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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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在浣
1900년 1월 2일 ~ 1987년 1월 27일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호는 삼광(三光)이다.

1900년 전라남도 여수군에서 태어났다. 경성부 중앙고등보통학교, 일본 오사카고등공업학교, 도쿄물리학교, 일본 도요 대학 독어철학과를 졸업하였다. 중앙고등봏통학교 재학 중이던 1919년 3.1 운동에 참여하였다.

국내로 돌아와 1929년 고향인 여수에서 지주회를 설립해 활동했다. 1930년 철도시설을 위해철도연번 부지를 강제 매입하려는 조선총독부 당국에 맞서,주민들의 권리보호를 위해 농민회를 조직해 활동했다. 또한 청년회관을 신축하고 가난한 아동들에 대한 교육 사업을 추진했으나 당국으로부터 불허가 처분을 받자, 여수공립보통학교 교내에 야학부를 설치해 미취학 아동들에 대한 교육 사업을 전개하기도 했다.

8.15 광복 후 여수군수. 전라남도청 사회교육과장, 여수일보 사장 등을 지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전라남도 여수시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민주국민당 김문평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5년 민주당 창당에 참여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박순천의 민주당에 몸담았다. 1965년 통합야당 민중당에 몸담았으나 지도노선에 반발하여 탈당하고 1966년 신한당에 몸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