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시모어

1 헨리 8세의 세 번째 아내 제인 시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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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e Seymour (1508년? ~ 1537년 10월 24일) 1536년 ~ 1537년 (결혼기간)

헨리 8세의 세번째 왕비이자 그가 가장 사랑한 왕비.[1] 에드워드 6세의 생모.

금발에 작은 체구를 지닌 그녀는 앤 불린보다는 좀 더 현명하고 조용했다. 앤이 캐서린의 시녀로 있다가 왕비가 되었듯이, 이 금발의 여인도 앤의 시녀였을 때 헨리의 눈에 띄었다.

제인 시모어는 앤 볼린과는 신기할 정도로 정반대의 여성이었다. 검은 머리에 거무스름한 피부를 지닌 앤과 대조적으로 제인은 금발에 매우 창백했다고. 또한 지적이고 적극적인 앤과 달리 제인은 소극적이고 순종적이었다.

헨리 8세가 앤의 시녀로 있던 제인을 마음에 들어하기 시작했을 때 제인은 만 25세로 당시 기준으로는 노처녀였다. 예전에 혼담이 있다고는 했지만 금방 깨어져 버렸고, 외모가 출중한 편이 아닌데다 그밖에 딱히 매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독신 여성으로 늙을 운명이었다.[2] 그러나 헨리 8세의 첫 왕비이자 대국의 왕녀라는 막강한 배경을 안고 있는 아라곤의 캐서린을 끝내 몰아낸 앤 불린이 왕비로 있는 동안 그 남편인 왕과 꿋꿋이 연애를 했고, 결혼까지 했다는 점에서 제인도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친정인 시모어 가문이 노력한 것도 있겠지만 천하의 호색한이었던 헨리 8세의 총애를 붙잡는 것은 어디까지나 제인의 몫이었을 것이므로.

헨리 8세는 본래 아내의 시녀인 제인 시모어를 처음에는 정부로 삼을 생각이었다. 그는 사랑을 고백하는 편지와 돈이 든 지갑을 사람을 통해 제인에게 보냈고, 이에 제인은 상당히 재치있는 대응을 했다. 편지를 열어보지도 않은 채 사자 앞에서 무릎을 꿇고, "저는 전하의 선물을 받을 수 없습니다. 제가 가진 것은 정절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명예롭게 결혼을 하게 되면 그 때 선물을 해 주세요."라고 간곡하게 말한 뒤 편지와 지갑을 그대로 돌려보냈던 것. 어떻게 보면 제인이 얼마나 정숙하고 수줍은지를 드러나는 대응이기도 하고, 다르게 생각해 보면 왕에게 "저는 정부는 되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저와 결혼을 하신다면 저를 가지실 수 있을 거예요."라는 사실상의 유혹을 완곡한 방식으로 표현한 대응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실 정부가 되기는 싫으니 왕비로 만들어 달라는 유혹이라고 생각하면 헨리 8세와 연애하던 시절의 앤이 보여준 것과 그닥 다른 대응도 아니다. 헨리 8세는 앤을 처음 만났을 때에도 정부가 되어 달라 했다. 그러자 앤은 영리하게 거절함으로써 정절을 지켜 그를 달아 오르게 만들었고 동시에 결혼해서 왕비로 만들어 줄 것을 요청해 결국 헨리 8세는 교황과 갈라서면서까지 캐서린과 이혼하고 앤과 결혼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앤은 아들을 낳아 주지 못했고 방탕한 헨리 8세의 외도 행각도 용인해 주지 못했다. 저런 앤에게 질려가던 헨리 8세는 제인의 재치 있는 대응에 진심으로 감동을 받았고, 제인의 명예를 위해 제인과 만날 때에는 시모어 가문의 사람을 그녀의 보호자로 대동하겠다는 약속을 한다. 아마도 이 때부터 헨리 8세는 유산을 거듭하는 앤 대신 제인을 아내로 들일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을 것이다.[3] 그리고 앤을 처형하자마자 그 생각을 실행에 옮겼다.

헨리 8세의 생각을 빠르게 간파한 시모어 가문은 제인을 왕비로 올리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사실 시모어 가문은 대단히 야심찬 가문으로, 헨리 8세의 최측근인 토머스 크롬웰과 손을 잡고 불린 가문을 몰락시키고 제인을 왕비로 세워 마침내 득세한다. 제인의 첫째 오빠 에드워드(1500?1506?-1552)와 셋째 오빠 토머스(1508?-1549)는 헨리 8세가 죽고 에드워드 6세가 즉위했을 때까지도 권세를 누렸으나 어린 왕의 외삼촌들로서 권력을 휘두르다 결국 모두 몰락한다. 단, 둘째 오빠인 헨리 시무어(1503?~1578)는 무탈하게 천수를 누렸다.

