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범

桓範
(? ~ 249년)

1 개요

중국 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로 자는 원칙(元則)이며, 패국 땅 출신이다. 전한 때 환영을 시조로 삼는 패국 환씨로 지낭(꾀 주머니)이라 불렸다.

저서로는 실전되었다고 알려진 세요론이라는 책이 있다.

2 정사

건안 말에 조조의 승상부에 출사했으며 조비 때는 우림좌감을 지냈고 왕상 등과 함께 황람 편집에도 참여했다. 조예 때는 중령군상서로 직무를 잘 처리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로장군 · 동중랑장 · 사지절이 되어 청주와 서주의 군사를 감독하며 하비에 치소를 두었다.

서주자사 정기와 다투어 사지절의 권한으로 참형에 처하려 했으나, 조정에서는 환범이 그르다고 판단해 오히려 면직되었다.

후에 연주자사가 되었으나 만족하지 못하던 차에 기주목으로 전임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당시 기주목의 상관인 정북장군은 환범의 후배인 여소(呂昭)이기 때문에, 환범은 취임하지 않으려 했다. 환범의 아내 중장씨는 환범에게서 이 말을 듣고 예전에 다른 관리와 다투다가 실패한 점을 들어 조언했지만 이를 듣고 분노한 환범은 칼고리로 임신 중인 아내의 배를 들이받아 낙태시켰다. 그리고 병을 칭탈하여 기주목으로 부임하지 않았다.

그러나 환범은 명성만 높은 허세꾼이라고 조예 때는 중용되지 못했고 조진의 장남 조상을 섬겼다. 조상의 고향 선배[1]라서 존경을 받았지만 사실 그다지 친근하지 못했다.

239년 조방 대에 조상이 실권을 잡자 대사농이 되었는데 249년 사마의가 병석에 누워 있을 때 조상에게 사마의의 움직임을 경계하라고 진언했지만 무시당했다. 이 때 조상은 이승을 보냈는데 사마의의 병자 연기에 속아넘어갔고 결국 안심을 하게 된다. 정월 조예의 능묘인 고평릉에 참배하러 갔을 때도 형제 중에 한 명은 남아서 지키고 있어야 한다는 제안도 무시당했고 결국 고평릉 사변이 일어난다.

사마의가 쿠데타를 일으켜 낙양을 점거하고 환범을 중령군으로 임명하려하자 환범도 이에 응하려고 했다. 그러나 아들이 반대하면서 천자를 끼고 있는 조상한테 붙어야 한다고 주장하자 부하의 제지도 듣지 않고 아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평창문에 이르렀다. 문지기를 하고 있는 사람이 예전에 등용한 적이 있던 사번이라는 자로 천자의 조칙이 있다고 속여 봉쇄된 문을 열게 하면서 사번에게 사마의가 모반을 일으켰다고 동행할 것을 요구했지만 응하지 않았다. 조상이 있는 허창으로 가자 사마의는 "꾀 주머니를 놓쳤구나!" 라며 탄식했지만 장제는 '어리석은 조상이 안으로 환범과 소원하면서 지혜가 미치지 못해 제대로 쓰지 못할 것이오'라고 위로했다.

환범은 조상에게 황제를 끼고 있는 장점을 이용해 허창으로 가서 외병을 불러들이고 허창에서 항전을 할 것을 권유했다. 그러나 이미 조상은 겁을 먹었으며 낙양성 안에 있는 가족들이 걱정되어 그 진언을 무시했다. 다시 조희에게 조상 일족이 멸망할 것이라고 말하며 결단을 촉구했으나, 조희는 듣지 않았다. 이에 애가 탄 환범은 다시 조희에게 조희의 직속 별군과 낙양전농은 성 밖에 있으므로 쓸 수 있으며 허창에 가면 무기가 있고 군량은 자신의 직임인 대사농을 이용해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으나, 조희도 듣지 않았다.

이때 사마의가 허윤, 진태, 장제를 보내 실권만 거두겠다고 알리고 윤대목을 보내 낙수에 맹세를 했다. 이에 조상은 사마의의 말을 믿고 실권의 상징인 대장군의 인수를 사마의에게 넘기려고 했다. 이에 환범은 주부 양종, 사마 노지와 함께 대장군의 인수를 사마의에게 넘기면 결국 죽을 거라고 했다. 그러나 조상은 결국 병권을 넘기라는 사마의의 요구에 대장군의 인수를 사마의에게 넘기고 말았다. 이 때 조상이 군사를 해산하고 부귀를 누릴 수 있다고 하자, 환범은 하늘을 바라보면서 소리내어 울며 말했다.

조자단은 훌륭한 사람이었지만 당신이 낳은 자식들은 개새끼나 송아지에 불과할 뿐입니다! 어쩌다 오늘날 당신의 자식들에게 연좌되어 일족이 멸망하게 된 겁니까!

