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凝, 898~932
고려의 문신. 황해도 황주 출신이다.
1 신동
기록에 의하면 황주의 대상(大商. 규모나 재산이 큰 상인) 우달의 아내가 임신을 했는데 그 집 오이가지에 참외가 열리는 일이 일어났다. 우달의 이웃에서 이 일을 궁예에게 고하자 궁예는 점을 쳐본 뒤 "이 집에서 아들을 얻으면 나라에 불리하니 기르지 말라"라고 엄포를 놓았다고 한다.
궁예의 말대로 아들이 태어나자 우달은 이 아이를 숨겨서 길렀는데 어릴 때부터 오경에 능하고 문장에 통달하여 불과 10대의 나이에 궁예가 발탁하여 관직에 나가게 된다. 최응의 뛰어난 학식에 감탄한 궁예는 "이야말로 성인을 얻는다 함이 아닌가"라고 최응을 총애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915년, 왕건이 궁예에게 모반을 의심받아 관심법으로 시험하려 하자 붓을 일부러 떨어뜨린뒤 그것을 줍는척 하면서 "모반하였다고 시인하십시오. 그러면 살 것입니다."라고 은밀히 충고했다. 왕건이 최응의 충고대로 따르니 궁예는 왕건이 정직하다면서 그를 용서하고 되려 큰 돈을 내렸다.
2 고려 건국 이후
왕건이 궁예를 타도하고 고려를 세우면서 최응은 왕건의 총애를 받아 왕명의 출납을 맡아보는 원봉성의 지원봉성사, 국무를 담당하는 최고 의결기관인 광평성의 광평낭중, 오늘날의 내무부에 해당하는 내봉성의 내봉경을 거쳐 광평성의 광평시랑 등을 역임했는데 이로 볼 때 권력의 핵심부에 있었음을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성인이라는 이름답게 매일 목욕재계하고 고기를 입에 대지 않았다고 한다. 심지어 병이 들었을 때도 고기를 먹지 않아 왕건이 태자를 보내 고기를 먹기를 권했으나 거절하자 몸소 직접 행차해 병문안을 하며 "고기를 먹지 않으면 불충이요 불효로다"라고 하자 그제서야 고기를 입에 댔다고 한다.
문장에도 탁월한 면모가 있었는지 왕건이 삼한통일을 기원하기 위해 세운 개경의 7층탑과 서경의 9층탑에 쓰일 발원문을 지어달라고 하자 이것을 지었다고 하나, 최응의 발원문은 현재에 전해지지 않았다.
932년, 삼한통일을 불과 몇년 앞두고 35세의 나이에 요절했다. 시호는 희개(熙愷). 왕건이 대광태자사부, 사도에 추증했고 후에 태조의 배향공신으로 위패가 모셔졌다.
3 미디어믹스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는 사극 만렙 배우인 정태우가 이 역을 맡아 열연했다. 그가 태어날 때 오이 가지에 참외가 열렸다는 일화도 소개될 정도로 비중있는 인물임을 암시하였으며,[1] 극 중반까지는 대체적으로 역사적 사실과 비슷하게 간다. 그러다가 극 중반을 넘어선 146화에서 조물성을 휩쓴 전염병에 걸려 태평이 임종을 맞이하면서 왕건에게 "신이 죽은 뒤에는 내봉성령 최응을 크게 쓰시옵소서"라며 유언을 남겼고 최응에게도 "폐하의 대업을 이루는 것은 그대의 손에 달려있다"며 왕건의 보필을 부탁하며 사망함에 따라 군부를 책임지던 태평의 후임자가 되어 병부의 수장인 병부령직을 제수받아 왕건의 책사로서 후백제의 최승우와 대결을 펼치는 걸로 나온다. 작중에서는 병부령이 되기 이전, 외교를 전담하던 내봉성령 직위에 있을 때부터 병부령이 되고 군권을 맡은 뒤 사망할 때 까지 군사적인 업무 외에도 조정 내의 여러가지 일들을 왕건이 고민할 때 왕건의 최측근으로서 차분하게, 그러나 때로는 직언하여 왕건에게 조언을 하기도 한다.
