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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정윤희(丁允姬) |
출생일 | 1954년 6월 4일 |
출생지 | 경상남도 통영 |
본관 | 나주 정씨 |
신체 | 160cm |
학력 | 혜화여자고등학교 |
가족 | 배우자 조규영 |
1 개요
장미희, 유지인과 더불어 1970년대 여배우 트로이카 중 한명.
2 연예계 활동
데뷔 당시엔 큰 주목을 못 받았으나, 영화 청춘극장에서 운 좋게 주연을 차지하는 한편 동양방송에 전속 출연하며 당시 동양방송의 인기프로그램인 쇼쇼쇼의 2대 MC를 맡아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1][2]
1977년 주인공을 맡은 드라마 ‘청실홍실’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스타로 떠오르기 시작, 그 뒤 1979년 '야, 곰례야' 등 TBC 드라마들의 주연을 계속해서 맡는 한편 CF스타로 큰 성공을 거두면서 당대 최고 수준의 미녀 스타가 되었다.
하지만 이 무렵에는 연기력이 부족하다고 까이기도 종종 까였으며, 그 때문에 ‘말뚝’이라는 굴욕적인 별명이 붙기도 했다.
1978년에 당시 붐을 이루던 호스티스 소재 영화인 ‘꽃순이를 아시나요’ 와 ‘나는 77번 아가씨’에서 주연을 맡아 흥행 성공을 이끌어냈고, 이때부터 여배우 트로이카의 1인으로 영화계에서도 자리를 잡았다.
1980년에는 정진우 감독의 ‘뻐꾸기는 밤에 우는가’에서 자신만의 매력을 영화에 가득 표현해 내는 한편 여우주연상까지 타내며 연기력 면에서도 인정을 받게 되었다.
1980년대에 들어와 MBC로도 출연 범위를 넓히며 드라마에서도 계속 활동을 하는 한편 노출 빈도가 있는 호스티스 소재 영화들부터 ‘사랑하는 사람아’ 같은 멜로물을 오가며 계속 해서 인기 스타로 군림했다.
3 은퇴
1984년 중앙산업 조규영 회장과 결혼하면서 은퇴하였다. 조 회장은 유부남이라 불륜인데, 당시 부인이 간통죄로 고소해서 처벌받았다. 그 이후 회장이 부인과 이혼을 하고 정윤희씨와 결혼한 것이다.
다만 여기에 대해서는 복잡한 사연이 있는데,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서 검색해 보면 당시 기사들이 나와 있다. 상대 남성은 이미 부인과 불화하여 별거하고 이혼 절차를 밟고 있는 상태라 주장한 것으로 나와 있다. 1983년 4월부터 정윤희를 만나 왔다는 전처의 주장과는 달리, 상대 남성은 같은 해 10월 이후에야 정윤희를 만났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10월은 상대 남성이 부인과 별거한 시점을 말한다. 즉, 결혼 생활 파탄은 정윤희와는 무관하다는 것. 정윤희 또한 같은 해 12월에 상대 남성을 처음 만나 사귀기 시작했다 주장했다.
또한 실제 통정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도 논란이 되었다. 원래 간통죄는 현장 증거가 있어야 고소가 가능하므로, 전 부인은 정윤희의 집에 자신의 남편이 있는 현장을 사진으로 찍어 증거로 제출하긴 했는데, 둘이 잠옷 차림이긴 했지만, 남녀 단 둘이 있는 현장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가정부, 매니저, 조카, 운전사)도 함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정윤희 측에서는 통정은 없었다고 주장했다.기사
지금처럼 과학 수사 기법이 도입된 시절도 아니라서 DNA 증거 확보는 불가능했다. 한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가 아닌 다른 언론사에서 서비스한 기사나 블로그 등에 나온 이야기는 또 다르다. 예를 들면 어떤 기사에서는 조용하게 인터뷰에 임했다고 나온 반면, 어떤 기사에서는 기자의 뺨을 올려붙였다고 나온다. 기자의 개인적인 감정이 반영된 듯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는 현재 경향신문, 매일경제, 동아일보, 한겨레만 기사 서비스를 하기 때문에 다른 메이저급 언론사 기사는 찾을 수 없는 데다가, 저 시절 기사들의 특성상 사실 확인이 어려운 부분이 많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연예계 기사는 아님 말고식 보도가 더 심했다. 물론 이 경우는 대기업 사장인 정윤희의 현 남편이 언플을 했을 수도 있으나, 정윤희 남편의 전처 또한 대단한 집안의 자녀라서 맞언플을 했다는 주장도 있기 때문. 따라서 위키러들이 알아서 교차 검증을 해서 판단해야 할 것이다.
