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호(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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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정성호(鄭成湖)
출생일1962년 6월 2일
출생지경기도 연천군
거주지경기도 양주시
최종 학력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학사
소속 정당더불어민주당
약력제17, 19, 20대 국회의원(경기도 양주시)
외부 링크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1 개요

정치인변호사. 제17대(열린우리당, 대통합민주신당), 19대(민주통합당, 민주당, 새정치민주연합,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으로 양주시/동두천시 지역구 국회의원이었으며, 정치 입문 전에는 변호사였다.[1] 2016년 20대 총선에선 더불어민주당 양주시 지역구 후보로 나와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3선이 되었다.

2 생애

1962년 경기도 연천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하여(28회. 사법연수원 18기) 변호사로 활동하였다.

19대 임기 중에 민주통합당 당시 수석대변인을 지냈고 수석대변인을 내준 이후에는 국토교통위원회 간사로 있었으며, 국토교통위원회 위원장인 박기춘 의원이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인한 구속과 동시에 사퇴 및 20대 총선 불출마 선언으로 인해 국토교통위원회 위원장 대리를 맡았다. 국토교통위원회 간사와 위원장 대리 말고도 더불어민주당에서 민생본부장을 맡았었다. 20대 국회의원 당선과 동시에 당의 비상대책위원을 보임받았다.

한 신문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실력과 인품을 모두 좋게 평가받아 "영국신사" 라고 불린다고 한다. 서울 지하철 7호선 유치를 성공했지만, 새누리당 측에서는 "옥정지구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며 계속해서 비판, 반발하고 있다.[2] 도봉산포천선의 옥정역은 양주신도시의 지구 중 하나인 옥정지구와 택지지구인 고읍지구 사이에 위치해 있다.

더불어민주당 내 정치적 성향은 비노이며, 현재 국민의당 공동대표로 있는 김한길 의원의 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20대 총선에 출마하게 되었고 양주와 동두천이 나뉘어졌는데, 본인은 양주시에 출마하였고 더불어민주당의 단수공천을 받았다. 그리고, 수도권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 중 가장 높은 득표율로 61.39%를 얻고 당선되면서 3선에 성공했다. 그리고, 양주시 최초의 3선 의원이 되었다.

대체로, 경기북부 지역은 보수성향이 강하다는 점에서 봤을 때 민주당계 정당 출신으로 3선을 유지하는 것은 정말 대단한 것이다. 양주시의 주민들로부터 지역구 관리도 잘하고 일을 열심히 한다는 평가를 받은 점을 높게 사는 듯 하다. 4선 이상 성공하면 문희상과 더불어 피닉스 확정이다.

3 선거이력

연도선거종류소속정당득표수(득표율)당선여부비고
2000제16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동두천시 양주군)
새천년민주당33,249 (44.4%)낙선 (2위)
2004제17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양주시 동두천시)
열린우리당45,082 (49.3%)당선 (1위)
2008제18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양주시 동두천시)
통합민주당41,822 (48.0%)낙선 (2위)
2012제19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양주시 동두천시)
민주통합당60,016 (53.7%)당선 (1위)
2016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양주시)
더불어민주당54,441 (61.39%)당선 (1위)

4 트리비아

상술했듯 영국신사라는 별명답게 병역 면에서도 깔끔한 내력에 속한다. 가족부터가 그의 아버지가 부사관[3]으로 복무한 데다 6.25 전쟁에도 참전한 국가유공자, 또 본인은 정훈장교,[4] 그리고 자녀는 병사로[5] 군복무를 마쳤기에 일명 '병역 명문가'로 통한다.

선대 국회의원이던 목요상이 시작했지만 마무리를 계속 미뤄가며 조기에 개통하지 못할 뻔한[6] 수도권 전철 1호선 의정부-소요산[7] 구간의 조기개통(2006년 12월 15일) 바람을 일으켰던 장본인이기도 하며 서울 지하철 7호선 도봉산포천선 양주 구간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삼고초려 끝에 성공시킨 것도 이 사람. 도봉산포천선 양주 구간 유치 및 광역철도 지정 고시도 모자라 39번 국지도의 광적-장흥 구간의 예타 통과로 인하여 시작도 마무리도 괜히 그가 해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2008년 18대 국회의원이었던 김성수에게 패했을 때에는 다시 본업인 변호사로 돌아가 전열을 가다듬기도 했다. 그러다가 2012년 19대 선거에서 다시 탈환한 이후에는 민주당 수석대변인을 지내다가, 상술한 국토교통위원회 간사를 하면서 양주시에 필요한 수많은 현안들을 해결했다. 이러한 점들이 보수 성향이 상대적으로 강하다고 평가받는 경기동북부 지역에 위치한 양주시민의 마음을 돌리는데 일조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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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변호사 사무소는 의정부지방법원 근처에 있었다. 물론 국회의원을 하면서부터 잠정 휴식에 들어갔는데 18대에서 낙선했을 때 다시 복귀하기도 했다.
  2. 사실, 옥정지구 안으로 들어와도 문제가 되는 것은 공사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 뻔한데다 착공 시점이 빠른 시간에 이루어진다고 장담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3. 육군 상사.
  4. 육군 중위(원에 의한 전역).
  5. 육군 병장으로 5월초에 전역. 군복무 당시 말년휴가를 나와서 아버지와 함께 선거운동 지원에 힘썼다. 당연히 직계자손인 아들이니 현역 군인이라고 해도 선거운동하는 것엔 문제가 안된다.
  6. 특히 경원선 복선전철 공사 당시 덕정역의 토사화(기차역처럼 지상화)냐 고가화냐 이런 문제가 굉장히 심각한 상태였다. 물론 정성호 당선 후 덕정역은 토사화를 뿌리치고 전부 고가화되었다. 다만 덕계-마전 구간은 2선 토사 구간이다.
  7. 목요상 시절의 목표 구간은 원래 의정부-동두천이었다. 한 마디로 소요산은 꿈도 꾸지 못했단 얘기. 정성호 의원이었기에 소요산 연장이 가능했지 그렇지 않으면 경원선 전철 연장도 아예 먼 미래의 이야기가 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