제인은 앤이 참수형을 당하는 바로 그 날 헨리 8세와 약혼했으며, 그로부터 11일 만에 헨리 8세와 제인의 결혼식이 거행됐다.[4] 제인은 의붓딸들인 엘리자베스메리와도 무척 사이가 좋았다. 앤이 메리가 지닌 왕가의 보석을 강탈하다시피 가져오거나 지원을 끊어서 궁핍하게 했던 것과 달리 헨리와 메리가 화해하도록 주선하고 엘리자베스도 잘 보살폈다. 이때문에 비록 의붓어머니였지만 메리와 엘리자베스의 호의를 받았다.

독실한 가톨릭 신도이기도 한 그녀는 최초로 캐서린 왕비의 딸인 메리(후의 메리 1세)의 복위를 주장하기도 했으며 특히 수도원의 복귀를 주장했다. 그 와중에 헨리 8세와 소원해지기도 했는데, 헨리 8세는 제인에게 "정치에 끼어들지 마라, 네 전임자의 운명을 봐라"라고 윽박질렀으며 제인은 그 후로 정치에 간섭하지 않았다.[5]

정치에 간섭했다는 이유로 헨리 8세와 사이가 잠깐 소원해지기도 했으나 어쨌든 결혼 이듬해인 1537년 초에 임신 소식을 알려 부부 사이는 다시 회복됐다. 결혼한 지 꽤 됐는데도 제인의 임신 소식이 없었던 데다가 그 자신의 나이가 나이인지라 아이가 안 들어서는 건 아닌가 고심하던 헨리 8세는 제인의 임신 소식에 당연히 기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아이는 예정일을 한참 넘기고도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마침내 1537년 10월 12일에 제인은 무려 사흘에 거친 혹독한 산고 끝에 헨리 8세가 오랜 세월동안 그토록 고대하던 왕자 에드워드 6세를 낳았다. 헨리 8세는 무척 기뻐했고 40여년만의 왕자 출생에 잉글랜드 전역이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하지만 정작 왕자의 생모인 제인은 아들의 탄생을 축하할 틈도 없이 이내 앓아 누웠다. 산고가 워낙 심했던데다가 당시에 위생 개념이 전무했던지라 산후조리를 제대로 못해서 유행하던 산욕열에 걸린 것. 잉글랜드의 모든 귀족들과 백성들이 그녀의 쾌유를 위해 기도했고, 헨리 8세 역시 그녀의 곁을 지키며 기도했다. 그러나 결국 10월 24일에 제인은 갓난 아들을 두고 눈을 감았다.

그녀의 사망으로 헨리 8세는 무척 상심했다. 하지만 헨리의 여섯 왕비들 중 유일하게 그에게 아들을 낳아 주었기에 가장 사랑받는 왕비로 남을 수 있었다. 당시 헨리 8세는 첫째 왕비 캐서린, 둘째 왕비 앤과의 결혼을 무효화한 상태였기에 그는 자신에게 적법한 후계자를 낳아 준 제인이 유일하게 진정한 아내라고 생각했다. 결국 헨리는 여러 왕비 중 유일하게 제인 시모어를 자신 옆에 안장하기로 한다. 그래서 헨리 사후 웨스터민스터 사원에 합장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사실 제인 바로 뒤에 들인 클레페의 앤하고는 얼마 못 살고 이혼했고, 그 직후에 들인 캐서린 하워드는 앤 불린처럼 간통을 이유로 처형했으며, 마지막으로 들인 캐서린 파는 그의 사망 당시에 살아 있었으니 제인 말고는 합장될 왕비가 없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제인의 아버지 존 시모어는 자신의 맏며느리, 즉 제인의 큰오빠인 에드워드의 아내인 캐서린 필리올와 불륜을 저질렀다가 들켰다는 막장 추문이 있다. 캐서린 필리올이 수녀원에 들어간 것은 기록에 남아 있으며, 에드워드는 캐서린이 죽은 후에야 앤 스탠호프와 재혼했다. 제인이 이십대 중반이 되도록 시집을 가지 못한 것도 이 추문이 흠으로 작용했다는 야사도 있지만, 야사는 야사일 뿐 근거는 없다.

1.1 대중문화에서의 등장

1.1.1 튜더스

시즌2, 3에 걸쳐서 등장한다. 배우가 교체되었기 때문에 각 시즌에서 다른 배우가 나온다. 시즌3에서는 에나벨 월리스가 연기.

