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

후고구려고려의 문신.

1 개요

생몰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기록에 의하면 신라말 유긍순이라는 호족의 기실이었다고 하는데 아마 비서겸 서기관 역할을 한 것 같다. 그런데 궁예가 유긍순의 지역으로 쳐들어와 유긍순이 개발살난 후, 궁예에게 항복했으나 오랫동안 항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궁예가 그를 군졸에 예속시켰다고 한다.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지만 왕건을 만나 그의 휘하에서 활동하다가 고려 개국에 공을 세우고 순군 낭중이 되었다고 한다. 이로 미루어 보면 아마 왕건을 전쟁터에서 수행하지 않았나라고 짐작된다.

2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단 몇 줄 기록밖에 없는 인물이지만, 태조 왕건에서는 상상력을 더해 왕건의 책사로 나온다. 배우는 김하균.[1]

처음 등장은 79화에서 왕건이 상주를 공략해 후백제의 허를 찌르려는 전략을 수립할 때 작전회의 말미에 있던 군졸로 나오는데, 군졸임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전략을 건의해 왕건에게 발탁되는 걸로 묘사된다. 이 때 설명하며 나온 장면을 보면 다른 병졸들 사이에서 쉴 때마다 책을 읽는 모습이 나온다. 왕건은 태평의 책략을 이용해 조령과 죽령을 탈환하는데 성공하였고, 이후 태평은 왕건의 책사가 된다. 왕건이 태평을 상당히 총애하는지, 84회에 왕건 및 그의 의형제들과 함께 목욕을 즐기는 모습도 보인다.

왕건이 철원에 복귀한 후, 아지태가 찾아와 반역을 제의하고 돌아가자, 아지태를 여러모로 비범한 사람임을 확실하다고 평했다. 그리고 왕건에게 살고 싶다면 저 아지태와 손을 잡거나 아니면 어떻게든 전장터로 나서야한다고 간언한다. 물론 왕건이 죽으면 죽었지 아지태와 손잡을리가 없기에, 종간이나 은부에게 공격당하고 싶지 않다면 빨리 전장터로 나가라는 얘기. 때마침 후백제가 나주를 공격하여 왕건이 다시 나주로 가게 되엇지만.

이후 견훤이 나주를 수복하기 위해 대규모의 수군을 몰고 쳐들어왔을 때는 화공을 위해 천문을 연구하고 남동풍을 불게 하는데(…) 이때 모습은 영락없이 제갈량이다(…)[2][3] 이후 왕건에게 역성혁명을 일으킬 것을 종종 설득하기도 했고 그가 시중으로 있을 땐 비서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왕건이 고려를 건국한 이후에는 병부의 수장인 병부령으로 임명되었는데, 이후 참가한 조물성 전투에서 대대적으로 창궐한 전염병에 감염되는 바람에 그만 죽고 만다(…). 이 때 군사들 사이에서 전염병이 창궐하는 가운데 그에게 본격적으로 증상이 나타나 물을 찾으며 절규하는 모습은 상당히 충격과 공포. 훗날 대조영에서의 부기원과 같은 모습이 느껴지는 것은 함정 안습한 것은 이 조물성 전투가 본격적인 고려와 후백제간의 첫 전투였다는 점이다.[4] 왕건이 통일의 대업을 이루는 것을 보지 못했기에 차마 눈을 감을 수가 없다며 눈을 뜬 채로 죽었다. 임종하면서 태평은 "신이 죽은 뒤에는 신보다도 더 총명하고 학문과 기지가 뛰어난 천재인 내봉성령 최응을 크게 쓰시옵소서" 라며 최응을 중히 쓰라는 말과 최응에게도 왕건이 대업을 이루는 것은 그대의 손에 달려있다며 뒷일을 부탁하는 유언을 남겼다.[5]

태평의 사망에 왕건과 최응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 했지만, 태평의 계책으로 나주 수복전에서 수군도 크게 피해를 입고, 수달을 잃는 등 막심한 손해를 입었던 견훤은 태평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10년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간다느니 속이 다 시원하다며 크게 웃었다.[6]

어찌되었든, 이 사람이 사망한 이후 최응이 병부의 수장이 되어 왕건을 보필하지만 결국 그 최응마저도 병으로 젊은 나이에 사망해버리면서 최지몽이 성장하기 전까지 고려는 이들의 공백을 어느 정도 실감해야 했다. 삼년군에서 패배한 이후(165회)에 지난 공산 전투에서의 뼈아픈 패배를 겪은지 얼마 되지도 않은지라 왕건은 크게 상심하며 "태평 군사를 잃고... 내 아우 신숭겸이를 잃었어!(생략)" 이라는 대사를 하는데 작중 왕건에게는 역시나 태평을 일찍 떠나보낸게 너무나 큰 손해였을 것이다.
  1. 여담으로 어째 김하균은 이후에 등장하는 사극에선 태평 같은 선역보다는 악역이거나 영 좋지 않은 캐릭터로 자주 등장했다. 그 예로 대조영에선 고구려 간신 부기원을, 비밀의 문에선 노론 탱커 김상로를, 무인시대에서는 김광립을, 불멸의 이순신에선 명나라 장군 진린을, 징비록에서는 양호를 연기했다.
  2. 아예 대놓고 극중에서 제갈량을 언급하기까지 한다. '어떻게 남동풍을 불게 했을까 연구를 하다 알게 되었습니다' 라는 게 태평의 해설.
  3. 당시 김하균은 김형일(능산 역), 김학철(박술희 역)와 함께 이 컨셉으로 에어컨 광고도 찍었다.
  4. 혁명 이후부터 아자개의 귀부, 송악 환도까지는 별 다른 전투가 없었고, 태자 무와 박술희가 이끄는 고려군과 신검 형제들과 애술 등이 참전한 후백제군의 전투는 전초전 성격이었던 만큼 왕건이 친정을 나온 조물성 전투가 본격적인 고려와 후백제간의 첫 전투라 볼 수 있다.
  5. 이 때문에 태평을 다소 일찍 극에서 리타이어시킨 것은 결국 왕건의 책사로서 최응을 부각시키기 위한 작가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도 있다.
  6. 고려군에게까지 대놓고 그런건 아니고, 이후 견훤과 왕건과의 만남을 주선하러 간 최승우에게 시켜 '애도의 뜻을 표한다'라고 하긴 했다.