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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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North Korea–United States relations. 영어 위키백과의 표현을 참고하였다. 일본에선 미조관계(米朝関係)라고 표현한다. 한국에선 보통 북미관계라고 하나 미북관계라고 하기도 한다. 북미관계가 North America로 들릴까봐 그렇게 표현하기도 하지만 북한보다 미국이 더 우방이니 미북관계라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2 역사

북한의 전신인 조선 북부 지방의 중심도시인 평양은 제너럴 셔먼호 사건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한국인 입장에서야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으니 이 일을 한국의 역사로 간주하지만 북한은 자기들이 조선의 땅과 인구를 습득하여 계승된 국가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북한이라는 집단으로의 시작점은 한국전쟁으로 서로 적국이었다. 당시 북부의 정권은 소련의 지휘하에 놓였고 미국에 적대적이었다. 1948년 9월에 북한 정부가 수립됐지만 미국 정부는 인정하지 않았으며 현재도 마찬가지이다. 그 때문에 북한엔 미국의 대사관이 없으며 미국에도 북한의 대사관이 없다. 다만 뉴욕에 주UN 북한 대사가 체류하여 북한의 대외창구 역할을 하기는 한다. 미국은 스웨덴 영사가 북한 관련 업무를 맡는다. 스웨덴은 북한과 수교했기 때문이다.

전쟁 기간 동안 한국군미군은 잠시 북한의 영토에 진입하지만 이내 중공군의 개입으로 밀려나고 전쟁은 소강상태에 빠지다 휴전된다. 그 후 냉전이 끝날 때까지 북한과 미국의 교류는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푸에블로호 피랍사건 등으로 나타난다. 미군 탈영병 일부가 월북하기도 하였다. 찰스 젱킨스(Charles Robert Jenkins) 중사가 대표적.

그 외에는 전혀 교류가 없었는데 북핵문제가 나타나면서 북미관계는 점점 세계의 관심을 끌고 북한은 미국인들에게 엄청난 어그로를 끌며 korean이란 말의 어감을 확 나쁘게 만든다. 미국 정부는 북한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다만 민간 차원에서 북한과 물밑 협상을 하러 빌 클린턴이나 지미 카터 등이 1994년과 2009년에 전 대통령 신분으로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1994년에 카터는 김일성을 만났는데 국빈 취급 받았다. 다만 보름 후에 김일성이 죽는 바람에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해보려던 김영삼 입장에선 좀 벙찌게 됐다. 2010년에도 갔는데 김정일중국으로 갔을 때라 만나지는 못 했다.

2007년 11월 4일에 약간 긍정적인 일이 있기도 했는데 주선자는 소말리아 해적이었다. 북한 상선이 소말리아 해적의 공격을 받자 근처에 있던 미합중국 해군이 도우러 온 것. 치료 등의 목적으로 미 해군은 북한인의 승선을 허가했고 이례적으로 북한의 매체는 이 일을 긍정적으로 논평했다. 2008년에는 뉴욕 필하모닉이 평양을 방문해 공연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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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해군의 도움을 받았던 북한 국적의 상선 대홍단호.

3 현황

그러나 2010년 천안함 피격사건 등이 발발하면서 북미관계는 상당히 나빠진 상태다. 6자회담도 교착 상태고. 미국과 정식으로 수교하는 게 북한의 입장에선 상당히 절실한 일이긴 하다. 안보 문제에서 상당한 진전이 될 테니[1]. 다만 3대로 이어지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의 정권 유지를 목적으로 하는 반미 프로파간다가 국민들에게는 깊이 뿌리박혀 있다.

재밌는 모순이다. 북한이 미국과 정식으로 수교하는게 절실하다면 왜 계속 북한은 반미 프로파간다에 적극적인가.
김씨 3대 독재를 유지하기위해서라고 한다면 미국과 북한이 정식으로 수교하면 북한 주민들과 국민들의 안보는 해결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결국 북한의 안보 문제가 있는 것은 북한의 김씨 3대 독재때문이라는 것인데 그래서 북한 입장에서는 미국과 정식으로 수교하는 것이 상당히 절실한 일은 아니지 않는가?

2010년 ~ 2015년 사이의 북미관계에 대해서는 추가바람

2016년 북한의 4차 핵실험, 2016년 북한 광명성호 발사 사건, 그리고 한미가 사드 배치를 고려하면서 북미관계가 부정적으로 변화하였다.

국무부에서 북한 주민들에게 외부 세계를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는 아이디어를 공모한다고 밝혔다. # 가장 최악의 관계에 불구하고 쿠알라룸푸르에서 비공식적으로 대화하였으며,# 역시나 원론적인 주장만 펼치고 있다.#

4 특징

대체적으로 북미관계의 위기가 올 때마다 미국이 투 트랙(Two-Track)[2]을 활용했다는 점이다. 1994년 북핵 위기때 지미 카터김일성을 만나는 것도 대표적인 예이며, 2016년 쿠알라룸푸르 비공식 회동도 그러한 전략으로 볼 수 있다.
  1. 실제로도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개선이 절실한 실정이기도 하다. 더욱이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된 지금의 상황에서 북한이 그나마 유일하게 외교정상화를 물색해 볼 수 있는 국가가 미국이기 때문이다. 일본과는 납치사건과 핵문제 때문에 정상화가 어렵고 한국과의 관계도 핵문제와 인권문제로 마찰, 유럽연합과는 역시 인권과 핵문제로 인해 원만한 관계를 만들기가 어렵다. 다만 미국도 북핵과 인권역시 무시하지 못하는 문제다.
  2. 양면전략을 의미하며, 채찍과 당근, 대화와 전투를 동시에 적용하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