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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泳謹
1922년 4월 24일 - 2004년 8월 13일
대한민국의 전 관료, 기업인, 정치인이다. 종교는 불교다.
1922년, 경상북도 경주군에서 태어났다. 인근 지역인 울산군 출생의 이후락과는 어릴 적부터 친한 사이였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민주당 신파 계열로 정계에 입문하였다. 그러면서 김대중과는 사석에서 말을 놓는 사이로 친해졌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경상남도 울산군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안덕기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같은 선거구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61년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 정무차관을 지냈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상남도 울산시-울산군 선거구에서 민주당 후보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출마하였다가 민주공화당 설두하 후보에게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정계를 잠시 떠나 제일생명보험 사장, 한국기원 이사장, 한국권투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1980년 서울의 봄 때는 친구였던 민주공화당 이후락 의원으로부터 "1973년 박정희가 김대중을 죽이라고 지시했으나 자신은 곤혹스러워 계속 미뤘었고 김종필과도 이야기가 다 되었다며 박정희가 재촉하자 실행했다"라는 김대중 납치사건 관련 전말을 들었다.
1980년대 중반에는 민주헌정연구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김대중을 외곽에서 지원하였다. 1987년 김대중이 평화민주당을 창당하자 입당하였다. 이듬해인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평화민주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