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시절
Jim Corbett
1875년 7월 25일~ 1955년 4월 19일
1 개요
정확한 이름은 에드워드 제임스 코벳(Edward James "Jim" Corbett)이며 짐은 별명. 인도에서 태어나 케냐에서 생을 마친 군인이자 위대한 사냥꾼, 포수계의 황제 레알 트리플 헌터
2 전설의 명포수
아, 사냥의 전율이 느껴지십니까!
안되겠소,쏩시다!
그는 이미 9살도 되기 전에 자신의 사냥꾼으로서의 천재성을 드러냈다. 그 나이에 총으로 표범을 잡은 것. 꼬마한테 잡힌 표범에게 묵념
그러나 그가 명성을 떨치기 시작한 것은, 바로 10마리가 넘는 식인 맹수들을 처치했기 때문이다. 판타지로 치면 드래곤 슬레이어 쯤 될 것이다(……). 그의 첫 사냥감제물이 바로 참파와트(Champawat)의 식인 호랑이인데[1], 이 호랑이는 무려 400명이 넘는 사람을 먹어치웠으며 희생자의 대부분은 여성과 어린아이였다고 한다. 결국 호환을 견디지 못해 군대까지 동원되었고[2], 네팔 군의 추적을 피해 참파와트는 인도의 쿠마온 지방으로 넘어온다. 여기서도 수많은 사람을 잡아먹었고, 인도에서는 모든 수단을 동원했지만 참파와트는 그 모든 조치를 비웃듯이 활개치고 다녔다. 수많은 사냥꾼들과 구르카 족 용병들까지도 이 교활한 호랑이에게 농락당했고, 결국 436명째 희생자까지 나오고 만다. 호환 항목에서도 나오듯이 수백여명 인원 동원함에도 이 약아빠진 호랑이는 잘만 피해다녔다.
그 때 영국 육군 보병 장교인 짐 코벳이 왔고, 홀로 참파와트를 추적한 끝에 결국 놈을 사살했다. 그 공적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지만 그는 한 푼의 현상금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지방 영주들이 고마워하며 준 상금을 되려 희생자들 유족을 도우라며 기부했다고 한다. 회고록에 의하면 '그런 맹수로 절망에 빠진 이들을 돕는 게 먼저 생각할 일'이라고 뜻을 밝혔다. 그 후 그는 11마리의 식인 호랑이를 더 사살하였으며, 그 공으로 훈장도 받고 대령까지 진급하게 된다.
1930년 파월가(Powalgarh)의 호랑이를 잡았을 때의 사진 |
그의 총에 죽은 식인 호랑이들에게 죽은 피해자가 1,500명(……)은 족히 되므로[3], 그 정도의 포상은 실로 작은 것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뭐 훈장도 받고 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경제적으로 꽤 풍족하게 살았지만. 또한 그는 식인 표범도 사살한 바 있다. 125명을 잡아먹은 루드라프라야그 표범이나 400명 이상의 사람을 잡아먹은 파나 식인 표범도 그의 총에 최후를 마쳤다. 루드라프라 표범을 잡은 자리에는 기념비가 세워졌다. 이 식인 표범이 입힌 피해까지 합치면 죽은 피해자는 무려 2,000명이 넘는다!
이런 그의 업적 덕분에 그는 Sadhu로 간주되었다. 간단히 말해서 성인 취급을 받았다는 소리다. 그가 마지막으로 식인 호랑이를 사냥했을 때, 그의 나이는 63세였다.
인도에 세워진 그의 흉상.
3 자연을 보호하자
그는 자연보호에 앞장선 인물이기도 하며, 야생동물 보호를 위해 인도 최초의 국립공원도 만들었다. 이 공원은 바로 쿠마온 지방에 세워졌는데, 처음에는 다른 이름이 붙었지만 나중에는 그를 기념하여 짐 코벳 공원(Jim corbett park)으로 불리게 된다.
이게 왜 대단하냐면, 그 당시에 자연 보호나 환경 보전에 대한 개념이 제대로 잡혀 있겠는가 하는 것 때문이다.