궁예의 관심법으로부터 왕건을 구해낸 유명한 일화도 드라마에 그대로 묘사되었다. 드라마에서는 추가로, 주변 사람들이 무슨 일만 터지면 계속 왕건을 걸고 넘어져 궁예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자 최응이 왕건을 관심법으로 한 번 보라고 조언하는 장면까지 넣었다. 이 드라마에서 관심법이란 곧 사망 플래그(...)이기 때문에 얼핏 보면 곧 왕건을 죽이라는 말이나 다름없는 조언이긴 했으나, 이 판을 주도한 최응이 현장에서 왕건의 살아날 길을 코치해 준 덕분에 왕건은 어쨌든 살아났다. 국문이 끝난 뒤 궁예도 "최응이 네 말마따나, 관심법으로 보니 아우는 역시 충신이었다." 라면서 상당히 만족한 모습을 보인다. 계획대로 양쪽 고객을 모두 만족시키는 책사 전제왕권을 이용하여 왕건을 공개적으로 구제하고 반대파의 입을 다물게 한 장본인은 궁예였지만, 따지고 보면 그 짜고치는 이벤트를 처음부터 기획하고 원하는 방향으로 성사시킨 사람은 최응이었던 셈.
실제로도 왕건이 크게 의지한 인물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는 드라마에서 최응이 아파서 쉬고 싶다고 할 때마다 왕건은 "최응이 이사람하고는, 자네 없이 어떻게 하루라도 이 조정이 잘 굴러갈 수 있겠나?" 하며 거절하는 것과 지혜가 필요할 때 마다 최응을 찾는 것은 예삿일이며 훗날 혜종이 되는 태자 왕무를 정윤으로 책봉하는 일에 관해 조정이 시끄러웠을 때 "어차피 나중에 다시 이 일이 논의된다 하더라도 결론은 똑같다. 장자우선이라 했으니 조정의 내분이 심해지기 전에 빠르게 매듭지어야 한다."고 조언하여 왕건이 이를 받아들인 일과, 평양에서 왕건을 대신해 만세를 받은 일이 기폭제가 되어 유금필에게 안좋은 감정이 있던 신하들이 유금필에게 죄를 물어야 한다며 올린 상소를 보고 격노하는 왕건에게 "유금필 장군은 분명 죄 없으나, 이 일은 폐하께서 원인을 만드신 것입니다. 아니 그렇습니까?"라며 강직하게 직언한 일도 있다.[2]
한편으로 조금 어두운 면도 보이는데,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조물성 전투 이후 서로 인질을 교환하면서 고려로 온 백제의 인질 진호의 일이다. 조물성 전투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한 후백제가 파죽지세로 신라를 압박해 들어가자 가뜩이나 자존심 상해 있던 고려의 장수들은 너나할것 없이 왕건에게 군사를 일으킬것을 청한다. 하지만 인질로 간 사촌아우 왕신의 존재 때문에 그저 관망만 할 수밖에 없어하자 갑갑해 하던 유금필과 박술희가 최응을 찾아간다. 이때 최응은 자신이 만약 다시 큰 죄를 지을때[3]에 대비해 준비했던 독약을 내놓으며 인질을 독살할것을 권한다. 결국 최응의 의도대로 독약을 가지고 간 유금필의 간청에 인질을 관리하던 왕식렴은 진호를 독살하고, 그 의도대로 다시 전쟁이 벌어지게 된다. 그런데 그렇게 고대했던 전쟁이 하필 공산 전투다. 진호의 뒤끝은 매우 강했다.