사냥을 하다가 방문했던 존 시모어의 저택에서 우연히 그녀를 본 헨리는 첫눈에 반하고 곧바로 그녀를 궁으로 불러들인다. 제인은 자신의 아버지 존 시모어와 오빠인 에드워드 시모어가 헨리가 제인에게 반했음을 알고 계획을 세우는 것을 보고 당황한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에드워드가 '왕비가 되고 싶니?'라고 묻자 웃음을 터뜨린 것을 보면 내심 왕비의 자리를 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또한 자신과 헨리의 관계를 눈치챈 앤이 차갑게 노려볼 때도 물러나지 않고 응수하는 시선을 던진 것을 보면 단지 얌전한 사람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앤이 타워에 갇혀 절망에 빠져 있을 때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앤을 좋아했던 시청자들에게 좀 까였다. 물론 그 상황에서 앤 편을 들 수도 없는 상황이니 어쩔 수 없었다.그냥 헨리가 개쌍놈이다(...)

워낙에 튜더스에서 앤 불린의 존재감과 인기가 독보적이었다 보니 제인 시모어가 상대적으로 묻힌 감이 좀 있다. 그러나 이건 뭐 다른 왕비들도 그리 다를 바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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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2 막바지에서 제인 시모어 역을 맡았던 Anita Briem은 시즌 종료 후 하차하게 된다. 하차하게 된 이유는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배우가 아이슬란드 출신이라 대사 소화가 버거웠다든지, 초상화의 제인 시모어와 별로 안닮아서라든지, 출연료를 별로 못받아서라든지 등 여러 루머가 있다. 아무튼 Anita Briem의 순수한 이미지를 더 좋게 기억하는 시청자들도 많은 모양. 물론 시즌3에 등장하는 애나벨 월리스가 더 예쁘고 참해보인다며 이쪽이 더 좋다는 시청자도 있다. 또 배우가 중간에 갑자기 바뀌어서 극의 흐름이 깨졌다는 의견도 많다. 특히 시즌 3 첫 에피소드에서 이전 시즌을 재구성해서 짤막하게 짚고 넘어갈 때 Anita Briem이 맡았던 파트를 전부 에나벨 월리스가 재촬영했는데, 뭔가 굉장히 어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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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3에서는 배우가 바뀌어서인지 이미지가 많이 달라졌고 여왕답게 대사량도 많아졌다. 콩가루가 판치는 이 드라마에서 캐서린에 이어 성녀라 해도 무방할 정도의 선행을 보여준다. 조지 불린의 아내인 로치포드 부인의 생활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그녀를 수석시녀로 임명하고, 메리 튜더는 물론 엘리자베스를 다시 궁으로 돌려보내주길 헨리에게 간청하고, 엘리자베스의 사정이 어려운 것을 알고는 도와주고 그녀들의 권리를 다시 올려주기 위해서 노력한다.[6] 로버트 에스크의 일도 자비를 베풀라고 간청했지만, 헨리가 앤을 거론하자 결국 말을 삼가고 더 이상 의견을 피력하지 못한다.

시즌 3 첫화부터 헨리에게 "당신이 아이를 가지지 않은 것이 실망스럽다."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 뒤로도 헨리가 다른 시녀와 검열삭제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어쩔 수 없다며 인내한다. 앤의 전례가 있는 만큼 말을 삼가는 태도가 대부분. ...말해봐야 고칠 리가 없으니.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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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불린과는 달리 베드신이 나온 적이 없지만[8] 헨리는 그녀에게는 매우 정중하고 아끼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엄청난 야심가인 오빠 에드워드 시모어로부터 아버지 존 시모어의 죽음을 1주일이나 지난 뒤에 통보받았을 때는 거의 울 듯한 얼굴이 되면서도 헨리 앞에서 억지로 웃을 수밖에 없었다.[9]

크리스마스 절기 때 메리를 불러들인 상태에서 엘리자베스를 데려온다.[10] 헨리는 놀라기는 했지만 여태껏 부정했던 엘리자베스를 자신의 딸이라고 말하며 한데 앉혔다. 그 때 신하들을 향해 헨리는 평온한 얼굴로 "행복한 가족이라오!"라고 외쳤다. 그야말로 헨리에게 가정이란 것을 만들어준 아내. 그러나 그녀는 아들을 낳은 후 산욕열로 사망한다.

Don't go. Please, don't go. Just because you have done everything you have promised, please don't leave me. you are the milk of human kindness. The light in my dark, dark word. Without you life is the desert, a howling wilderness. Please God, in your mercy don't take her away from me. My son needs his mother, and I need my queen.