아무래도 식인 맹수들을 사냥하면서 이러한 괴물들이 나타나는 이유를 알고 환경 오염의 결과(서식지 파괴로 인한 먹이 부족, 사람들 거주지가 늘어나면서 가축을 더 노리게되고 이 과정에서 사람을 우연히 잡아먹고 사람 고기에 맛들린다든지)가 결국 인간에게 피해가 돌아온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다고 볼 수 있다. (야생동물의 개체수의 감소를 가장 민감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바로 사냥꾼이기도 하다.)
희대의 최고 사냥꾼이라는 것 때문에 뭔가 이중적이지 않느냐는 사람도 있을까 봐 하는 말인데, 한 번 식인에 맛들린 맹수들은 계속 식인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인간에게 피해가 가는데 안 죽일 수가 없지 않은가. 게다가 위에 예시를 든 맹수들은 모두 100명 이상의 사람들을 해친 괴물들이다. 1981년 인도에서 100명이 넘는 사람을 잡아먹은 식인 호랑이를 쏴죽인 것도 인도의 세계적인 호랑이 연구가인 무파니야트 싱 박사이다. 그도 사람들이 두려움으로 호랑이를 마구 학살할 것을 막고자 스스로 나서 죽인 것이다. 실제로 이런 대규모 식인 맹수가 설치면 사람들이 애꿎은 새끼 맹수까지 마구 죽여버리는게 흔하기 때문이다. .식인 맹수는 아니지만 시튼 동물기의 저자인 어니스트 시튼도 농장주들이 늑대들을 닥치는 대로 학살하는 것을 막기 위해 늑대왕 로보, 블랑카 부부를 죽였다.
1990년대 후반 아프리카 보츠와나에서도 사람을 여럿 잡아먹은 식인 사자를 두고 사자 보호단체도 식인 사자만은 쏴죽이는 걸 막거나 비난하지 않았다. 사람을 계속 노리게 되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사자들이 보이는대로 학살당하는 것을 막으려다가 식인 사자를 옹호한다는 억울한 비난을 당하기도 했다. 또한 사람들은 인간에게 위해를 끼치는 위협적인 동물에 대해 강한 경계심을 품고 이는 학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 나선 것이기도 하다. 단적인 예로 죠스로 인해 식인 동물로 악명 높아진 백상아리들이나 상어들은 멸종 위기 종인 경우에도 사람들이 잘 보호하려 들지 않는다.
그는 나중에 케냐에서 은퇴 생활을 하게 되는데, 이 때 영국의 공주 한 사람이 트리탑 호텔에 그를 초대했다. 근처에 야생동물이 많았기에 그는 잠도 안 자고 공주를 경호했는데, 그날 밤 공주의 아버지인 조지 6세가 사망했다. 그녀가 바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다.
4 그 외
그의 무덤은 잠시 방치되기도 했지만, 짐 코벳 재단에 의해 수리되었다.
그는 많은 저서를 남겼으며, 그 첫 번째가 바로 '쿠마온의 식인 호랑이'이다. 이 책은 27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우리나라에도 출판된 바 있다. 현재는 절판.
5 관련 링크
- ↑ 이름이 참파와트가 된 것은 '참파와트' 지역에서 주로 활동해서다.
- ↑ 사실 수만에서 수백만 명의 인구 중 200명 정도의 희생이라면 비율상으로 그리 많은 수는 아니지만, 호환을 당하는 지역 마을이나 도시의 인구수는 상대적으로 적은데다가 불과 몇십 명 정도의 피해라도 당하는 주민들의 입장에서는 극도로 공포심이 전염되어 수천 명 가량의 사람들이 일상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된다. 실제 참파와트 호랑이가 자주 출몰한다는 지역은 사실상 사람들이 살지 않아 버림받은 지역이 되었고, 일대의 경제가 마비될 정도였다고 한다. 괜히 군대까지 동원한게 아니다. 제보당의 괴수 사건도 똑같아서 군대가 출동한 거였다. 우리나라도 과거 호환에 군대가 나서서 잡았던 것도 괜히 그런게 아니다.
- ↑ 그가 식인 호랑이들을 사살하지 않았더라면 희생자가 몇 백, 몇 천 명 더 늘었을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