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토 네레틀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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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마토 네레틀랴크 (Mato Neretljak)
국적크로아티아
출신지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오라치예
출생1979년 6월 3일
신체191cm, 87kg
소속팀NK 오라치예(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1999~2000)
NK 오시옉(크로아티아) (2000~2002)
NK 하이두크 스플리트(크로아티아) (2002~2005)
수원 삼성 블루윙즈(대한민국) (2005~2008)
오미야 아르디자(일본) (2009~2010)
수원 삼성 블루윙즈(대한민국) (2011)
NK 하이두크 스플리트(크로아티아) (2012)
NK 리예카(크로아티아) (2012~2014)
NK 자다르(임대)(크로아티아) (2013~2014)
포지션중앙 수비수
별명통곡의 벽, 라부드(흰 독수리)
국가대표10경기, 1골
2006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우성용
FW
김은중
MF
김두현
MF
백지훈
MF
이관우
MF
뽀뽀
DF
장학영
DF
마토
DF
최진철
DF
김영철
GK
박호진
2007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이근호
FW
까보레
MF
따바레즈
MF
이관우
MF
김기동
MF
김두현
DF
아디
DF
마토
DF
황재원
DF
장학영
GK
김병지
2008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이근호
FW
에두
MF
김형범
MF
조원희
MF
기성용
MF
이청용
DF
아디
DF
마토
DF
박동혁
DF
최효진
GK
이운재

1 개요

통곡의 벽

크로아티아축구선수. 마시엘, 아디와 함께 K리그 역대 최고의 외국인 수비수로 꼽힌다.[1]

2000년 NK 오시제크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고, 2002년에서 2005년까지 HNK 하이두크 스플리트에서 활약하였다.
이 시기에 대표팀에도 뽑혔는데 독일과의 친선전에서는 코너킥 헤딩골을 넣기도 했다. 당시 골키퍼는 올리버 칸이었다. 유로 2004 23인 엔트리에도 뽑혔으나 본선에서 뛰지는 못했다.

2005년 K리그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이적해 4시즌 동안 맹활약했다. 2008 시즌 종료후 유럽 진출이 유력해 보였으나 J리그 오미야 아르디자와 연봉 1억엔에 계약을 맺었다.

통곡의 벽이라 불리 정도로 빼어난 수비력을 선보여 2006, 2007, 2008 시즌 연속으로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고 2008년 수원의 정규리그 우승에 절대적으로 기여했다.

J리그 진출 초반 컨디션 난조를 보이기도 햇으나 이내 적응해 8골로 팀내 최다득점자가 되었으며 변치않는 수비력으로 자칫 강등당할뻔한 오미야의 구세주가 되었다. 그러나 2년차부터는 스피드가 눈에띄게 저하되어 발빠른 일본 공격수들에게 농락당하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었다.

그리고 2년만에 다시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복귀한다. 2011 시즌 초반에는 타점높은 헤딩으로 공중볼을 잘 걷어내고 프리킥과 헤딩으로 득점을 해내면서 역시 명불허전이라는 칭찬을 듣기도 했으나 시즌이 진행되어갈수록 이전보다 더 느려진 발 때문에 빠른 공격수들에게 신나게 털리면서 수원 팬들이 리웨이펑을 다시 찾게 만들었다. 심지어 최성환에게 주전 경쟁에서 밀리나 싶었으나 후반기 들어 다시 폼을 끌어올려 황재원, 곽희주가 부상으로 이탈한 수원의 수비진에서 한 시즌 내내 꾸준히 뛰어주면서 다시 성원을 받았다.

2012 시즌을 앞두고 방출되었다. 그 자리를 비슷한 스타일의 호주 출신 에디 보스나가 메꿨다.(공교롭게 크로아티아계 호주인) 방출 이후에는 크로아티아 리그로 돌아갔다.

2014년에 은퇴하고 코치 연수를 시작했다. 그 해 여름에는 연수차 한국에 잠깐 왔는데 빅버드에 모습을 드러내서 팬들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2015년 6월 27일 상암에서 열린 FC 서울과의 경기에서 과거 팀 메이트였던 이싸빅과 함께 응원차 방문했다.