(가지 마시오. 제발 가지 마시오. 나와 약속한 모든 것을 이뤘다고 해서, 나를 떠나지 마시오. 당신은 인간의 상냥함의 젖이요. 내 어두운 세상의 빛이요. 그대가 없는 인생은 사막과 같을 것이요. 어두운 황무지일 것이요. 주님, 제발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세요. 그녀를 저에게서 데려가지 말아 주세요. 제 아들은 그의 어머니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저도 그녀가 필요합니다.)

튜더스 시즌3에 나오는 제인 시모어의 죽음 장면.

튜더스에서 헨리 8세가 가장 슬퍼했을 때는 바로 제인 시모어가 죽었을 때다. 만약 그녀가 오래 살았더라면 헨리의 가정사가 더 파탄나는 일도 없었을테고 메리와 엘리자베스도 행복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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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화에서 유령의 모습으로 등장했을 때의 첫 마디는 "제 아들은 어떤가요?"였다. 헨리 8세가 제인에게 그녀를 늘 그리워했으며 그러하기에 우리 아들(에드워드) 역시 물심양면으로 보살피고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생전에 그를 한번도 비난하지 않았던 제인은 비통해하며 헨리 8세가 에드워드를 지나치게 보호했고, 지나치게 많은 것을 바란 탓[11]에 아이가 일찍 죽을 것이라고 비통하게 말하고는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헨리는 자신이 죽거든 나의 진실한 아내인 제인 시모어 곁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긴다.

1.1.2 영드 울프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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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케이트 필립스. 딱히 눈에 띄는 미인은 아니지만 창백한 금발 처녀인 점이 실제 역사에서 기록된 제인 시모어와 비슷하다.

앤 불린의 시녀로 조용하고 어린 아이처럼 순진하고 수수한 처녀. 기본적으로는 선량하지만 궁정 생활이 체질에 안 맞는 듯, 앤 볼린을 비롯하여 기가 센 볼린 가의 여자들에게 들들 볶이고 위선과 음모가 휘몰아치는 궁정에서 살아남느라 풀이 잔뜩 죽어 있다. 집인 울프 홀에 돌아가고 싶다는 말도 한다. 가끔 분위기를 못 읽고 눈치 없는 발언을 하기도 하는데 살짝 4차원으로 보이기도 한다. 프랑스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는 앤 불린과 달리, 제인은 프랑스어를 하지 못하는 등 세련된 여자라고 하기엔 힘들다.

토머스 크롬웰은 그녀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는데, 앤에 대한 사랑이 식은 왕이 앤과 정반대인 제인에게 빠지게 되면서 관심이 있는 여자에게 왕의 관심을 유지하는 법에 대해 조언을 해 주는 서러운 처지에 놓이기도. 그러나 나중에 잠이 든 왕을 단호하게 깨우거나, 공개된 장소에서 왕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 당당한 모습에서 제인도 앤 볼린의 적수가 될 만한 여자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2 오페라에서의 제인 시모어

가에타노 도니제티안나 볼레나에서 등장한다. 음역은 메조 소프라노[12]이며, 이탈리아어 표기는 '조반나 세이모르(Giovanna Seym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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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불린으로 분한 마리아 칼라스(왼쪽)와 제인 시모어로 분한 줄리에타 시미오나토(오른쪽). 어, 실제 역사랑 달리 제인 시모어의 머리가 금발이 아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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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빈 국립 가극장에서 열린 안나 볼레나 공연에서 제인 시모어로 분한 엘리나 가랑차. 어,엄청난 싱크로율 이다...

오페라에서는 실제 역사처럼 앤 불린의 시녀로 등장하지만, 사실 라이벌이라 얘기해도 무방하다. 물론, 다른 오페라의 라이벌 여인들[13]처럼 나쁜 이미지는 아니고, 착한 여인으로 나오지만 튜더스에서 나오는 모습과는 달리 헨리 8세[14]한테 사랑 받는것에 대해 절망하고, 심지어 앤 불린한테 죄책감 가지게 되는....요즘 보자면 약간 답답하면서도 비현실적인 느낌의 여인으로 그려졌다고 할까?
근데, 캐릭터의 이미지가 왠지 벨리니의 노르마에서 나오는 아달지자를 연상케 한다.[15]

명곡으로는 앤 불린과의 유명한 이중창 "Dio che mi vedi...Sul suo capo"이 있고, 오페라에서 유일하게 나오는 조반나의 카바티나와 카발레타 "Per questa fiamma indomita...Ah! pensate che rivolti"가 있다. 카바티나와 카발레타의 경우 메조 소프라노들의 배역인만큼 콘서트나 스튜디오 녹음에서 자주 불러지는 편.



