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반적인 의미
- 精密 : 아주 정교하고 치밀하여 빈틈이 없고 자세함을 뜻한다. 아래에 있는 관련 항목들은 그냥 정밀이 들어가는 항목들로 관계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알 게 뭐야
1.1 관련 항목
2 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
丁謐
(? ~ 249)
삼국시대의 위나라의 관료. 자는 언정(彥靖). 정비의 아들로 패국 출신.
패국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남들과 교우하지 않고 방안에 틀어박혀서 책만 읽었는데, 사람됨이 굳세고 상당한 재략을 지녔다. 태화 연간[1] 업에서 살 때 다른 사람의 빈 집을 빌려서 기거했는데, 조방도 정밀이 이미 그곳을 얻어 살고 있다는 것은 모른채 그 곳을 빌릴 목적으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정밀이 곧 문을 열고 들어온 조방을 보았으나 다리를 엇갈린 채 누워서 일어나지 않고 조방의 하인에게 어디서 듣보잡이 멋대로 들어오면서 당장 나가라고 하니 조방이 그 무례함에 분노해 돌아와 상언해, 조예는 정밀을 잡아들여 업의 옥에 가두었다가 공신의 자식이란 이유로 다시 풀어주었다. 그 뒤 조예는 정밀의 아버지 정비의 기풍을 전해들었고 무위장군에 있던 정밀의 오랜 친구 조상이 그를 칭찬하며 크게 쓸 것을 권하니 정밀을 불러 탁지낭중으로 삼았다. 하지만 곧 하안, 이승, 필궤 등과 함께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니 조예는 이들을 모조리 내쫓아 버린다.
239년에 조예가 죽고 조방이 즉위해[2] 조상이 보정하자 조상은 정밀을 발탁해 산기상시로 삼았으며, 정밀은 사마의를 태부로 승진시키는 안을 헌책했고 이는 겉으로 보기에는 사마의를 승진시키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국사가 먼저 조상을 거쳐가게 되어 일이 진행되는 것을 조상이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어서 정밀은 상서로 승진했다가 필궤와 함께 사마의를 조심하라고 충고를 했으며, 사마의는 결국 병을 핑계로 물러난다.
정밀은 그 사람됨에 있어 겉으로는 대범한 듯 했으나 속으로는 꺼리는 것이 많아 그가 상서성에 재직할 때 여러 차례 탄핵하고 논박했으므로 사람들이 이를 미워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으며, 또한 그 뜻이 귀한 것을 가벼이 여기고 소홀히 하는 바가 많아 비록 하안, 등양 등과 동등한 직위였지만 모두 멸시해 오직 조상에게만 몸을 굽혀 섬겼다. 조상 또한 그를 공경했으므로 그가 말하면 들어주지 않는 것이 없었다.
이때 방서가 나돌았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개 3마리라는 것은 하안, 등양, 정밀을 가리키는 것이고, 묵(默)이란 조상의 어렸을 때 이름이다. 세 마리 개가 모두 사람을 물어뜯으려 덤비는데, 그 중에서 정밀이 특히 심하다는 뜻이다.
247년에는 황제께 상주해 곽태후가 수도를 떠나 별궁으로 옮겨 거처하게 하고 악안왕의 사자를 북쪽으로 업으로 가게 했으며 또한 문흠을 회남으로 돌려보냈고 이는 모두 정밀의 계책이었다. 이 때문에 사마의는 정밀을 특히 증오했다. 결국 249년에 고평릉 사변으로 정밀은 하안, 등양, 이승, 필궤, 환범과 함께 삼족이 멸해졌다.
2.1 미디어 믹스
삼국지 9 일러스트 |
삼국지 9에 등장했는데 지력 77에 정치 34이다. 불쌍하다. 병법은 혼란, 매도.
삼국전투기에서는 틴 타이탄의 비스트 보이로 패러디 되었다.
3 삼국시대 오나라의 인물
丁密
생몰년도 미상
삼국시대 오나라의 인물. 자는 정공(靖公). 본래 이름은 정밀이었지만 등밀의 이름을 피하기 위해 정고(丁固)로 이름을 고쳤다.
창오 사람으로 오나라에서 상서를 지내 손패가 노왕으로 임명되면서 태자 손화와 맞먹는 대우를 받은 것을 시작으로 이궁의 변이 일어나 신하들도 손화파와 손패파를 갈라져 권력 다툼을 하게 되자 승상 육손, 대장군 제갈각, 태상 고담, 주거, 회계태수 등윤, 대도독 주적 등과 함께 예법을 이유로 손화를 지지했다.
257년에 정위를 지내면서 8월에 회계군 남부에서 반란이 일어나 회계군의 도위가 살해되고 이어서 파양군과 신도군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종리목, 보병교위 정주와 함께 이들을 토벌했으며, 262년 10월에 위장군 복양흥이 승상으로 임명되면서 광록훈 맹종과 함께 좌우어사대부로 승진한다.
나위, 당송, 돈기 등과 함께 효행으로 이름이 높아 남제 시기에도 존경을 받아 광주자사 겸 평월중랑장인 범운이 나위, 당송, 돈기, 정밀의 묘지에 사람을 보내 제사를 지내게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