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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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더퍼드 버처드 헤이스 | ← | 제임스 에이브럼 가필드 | → | 체스터 앨런 아서 |
공식 초상화 | |
풀네임 | James Abram Garfield |
출신 정당 | 공화당 |
생몰년 | 1831년 11월 19일 ~ 1881년 9월 19일(49년 10개월) |
재임기간 | 1881년 3월 4일 ~ 1881년 9월 19일 (6개월 15일...) |
서명 | |
키 | 183cm |
장교 시절
대통령 시절
1 일생
에이브러햄 링컨처럼 통나무집에서 태어났다. 오하이오주 쿠야호가 군 모어랜드 힐스 출신. 2세 때 부친과 사별하고 어머니 혼자 집안의 수입을 담당했는데 어린 그도 노동에 나서야 했다. 10대에 가출하여 6주 정도 운하를 오르내리는 선원 일을 했는데, 물에 열 네번이나 빠진 끝에 열병에 걸려 버렸다. 병석에 있던 도중 어머니가 가필드에게 17달러를 줘서 그 돈으로 공부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2000년대 초반 초딩 도덕 교과서에서는 어머니를 당선일날 의자에 대신 앉히고 감사를 표했다는 효성의 미담 야사가 있는데, 사실 여부 확인바람.
그 돈으로 학업에 열중하다가 그 17달러가 떨어지자 직접 목수 일을 하고 가정교사 역을 하면서 학비를 벌었다. 또한 성직자 경력도 있는데, '그리스도의 교회 제자파'의 설교자로 뛰기도 했다. 가필드의 연설 능력은 성직자 생활에서 크게 길러졌다고 한다. 그래서 훗날 대통령이 되고 나서 붙은 별명이 '설교자(Preacher) 대통령'.
어쨌든 고생하면서 공부한 끝에 윌리엄스 대학교를 졸업하고 그 대학의 학장을 역임했으며, 변호사, 오하이오주 상원의원을 역임했으며, 남북전쟁 당시 북군 장교로 참전하였다. 그러니까, 가난한 집 출신으로 고생은 많이 했지만 링컨과 달리 대학을 졸업했다는 것.
이후 18년간 공화당 하원의원을 역임했고 1880년 연방 상원의원이 되는 등 출세가도를 달리다가 그 해 36개 주 예비선거에서 승리하여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1880년의 선거는 민주당과의 쟁점이 관세 외에는 큰 차이가 없었고, 인신공격도 그다지 없기는 했지만 선거 자체는 치열했는데, 가필드가 자금이 부족했다. 그래서 가필드는 공화당 내 최대파벌 영수였던 로스코 콩글링과 교섭하여 콩글링 파벌의 사람들에게 한 자리씩 준다는 조건으로 자금 지원을 받았다. 그 대신 콩글링은 자기 계파 사람인 체스터 앨런 아서를 부통령 후보로 내세웠다.
선거 결과 역시 초박빙이었다. 4,446,158 대 4,444,260 민주당 후보 윈필드 스콧 핸콕과와 표차는 딱 1,898표(0.02%). 오늘날에 이 표차 나오면 바로 재검표 요구에 부정선거 논란까지 벌어질 표차다. 더구나 당시 유권자는 921만명에 불과했다. [1]
결국 가필드는 콩클링의 지원을 받은 뉴욕 주에서 2만 3000여표차로 앞선 덕분에 선거인단 35명을 차지해서 당선될 수 있었다. 선거인단 수로는 214대 155. 뉴욕 주 35명이 민주당 쪽으로 갔으면 189대 190으로 민주당 후보가 당선될 표였다. [2] 어쨌거나 당선되는 데는 성공하고 이후 1881년 3월 대통령에 취임했다. 미국 역사상 현직 하원의원이 대통령에 당선된 경우는 가필드가 유일하다.
대통령이 된 가필드는 부패한 공직자를 일소하기 위해 부정행위를 조사하도록 명했는데 가필드는 관직을 콩글링 파벌에게 줘버리면 대통령으로써의 역할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고, 이런 움직임에 콩글링 파벌에서는 관직 준다는 약속 어긴다고 가필드에게 크게 반발했다.
암살되는 가필드
그러던 중 7월 2일 워싱턴 역 앞에서 기차를 기다리다가 C.J.기토의 총격을 받았다. 기토는 콩글링 파벌 사람으로써 관직분배가 이루어지지 않은 데에 불만을 품고 가필드 암살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암살 며칠 전 일기에 이렇게 썼다.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은 슬프지만 어쩔 수 없다. 이 일은 공화당을 단결시킬 것이고, 나아가 미합중국을 구원할 것이다. 난 대통령에 대한 악의는 없지만 죽음은 정치적으로 필요하다."
...가히 근거없는 비장감이 돋는다.
그리고 가필드를 쏘고 나서 기토는 "대통령은 죽었다! 이제 부통령 아서가 대통령이 될 것이다!"라고 크게 외쳤다고 한다. 이 말을 들은 아서는 분노했지만 특이하게도 이 이야기에 대해 직접 변명하지는 않아서 가필드의 암살 배후에 아서가 있다는 소문도 제법 나돌았다.그런데 그 아서도 대통령 되고 나서는 콩클링 계파를 하나도 기용하지 않았다...