결국 환범은 자신의 예상대로 얼마 뒤 조상 형제는 사마의에 의해 삼족이 멸해졌고 자신도 하안, 이승, 정밀, 필궤, 등양과 함께 삼족이 몰살되었다.

3 후손

환범은 삼족이 멸족되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후손이 남아 있다는 기록은 없으나, 대체적으로 환온, 환현 등을 배출한 동진의 거대 문벌 환씨가 환범의 후예 내지 같은 일족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실제로 여러 정황상으로 보아 환온이 환범의 후손일 가능성이 높다.

추측에 의하면 환범의 아들 환해는 다른 곳으로 숨어 들어 고향을 속였다. 이것은 환범이 반역자로 처형당했기 때문으로 환해(桓楷)는 자신이 환범과 아무 관련이 없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후 환해의 아들이자 환범의 손자 환호(桓顥)는 할아버지 환범의 원수서진, 환범의 증손 환이(桓彝)는 동진을 섬겼다.

환범의 현손은 동진의 장군이자 권신인 환온으로 환이의 아들이다. 환온은 대사마를 지냈으며 동진 정권을 찬탈하기 위해 먼저 북벌을 감행해 일시적으로 낙양을 탈환하고 여세를 몰아 장안으로 진격했다. 사실 그는 북벌을 고토 수복의 목적이 아니라 큰 공을 세워 명망을 이용하려는 수작이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환온은 이 때 강주자사 사마훈과 위략에서 위연이 시도하려다가 제갈량에게 막힌 자오곡 계책을 그대로 활용했다가 군량 수송 문제와 기습으로 대패했다. 환온은 동진의 폐제 사마혁을 거짓 소문을 내 폐위[2]시켰으며, 사마혁의 작은 할아버지였던 간문제 사마욱을 황제로 세우고 그에게 선양받으려고 꾀했다. 이 때 시간을 끄는 사이에 환온은 죽었다. 그러나 그의 아들 환현은 남군공을 이어받아 태자세마, 의흥태수 등을 임명되었다가 사마욱의 손자였던 안제 사마덕종을 폐하고 스스로 초나라 황제가 되었는데 이것이 5대에 걸쳐 완성한 조상의 복수다! 불과 3개월 만에 나라를 세우는 유유에게 패배해 죽음을 당했다. 유유는 다시 사마덕종을 복위시켰으나, 애초에 썩어가던 동진은 머지않아 망하고 만다.

즉, 이 추정이 맞다면 환온의 계보는 환영...환범-환해-환호-환이-환온-환현이 된다.

4 연의

삼국지연의에서는 행적은 비슷하지만 낙양에서 나가는 부분은 천자가 아닌 태후의 조서로 속여서 허창으로 나간다. 또한 물자를 조달하는 역할인 대사농이 아닌 군권을 잡은 대사마의 역할로 나왔는데 환범이 식량과 말먹이풀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것으로 볼 때 이는 고증오류이다. 모종강본에서도 대사마로 나오다가 황정보본부터 제대로 대사농으로 나오게 되었다.

5 미디어 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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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11
삼국지 12,13

코에이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지낭이라 불렸던 일화를 반영하여 지력이 80 전후에 후반기에 등장하므로 모략용으로는 써먹을 만하다. 그러나 나머지 능력치는 70대의 정치를 빼면 쩌리 수준이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26/12/78/71. 교사(!), 혼란을 가지고 있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22/16/80/72/55에 특기는 농업,반목,군사. 군사 특기가 사기긴 하지만 통솔이 22이면 공/방은 둘째치고 턴이 더럽게 안오기 때문에 반목 특기 하나만 가지곤 전장에선 활용하긴 미묘하다. 지력이 80이니 주위에 군사 특기 가진 고지력의 장수가 없다면 아쉬운대로 평소엔 농업셔틀 돌리면서 조언용으로나 쓰자.

삼국지 11에서의 특기는 비책이다.

삼국지 12에선 짤렸으나, PK에서 쓸만한 전법인 전군원사를 들고 나왔으며 특기중에 무려 군사가있다. 일러스트는 칼로 아내를 때려 유산시키던 모습을 표현하였다.

삼국전투기에서는 알바 뛰는 마왕님의 오르바 메이야로 출연. 설마 조진의 아들인 조상이 정석을 무시할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으나, 위 유언처럼 조상은 개자식이었다...
  1. 위나라 조씨 일족의 조상인 조조의 고향이 패국 출신이기 때문이다.
  2. 사마혁은 빈틈이 없어 결국 여자에게는 관심이 없고 남색만 즐겨서 그의 황후와 후비들은 동성애를 즐긴다라는 거짓 소문을 내어 태후는 결국 그를 폐위시켰다. 하지만 사마혁은 두 아들이 있는 멀쩡한 남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