년 들어 안익수가 소집훈련에 꾸준히 소집하며 관심을 보인 선수다. JS컵에서 공식무대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고 일본전에서 결승골을 넣었다.
  9. 국내 축구계의 고질적인 병폐이기도 한데 감독이 자진사퇴를 하면 잔여연봉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구단, 협회에서 경질하더라도 표면상으로는 자진 사퇴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10. 전임 황선홍 감독이 에이스 박희도 중심으로 팀 전술을 맞춰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