조반나의 아리아 "Per questa fiamma indomita...Ah! pensate che rivolti"는 대체로 이런 노래이다. 함 들어보자. 노래는 마릴린 혼이 불렀고, 엔리코역은 니콜라이 갸우로프가 맡았으며, 실비오 바르비조가 지휘했다.

2 영국 출신 여배우

Jane Seymour (1951년 2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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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느냐 사느냐에서 본드걸로 출연.
한국에서는 크리스토퍼 리브와 함께 출연한 영화 사랑의 은하수 및 80년대 KBS에서 방영한 미드 '닥터 퀸'의 여의사 퀸 역할이 알려져 있다.

오드아이를 가지고 있다.

  1. 앤 불린과의 열애가 너무나도 유명해서 묻힌 감이 있지만, 제인 시모어와 결혼했을 당시에 헨리는 바람을 피지 않았고, 그녀가 죽은 후에 가장 그리워했고(다만 이건 질리기 전에 너무 빨리 죽어서 헨리가 제인을 우상화 시킨 것도 있다), 아들을 낳아줬고, 같이 묻어달라고 부탁한 등 여러 이유로 학자들은 헨리가 제인 시모어를 가장 사랑했다는 것을 정설로 친다.
  2. 제인에게 호의적이었던 세력조차 제인은 평범한 외모의 여성이라고 기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하게도 후대의 작품에서는 금발의 청순한 미녀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3. 얌전한 제인에게 반한 것도 있지만 시모어 가문이 대대로 다산하는 집안이라는 점도 그때까지 적자를 두지 못해 후사 문제로 예민해져 있던 헨리 8세의 흥미를 끌었다 한다. 당장 제인만 봐도 위로 오빠가 셋이나 있었다.
  4. 그러나 당시 잉글랜드의 왕실 재정이 궁핍해진 상태인지라 대관식은 그녀가 에드워드 6세를 낳고 죽는 날까지 치르지 못했다. 이 때문에 헨리 8세가 제인 사후에 들인 다른 왕비가 대관식을 치르고 왕자를 낳을 경우, 그 왕자가 제인 소생인 에드워드 6세보다 더 적법한 왕자가 될 수도 있다는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물론 제인 이후 헨리 8세가 들인 세 왕비들 모두 아이를 갖지 못해 에드워드 6세가 헨리 8세의 유일한 적자로 남아서 저 논란은 무의미하게 됐다.
  5. 참고로 제인은 독실한 구교도였으나 그녀의 아들 에드워드 6세는 신교도로 자라 신교를 독실하게 믿었다. 이 때문에 구교도인 이복누나 메리 1세와 대립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친정가문인 시모어 가문 또한 신교도 세력으로 남게 된다.
  6. 로치포드 부인에게 "남편(조지 불린)에게 배신당한 것은 당신 탓이 아니다. 또한 왕의 자식으로 태어난 것이 엘리자베스와 메리 탓은 아니며, 여자는 쉽게 이용당한다"고 말한다. 앤 불린의 죽음 때문에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된 듯.
  7. 그런데 여기서 나온 시녀는 가공의 인물이다. 헨리 8세는 제인 시모어와의 결혼 생활에서 한번도 다른 여자와 잠자리를 같이 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정사신을 넣기 위해 무리하게 집어넣은 설정이 아니냐고 까이기도 했다.
  8. 극중에서 헨리와 제인의 애정씬은 거의 키스신이나 서로 바라보면서 웃는 것들인데 연출 또한 따뜻하고 서정적인 느낌이다. 불같으며 격정적이었던 앤 불린과의 사랑과 대비시키기 위함으로 보인다.
  9. 오빠인 에드워드가 계속 웃으면서 표정관리 잘하라고 한마디 하기도 했다.
  10. 이미 메리와는 이야기가 된 상태.
  11. 에드워드 6세는 헨리의 지나친 과보호로 인해 면역력이 오히려 약해져버렸다는 설이 있다. 여담이지만 호색한이었던 헨리 8세 때문에 에드워드 6세가 선천적으로 매독을 갖고 태어나 병약했다는 설도 있다.
  12. 이와는 반대로 앤 불린은 드라마티코 음색을 겸비한 소프라노 배역이다.
  13. 예를 들자면 아이다의 암네리스, 마리아 스투아르다의 엘리자베타 여왕
  14. 오페라에선 엔리코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물론, 이탈리아어 표기.
  15. 이는 벨리니가 도니제티의 안나 볼레나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