양육비를 조건으로 위자료를 더욱 많이 받아냈다는 기사 내용과는 달리, 어찌된 일인지 정작 전처 소생 자식들은 정윤희가 다 키웠다. 당시 자녀들의 나이가 1~2세 정도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사실상 거의 처음부터 정윤희가 다 키웠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때문에 당시 주부층에서도 정윤희를 동정하는 사람들이 있긴 했다.
2013년 나이 60이 된 정윤희의 근황이 포착되었다. 원래는 동영상이지만 동영상 가져오기 불가로 사진만 가져왔다. 다른 배우들과 달리 명품으로 치장하거나 멋을 내는 것과는 달리 수수한 옷차림으로 입고 다닌다고... 그런데 결혼 초창기에는 경제 관념이 없어서 막 쓰기만 했다가 시가(媤家) 식구들한테서 혼나기도 했다고 한다.
4 트리비아
단군 이래 최고의 미녀라는 말도 종종 들었고, 해외에도 유명해서 그녀가 일본에 갔을때는 일본 영화인 한 사람이 '일본 일류 여배우 100명을 합쳐도 정윤희의 매력엔 못 당한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전설이 된 영화속 한 장면
드라마에선 발랄한 젊은 여성 역을 맡은 일이 많으며 CF쪽의 이미지도 이런 드라마쪽 이미지의 연장선상에 있다. 한편 정석적인 최루성 멜로물의 여주인공 역도 자주 맡았다.
한데 영화 쪽에선 남자들의 정복욕을 자극하는 역할이라 해야 할지, 미모 자체가 죄가 되어 주변 남자들에게 성적인 대상이 되어 휘둘리며 비극적인 삶을 살게 되는 역을 맡은 일이 많다.
1981년에 프리랜서 선언을 하며 TBC를 이은 KBS에서 MBC로 정윤희가 드라마 출연 범위를 넓힌 일은, 그때까지 공고히 유지되고 있던 방송사 전속 탤런트 제도가 붕괴되는 시초가 되었다.
언론에서 수애를 정윤희와 비교하는 기사를 종종 올리고는 한다. 한땐 수애가 정윤희의 딸이라는 루머가 떠돌았다고 한다. 그외 박진영이 수지를 보면서 정윤희를 떠올렸다는데...게시물을 보면 알겠지만 정윤희 굴욕이라는 반응.
70년대 후반부터는 당시 영화계 분위기가 노출 장면이 빠지지 않던 분위기기도 해서 출연한 영화에서 노출 장면을 보인 일이 자주 있다.
가수로서 앨범을 낸 일도 있다. 앨범 자체는 망했어요급으로 인지도가 없지만.
5 영화
- 고교얄개 (석래명 1976)
- 조흔파원작에 이승현(임권택의 울지 않으리에 나온 그 사람)주연의 영화. 정윤희는 여기서 여교사인 나두주 역으로 출연해서 백승도(하길종의 동생,하명중이 배역을 맡았다)랑 결혼하는 엔딩을 맞는다.
- 꽃순이를 아시나요 (정인엽 1978)
- 나는 77번 아가씨 (박호태 1978)
- 도시의 사냥꾼 (이경태 1979)
- 죽음보다 깊은 잠 (김호선 1979)
- 가을비 우산 속에 (석래명 1979)
-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정진우 1980)
- 故 정비석의 단편 소설 '성황당'을 각색한 정진우 감독의 영화로 원작에서의 남자 주인공 현보는 돌이로 개명되었다...고 하지만 정작 위키러가 확인한 결과 여기서도 현보로 불린다. 정윤희(순이 역)가 이대근(현보 역)과 함께 출연해 당시 청소년들의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았고 이걸 보기 위해 당시 청소년들이 변장을 서슴치 않았다는 말도 있다. 정윤희의 극강 미모가 잘 드러나는 작품이자 정윤희에게 처음으로 상을 안겨준 영화.