2 플레이 스타일

190이 넘는 장신에 뛰어난 위치선정, 점프력, 경합능력을 갖추고 있어 공중볼에 강했고 탁월한 기술과 노련미를 바탕으로한 끈적끈적한 대인마크, 날카로운 태클, 예측수비력을 자랑했다.

또한 크로아티아에서도 유명했던 왼발과 장신을 활용한 우수한 공격력을 갖추고 있어 2005년에는 팀내 최다골을 기록하기도 했다.[2] 2011년 수원에 리턴해서도 롱 패스를 이용한 역습 전술을 시작할 때는 마토가 약간 전진한 후 왼발 킥으로 상대 페널티 에어리어로 공을 배달해주는 식으로 공격이 전개되기도 하고, 세트피스 상황에서는 염기훈과 함께 프리키커를 맡았고 헤딩싸움에 참가하여 득점을 노리기도 하는 등 골 넣는 수비수다운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공격수 못지않은 높은 페널티킥성공률을 자랑했는데 수원 시절 시도한 페널티킥[3]중 2007년 FA컵 서울을 상대로 한 승부차기에서 실축한것 외엔 단 한번도 실축하지 않았다.

단점은 발이 느린 편이라 종종 뒷공간을 내줄때가 있다는 점. 2011년 초반엔 눈에 띌 정도는 아니었는데 중반기 들어 이 문제점이 심히 부각되어 상대의 공략대상이 되는 바람에 실점위기를 자주 내주기도 하였다.

3 기타

  • 홍명보 이후 뚜렷한 대체자가 나타나지 않는 중앙수비진에 답답해하던 K리그 팬들 중에는 마토가 귀화해서 대한민국 국대로 뛰기를 은근히 바란 팬들도 많았다. 길진 않지만 크로아티아 대표팀에선 뛴 경험이 있다. 2001년 4월 25일 벌어진 그리스와의 친선 경기에서 데뷔했고, 유로 2004에서 크로아티아의 23인 엔트리에 포함되었지만 경기에 출전하지는 못했다. A매치 첫 골은 2004년 2월 18일 벌어진 독일전에서 기록했고[4] 최근에는 2006년 홍콩에서 열린 칼스버그컵에서 두 경기에 대표선수로 출전하여 한국대표팀과 맞대결했다.
  • 2007년 미국에서 열린 월드시리즈 오브 풋볼 2007 대회에서 첼시와 수원이 맞대결했는데, 첼시의 셰브첸코와 드록바를 준수하게 막아내서 마토를 잘 모르던 해축팬들이 많이 놀란 적이 있다.
  • 2008시즌 종료후 성남 일화의 이적제의를 받았으나 자신을 응원해준 그랑블루를 위해서라도 K리그의 다른 팀에서 뛸수는 없다며 거절했다.
  • 수원으로 이적한 이유는 수원의 이적료가 제일 높았기 때문. 당시 함부르크, 슈투트가르트, 베르더 브레멘, 페예노르트등의 팀들이 수원과 같이 오퍼를 넣었는데 이적료가 가장 높았던 수원을 택해서 친정팀에 돈을 안기고 싶었다고한다. 그리고 2003년 즈음, 당시 UEFA컵 예선 경기에 나선 그를 차범근 감독이 눈여겨보고 이적을 요청했다고 알려져있다.
  • 귀염둥이 딸네미를 둬서 한때 화제가 되기도 했다.##수원 남학생 팬들이 장인어른이라 불렀다 카드라
  1. 3명 중에선 가장 한국에서 오래 뛰었고 센터백과 풀백 모두 빼어났으며 기복없이 꾸준했던 아디가 꼽힌다.
  2. 당시의 수원 공격진이 얼마나 빈약했는지를 보여주는 예 이기도 하다.
  3. 승부차기 포함
  4. 이때 독일의 골키퍼가 올리버 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