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대한민국의 전 · 현직 정치인을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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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幹鎔
1922년 5월 9일 ~ 2003년 8월 30일
1922년 전라남도 완도군 약산면에서 태어났다. 완도약산보통학교, 일본 교토 헤이안중학교, 도쿄 니혼대학교 법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귀국하였고, 8.15 광복 후 교육자로 광주서중학교(현 광주제일고등학교) 교사, 완도중학교 교사, 완도수산고등학교 교감 등을 지냈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전라남도 완도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민주공화당 전라남도지구에서 조직부장으로 활동하였다. 1969년 박정희 대통령이 3선 개헌을 추진할 때, 처음에는 이만섭 등과 개헌에 반대하다가 나중에 찬성으로 입장을 선회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10월 윤재명의 뒤를 이어 민주공화당 원내부총무에 임명되었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장흥군 출신의 길전식과 민주공화당 복수공천을 받아 전라남도 완도군-강진군-영암군-장흥군 선거구에 출마하였다. 그러나 민주공화당 길전식 후보와 신민당 황호동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민주공화당에 같은 선거구로 공천을 신청하였으나 역시 길전식에 밀려 탈락하였다.
1980년 말 한국국민당 창당에 참여하였다. 1981년 한국국민당 농어촌분과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되었다. 1987년 김종필이 정계복귀하자 제13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신민주공화당 창당에 참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