- 영화에서 순이는 원작과 달리 남사당 패거리에 속한 여인의 딸이었으나, 어머니에 의해 산에서 버림받은 것을 나무꾼 노총각 현보와 그의 어머니 한씨에 의해 거두어진다. 그들과 함께 살면서 나중에 성인이 되자 현보의 어머니 한 씨의 유언에 따라 결혼한다. 하지만 아름답게 자란 순이를 탐내던 악역 산림간수 김 주사의 계략에 의해 현보가 산림법 위반으로 감옥에 끌려간다. 그 후 산 속에 혼자 남은 순이를 덮칠려던 김 주사를, 현보의 절친인 칠성이 막아준다. 예전부터 순이를 짝사랑했지만 친구의 아내라서 참아왔던 칠성은 "현보가 감옥에서 나오려면 몇 년은 걸린다, 그러니 그때까지라도 나하고 살자."며 이 곳을 떠나 도망치자고 하지만 순이는 현보를 배신할 수 없다며 다시 집에 돌아오는 것까지는 내용이 거의 같다.
- 원작에서는 해피 엔딩이지만 영화에서는 배드 엔딩이다. 원작에서는 집에 돌아와 보니 현보는 그 새 풀려나 집에 와 있는 걸로 끝나나, 영화에서는 김 주사가 밤에 또 순이를 덮치러 오자 순이는 김 주사를 껴안고 불가마에 뛰어들어 같이 죽는다. 이 후 감옥에서 폴려난 현보는 산으로 돌아오지만 정작 집에서 그를 기다리는 것은 친구 칠성이였고, 칠성이는 자기가 와보니 순이는 김 주사랑 불 속에서 죽은 뒤였다는 것을 알린다. 현보는 순이의 옥가락지(현보가 마을장터 씨름대회서 우승하고 상으로 탄 황소를 팔아 장만한 것)를 흙 속에서 발견하며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끝난다.
- 빨치산의 딸로 비극적인 삶을 사는 손지혜 역을 맡았다. 정윤희가 영화들에서 종종 보여줬던 예쁜 게 죄가 되어 삶이 비극이 되는 여성상을 연기였으며, 잘 갈무리된 연기력으로 삶에 찌든 모습과 순수한 모습을 오가며 호연을 했다.
-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정진우 1981)
- 역시 정진우 감독의 영화로 여러 모로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 비슷한 배경 구조에 부당하게 희생당하는 여성이라는 주제도 유사하다. 역시 당대 청소년들의 관심을 받았다는 말이 있다. 정윤희에게 두 번째로 상을 안겨준 영화.
- 홀아비 최 영감(황해)은 갓 태어난 사내아이와 여자아이를 데려다 기른다. 문(최윤석)과 수련(정윤희)은 성장하면서 친 혈육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사랑에 빠지지만 어쨌든 남매지간이라고 생각하는 최 영감은 이들을 갈라놓기 위해 문을 서울로 보낸다. 문이 댄서 출신인 숙(김형자)이라는 여자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자 최 영감은 이번엔 수련을 타지로 내보낸다. 수련은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다시 집으로 돌아오다가 철교 밑에서 누군가에게 성폭행당한 후 죽는다. 한편 문은 숙과 함께 집을 나섰다가 철교 밑에서 수련의 시체를 안고 우는 최 영감을 보고 수련의 시신을 빼앗아 안고 계곡 깊이 빠져 함께 죽음을 택한다.
- 사랑하는 사람아 (장일호 1981)
- 1981년에 제작된 최루성 멜로영화. 드라마에서 종종 커플을 연기했던 한진희와 함께 출연했으며, 정윤희가 영화 쪽에서 종종 맡은 역할보다는 드라마에서 보여준 이미지와 가까운 모습을 연기했다. 전형적인 최루성 영화랄 수도 있지만 큰 인기를 얻어 3편까지 시리즈가 제작되었다.
- 특공대원인 일규와 사랑에 빠지는 여인인 배수나 역으로 출연.
- 반공영화라서 청소년 단체 관람도 있었고 당시 초등학교에서 상영했다고도 하는데, 그렇게 영화를 본 미성년들이 눈 앞에 펼쳐진 정윤희의 누드에 환호했다는 말이 인터넷상에 종종 보인다. 최후의 증인,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에 이어 이대근과 3번째 동시 출연작.
- 여자와 비 (김성수 1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