어쨌든 가필드는 등에 두 발의 총을 맞고 쓰러졌는데 그 자리에서 죽지는 않았고 2개월 조금 넘게 병석에서 버텼지만 의사들은 가필드 몸의 총알을 찾아내지 못했고[3] 결국 9월 19일에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죽기 며칠 전에 의사들이 가필드를 뉴저지주 엘버론의 바다 휴양지로 이동할 것을 권유했는데, 이 때 너무 무리하게 이동하는 바람에 오히려 가필드의 병세를 키웠다는 이야기도 있다. 게다가 당시 처방이 향수였던 매딜럼과 음식 튜브, 나무로 제작한 에어콘을 사용했다고... 이건 지금도 기록으로 남겨져 있다.
참고로 대통령을 암살한 기토는 당연히 붙잡힌 뒤 처형되었으며, 이후 그의 시신은 의료기관으로 넘겨져 해부 실험 대상이 된다. 지금도 그의 뼈와 뇌를 보관중인 병원이 있는데, 암살자의 뼈는 여러 상징적 의미가 있어 보통은 붙이는 꼬리표조차 달지 않으며 현재도 엄중하게 보관되어 있다. 또한 뇌는 단면을 보면 그 사람이 미친 줄 알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진 의사들에 의해 아주 조각조각난 상태로 보관되어 있다(...). 그리고 해부 도중 두개골이 사라졌는데, 이 행방은 1912년 워싱턴 포스트에서 도난당했다는 기사가 나온 이후 아직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율리시스 그랜트는 가필드를 "지렁이 뼈대도 가지지 않은 자"라고 혹평했다. 이건 그랜트가 가필드에게 자기 계열 사람들을 중용하라고 청탁을 했지만 가필드가 이를 들어주지 않자 이에 앙심을 품고 내뱉은 말이다. 역시 대통령으로써는 무능했던 명장.
전임 대통령인 러더퍼드 헤이스는 "미합중국의 역사를 통틀어 이토록 가난하게 출발해서 많은 것을 성취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벤자민 프랭클린도 링컨도 그와 같지 않았다!"라고 높이 평가했다.
일반적으로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대통령의 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었지만 엽관제도의 희생양으로 죽어간 비운의 대통령으로 평가받는다. 먼나라 이웃나라 미국 대통령 편에서는 콩클링과의 타협 때문에 '부패한 정치인'이라는 평가도 존재한다고 소개했지만 그보다는 엽관제도의 희생자로써 행정학 계열에서 많이 다뤄진다. 사실 대통령으로써 활동한 기간이 3개월도 되지 않아서 업적을 평가하기가 어렵다.
2 여러가지 일화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께서 장래희망을 물었을 때, '사람이 되겠다'고 대답했다. 무슨 뜻이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저는 고양이라서요'라고 대답했다 '사람다운 사람이 되겠다'고 답했다.
오른손으로 라틴어, 왼손으로 그리스어를 쓰는 것이 가능했다고 한다. 말하자면 '양손잡이'였던 인물. 그 외 그가 세운 기네스는 역대 대통령 중 두 번째로 단명한 대통령(49세 10개월. 제일 단명한 대통령은 모두가 아는 그 사람.), 9대 대통령 윌리엄 해리슨에 이어 두번째로 재임기간이 짧았던 대통령(약 6개월. 그나마 2개월 넘게 병석에 있었다)이다. 어째 안 좋은 쪽으로만 2등이다.
총에 맞아 병석에 누워 있을 때 종이판과 연필을 부탁하고는 자기의 풀네임을 적었다. 그리고 라틴어로 "Strangulatus pro Republica"라고 적었다고 한다. 대충 '나라를 위해 고문당했다' 정도의 의미.
또한 병석에서는 라임을 탄 물과 빻은 오트밀로 연명했는데, 가필드는 오트밀을 매우 싫어했다고 한다. 하루는 붙잡힌 아메리카 원주민 추장이 옥에서 단식한다는 말을 듣자 처음에는 "굶어 죽게 내버려 둬"라고 말했다가 별안간 "아니, 아니. 그에게 내 오트밀을 가져다 주게"라고 지시했다. 실제로 오트밀을 추장에게 가져다 줬는지 알 수 없지만 죽음에 다다라서도 제법 여유 있는 태도였던 모양이다.
미국에서는 농담삼아 유명한 고양이 캐릭터인 가필드와 연관짓기도 한다. 그리고 행정학계에서는 유명하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지 그냥 가필드라고 하면 먼저 고양이 가필드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고. 안습.
2.1 가필드 증명
사다리꼴을 이용해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증명한 적도 있다. 고대언어를 가르치는 문학과 교수가 취미로 수학을 한다는 것도 특이할 뿐더러, 그림 하나와 수식 한줄만으로 이루어진 명쾌한 증명이라 더더욱 대단하다. 수학이 싫어 문과 간건 아닌듯 중학생들이 가필드의 증명법을 좋아합니다
△ABC+△CBE+△BDE=□ADEC
[math] \frac{bc}{2} + \frac{a^2}{2} + \frac{bc}{2} = \frac{(b+c)}{2} \times (b + c) [/math]
이를 정리하면
[math] \frac{a^2}{2}+bc = \frac{b^2}{2} + bc + \frac{c^2}{2} [/math]
가 되고, 이는 다시
[math] a^2+2bc = b^2 + 2bc + c^2 [/math]
로 정리되고 양변에 2bc를 빼면
[math] a^2 = b^2 + c^2 [/ma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