사실 실제 역사상의 관직을 봐서는 문신에 불과했던 것 같지만. 궁예 때 등용된 후 왕건 즉위 초까지는 관복을 입었지만 이후부터는 옷차림이나 머리 모양이 종간처럼 바뀌었다. 성인으로 불리며 궁예와 왕건이 후대한 것을 반영해서인지 179~180화에서 나온 그의 최후는 중병[4]에 걸린 상태에서 왕건에게 올리는 마지막 상소문을 쓴 뒤 눈을 뜬 채 앉은 자세 그대로 사망한 것으로 묘사되었다.[5] 그리고 이후 그의 빈자리를 배현경이 메우게 되며 정신적 후계자는 최지몽이 맡게 된다.[6][7]
수많은 헌책과 차분한 성품, 조급해하는 왕건을 달래는 모습과 요절한 천재 참모라는 그의 모습은 삼국지의 순욱과 곽가를 합친 듯한 모습이다. 게다가 작중 중반을 지나서부터 등장인물들이 최응은 요절하리라는 암시를 대놓고 던진다. 경보대사의 "신동이 가엾게 되었구나. 남은 수명은 10여년 정도구나."라는 발언이나 최승우의 "고려의 신동도 딱하게 되었구나. 나보다 더 박한 운이 있다니. 고려의 신동은 올해를 넘기기 어렵겠구나." 하는 발언 등.... 가뜩이나 요절했다는 역사적 사실도 있고 조물성에서 유행병에 걸려 사망 플래그를 세우나 싶었지만 다행히도 생환하여 플래그를 분쇄. 그러나 두 번째로 병에 걸렸을 때는 얄짤없었다. 참고로 궁예가 집권하던 지난 조정에 출사한 것이 열 네살, 사망 당시 왕건의 조정에서 서른 다섯으로 사망했다.
비록 서로 적국에 몸담고 있었지만 최승우는 시종일관 최응을 아들에게 인자한 아버지와 같은 태도로 대하는 데 반해 최응은 최승우를 은근히 라이벌로서 견제하고 경계하는 태도를 보인다. 그리고 죽는 날까지 딱히 건강에 이상이 없었던 최승우와는 달리, 최응은 어째 최승우와 만날 때마다 병에 걸려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약간 궁지에 몰려 있고 긴장한 듯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둘의 맞대면 후 수 싸움 장면을 보면 온화한 최승우가 능글맞은 여우처럼 보일 지경.
여담으로 드라마의 영향인지 신라 3최 중 한 사람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신라 3최는 최치원, 최승우, 최언위이다. 아마 최언위가 일반인들에겐 그리 유명하지 않아서 그런 듯.- ↑ 단 여기서는 극중 캐릭터 설정에 맞게 궁예 대신 종간이 점을 쳐서 흉사임을 알아내는 것으로 처리되었다.
- ↑ 헌데 유금필의 삭탈관직과 곡도 유배형은 최응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다. 자세한것은 유금필 항목 참고
- ↑ 조물성 전투에서의 굴욕적 협상을 자신의 죄라고 여겨 굶어 죽으려 했으나 왕건의 간청에 마음을 돌린 일이 있다.
- ↑ 의원의 말로는 간장과 폐장, 위장 등 온 몸에 악성 종기가 퍼졌으며 몇 개월을 넘기지 못한다고 말하였다. 온몸에 퍼진 악성 종양에 증세가 나타나면 이미 늦었다는걸로 보아 말기 암으로 추정된다.
채식만 고집하더니 다 소용없구만 - ↑ 이러한 형태의 죽음을 불교에서는 좌탈입망(坐脫立亡)이라고 한다. 법력이 높은 고승들이 앉은 자세(坐脫)나 선 자세(立亡)로 열반에 드는 것을 의미한다.
- ↑ 최지몽이 최응을 대신하게 되었다고 이전에는 적혀있었으나 다소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우선 작중에서 최지몽은 최응과 각별한 사이로 묘사되기는 하지만 꿈풀이나 점(卜)에 능한 모습만을 보여줄 뿐, 책략을 세우는 모습은 단 한 번도 보이지 않는다. 또한 작중에서 최응의 뒤를 이어 병부의 수장이 된 인물은 배현경. 즉, 오히려 배현경이 최응의 빈자리를 메웠다고 보는 쪽이 적절하다 할 것이다.
- ↑ 하지만 드라마에서 최응의 후계자처럼 자주 묘사된건 최지몽이다. 배현경은 최응과 특별한 접점이 없었지만 최지몽은 최응 옆자리를 자주 지키며 최응 밑에서 활약했다. 최응이 최승우와 대담할때도 최지몽을 같이 데려가 대담하기도 했다. 이를 볼때 드라마 내에서 최응의 정신적 후계자는 최지몽으로 볼 수 있다. 삼국지로 비교하자면 제갈량의 직위는 장완, 비의가 이었지만 독자들은 제갈량의 후계자로 강유를 생각하는것과 비슷하다고 보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